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C 게임즈 김학규 대표가 11월 25일 신도림 쉐라톤 호텔에서 열린 '디브온' 행사에 참가해서 '개발자가 아름다운 이유'라는 주제로 웹툰 '낭만오피스'를 연재하는 김국현 작가와 이택경 다음 공동창업자 및 전 CTO와 함께 대담을 나눴다.
디브온은 '개발자간의 정보 공유 및 소통'을 주제로 여러 가지 강연과 대담이 이루어지는 행사로, 다음 커뮤니케이션이 추최한다. 대담은 김국현 작가가 질의하고 김학규 대표가 답변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김학규 대표는 이 자리를 통해 자신이 지하실에서 게임을 개발하던 시절 이야기, 게임 심의와 셧다운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 개발자 입장에서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 기획과 개발의 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하는 질의 응답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좌측부터 김국현 낭만오피스 작가, 이택경 다음 공동창업자 및 전 CTO, 김학규 IMC 게임즈 대표
김국현 작가: 만나서 반갑습니다. 최근 근황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해주시죠.
김학규 대표: IMC 게임즈 김학규 대표입니다. 최근 KGC(한국국제게임컨퍼런스)에서 온라인게임 운영에 대한 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 KGC에서 강연의 소재가 됐던 '그라나도 에스파다' 라는 온라인게임은 지난 2003년부터 개발되었고, 2006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약 5년간 서비스해오고 있습니다. 이 게임은 '반짝' 잘 나갔던 때와 침체기, 중흥기를 모두 겪었다는 점에서 저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게임입니다.
김국현 작가: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대박'난 게임은 아니었죠?
김학규 대표: 네.(웃음) 하지만, 대박에서 얻을 수 있는 부분보다 치열하게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이 발언을 하자 객석에서 박수가 나왔음) 게임이 대박나면, 개발자들은 자기가 잘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대박은 천, 지, 인이 모두 잘 맞아 떨어진 결과입니다.
만약 개발자가 자신이 잘해서 대박이 났다고 착각하면, 자만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다음 프로젝트는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게임 업계에서 업적을 남긴 유명 개발자분들이 투자를 받아서 게임을 개발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프로젝트의 성공률이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처절하게 실패하는 경우도 나왔습니다. 외국 개발자분 중에서 달나라에 다녀오셨던 분도 그렇게 됐었습니다.(웃음)
아무리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어도, '저번에 홈런 쳤으니 이번에도 홈런 쳐야지' 하는 주변의 기대를 받으면서 하는 경우에는 성공률이 높지 않습니다. 저는 대박은 아니더라도 제가 개발한 게임이 지금까지 시장에서 살아남고 유지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국현 작가: 지금은 새로운 온라인게임을 개발중이십니다. 어떠신가요?
김학규 대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이번에는 어떤 혁신을 보여줄 것이냐'를 궁금해합니다. 새로운 게임의 특징이 뭐냐고 물어보십니다. 예전에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게임 개발을 해오면서 '작은것들이 많이 쌓여서 모이면 그것이 좋은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뭔가 눈에 딱 들어오는 것은 없지만 하다보면 그냥 좋은 것이랄까요. 최근에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김국현 작가: 김학규 대표는 게임 회사를 설립하셔서 성공시키셨습니다.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꿈구는 것을 손수 이루셨습니다. 직접 회사를 운영해보시니까, 이것이 모든 게임 개발자가 바라볼 만한 '해방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회사 운영을 직접 해본 입장에서 어떠셨나요?
김학규 대표: 창업 이야기를 하자면 IMC 게임즈 이전에 그라비티가 있었습니다. 이 회사를 설립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세금계산서였습니다. 제가 당시 다른 회사 외주를 했었는데, 세금계산서를 떼려면 법인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회사를 설립한 것입니다.(웃음) 이 말의 의미는 회사는 저에게 있어서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도구일뿐이었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게임 회사를 설립해서 운영하는 것이 개발자의 '해방구'냐고 물어보셨는데, 만약 그것이 '해방구'라고 하면 그게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회사는 여러분들이 뭔가를 정말 만들고 싶을 때, 답답함을 풀고 싶을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도구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의 일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점점 일이 커지고 하다보니까 책임감도 느끼고, 나와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장인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자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회사 디자인이 게임 디자인보다 더 중요하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후에야 회사 운영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는, 저에게 있어서 회사라는 것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김국현 작가: 한국 개발자들은 하청, 재하청을 통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업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학규 대표는 그것이 싫어서 나만의 무언가를 시작하신 분입니다. 그 시점으로 돌아가봤으면 합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학규 대표: 1992~93년 당시 PC 통신 '하이텔'에 있던 게임 관련 동호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 친하게 지낸 형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형 집에서 술먹고 놀다가 저랑 다른 분이랑 녹본동에서 여의도까지 걸어가면서 서로 만들고 싶은 게임을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외주도 하면서 아마추어 게임들을 만들었습니다.
