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 | 출시일 | 2020년 7월 17일 |
개발사 | 레볼루션 소프트웨어 | 장르 | 액션, 어드벤처 |
기종 | PC, 모바일 | 등급 | 미분류 |
언어 | 자막 한국어화 | 작성자 | PforP |
"하지만 난 불편한 편이 더 좋아요."
"우린 그렇지 않아요." 통제관이 말했다. "우린 편안하게 일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겠어요."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중.
완벽한 계산으로 만들어진 이 도시를 도망치고 부수고 싶어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 중견으로 활동 중인 레볼루션 소프트웨어
레볼루션 소프트웨어 최고 히트작 브로큰 소드 시리즈.
한국에서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 어드벤처 게임 마니아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루리웹 유저들에게는 생소할 것이니 잠깐 소개하도록 하겠다. 영국 요크시에 있는 이 중소 제작사는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이 한창이던 1992년 요부의 유혹 Lure of the Temptress를 내놓으면서 게임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레볼루션 소프트웨어의 최고 히트작은 브로큰 소드 시리즈다. 한국에서는 1편이 파검이라는 제목으로 동서게임채널에서 소개된 것을 끝으로, 정식 발매가 되진 않았지만 인디아나 존스와 가브리엘 나이트의 영향을 받은 오컬트와 음모론이 뒤섞인 모험 활극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히트를 기록한 적이 있다.
대표 찰스 세실이 밝히길 초기 1, 2편 합쳐서 총 100만 장을 판매했다고 한다. 심지어 많은 게임 회사들이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를 포기했던 2000년대 이후로도 꾸준히 후속작을 내는 데 성공한 시리즈기도 하다. 이게 말처럼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 게임업계의 판도가 AAA 액션 게임 위주로 재편성되었지만, 밀려난 장르들에 호의적인 인디/중간 규모 게임 시장은 미약했던 시절을 버텼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본 리뷰작의 전편이라 할 수 있는 '비니스 어 스틸 스카이'
게임 자체는 평범한 디스토피아 어드벤처, 충실한 완성도와 냉소적인 매력으로 컬트 팬을 끌어모았다.
브로큰 소드 시리즈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사실 레볼루션 소프트웨어가 브로큰 소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본 리뷰 작의 전편이라 할 수 있는 '비니스 어 스틸 스카이(Beneath A Steel Sky)'가 제법 히트를 거뒀기 때문이다. 비니스 어 스틸 스카이는 간단히 말해 호주를 배경으로 하는 사이버 펑크 디스토피아 어드벤처 게임이다. 유로-아메리칸 전쟁을 비롯해 핵 오염으로 엉망이 된 지구. 사회는 복지와 노동 조건을 없애는 쪽으로 가치관을 발전해왔고 작중에서는, 이런 집단을 유니언 (노동조합)이라 부른다. (반대 세력은 기업을 뜻하는 Coperation이라 부르는데, 꽤 아이러니한 작명이라 할 수 있다) 호주의 유니언 시티도 이런 유니언 세력 중 하나다.
주인공 로버트 포스터는 유니언 시티 출신이지만, 헬기 추락 사고로 유니언 시티 바깥의 황무지 지대인 갭에 떨어진다. 갭에 사는 호주 원주민 부족의 보살핌 속에 기계 수리공으로 성장한 로버트. 어느 날 유니언 시티에서 자신을 찾아온 군대에 부족을 잃고 끌려가던 도중, 사고로 헬기가 추락하게 되고 유니언 시티와 자신의 비밀을 파헤치게 된다.
