IGN 특집기사: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역사
글 / 러스 맥러힌 (Rus McLaughlin)
2007년 11월 8일
닌텐도의 야심찬 미국 진출은 3년만에 완벽한 실패로 판명되었다.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여겨졌던 레이더 스코프는 출고된 3000천대 중 고작 1000대만 팔렸을 뿐이었고, 나머지는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신세가 되었다.
미국 진출을 진두지휘했던 아라카와 미노루는 장인인 닌텐도 사장 야마구치 히로시에게 곤경에 처한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를 살리기 위해 레이더 스코프 기기를 활용, 재프로그램하여 새로운 히트 게임을 만들자고 간청했다. 야마구치는 이에 동의하여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작업을 '게임&워치' 시리즈로 성공을 거둔 요코이 군페이와 그의 휘하에 있던, 게임을 한번도 디자인해본 경험이 없던 젊은 그래픽 아티스트에게 맡겼다. 그 젊은이의 이름이 바로 미야모토 시게루.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스토리가 먼저 만들어지고 거기에 맞추어 게임플레이가 디자인되었다. 미야모토는 당시 닌텐도가 라이센스를 얻으려 시도하다 실패한 뽀빠이의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플롯을 구성하였다. 먼저 부르토를 대신하여 거대한 고릴라를 등장시켰고 뽀빠이 역을 대신하여 통나무를 뛰어 넘어 "레이디"를 구하러 위로 위로 전진하는 "점프맨"이 탄생되었다. 미야모토는 서로 다른 스테이지가 차례로 연결되는 전개를 원했고, 그의 밑에서 일하던 네 명의 프로그래밍 팀원들은 똑같은 게임에 대해 개개인이 4번의 중복작업을 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체스를 두면서 다섯 수마다 체스판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처럼 바보같이 느꼈던 것이다.
결국 프로그래머들은 20k에 달하는 코드를 완성했고 그 사이에 미야모토는 배경음악을 만들고 중간 중간 스토리의 진행을 알려주는 "인터미션"을 만들었다. 모든 것은 레이더 스코프의 하드웨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게임을 담은 칩과 컨버전 키트가 1981년에 미국으로 발송되었다. 아라카와와 그의 아내를 포함한 몇 명의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 직원들이 2000대의 레이더 스코프를 돈키콩으로 변환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아라카와는 "점프맨"은 미국인들에게 와닿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캐릭터에 붙일만한 '진짜' 이름을 필요했다. 마침 그 때 오랫동안 밀린 사무실 임대료를 받기 위해 건물주가 회사 임원회의 시간에 들이닥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인물의 이름은 시갈리... 풀 네임은 마리오 시갈리였다.
점프가 시작되다.
26년 후, 마리오는 미키 마우스보다 더 유명한, 비디오게임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으며, 등장한 게임 200여개의 총 판매개수를 합하면 2억개가 넘는다. 새로운 콘솔의 탄생과 게임 산업의 부흥, 그리고 진정한 3D 게임 등 게임 트랜드 중심에 마리오가 있었다. 비디오게임 10대 베스트셀러 중 6개는 마리오 게임에다 오케스트라가 마리오 테마를 연주하고, 마리오를 소재로 쓴 오페라도 있다. 마리오가 주인공인 애니매이션도 있으며, 비록 허접의 극치를 달리긴 하지만 실사 영화도 나왔었다. 마리오를 만들어낸 미야모토는 일개 스텝에서 게임업계의 대부가 되어 프랑스에서는 작위까지 받기도 하였으며 현재 일본에서 세번째로 큰 회사가 된 닌텐도에서 한 Division 전체를 운영하는 지위에 올랐다.
마리오가 본격적으로 닌텐도의 공식 마스코트도 되기 전에는 돈키콩의 인기가 대단했다. 돈키콩 아케이드 게임은 총 6만대 이상 팔려나가던 시절에는 마리오는 초라한 존재에 불과했다. 돈키콩의 속편으로 1983년에 등장했던 돈키콩 주니어라는 게임에서는 마리오가 채찍을 휘두르는 악역을 맡기도 했다.
미야모토는 마리오를 언제나, 어느 게임에나 투입 가능한 그의 분신같은 캐릭터로 생각했다. 마리오의 디자인은 8비트 수준의 조악한 게임 그래픽의 한계를 승화시킨 멋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팔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전체 프로포션이나 입보다 특징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콧수염과 커다란 코, 그리고 어두운 배경에서도 쉽게 드러나는 전체적으로 밝은 색 디자인까지. 미야모토는 머리카락을 그리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마리오에게 모자를 씌웠지만 덕분에 프로그래머는 점프할 때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표현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 다만 여전히 목수라는 마리오의 직업은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았다. 미야모토의 동료는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보면서 목수 보다는 차라리 배관공에 가깝다는 의견을 냈다.
이러한 의견을 바탕으로, 미야모토는 마리오가 등장하는 세번째 게임의 배경을 가재와 거북이, 그리고 불나방이 돌아다니는 하수도로 설정했다. 이 게임의 모티브가 된 것은 Joust라는 게임으로 두 게이머가 서로 협력할 수도, 혹은 서로 싸울 수도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두번째 플레이어를 위해서도 미야모토는 동일한 캐릭터를 사용했고 색깔만 바꾼 후 서로 닮은 "형제"라는 설정을 붙였다.
이 캐릭터에 루이지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비슷한"을 의미하는 일본어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아라카와의 사무실 근처 피자 가게 이름이 "마리오 & 루이지"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이 두 형제는 마리오 브라더스라는 게임에서 처음으로 주연 캐릭터가 되었으며 점프해서 적들 밑의 바닥을 치고 적들을 없애서 코인을 먹는 게임플레이도 처음 선보였다.
마리오 브라더스는 어느 정도의 성공만을 거두었다. 애초에 아케이드 시장은 붐을 형성하기에는 수명 주기가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야마우치는 보다 수익성이 좋은 가정용 게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지만 마침 미국에서는 가정용 게임이 완전히 몰락해버린 시점이었다.
일본에서는 가정용 게임 시장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으며, 1985년에 이르러서는 닌텐도의 패미콤이 초반 리콜 등의 부진을 딛고 아시아 가정용 게임 시장의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타리와의 협상 결렬 등의 여러가지 악재로 인해 시장에서의 자리매김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야마우치의 철학은 매우 단순하고 분명했다. '재미있는 게임이 콘솔 판매를 견인한다.' 그리고 닌텐도에는 최고의 게임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었다. 야마우치는 미야모토에게 개발4부라는 Division 하나를 총괄하게 하고, 그곳에서 패미콤의 미국 시장 성공을 담보할 게임을 만들도록 했다.
마리오와 루이지는 이제 아케이드 게임기 속 하수도를 떠나, 패미콤 속의 버섯 왕국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다.