1998년까지는 나만의 사무실을 가지는게 소원이었습니다. 작업은 주로 연립주택 지하실에서 했습니다. 그나마 연립주택이니까 지하실에 공간이 좀 있었거든요. 그 지하실에서 일한 기억이 가장 많이 납니다. 1997년에는 사업자등록을 하려니까 주소를 등록할 때 문제가 생겨서 근처에 있는 다른 지하실 주소를 등록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추어 게임, 외주 등 3~4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RPG 게임을 만드는게 꿈이었습니다. 당시 '울티마'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RPG를 개발하는 것이 너무 어렵더라구요. NPC 대사, 전투 모드, 이동 다 해야합니다.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낮췄습니다. 대사를 없애고 액션 RPG로 바꿨습니다. 그것도 안되서 간단한 액션 게임을 절반까지 만들어서 낸게 저의 첫 게임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게임을 만들면서 돈을 번다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제가 만들고 싶어서 한 것이고 언젠가는 RPG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98년에는 IMF가 터지고 나서 곳곳에서 게임 개발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많이 생겼는데요, 아는 분 통해서 학원 강사로 뛰었습니다. 학원 강사와 외주를 해서 번 돈으로 지하 사무실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학원에서는 이렇다할 커리큘럼이 없어서 한달 동안 학생들에게 자습하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이 학원 옥상에서 시위도 하고 그랬습니다. (웃음)
그런데 학생들을 보니까 게임을 끝까지 만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슈팅 게임 소스를 주고 부분적으로 수정해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총알을 더 쎄게 만들어보라'고 하는 식이었죠. 그리고 학생들 중 똑똑한 사람들이 몇 명 보여서 '내 일을 도와주면 학원비를 받지 않겠다'라고 해서 만든 것이 '악튜러스'라는 RPG였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모자라더라구요. 외주 수입, 학원 강사비, 무료봉사 학생들로도 모자라서 다른 회사랑 합작을 해서 만들어갔습니다.
그 다음에 만든 것이 라그나로크입니다. 기존 RPG에 온라인 요소를 붙여보자해서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벤처 붐이 일어났었는데요, 사업을 시작할 때 투자를 많이 받은 회사들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몰라서 실패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저희는 '헝그리 마인드'로 만들었습니다. 월급을 받으면서 게임을 만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게임 업계에도 제대로 된 업무 환경이 만들어져서 한 동안은 '컬쳐 쇼크'를 받았고 극복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웃음) 이 과정에서 만났던 분들이나 학원생 분들이 지금까지도 게임업계에 있습니다.
김국현 작가: 힘든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많은 위로가 됩니다. 지금 IT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정말 좋은 환경에서 업무를 하시는 듯 합니다. 이번에는 기획과 개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외국계 회사에는 기획자라는 직책이 별로 없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기획자가 존재합니다. 실제로 게임 회사를 운영해보시면서 기획/개발 밸런스에 대해서 생각이 많으실 듯 합니다.
김학규 대표: 저희 회사 채용 페이지에 가면 3가지가 있습니다. 1) 전원 기획, 전원 개발 2) 마케팅 팀이 없는 회사 3) 술 권하지 않는 회사
3) 술 권하지 않는 회사
저는 술을 싫어합니다. 밤에 폭탄주 마시면서 '잘해보자'고 단합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술자리에서는 상대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충성을 맹세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기위해 폭탄주를 먹이는 것 같습니다만, 저희 회사는 이런 문화를 지향하진 않습니다.
2) 마케팅 팀이 없는 회사
그리고 저희 회사에는 마케팅 팀이 따로 없습니다. 기획과 개발이 괴리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개발과 마케팅이 괴리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저는 좋은 게임은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잘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언제 배웠냐하면, 바로 라그나로크 OBT 시절이었습니다. 국내 서비스를 살펴보니까 외국인들이 간간히 보였습니다.