설명만 봐도 이 게임이 대충 어떤 작품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메트로폴리스와 블레이드 러너, 멋진 신세계, 타잔 (로버트의 배경 설정에 그 영향력을 찾아볼 수 있다), 매드 맥스, 뉴로맨서를 비롯한 1980년대 사이버 펑크... 2000 AD의 간판 만화였던 저지 드레드 같은 1980년대 영국 디스토피아 만화들의 영향력도 지대하다. 이처럼 비니스 어 스틸 스카이는 발매 당시에도 상당히 기시감이 드는 외관과 서사를 지닌 게임이었지만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는 자신이 가진 재료를 진지하게 여겼다. 창립자 찰스 세실과 데이브 커밍스의 치열한 경쟁에서 나온 스토리텔링은, 영국식 블랙 유머와 의표를 찌르는 대화와 묘사, 반전을 통해 플레이어를 사로잡는 매력을 만들어냈다. 이 게임이 만들어낸 로봇 캐릭터 조이는 C-3PO 같은 투덜이 로봇의 계보를 이으면서, 게임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았다.
스틸 스카이 시리즈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는 데이브 기번스
대표작으로는 '왓치맨'이 있다. 영국 디스토피아 만화 비주얼에 큰 영향을 미친 셈.
여기다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는 게임의 비주얼을 위해 상당히 유명한 사람을 데려왔다. 바로 '왓치맨'의 그림을 담당했던 데이브 기번스다. 영국 언더그라운드 코믹스에서 시작해 2000 AD라는 영국 SF 만화 잡지의 주요 그림 작가로 활동한 기번스는, 앨런 무어의 중요한 창작 파트너기도 했다. SF나 디스토피아 장르에 잔뼈가 굵은 사람인 셈인데, 기번스는 게임의 콘셉트 아트과 배경 제공에 그치지 않고 도입부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렇게 탄생한 비니스 어 스틸 스카이의 비주얼은 2000 AD 작품의 영향을 물씬 받아 당시로써는 고해상도라 할 수 있는 320x200, 256색 그래픽으로 근사하게 재현했다. 게임 디자인 자체는 이에 비하면 시에라와 루카스아츠 같은 선구 주자의 영향력이 강했지만, 노련하게 어드벤처 게임이 요구하는 논리적인 퍼즐과 대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발매 30주년을 향해가는 현시점에서 비니스 어 스틸 스카이는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 게임은 시에라나 루카스아츠 게임처럼 장르를 선도하는 타입의 게임은 아니다. 오히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장르가 무르익었을 무렵, 노련한 전문가들이 안정적인 공식에 따라 인상적으로 만든 게임에 가깝다. 레볼루션 소프트웨어의 성취나 매력 역시 상대적으로 브로큰 소드 시리즈에서 훨씬 빛난다는 점도 사실이다. 뭔가 맥빠지는 평가겠지만, 창작은 오로지 천재의 혁신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염두에 둬보면 비니스 어 스틸 스카이만의 미덕과 매력이 딱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2003년 프리웨어로 풀린 데다, 2009년 모바일로 리마스터 되어 재이식된 것을 보면 어드벤처 게임 팬들 역시 이 게임을 잊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도 후속작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에 대한 구상을 2000년대부터 꾸준히 밝혀온 바 있다. 하지만 2000년 인 콜드 블러드와 엘도라도 이후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하기보다는 브로큰 소드 시리즈에 집중해왔다. 거의 14년 동안 이 시리즈만 만들었다고 하면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업계에서 30년 넘게 생존했지만,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는 기본적으로 프로젝트를 마구 벌릴 수 없는 중소규모의 회사다. 실제로 킥스타터로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를 시도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저조해서 무산되기도 했다.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가 본격화된 건 브로큰 소드 4가 완결된 2014년부터였다.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레볼루션 소프트웨어치고 상당히 오래 걸린 게임이기도 하다. 6년이나 걸친 개발 끝에 2020년 6월, 애플 아케이드로 먼저 발매되었고 7월 17일 PC로도 발매되었다.
괜찮아 우린 네가 어디 있었던지 안단다
"감은 로봇이 사막을 가로질러 달아나자 떠돌이 수리공이 뒤를 쫓았다."
사실 게임 디자인에 관해서는 설명이 필요한 타입은 아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풀 3D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다만 요새 게임답지 않게 플레이어의 관찰력과 기억력을 요구하는 진행이 은근히 많다.