버섯 왕국의 탄생
초기의 비디오게임들은 대부분 코딩을 담당했던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그러나 미야모토 시게루는 프로그래머가 아닌 디자이너였고, 그의 게임 디자인 방식은 이전의 것들과 완전히 달랐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방식에 대해서는 그가 아는 것이 전무했으므로. 그가 프로그래머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기존의 것들을 답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시도들은 그의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돈키콩과 마리오 브라더스를 통해 그는 플랫폼 게임이라는 장르를 처음 만들어냈고, 이제 이 개념을 좀 더 확장시키고자 했다. 가장 먼저 나온 아이디어는 마리오와 루이지가 파워-업 아이템을 통해 커지거나 작아지는 것이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루트로 진행되지만 약간의 비기들을 이용하면 숨겨진 아이템이나 숨겨진 지역, 또는 지름길 등을 찾을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버섯 왕국의 난이도는 매우 주의 깊게 조정되었다. 미야모토는 플레이어가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끼면서 계속 발전하는 게임성을 원했으며 갑자기 너무 어려워지거나 지루해지는 것은 피하고자 했다. 적들은 빈 거북껍질을 날리거나 그 위에 점프하는 것으로 무찌를 수 있었으며 파워-업 아이템을 통해 마리오는 거대한 슈퍼 마리오, 불을 뿜는 파이어 마리오, 그리고 잠깐 무적이 될 수도 있었다. 코인을 모으면 추가 라이프를 얻을 수 있었고, 시간 제한을 통해 스테이지의 빠른 클리어를 독려했다. 파이프를 통해 스테이지를 짧게 마치거나 아예 레벨 하나를 건너뛸 수도 있었다.
미야모토는 밝고 화려한 스테이지에 무수히 많은 비밀들을 숨겨 놓았으며 스테이지의 구석 구석에 그의 천재적이고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남아놓았다. 콘도 코지의 경쾌한 음악은 즉시 플레이어를 사로잡았으며 마리오의 점프 소리조차 게이머들에게는 즐거움이 되었다.
미야모토는 마리오를 완벽하게 다듬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은 나머지 개발4팀의 다른 대형 프로젝트인 젤다의 전설의 개발이 연기되었고 'Weacking Crew'라는 다른 게임의 개발은 아예 다른 팀으로 넘겨버렸다.
1985년 10월, 패미콤은 미국에서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약칭 NES)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으며, 그 중 하나의 버전에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번들로 들어가 있었다. 아라카와는 배급 루트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단 한 명, 그것도 내키지 않은 배급업자를 찾아 그의 뉴욕 매장들에 간신히 테스트 시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다. 시장의 기대는 높지 않았다. 비디오게임 붐은 이미 지난 이야기였고, 모두가 NES가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매장 한 구석에서 그냥 먼지만 뒤집어쓴 채 절대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타리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멋진 게임기와, 놀라울 정도로 재밌는 게임의 입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스토리는 그다지 심오하진 않지만, 그 이후 계속되는 모든 마리오 게임의 바탕이 되고 있다. 악당 바우저 (혹은 일본판에선 쿠파)가 피치 공주를 납치하고 버섯 왕국을 점령한다. 작은 마리오는 피치 공주를 구하기 위해 틈새들을 뛰어넘고 적들을 물리치면서 8개의 거대한 월드를 달려간다. 정말 정의감이 투철한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게임의 끝에는 용암 위에서 바우저와의 마지막 결투가 기다리고 있고, 바우저를 물리치면 피치 공주의 "Thank You, Mario!"를 들을 수 있다. 보상은 단지 그 뿐. 그러나 영웅은 보상을 바라기보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다. 재밌는 게임이 콘솔 판매를 견인한다는 야마우치의 전략은 적중해서, 그 다음 해 2월에는 수천만대의 NES가 미국에서 팔려나갔으며 거의 대부분이 마리오 게임을 함께 가져갔다. 번들을 포함해서 슈퍼 마리오는 총 4천만개 팔았으며, 이 기록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판매 2위를 기록하고 있는 게임보다 천만개 더 앞선 기록이다.
1983년부터의 비디오게임 쇠락기는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으며, 이 모든 것은 빨간 모자의 이탈리안 배관공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속편의 제작은 당연했지만, 그 때부터 뭔가 꼬여나가기 시작했다.
또 다른 세상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미야모토가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의 모든 요소에 대해 관여했던 마지막 게임이 되었다. 개발4팀을 전체적으로 관장하는 업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기 때문에 슈퍼 마리오의 속편 작업에 그의 참여가 제한적이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또한 패밀리 디스크 시스템(이하 FDS)으로 발매될 젤다를 최종적으로 다듬는 일에 집중해야만 했다.
FDS는 패미콤에 연결되는 외장 디스크 드라이브였다. 게임소프트의 단가를 낮추는 반면 용량은 다섯배로 확장할 수 있어 게임의 퀄리티를 인상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젤다가 FDS로 발매될 첫번째 게임이었고,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가 다음 타자가 될 예정이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는 그래픽에 있어서는 전작과 거의 차이점을 찾을 수 없었지만, 난이도가 심각하게 올라간 게임이 되었다. 점진적으로 조금씩 플레이어를 적응시키면서 높아졌던 전작의 난이도에 비해 속편은 타이밍에 맞추어 적을 밟고 넘어가야만 건널 수 있는 구멍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등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장애물들이 등장하는 데다가 후반 스테이지들은 아케이드판 "Vs.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우려먹은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더해 어떤 버섯들은 먹으면 독이 되는 것도 있었고, 어떤 워프는 오히려 초반 스테이지로 돌아가게끔 되어 있었으며, 날씨 효과로 생기는 미끄럼으로 마리오가 어이없이 구멍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각 스테이지의 보스전을 힘들게 이기고 나면, 피치 공주의 수행원인 토드가 나와서 구출해줘서 감사하지만, "공주님은 다른 성에 있어요!"라는 허탈한 대사를 들려준다.
닌텐도는 마리오 2의 난이도가 미국 게이머들이 수용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마리오 시리즈의 지명도가 손상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닌텐도는 마리오 2의 미국 발매를 취소하고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미야모토가 실제로 마리오의 속편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참여했던 '유메 코조: 도키도키 패닉'이라는 게임이었다.
'도키도키 패닉'은 4명으로 이루어진 가족(각각 마리오가 가졌던 능력 하나씩을 지녔다)이 판타지 랜드에 유괴된 아이들을 구하러 떠나는 플랫폼형 게임이었다. 4명의 주인공 캐릭터들인 형, 엄마, 누나, 아빠는 각각 마리오, 루이지, 피치, 그리고 토드 캐릭터에 적절히 매칭이 될 수 있었다. 마리오의 카피 캐릭터에 불과했던 루이지는 일본판 마리오 2에서 더 긴 점프력, 짧은 미끄러짐 등 고유의 특기를 가진 것에 이어 유메 코조의 캐릭터에 매칭됨으로서 처음으로 고유의 캐릭터성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 캐릭터 모델의 특성 덕분에 이제 루이지는 마리오보다 눈에 띠게 키가 커지기도 했다.