일본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너무 끊긴다고 게임 화면을 VHS 테입에 녹화해서 보내준 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템 이름 몬스터 이름만 번역해서 영문 서버를 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불만도 많았죠. 그래서 영어할 줄 하는 GM 하나 붙이고, 불만 사항에 답변하라고 했습니다.(웃음)
그러다가 소프트뱅크 손정희 회장 동생이 저희 회사에 찾아왔습니다 일본에 서비스해보자라고 했죠. 그렇게 해서 일본 서비스를 분리했습니다. 영어 서버에서 일본인이 빠지니까 이번에는 태국인이 왔습니다. 생전 처음보는 태국어였습니다. 태국에 직접 가서 보니까 태국에는 PC방이 있고 옆에 라그나로크 OBT 클라이언트를 DVD로 구워서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굳이 마케팅 같은 거 안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시작을 그렇게 해서 아직도 홍보나 마케팅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지금도 그럴 시간이 있으면 개발에 더 신경쓰고 싶습니다.
1) 전원 기획, 전원 개발
그리고 개발과 기획에 대해서입니다. 이것은 저의 '개똥철학'과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인류의 경제가 발전해온 과정을 봅시다. 처음에는 부족원들이 사냥을 갑니다. 성공하면 고기를 나눠먹습니다. 사냥 경험이 있으면 성공 확률이 올라갑니다. 그렇다고 100% 성공하는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헌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농경문화로 오면서 많이 바뀝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아무리 망쳐도 가을에 쌀이 나옵니다. 예측이 가능해지고, 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수렵은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마스터헌터'라면 농경사회에서는 남에게 맡기기만 하면됩니다. 이것이 '파밍'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땅을 가진 자본가가 생깁니다. 자본가는 농경에 대한 깊은 지식이 필요없습니다.
반복되고 예측 가능하다는 점은 산업화를 거치면서 더 가속화됩니다. 게임으로 치면 MMORPG에서 기계(오토 등 불법 프로그램)의 힘으로 더 많은 '파밍'(온라인게임에서 아이템을 얻기 위해 같은 던전을 계속 도는 것을 말함)을 하게 됩니다. 보스가 8시간마다 나오니까 죽치고 앉아서 나오면 딱 죽이는 식입니다.
반면, 스타크래프트2 같은 게임은 '파밍'보다는 '헌팅'(사냥)에 가깝습니다. 예측 가능하지 않고 반복이 없습니다. 지식이 많으면 성공률이 높지만 꼭 성공하진 않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일부는 다시 헌팅으로 돌아갔습니다. 저희 회사는 '파밍'이 아닌 '헌팅'을 합니다. 그 흐름을 읽고 적응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렇다고 100% 원하는대로 되진 않습니다. 전에 했던 방법이 다음에 다시 통한다고 보장되진 않습니다.
기획이라는 것은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라고 미리 정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뭘까요? '헌팅'을 할 때는 기획이 의미가 없습니다. 무슨 상황이 발생할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리 기획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김국현 작가: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됐습니다. 지나친 예측을 하는 것 보다 세상이 원하는 것에 대해 응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개발자가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에 대한 팁을 주신다면?
김학규 대표: 제가 예전 강연했던 내용 중 '모른다 정신'이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것이다', '어떻게 될 것이다', '업계가 이러니까', 이런 것에 대해서 너무 신경쓰지 마시구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싶으냐입니다. 3년 후, 5년 후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한 때 미국에서 안 태어나서 내 인생이 이렇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한 때는 한국에서 태어나길 잘했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요새는 내 아들은 중국 여자랑 결혼시켜야 할까라는 생각을 합니다.(웃음)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에 너무 신경쓰지 마시고, 제가 뭐라고 하는지도 크게 신경쓰지 마시고, 그렇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김국현 작가: 우리가 힘을 합쳐서 변경해야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김학규 대표: 요즘에 게임 셧다운제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그런 제도를 만드는 분들에게 시민으로서 메시지를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셧다운제보다 더 나쁜 백배 천배 나쁜 악법이 있다면 바로 게임 심의 제도입니다. 게임을 개발하고 이것을 심의받지 않은 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면 범죄자가 됩니다. 아니 이런.....(객석에서 박수가 나옴)
게임과 게임이 아닌 것이 딱 구분이 가나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분노를 안합니다. 저는 한-미 FTA보다 게임 심의 제도와 셧다운제 같은 것들이 개발자들 입장에서는 더 가깝게 체감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파밍'의 마음뿐만 아니라 '헌터'의 마음도 안고 가시길 바랍니다. 위험을 안고, '빈손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지언정 창과 활을 들고 동료와 함께 돌아오는' 마인드를 가져야, 사회의 창의력도 높아집니다. '헌터'의 마음이 젊은분들에게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좌측부터 김국현 낭만오피스 작가, 이택경 다음 공동창업자 및 전 CTO, 김학규 IMC 게임즈 대표
행사가 열린 신도림 쉐라톤 호텔 6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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