26년은 갓난아기가 청년이 될 상당히 긴 시간이다. 로버트가 갭으로 떠난 이후, 변방으로 밀려난 어드벤처 게임계도 많이 변했다. 당연히 비니스 어 스틸 스카이처럼 2D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레볼루션 소프트웨어가 선택한 방식은, 정공법이다: 3인칭 시점 3D 어드벤처다.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풀 3D 그래픽으로 구성된 스테이지와 캐릭터, 패드 친화적인 조작 체계로 업그레이드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 디자인에서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는 솔직하게 '우리는 시대를 선도할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선언한 셈이다. 당연하겠지만 텔테일이나 퀀틱 드림식 시네마틱 어드벤처 게임하고도 거리가 멀다.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한 장면-스테이지에서 퍼즐을 풀고 상호작용 지점을 확인해봐야 다음 장면-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게임이다. 당연하겠지만 진행에 대한 단서 역시 대화를 통해 얻어야 한다. 대화 자체는 키워드 형식으로 이뤄지지만, 대화 대신 관련 아이템을 제시해야 하는 때도 있다.
전작도 그랬지만,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는 이런 디자인에서 크게 무리를 하지 않고 노련하게 어드벤처 게임의 공식을 엮고 있다. 어드벤처 게임의 핵심이라면, 플레이어에게 어떤 과제를 주고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에 대해 설계라 할 수 있는데,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그 점에서 무리 없이 퍼즐 설계를 해나가고 있다. 지나치게 불합리하거나 황당한 퍼즐은 최대한 억제하고 있으며, 적당히 머리를 돌릴 줄 안다면 수월하게 풀 수 있다. 정 막혔다 싶으면 주변 인물들과 대화를 하면 정보를 충분히 주고 있다. 여기다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는 힌트 시스템도 충분히 마련해두고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 도중 막힌다, 싶으면 메뉴에서 힌트 버튼을 눌러서 단계별로 확인할 수 있다. 힌트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단지 전반적인 진행 방식이 옛날 어드벤처답게, 플레이어의 꼼꼼한 조사와 기억력을 요구하는 때도 있긴 하다. 멘토 알론조의 심문이 대표적인 예인데,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질문이 의외로 구체적이라 귀찮다.
본작에서 새로 추가된 해킹 시스템 'C-MINOS 스캐너'
스캔 해킹 퍼즐 자체는 조각 맞추기라 그렇게 복잡하진 않다.
다만 위치 선정과 타이밍 맞추기가 중요하다.
전작 팬들이라면 반길만한 LINC 해킹 퍼즐도 등장한다.
그래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 추가된 퍼즐이 있긴 하다. 바로 사물 인터넷 개념을 활용한 해킹이다. 본작에서는 이를 C-MINOS 내 로직 블록 변경이라 지칭한다. 퍼즐 자체는 와치 독스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다. 플레이어는 초반부에 개조된 스캐너를 받는데, 이 스캐너로 기기의 C-MINOS에 접속할 수 있다. 접속한 이후 논리 회로인 로직 블록을 변경하는 식으로 퍼즐을 풀어야 한다. 로직 블록은 반투명으로 된 태스크 로직 블록이나, 데이터 블록만 옮길 수 있는데 워낙 직관적이라, 헤맬 가능성이 적다는 단점도 있다.
대신 초반부에 C-MINOS 하나만 접속해서 변경하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복수의 기기에 있는 C-MINOS를 접속해 로직 블록을 옮기는 일이 잦아지며, 원하는 C-MINOS를 지닌 기기나 드론이 움직이는, 적당한 순간을 노려서 접속해야 하는 퍼즐도 있다. 사실, 이 로직 블록 변경 퍼즐의 재미는 로직 블록을 바꿔치기해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고, 이 사실을 아는 플레이어만 유유히 빠져나가는 심술 궂음에 있다. 본작의 유니언 시티의 유토피아를 지향하고 있는지라 이런 심술 궂음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C-MINOS 이외에도 전편에 등장했던 LINC로 접속하는 해킹도 몇 번 등장하는데, 이것도 그렇게 어렵진 않다.