물론 도키도키 패닉은 마리오 게임이 아니었으며 게임성도 달랐다. 숨겨진 비밀도 없고, 거북이도 없었으며, 바우저(쿠파 대마왕)도 없고, 불을 뿜는 마리오 등을 만들어주는 파워-업 아이템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적을 밟아서 없애는 대신 적을 들어서 (또는 과일이라 야채를 들어서) 다른 적에 던지는 식으로 적을 상대해야 했다. 마지막 보스인 와트를 물리치기 위해서 마리오는 그의 입에 과일을 던져넣어 목이 막히게 해야 했으며, 결국 엔딩에서는 이 모든 것이 마리오가 꾼 꿈이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미국 게이머들은 도키도키 패닉을 컨버전한 미국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에 열광하였다. 물론 높은 난이도의 일본판이 있었고 이건 원래 다른 게임이었다는 등의 뒷배경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미국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는 전체 시리즈를 걸쳐서도 가장 독특한 게임이었다. 일본판과 미국판 모두 다른 기종으로의 이식도 거듭하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일본판 마리오 2는 이후 문제가 되었던 요소들을 개량하여 슈퍼 마리오 컬렉션에 'The Lost Levels'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하였고, 미국판 마리오 2는 게임보이 어드밴스판으로 등장하면서 대폭적인 개선이 이루어져 독특한 게임성은 유지한 채 보다 마리오 시리즈의 느낌을 살리는 쪽으로 발전했다.
타이밍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미국판 마리오 2의 발매일인 1988년 10월에 일본에서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이 발매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게이머들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도 프래드 사비지 (케빈은 12살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아역 배우)가 출연한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 '더 위자드'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를 잠깐 구경할 수 있었으며 실제 게임이 발매된 것은 그로부터도 2달이 지난 후였다.
미야모토는 마리오 3의 컨셉 기획부터 시작하여 이번에는 보다 깊숙하게 게임의 개발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마리오의 새로운 파워-업 방식에 대해서 처음에는 반인반수 등 신화에 나오는 동물들을 모티브로 생각하였으나 초기 스케치 단계에서 등장한 너구리 꼬리가 달린 마리오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새로운 게임플레이 아이디어가 거기서부터 샘솟기 시작하였으며 미야모토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켰다. 추가적으로 개구리 복장과 너구리 복장이 추가되어 마리오는 이제 비행 능력, 수영 능력 그리고 위장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미야모토는 이러한 능력들을 활용할 멋진 스테이지를 디자인했으며, 지금까지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의 스테이지의 디자인은 비디오게임 역사상 가장 멋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붐붐, 부, 체인 촘스 등 새로운 적 캐릭터들과 월드마다 기다리는 일곱 보스들, 그리고 이제 붉은 머리털로 멋을 부린 바우저가 피치 공주를 구하러 가는 마리오의 길을 막는 기본적인 구조에 파워-업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미니 게임들, 진행 경과를 살펴보고 마지막 월드까지 워프시켜주는 피리 (젤다 II에서 링크가 사용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도 얻을 수 있는 편리한 맵 화면, 그리고 무수히 많은 숨겨진 요소들 덕분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는 처음에도 재밌고 몇 번을 반복해도 재미있는 게임이 되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는 비디오게임 사상 두 번째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NES의 판매량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어질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4는 새로운 이름, 새로운 콘솔 그리고 새로운 경쟁구도 속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되었다.
경쟁 구도의 형성
마리오는 이미 이 시점에서 열 개가 넘는 휴대용 게임에 등장했으며 이 중 대부분이 게임&워치 타이틀이었다. 그러나 미야모토의 스승 격인 요코이 군페이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를 개발함에 따라 야마우치 회장은 (당연하게도) 마리오를 즉시 투입하기로 했다. 요코이의 개발1팀은 1989년에 게임보이용으로 최초로 발매되는 마리오 게임의 개발에 착수했고, 이 게임은 미야모토 시게루가 전혀 참여하지 않는 최초의 마리오 게임이 되었다.
게임보이용 '슈퍼 마리오 랜드'는 마리오가 비행기나 잠수함을 타고 슈팅 게임처럼 진행되는 부분을 포함한 12개의 잘 구성된 레벨을 갖추었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마리오가 버섯 왕국을 떠나 살랄라랜드에서 데이지라는 이름의 또 다른 공주를 사악한 우주인 타탕가에게서 구해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속편인 슈퍼 마리오 랜드 2에서는, 버섯 왕국으로 돌아온 마리오가 버섯 왕국을 점령한 새로운 적인 와리오와 대결하게 된다.
요코이가 만들어낸 마리오 게임으로 인해 게임보이는 패미콤 이상의 인기를 얻게 되어 닌텐도의 최고 히트 콘솔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게임 자체도 마리오 3의 판매량에 육박했다. 반면 같은 해에 닌텐도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여 개발4팀은 닌텐도 EAD (Entertainment Analysis and Development)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야모토는 닌텐도의 차세대기인 슈퍼패미콤 (미국 명칭 SNES)로 발매되는 모든 게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미야모토는 즉시 슈퍼패미콤 발매동시 타이틀로서 새로운 마리오 게임의 개발에 들어갔다.
시장 상황은 NES 발매 때와는 달랐다. 닌텐도에게는 강력한 경쟁자인 세가에서 2년 전에 발매한 제네시스라는 게임기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고, 또한 소닉 더 헤지독이라는 강력한 마스코트가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했다. 소닉은 더 빠르고, 더 세련되며, 악동 같은 이미지로 컨셉부터 안티-마리오라는 걸 누구도 알 수 있었다. 세가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강력히 홍보하였으며, 제네시스는 닌텐도가 갖추지 못한 부분을 확실하게 공략해 나가고 있었다. 소닉과 비교할 때 마리오는 너무도 수수하고 희생적인 이미지로, 소닉처럼 왠지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반영웅의 이미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닌텐도의 중역들은 이런 부분들을 우려했으며, 이러한 걱정은 결국 미야모토에게 새로운 게임의 개발 일정을 재촉하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슈퍼 마리오 월드는 1991년에 SNES의 발매와 함께 등장했으며 소닉 1편과 2편을 합친 판매량보다도 2배가 넘게 팔려나갔다.
16비트 세상으로 넘어온 마리오 게임은 그래픽, 사운드, 게임성 모든 면에서 기존의 마리오 게임에 비해 월등히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편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게임의 판매량을 넘어선 인기를 보여주었다. 거대한 포탄을 떨어뜨리고, 스타로드로 가는 숨겨진 길을 발견하는 재미에 더해 스핀 어택은 파이어 마리오의 능력과 적절히 조합되었으며 숨겨진 블럭을 통해 회전문도 만들어지는 등 새로운 요소들에 게이머들은 열광했다. 바우저가 돌아왔고, 마리오의 절친한 친구, 요시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개발1팀은 오리지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부터 마리오를 공룡 위에 태우는 컨셉을 기획했으나 당시 하드웨어의 한계로 인해 포기했었다. 요시는 다양한 색상에 그 색에 대응하는 특수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게이머들의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은 나머지 슈퍼 마리오 월드 2: 요시 아일랜드는 게이머가 마리오를 조작하는 것이 아닌, 베이비 마리오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요시에 완전히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다.
마리오라는 캐릭터는 1984년 골프 게임에 등장한 이래로 거의 모든 장르와 게임 타입에 등장하였으며,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그가 등장하는 게임보다 캐릭터 자체가 비디오게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마리오는 농구, 테니스, 핀볼, 체커, 낚시, 바이크경주, 스노우보드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며, 댄스 댄스 레볼루션에 참여하기도 하고, 의사로서 테트리스와 유사한 퍼즐을 풀기도 했다. 루이지는 사라진 마리오를 찾아 카멘 센디에고의 절벽을 탐험했으며, 마리오는 숫자, 글자, 타이핑, 그림, 그리고 손뜨게 등의 교육 타이틀에도 등장했다.
어떤 장르는 마리오로 인해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마리오카트는 1992년 발매와 함께 기존의 복잡한 레이싱과 대비되는,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레이싱 장르를 확립했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랜덤 파워-업 아이템 덕분에 게임은 예측할 수 없는 재미를 주었는데, 총과 미사일 대신 날아가는 거북등껍질과 적들을 조그맣게 만들어 밟아버릴 수 있는 번개 등이 신선한 무기로 등장했다. 이어지는 속편에서는 동시에 플레이할 수 있는 인원 수가 4명으로 늘어났으며, 이후 모든 게임 시스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카트 레이싱 게임에도 등장해야 하는 트랜드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리오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플랫폼 게임에 있어서는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미야모토는 마리오의 '진정한' 속편은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5년 간에 이르는 여러가지 실험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는 새로운 마리오를 현재의 게임기에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으며, 이로 인해 마리오와 루이지의 SNES에서 마지막 모험은 플랫폼 게임이 아닌, 'Legend of Seven Stars'라는 RPG 게임의 형태가 되었다.
코드네임 슈퍼 마리오 FX로 불리웠던 미야모토의 미완성 프로젝트는 최초의 3D 플랫폼 게임을 지향하고 있었다.
작은 거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한 1994년에 이르러서는, 닌텐도의 슈퍼패미콤은 대단히 시대에 뒤떨어진 기기가 되었다. 닌텐도는 자사의 차세대 게임기가 될 울트라 64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며, 미야모토 역시 그 동안의 실험을 통해 생각했던 몇 가지 아이디어를 차세대 게임기에 반영하고자 했다.
3D 게임에서 1인칭 슈팅 게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마리오 FX에 투자한 5년의 시간으로 인해 미야모토는 3D 환경에서 3인칭 게임을 구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바로 카메라를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문제.
일반적으로는 움직임에 제한을 두고,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었다. 3D 마리오의 초기 버전들 역시 모두 그러한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미야모토는 3D에 어울리는 자유도에 대해서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필요한 경우 카메라(시점) 역시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닌텐도가 지난 10년 이상 고집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컨트롤러가 필요했다.
닌텐도의 개발진들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고, 미야모토는 그 와중에도 플레이어가 쉽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카메라 문제를 아예 스토리 자체에 녹여 넣는 방안을 생각했다. 이전 싯리즈에서 구름을 타고 폭탄을 던지던 라키쿠가 이번에는 마리오의 "밀착 카메라맨"이 된 것이다. 카메라 앵글과 모드는 새로운 콘트롤러의 새로운 버튼에 대응되었고, 아날로그 스틱은 마리오의 움직임을 보다 폭넓게 만들어주었다. 마리오의 점프 역시 2단, 3단 뛰기, 벽을 이용한 점프, 백플립 등으로 다채로워졌다. 아날로그 스틱을 살짝 움직이는 것을 통해 이제 마리오는 조용히 걸어가며 적을 우회할 수도 있게 되었다.
개발4팀은 아무 것도 없이 평평한 그리드 위에서 3D 마리오 모델이 n64의 cpu 이름을 딴 MIPS라는 노란색 토끼를 잡는 데모를 만들어 이 모든 시점과 움직임에 대한 테스트를 수행하였다. 다음으로 12개의 스테이지가 마리오의 새로운 움직임과 스토리 상의 숨겨진 보물 찾기 컨셉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었다. 스테이지 내 모든 세부요소들이 꼼꼼하게 검토되어 게이머가 자연스럽게 스테이지를 진행하여 보스전에 이르도록 설계되었으나 반면에 게이머가 원한다면 시간 제한 없이 스테이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도 많은 노력이 투입되었다. 퍼즐 요소들이 이전보다 더 중요하게 강조되어, 마리오는 단순히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마리오에게 드디어 목소리도 생겼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낙방하고 그날의 마지막 오디션에 지원했던 배우 찰스 마티넷은, '브루클린 출신의 배관공이 아이들에게 비디오게임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 대한 연기를 주문받았다.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낮고 거드름 피우는 아저씨 목소리 대신, 높은 톤에 빠르게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피자를 만들 수 있는지"를 연기했다. 그의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는 그 날 오디션에서 닌텐도에게 보내진 유일한 테이프였다.
울트라64에서 N64로 이름을 새롭게 바꾼 닌텐도의 차세대기가 1996년에 발매되었으며, 수상하게도 마리오 게임이 이번에는 번들이 아니라 별도로 발매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이미 18개월 전에 발매되어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게이머들이 슈퍼 마리오 64 카트리지를 꼽고 N64의 전원을 넣었을 때, "It's a-me, Mario!"라고 외치며 등장하는 풀 랜더링된 마리오의 얼굴을 마주할 때 만큼은 그러한 소니의 우위도 잠시 빛을 잃는 듯 했다. 닌텐도의 최강 프랜차이즈가 돌아온 것이다. 미야모토는 그 당시로서 가장 기술적으로도 진보되고 혁신적인 게임을 만들어냈다. 그저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즐거운 게임임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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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원하는데로 이어서 올립니다.
근데 이게 짧은건가..