힌트 시스템이 잘된 편이라서 심하게 막힐 가능성은 적다.
그래픽이 생각 이상으로 좋다. 미래 디스토피아 도시라는 설정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다만 몇몇 버그가 아쉽다. 가끔은 저장 파일을 불러와야 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기술적인 완성도는, 괜찮은 편이다. 사실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하고 비슷한 양태를 띈 어드벤처 게임 후속작이 있었다. 바로 ‘사이베리아 3’이다. 불행히도 사이베리아 3은 평균 이하의 그래픽과 완성도로 휘청거리던 게임이다. 그에 비하면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사이베리아 3랑 비교하는게 미안해질 정도로, 괜찮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물론 AAA 게임처럼 최첨단을 달리는 그래픽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하지만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는 인 콜드 블러드와 브로큰 소드 3으로 성공적으로 풀 3D 그래픽에 안착한 경력이 있는 회사다. 본작 역시 긴 시간이 들긴 했지만, 언리얼 엔진 4를 통해 깔끔하고 준수한 그래픽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데이브 기번스가 다시 콘셉트 아티스트로 참여한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의 그래픽은 기술력 그 이상으로, 미적 완성도가 얼마나 그래픽에서 중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깔끔하면서도 오밀조밀하게 잘 짜인 그래픽이라 보면 좋다. 적어도 "미래 도시라면서 별로 볼 것도 없네"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레볼루션 소프트웨어의 저력을 잘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새로 도입한 언리얼 엔진 4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던지, 이따금 치명적인 버그가 발생하는 건 단점이긴 하다.
머리와 손을 중재하는 것은 심장, 하지만 심장이 없다면?
전작은 기본적으로 우중충한 억압에 기반한 디스토피아에 가까웠다.
반대로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정신 나간 디스토피아에 가까웠다.
작중 시간 10년이 흘렀고, 로버트도 중년이 됐다. 이와 관련한 코멘트 및 농담이 보인다.
사이버 펑크 장르라는 지점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비니스 어 스틸 스카이는 기본적으로 PC와 웹스페이스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시절에 등장한 게임이었다. 스마트폰이나 사물 인터넷, 증강 현실 같은 개념이 아직 머릿속에만 있던 시절이다. 이 때문에 지금 보면 묘하게 초월적이거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 묘사가 등장한다. 목에다 케이블을 꽂고 푸른 공간에 아바타가 돌아다니면서 네트워크 시스템과 접촉하는 작중 사이버스페이스 묘사는 명백히 뉴로맨서의 영향력이 강했다. 20년이나 지난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현실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기기들을 도입했다. 손등에 집어넣어 등록을 확인하는 신분 등록 칩도 칩이지만, 상술한 사물 인터넷도 그중 하나다. 재미있는 점은 게임 내 서사에서도 이런 사이버 펑크 장르의 변화에 대한 코멘트로 읽히는 장면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전작의 네트워크 시스템이었던 LINC가 구식 시스템으로 전락해 새로 생긴 MINOS에 접속하는 백도어 역할을 한다는 점, 로버트가 묘하게 옛날 아재 취급받는다는 점이 그렇다.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전작과 노선이 다르다. 비니스 어 스틸 스카이는 기본적으로 그리스 비극 풍 가족 드라마에 가까웠다. 하지만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블랙 코미디와 사회 풍자로 기울어졌다. 무엇보다도 호주라는 배경의 특수성이 강해졌다. 사실 비니스 어 스틸 스카이의 서사는 미래 디스토피아 도시라는 전제라면 다른 공간에서도 이식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실제로도 몇몇 묘사를 제외하면 호주라는 배경을 딱히 의식하기 힘들기도 했다. (한 예로 주인공의 성 포스터는, 실제 호주에서 파는 맥주 브랜드에서 따왔다) 반대로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사정이 다르다. 영국 제작사에 만들었고 기본 내용은 여전히 디스토피아 SF지만, 전작보다도 호주라는 배경을 의식하고 만든 티가 난다.