원문출처 : IGN의 러스 맥러힌 (Rus McLaughlin)
번역출처 : '오래 가는 블로그'의 페이비안님
퍼가실때는 원문출처와 번역출처를 밝혀주세요
글 / 러스 맥러힌 (Rus McLaughlin)
2007년 11월 8일
닌텐도의 야심찬 미국 진출은 3년만에 완벽한 실패로 판명되었다.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여겨졌던 레이더 스코프는 출고된 3000천대 중 고작 1000대만 팔렸을 뿐이었고, 나머지는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신세가 되었다.
미국 진출을 진두지휘했던 아라카와 미노루는 장인인 닌텐도 사장 야마구치 히로시에게 곤경에 처한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를 살리기 위해 레이더 스코프 기기를 활용, 재프로그램하여 새로운 히트 게임을 만들자고 간청했다. 야마구치는 이에 동의하여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작업을 '게임&워치' 시리즈로 성공을 거둔 요코이 군페이와 그의 휘하에 있던, 게임을 한번도 디자인해본 경험이 없던 젊은 그래픽 아티스트에게 맡겼다. 그 젊은이의 이름이 바로 미야모토 시게루.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스토리가 먼저 만들어지고 거기에 맞추어 게임플레이가 디자인되었다. 미야모토는 당시 닌텐도가 라이센스를 얻으려 시도하다 실패한 뽀빠이의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플롯을 구성하였다. 먼저 부르토를 대신하여 거대한 고릴라를 등장시켰고 뽀빠이 역을 대신하여 통나무를 뛰어 넘어 "레이디"를 구하러 위로 위로 전진하는 "점프맨"이 탄생되었다. 미야모토는 서로 다른 스테이지가 차례로 연결되는 전개를 원했고, 그의 밑에서 일하던 네 명의 프로그래밍 팀원들은 똑같은 게임에 대해 개개인이 4번의 중복작업을 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체스를 두면서 다섯 수마다 체스판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처럼 바보같이 느꼈던 것이다.
결국 프로그래머들은 20k에 달하는 코드를 완성했고 그 사이에 미야모토는 배경음악을 만들고 중간 중간 스토리의 진행을 알려주는 "인터미션"을 만들었다. 모든 것은 레이더 스코프의 하드웨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게임을 담은 칩과 컨버전 키트가 1981년에 미국으로 발송되었다. 아라카와와 그의 아내를 포함한 몇 명의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 직원들이 2000대의 레이더 스코프를 돈키콩으로 변환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아라카와는 "점프맨"은 미국인들에게 와닿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캐릭터에 붙일만한 '진짜' 이름을 필요했다. 마침 그 때 오랫동안 밀린 사무실 임대료를 받기 위해 건물주가 회사 임원회의 시간에 들이닥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인물의 이름은 시갈리... 풀 네임은 마리오 시갈리였다.
점프가 시작되다.
26년 후, 마리오는 미키 마우스보다 더 유명한, 비디오게임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으며, 등장한 게임 200여개의 총 판매개수를 합하면 2억개가 넘는다. 새로운 콘솔의 탄생과 게임 산업의 부흥, 그리고 진정한 3D 게임 등 게임 트랜드 중심에 마리오가 있었다. 비디오게임 10대 베스트셀러 중 6개는 마리오 게임에다 오케스트라가 마리오 테마를 연주하고, 마리오를 소재로 쓴 오페라도 있다. 마리오가 주인공인 애니매이션도 있으며, 비록 허접의 극치를 달리긴 하지만 실사 영화도 나왔었다. 마리오를 만들어낸 미야모토는 일개 스텝에서 게임업계의 대부가 되어 프랑스에서는 작위까지 받기도 하였으며 현재 일본에서 세번째로 큰 회사가 된 닌텐도에서 한 Division 전체를 운영하는 지위에 올랐다.
마리오가 본격적으로 닌텐도의 공식 마스코트도 되기 전에는 돈키콩의 인기가 대단했다. 돈키콩 아케이드 게임은 총 6만대 이상 팔려나가던 시절에는 마리오는 초라한 존재에 불과했다. 돈키콩의 속편으로 1983년에 등장했던 돈키콩 주니어라는 게임에서는 마리오가 채찍을 휘두르는 악역을 맡기도 했다.
미야모토는 마리오를 언제나, 어느 게임에나 투입 가능한 그의 분신같은 캐릭터로 생각했다. 마리오의 디자인은 8비트 수준의 조악한 게임 그래픽의 한계를 승화시킨 멋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팔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전체 프로포션이나 입보다 특징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콧수염과 커다란 코, 그리고 어두운 배경에서도 쉽게 드러나는 전체적으로 밝은 색 디자인까지. 미야모토는 머리카락을 그리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마리오에게 모자를 씌웠지만 덕분에 프로그래머는 점프할 때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표현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 다만 여전히 목수라는 마리오의 직업은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았다. 미야모토의 동료는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보면서 목수 보다는 차라리 배관공에 가깝다는 의견을 냈다.
이러한 의견을 바탕으로, 미야모토는 마리오가 등장하는 세번째 게임의 배경을 가재와 거북이, 그리고 불나방이 돌아다니는 하수도로 설정했다. 이 게임의 모티브가 된 것은 Joust라는 게임으로 두 게이머가 서로 협력할 수도, 혹은 서로 싸울 수도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두번째 플레이어를 위해서도 미야모토는 동일한 캐릭터를 사용했고 색깔만 바꾼 후 서로 닮은 "형제"라는 설정을 붙였다.
이 캐릭터에 루이지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비슷한"을 의미하는 일본어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아라카와의 사무실 근처 피자 가게 이름이 "마리오 & 루이지"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이 두 형제는 마리오 브라더스라는 게임에서 처음으로 주연 캐릭터가 되었으며 점프해서 적들 밑의 바닥을 치고 적들을 없애서 코인을 먹는 게임플레이도 처음 선보였다.
마리오 브라더스는 어느 정도의 성공만을 거두었다. 애초에 아케이드 시장은 붐을 형성하기에는 수명 주기가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야마우치는 보다 수익성이 좋은 가정용 게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지만 마침 미국에서는 가정용 게임이 완전히 몰락해버린 시점이었다.
일본에서는 가정용 게임 시장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으며, 1985년에 이르러서는 닌텐도의 패미콤이 초반 리콜 등의 부진을 딛고 아시아 가정용 게임 시장의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타리와의 협상 결렬 등의 여러가지 악재로 인해 시장에서의 자리매김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야마우치의 철학은 매우 단순하고 분명했다. '재미있는 게임이 콘솔 판매를 견인한다.' 그리고 닌텐도에는 최고의 게임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었다. 야마우치는 미야모토에게 개발4부라는 Division 하나를 총괄하게 하고, 그곳에서 패미콤의 미국 시장 성공을 담보할 게임을 만들도록 했다.
마리오와 루이지는 이제 아케이드 게임기 속 하수도를 떠나, 패미콤 속의 버섯 왕국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다.