아이들과 황무지 떠돌이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매드 맥스 3' 영향을 찾을 수 있다. 마침 3 부제도 Beyond Thunderdome'이다.
매드 맥스 시리즈의 황량하고 야만적인 감수성은 호주 문화 개성과 역사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레볼루션 소프트웨어 역시 이런 개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주인공의 출신 설정에 그쳤던 전작의 갭과 달리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갭과 유니언 시티 간의 경계를 주 문제의식으로 삼는 게임이다. 이 부분은 호주 사회상과 창작물의 전통을 이해해야지 알 수 있다. 도입부를 본 사람이라면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가 매드 맥스 시리즈의 영향력이 (특히 3편)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매드 맥스 시리즈는, 1970년대 호주 뉴웨이브로 대표되는 호주 영화의 부흥하고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당시 호주 뉴웨이브 영화는 문명 세계 너머에 있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이상한 광기에 매료되어 있었고, 오즈익스플로테이션이라는 장르 영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피터 위어의 행잉록에서의 소풍과 잃어버린 시간, 람보로 유명해진 테드 코체프의 웨이크 인 프라이트, 니콜라스 뢰그의 워크어바웃이 대표적이다. 매드 맥스도 이런 호주 뉴웨이브의 일부였던 오즈익스플로테이션의 대표작이다. 호주 영화의 독특한 에너지와 광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최근 사례로는 바바둑과 울프 크릭이 있다.
호주 원주민 문제는 호주 영화에서 주 소재 중 하나다.
게임의 중심이 되는 납치 사건은 도둑맞은 세대 문제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유니언 시티가 갭 주민 나아가 납치한 아이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묘사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호주 뉴웨이브 영화가 다뤘던 대상 중에는 호주 원주민이 있다. 호주 뉴웨이브가 도래했을 때 호주 원주민 인권 문제 역시 서서히 대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피해 사례라면 도둑맞은 세대가 있다. 도둑맞은 세대는 190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호주 원주민 아이들을 정부가 납치해 기숙학교에 수용해버린, 호주 역사상 최악의 인종 탄압 사건으로 꼽힌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원주민 아이들은 제대로 국민 취급도 못 받고 망가진 인생을 살아야 했다. 공식 사과도 2000년대에서야 겨우 이뤄졌고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서 아직도 비판받고 있다. 지미 블랙스미스의 노래, 워크어바웃, 토끼 울타리, 더 나이팅게일 같은 호주 영화들은 이런 어두운 호주 개척사와 원주민의 비극을 고발해왔다.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의 도입부를 차지하는 흑인 아이가 납치되는 사건은 이 도둑맞은 세대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다. 단순한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본작의 유니언 시티가 철저한 관리 사회인 데다, 시민이나 시스템 그 누구도 등록되지 않은 갭 출신 아이들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아이들의 행방에 대한 진상 역시 의미심장함에 확신을 더 해주고 있다. 유니언 시티에서 갭 주민은 사회적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사케르나 다름없는 셈이다.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갭과 유니언 시티 간의 경계와 차별의식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 경계는 원주민과 백인 간의 경계선이기도 하고, 자연과 도시의 경계이기도 하며 난민과 국민 간의 경계이기도 하다. 갭 주민인 로버트가 사망한 시민으로 신분 위장한다는 설정 역시, 묘하게 불법 체류자의 정체성 문제랑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전반적으로 블랙 코미디가 넘실거리는, 매우 영국적인 게임이다.
전작 마스코트답게 본작에서도 끝내주는 투덜거림을 들려주는 조이
전작과 달리 직접 호주 원주민이 등장하진 않지만, 수상쩍을 정도로 편중된 갭(유색인종 위주)과 유니언 시티 (백인 위주)의 인종 구성도 이런 문제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유니언 시티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 역시 아군을 제외하면 위선과 가식, 탐욕, 차별주의로 찌든 백인 권력층으로 그려진다. 그중 가장 노골적인 야유는 예술가입네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시인 레지날드일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전작처럼 이런 사회를 뒤흔들고 해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물론 완벽하게 개운해지는 쪽으로 나가진 않는다. 본작의 결말은 전작처럼 해방감과 동시에 묘한 씁쓸함을 안겨준다. 진상 자체가 상당히 논리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사고”인 데다, 주인공 역시 이런 부조리 앞에서 완벽하게 결백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그 점에서 전작보다도 훨씬 정치적인 게임이다. 사이버 펑크 장르와 디스토피아 장르 자체가 현실의 문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장르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화끈하게 새로운 게임은 아니다.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는 창립부터 지금까지 그런 걸 추구하는 제작사가 아니었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를 변방으로 자리 잡은 현실에 익숙해진 세대에게는 지나치게 옛날 게임처럼 다가올 가능성도 크다. 사이베리아 3보다는 훨씬 양호하지만 몇몇 기술적인 문제도 걸린다. (송고 시점에서는 패치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는 정직하면서도 정갈한 완성도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게임이다. 무엇보다도 중급 게임치고 비주얼 완성도가 상당히 뛰어나다는 점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고전적이면서도 블랙 코미디 성향이 강한 디스토피아 창작물을 좋아한다던가,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마니아라면 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다만 작중에서 설명해주긴 하지만 전작 스토리를 안다면 강렬하게 다가올 부분이 있으므로, 전작을 하거나 스토리를 숙지하는 걸 추천한다.
전작을 좋아한 팬이라면 만족할만한 팬서비스가 될 것이다. 아니라도 고전 어드벤처를 좋아한다면 무난하게 할만하다.
P.S. 한국어 번역은 노력한 부분이 보이지만, 검수가 덜 되었는지 말투나 단어가 오락가락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진행엔 큰 영향을 미치는 수준의 오역은 없다.
작성 PforP / 편집 안민균 기자 (ahnmg@ruli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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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가 느긋하게 시간 투자하면 정말 재미있는데....요즘은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보니 아예 처다볼 엄두를 못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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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가 보이는 건 뭐 그렇다 치더라도 이 게임은 7월에 나온 신작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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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Beneath A Steel Sky는 본문에서도 프리웨어라고 언급있지만 GOG에서 무료로 받으면 GOG 라이브러리에 추가할 수 있습니다 https://www.gog.com/game/beneath_a_steel_sky
(IP보기클릭)218.153.***.***
긴글 안 읽는 건 그다지 자랑이 아닙니다. 시대탓할 일도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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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소드 시리즈 정말 재밌게 했었는데... 3D화 되면서 망해갔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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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Day
이코가 보이는 건 뭐 그렇다 치더라도 이 게임은 7월에 나온 신작 맞음. | 20.07.31 04: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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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가 느긋하게 시간 투자하면 정말 재미있는데....요즘은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보니 아예 처다볼 엄두를 못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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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소드 시리즈 정말 재밌게 했었는데... 3D화 되면서 망해갔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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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가 별 재미를 못봐선지 5에서는 다시 2d로 회귀했었는데 이건 재밌게 했습니다. 3는 정말 너무 별로였고 4도 사실 게임 내용이나 조작 면에서도 괜찮았던 것 같아요. | 20.07.31 17: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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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자와카스미
긴글 안 읽는 건 그다지 자랑이 아닙니다. 시대탓할 일도 아니구요. | 20.08.10 11: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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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Beneath A Steel Sky는 본문에서도 프리웨어라고 언급있지만 GOG에서 무료로 받으면 GOG 라이브러리에 추가할 수 있습니다 https://www.gog.com/game/beneath_a_steel_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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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침착맨 인줄 ㅎ | 20.08.05 10: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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