버섯 왕국의 탄생
초기의 비디오게임들은 대부분 코딩을 담당했던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그러나 미야모토 시게루는 프로그래머가 아닌 디자이너였고, 그의 게임 디자인 방식은 이전의 것들과 완전히 달랐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방식에 대해서는 그가 아는 것이 전무했으므로. 그가 프로그래머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기존의 것들을 답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시도들은 그의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돈키콩과 마리오 브라더스를 통해 그는 플랫폼 게임이라는 장르를 처음 만들어냈고, 이제 이 개념을 좀 더 확장시키고자 했다. 가장 먼저 나온 아이디어는 마리오와 루이지가 파워-업 아이템을 통해 커지거나 작아지는 것이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루트로 진행되지만 약간의 비기들을 이용하면 숨겨진 아이템이나 숨겨진 지역, 또는 지름길 등을 찾을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버섯 왕국의 난이도는 매우 주의 깊게 조정되었다. 미야모토는 플레이어가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끼면서 계속 발전하는 게임성을 원했으며 갑자기 너무 어려워지거나 지루해지는 것은 피하고자 했다. 적들은 빈 거북껍질을 날리거나 그 위에 점프하는 것으로 무찌를 수 있었으며 파워-업 아이템을 통해 마리오는 거대한 슈퍼 마리오, 불을 뿜는 파이어 마리오, 그리고 잠깐 무적이 될 수도 있었다. 코인을 모으면 추가 라이프를 얻을 수 있었고, 시간 제한을 통해 스테이지의 빠른 클리어를 독려했다. 파이프를 통해 스테이지를 짧게 마치거나 아예 레벨 하나를 건너뛸 수도 있었다.
미야모토는 밝고 화려한 스테이지에 무수히 많은 비밀들을 숨겨 놓았으며 스테이지의 구석 구석에 그의 천재적이고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남아놓았다. 콘도 코지의 경쾌한 음악은 즉시 플레이어를 사로잡았으며 마리오의 점프 소리조차 게이머들에게는 즐거움이 되었다.
미야모토는 마리오를 완벽하게 다듬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은 나머지 개발4팀의 다른 대형 프로젝트인 젤다의 전설의 개발이 연기되었고 'Weacking Crew'라는 다른 게임의 개발은 아예 다른 팀으로 넘겨버렸다.
1985년 10월, 패미콤은 미국에서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약칭 NES)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으며, 그 중 하나의 버전에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번들로 들어가 있었다. 아라카와는 배급 루트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단 한 명, 그것도 내키지 않은 배급업자를 찾아 그의 뉴욕 매장들에 간신히 테스트 시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다. 시장의 기대는 높지 않았다. 비디오게임 붐은 이미 지난 이야기였고, 모두가 NES가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매장 한 구석에서 그냥 먼지만 뒤집어쓴 채 절대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타리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멋진 게임기와, 놀라울 정도로 재밌는 게임의 입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스토리는 그다지 심오하진 않지만, 그 이후 계속되는 모든 마리오 게임의 바탕이 되고 있다. 악당 바우저 (혹은 일본판에선 쿠파)가 피치 공주를 납치하고 버섯 왕국을 점령한다. 작은 마리오는 피치 공주를 구하기 위해 틈새들을 뛰어넘고 적들을 물리치면서 8개의 거대한 월드를 달려간다. 정말 정의감이 투철한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게임의 끝에는 용암 위에서 바우저와의 마지막 결투가 기다리고 있고, 바우저를 물리치면 피치 공주의 "Thank You, Mario!"를 들을 수 있다. 보상은 단지 그 뿐. 그러나 영웅은 보상을 바라기보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다. 재밌는 게임이 콘솔 판매를 견인한다는 야마우치의 전략은 적중해서, 그 다음 해 2월에는 수천만대의 NES가 미국에서 팔려나갔으며 거의 대부분이 마리오 게임을 함께 가져갔다. 번들을 포함해서 슈퍼 마리오는 총 4천만개 팔았으며, 이 기록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판매 2위를 기록하고 있는 게임보다 천만개 더 앞선 기록이다.
1983년부터의 비디오게임 쇠락기는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으며, 이 모든 것은 빨간 모자의 이탈리안 배관공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속편의 제작은 당연했지만, 그 때부터 뭔가 꼬여나가기 시작했다.
또 다른 세상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미야모토가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의 모든 요소에 대해 관여했던 마지막 게임이 되었다. 개발4팀을 전체적으로 관장하는 업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기 때문에 슈퍼 마리오의 속편 작업에 그의 참여가 제한적이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또한 패밀리 디스크 시스템(이하 FDS)으로 발매될 젤다를 최종적으로 다듬는 일에 집중해야만 했다.
FDS는 패미콤에 연결되는 외장 디스크 드라이브였다. 게임소프트의 단가를 낮추는 반면 용량은 다섯배로 확장할 수 있어 게임의 퀄리티를 인상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젤다가 FDS로 발매될 첫번째 게임이었고,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가 다음 타자가 될 예정이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는 그래픽에 있어서는 전작과 거의 차이점을 찾을 수 없었지만, 난이도가 심각하게 올라간 게임이 되었다. 점진적으로 조금씩 플레이어를 적응시키면서 높아졌던 전작의 난이도에 비해 속편은 타이밍에 맞추어 적을 밟고 넘어가야만 건널 수 있는 구멍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등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장애물들이 등장하는 데다가 후반 스테이지들은 아케이드판 "Vs.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우려먹은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더해 어떤 버섯들은 먹으면 독이 되는 것도 있었고, 어떤 워프는 오히려 초반 스테이지로 돌아가게끔 되어 있었으며, 날씨 효과로 생기는 미끄럼으로 마리오가 어이없이 구멍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각 스테이지의 보스전을 힘들게 이기고 나면, 피치 공주의 수행원인 토드가 나와서 구출해줘서 감사하지만, "공주님은 다른 성에 있어요!"라는 허탈한 대사를 들려준다.
닌텐도는 마리오 2의 난이도가 미국 게이머들이 수용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마리오 시리즈의 지명도가 손상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닌텐도는 마리오 2의 미국 발매를 취소하고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미야모토가 실제로 마리오의 속편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참여했던 '유메 코조: 도키도키 패닉'이라는 게임이었다.
'도키도키 패닉'은 4명으로 이루어진 가족(각각 마리오가 가졌던 능력 하나씩을 지녔다)이 판타지 랜드에 유괴된 아이들을 구하러 떠나는 플랫폼형 게임이었다. 4명의 주인공 캐릭터들인 형, 엄마, 누나, 아빠는 각각 마리오, 루이지, 피치, 그리고 토드 캐릭터에 적절히 매칭이 될 수 있었다. 마리오의 카피 캐릭터에 불과했던 루이지는 일본판 마리오 2에서 더 긴 점프력, 짧은 미끄러짐 등 고유의 특기를 가진 것에 이어 유메 코조의 캐릭터에 매칭됨으로서 처음으로 고유의 캐릭터성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 캐릭터 모델의 특성 덕분에 이제 루이지는 마리오보다 눈에 띠게 키가 커지기도 했다.
물론 도키도키 패닉은 마리오 게임이 아니었으며 게임성도 달랐다. 숨겨진 비밀도 없고, 거북이도 없었으며, 바우저(쿠파 대마왕)도 없고, 불을 뿜는 마리오 등을 만들어주는 파워-업 아이템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적을 밟아서 없애는 대신 적을 들어서 (또는 과일이라 야채를 들어서) 다른 적에 던지는 식으로 적을 상대해야 했다. 마지막 보스인 와트를 물리치기 위해서 마리오는 그의 입에 과일을 던져넣어 목이 막히게 해야 했으며, 결국 엔딩에서는 이 모든 것이 마리오가 꾼 꿈이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미국 게이머들은 도키도키 패닉을 컨버전한 미국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에 열광하였다. 물론 높은 난이도의 일본판이 있었고 이건 원래 다른 게임이었다는 등의 뒷배경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미국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는 전체 시리즈를 걸쳐서도 가장 독특한 게임이었다. 일본판과 미국판 모두 다른 기종으로의 이식도 거듭하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일본판 마리오 2는 이후 문제가 되었던 요소들을 개량하여 슈퍼 마리오 컬렉션에 'The Lost Levels'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하였고, 미국판 마리오 2는 게임보이 어드밴스판으로 등장하면서 대폭적인 개선이 이루어져 독특한 게임성은 유지한 채 보다 마리오 시리즈의 느낌을 살리는 쪽으로 발전했다.
타이밍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미국판 마리오 2의 발매일인 1988년 10월에 일본에서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이 발매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게이머들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도 프래드 사비지 (케빈은 12살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아역 배우)가 출연한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 '더 위자드'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를 잠깐 구경할 수 있었으며 실제 게임이 발매된 것은 그로부터도 2달이 지난 후였다.
미야모토는 마리오 3의 컨셉 기획부터 시작하여 이번에는 보다 깊숙하게 게임의 개발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마리오의 새로운 파워-업 방식에 대해서 처음에는 반인반수 등 신화에 나오는 동물들을 모티브로 생각하였으나 초기 스케치 단계에서 등장한 너구리 꼬리가 달린 마리오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새로운 게임플레이 아이디어가 거기서부터 샘솟기 시작하였으며 미야모토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켰다. 추가적으로 개구리 복장과 너구리 복장이 추가되어 마리오는 이제 비행 능력, 수영 능력 그리고 위장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미야모토는 이러한 능력들을 활용할 멋진 스테이지를 디자인했으며, 지금까지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의 스테이지의 디자인은 비디오게임 역사상 가장 멋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붐붐, 부, 체인 촘스 등 새로운 적 캐릭터들과 월드마다 기다리는 일곱 보스들, 그리고 이제 붉은 머리털로 멋을 부린 바우저가 피치 공주를 구하러 가는 마리오의 길을 막는 기본적인 구조에 파워-업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미니 게임들, 진행 경과를 살펴보고 마지막 월드까지 워프시켜주는 피리 (젤다 II에서 링크가 사용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도 얻을 수 있는 편리한 맵 화면, 그리고 무수히 많은 숨겨진 요소들 덕분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는 처음에도 재밌고 몇 번을 반복해도 재미있는 게임이 되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는 비디오게임 사상 두 번째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NES의 판매량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어질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4는 새로운 이름, 새로운 콘솔 그리고 새로운 경쟁구도 속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되었다.
경쟁 구도의 형성
마리오는 이미 이 시점에서 열 개가 넘는 휴대용 게임에 등장했으며 이 중 대부분이 게임&워치 타이틀이었다. 그러나 미야모토의 스승 격인 요코이 군페이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를 개발함에 따라 야마우치 회장은 (당연하게도) 마리오를 즉시 투입하기로 했다. 요코이의 개발1팀은 1989년에 게임보이용으로 최초로 발매되는 마리오 게임의 개발에 착수했고, 이 게임은 미야모토 시게루가 전혀 참여하지 않는 최초의 마리오 게임이 되었다.
게임보이용 '슈퍼 마리오 랜드'는 마리오가 비행기나 잠수함을 타고 슈팅 게임처럼 진행되는 부분을 포함한 12개의 잘 구성된 레벨을 갖추었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마리오가 버섯 왕국을 떠나 살랄라랜드에서 데이지라는 이름의 또 다른 공주를 사악한 우주인 타탕가에게서 구해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속편인 슈퍼 마리오 랜드 2에서는, 버섯 왕국으로 돌아온 마리오가 버섯 왕국을 점령한 새로운 적인 와리오와 대결하게 된다.
요코이가 만들어낸 마리오 게임으로 인해 게임보이는 패미콤 이상의 인기를 얻게 되어 닌텐도의 최고 히트 콘솔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게임 자체도 마리오 3의 판매량에 육박했다. 반면 같은 해에 닌텐도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여 개발4팀은 닌텐도 EAD (Entertainment Analysis and Development)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야모토는 닌텐도의 차세대기인 슈퍼패미콤 (미국 명칭 SNES)로 발매되는 모든 게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미야모토는 즉시 슈퍼패미콤 발매동시 타이틀로서 새로운 마리오 게임의 개발에 들어갔다.
시장 상황은 NES 발매 때와는 달랐다. 닌텐도에게는 강력한 경쟁자인 세가에서 2년 전에 발매한 제네시스라는 게임기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고, 또한 소닉 더 헤지독이라는 강력한 마스코트가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했다. 소닉은 더 빠르고, 더 세련되며, 악동 같은 이미지로 컨셉부터 안티-마리오라는 걸 누구도 알 수 있었다. 세가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강력히 홍보하였으며, 제네시스는 닌텐도가 갖추지 못한 부분을 확실하게 공략해 나가고 있었다. 소닉과 비교할 때 마리오는 너무도 수수하고 희생적인 이미지로, 소닉처럼 왠지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반영웅의 이미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닌텐도의 중역들은 이런 부분들을 우려했으며, 이러한 걱정은 결국 미야모토에게 새로운 게임의 개발 일정을 재촉하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슈퍼 마리오 월드는 1991년에 SNES의 발매와 함께 등장했으며 소닉 1편과 2편을 합친 판매량보다도 2배가 넘게 팔려나갔다.
16비트 세상으로 넘어온 마리오 게임은 그래픽, 사운드, 게임성 모든 면에서 기존의 마리오 게임에 비해 월등히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편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게임의 판매량을 넘어선 인기를 보여주었다. 거대한 포탄을 떨어뜨리고, 스타로드로 가는 숨겨진 길을 발견하는 재미에 더해 스핀 어택은 파이어 마리오의 능력과 적절히 조합되었으며 숨겨진 블럭을 통해 회전문도 만들어지는 등 새로운 요소들에 게이머들은 열광했다. 바우저가 돌아왔고, 마리오의 절친한 친구, 요시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개발1팀은 오리지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부터 마리오를 공룡 위에 태우는 컨셉을 기획했으나 당시 하드웨어의 한계로 인해 포기했었다. 요시는 다양한 색상에 그 색에 대응하는 특수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게이머들의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은 나머지 슈퍼 마리오 월드 2: 요시 아일랜드는 게이머가 마리오를 조작하는 것이 아닌, 베이비 마리오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요시에 완전히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다.
마리오라는 캐릭터는 1984년 골프 게임에 등장한 이래로 거의 모든 장르와 게임 타입에 등장하였으며,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그가 등장하는 게임보다 캐릭터 자체가 비디오게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마리오는 농구, 테니스, 핀볼, 체커, 낚시, 바이크경주, 스노우보드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며, 댄스 댄스 레볼루션에 참여하기도 하고, 의사로서 테트리스와 유사한 퍼즐을 풀기도 했다. 루이지는 사라진 마리오를 찾아 카멘 센디에고의 절벽을 탐험했으며, 마리오는 숫자, 글자, 타이핑, 그림, 그리고 손뜨게 등의 교육 타이틀에도 등장했다.
어떤 장르는 마리오로 인해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마리오카트는 1992년 발매와 함께 기존의 복잡한 레이싱과 대비되는,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레이싱 장르를 확립했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랜덤 파워-업 아이템 덕분에 게임은 예측할 수 없는 재미를 주었는데, 총과 미사일 대신 날아가는 거북등껍질과 적들을 조그맣게 만들어 밟아버릴 수 있는 번개 등이 신선한 무기로 등장했다. 이어지는 속편에서는 동시에 플레이할 수 있는 인원 수가 4명으로 늘어났으며, 이후 모든 게임 시스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카트 레이싱 게임에도 등장해야 하는 트랜드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리오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플랫폼 게임에 있어서는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미야모토는 마리오의 '진정한' 속편은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5년 간에 이르는 여러가지 실험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는 새로운 마리오를 현재의 게임기에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으며, 이로 인해 마리오와 루이지의 SNES에서 마지막 모험은 플랫폼 게임이 아닌, 'Legend of Seven Stars'라는 RPG 게임의 형태가 되었다.
코드네임 슈퍼 마리오 FX로 불리웠던 미야모토의 미완성 프로젝트는 최초의 3D 플랫폼 게임을 지향하고 있었다.
작은 거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한 1994년에 이르러서는, 닌텐도의 슈퍼패미콤은 대단히 시대에 뒤떨어진 기기가 되었다. 닌텐도는 자사의 차세대 게임기가 될 울트라 64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며, 미야모토 역시 그 동안의 실험을 통해 생각했던 몇 가지 아이디어를 차세대 게임기에 반영하고자 했다.
3D 게임에서 1인칭 슈팅 게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마리오 FX에 투자한 5년의 시간으로 인해 미야모토는 3D 환경에서 3인칭 게임을 구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바로 카메라를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문제.
일반적으로는 움직임에 제한을 두고,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었다. 3D 마리오의 초기 버전들 역시 모두 그러한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미야모토는 3D에 어울리는 자유도에 대해서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필요한 경우 카메라(시점) 역시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닌텐도가 지난 10년 이상 고집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컨트롤러가 필요했다.
닌텐도의 개발진들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고, 미야모토는 그 와중에도 플레이어가 쉽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카메라 문제를 아예 스토리 자체에 녹여 넣는 방안을 생각했다. 이전 싯리즈에서 구름을 타고 폭탄을 던지던 라키쿠가 이번에는 마리오의 "밀착 카메라맨"이 된 것이다. 카메라 앵글과 모드는 새로운 콘트롤러의 새로운 버튼에 대응되었고, 아날로그 스틱은 마리오의 움직임을 보다 폭넓게 만들어주었다. 마리오의 점프 역시 2단, 3단 뛰기, 벽을 이용한 점프, 백플립 등으로 다채로워졌다. 아날로그 스틱을 살짝 움직이는 것을 통해 이제 마리오는 조용히 걸어가며 적을 우회할 수도 있게 되었다.
개발4팀은 아무 것도 없이 평평한 그리드 위에서 3D 마리오 모델이 n64의 cpu 이름을 딴 MIPS라는 노란색 토끼를 잡는 데모를 만들어 이 모든 시점과 움직임에 대한 테스트를 수행하였다. 다음으로 12개의 스테이지가 마리오의 새로운 움직임과 스토리 상의 숨겨진 보물 찾기 컨셉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었다. 스테이지 내 모든 세부요소들이 꼼꼼하게 검토되어 게이머가 자연스럽게 스테이지를 진행하여 보스전에 이르도록 설계되었으나 반면에 게이머가 원한다면 시간 제한 없이 스테이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도 많은 노력이 투입되었다. 퍼즐 요소들이 이전보다 더 중요하게 강조되어, 마리오는 단순히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마리오에게 드디어 목소리도 생겼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낙방하고 그날의 마지막 오디션에 지원했던 배우 찰스 마티넷은, '브루클린 출신의 배관공이 아이들에게 비디오게임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 대한 연기를 주문받았다.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낮고 거드름 피우는 아저씨 목소리 대신, 높은 톤에 빠르게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피자를 만들 수 있는지"를 연기했다. 그의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는 그 날 오디션에서 닌텐도에게 보내진 유일한 테이프였다.
울트라64에서 N64로 이름을 새롭게 바꾼 닌텐도의 차세대기가 1996년에 발매되었으며, 수상하게도 마리오 게임이 이번에는 번들이 아니라 별도로 발매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이미 18개월 전에 발매되어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게이머들이 슈퍼 마리오 64 카트리지를 꼽고 N64의 전원을 넣었을 때, "It's a-me, Mario!"라고 외치며 등장하는 풀 랜더링된 마리오의 얼굴을 마주할 때 만큼은 그러한 소니의 우위도 잠시 빛을 잃는 듯 했다. 닌텐도의 최강 프랜차이즈가 돌아온 것이다. 미야모토는 그 당시로서 가장 기술적으로도 진보되고 혁신적인 게임을 만들어냈다. 그저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즐거운 게임임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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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원하는데로 이어서 올립니다.
근데 이게 짧은건가..
원문출처 : IGN의 러스 맥러힌 (Rus McLaughlin)
번역출처 : '오래 가는 블로그'의 페이비안님
퍼가실때는 원문출처와 번역출처를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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