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리앤.
과거 키리시마 게이트를 파헤치고 해결한 기자 셜록 키무라와, 그의 파트너 “즐거운 토모”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 인간.
경찰, 검찰, 정보기관 등 법집행기관의 인력으로 태어나 수 많은 사건들을 해결하고 치안을 안정시킨 덕분에 제1차 연합전쟁 이전에 태어난 바이오로이드 인간들 중에선 거의 흔치 않게 이름 앞에 이명을 붙혀 불리던 바이오로이드 인간이었으며, 제1차 연합전쟁 이전 바이오로이드 인간들이 아직 인권을 가지고 있던 시기에 태어난 인류 문명의 황금기의 마지막 세대의 인간이기도 하였다.
특이사항으로 그녀는, 제1차 연합전쟁 이전에 태어난 바이오로이드 인간들 중에선 유일하게 자신들을 키리시마 게이트를 해결한 그 즐거운 토모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소수이지만 태어난 리앤들 모두가 그랬으며, 그래서인지 분명 서로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유빈이와 피에트로에게는 리앤에게서 방금까지 같이 있었던 바로 그 토모와 거의 유사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리앤의 모습에선 웃는 얼굴부터 가벼운 손짓 하나하나 전부, 토모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유빈은 그녀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토모라는 것을 이미 진즉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빈에게 안겨진 리앤은 잠시 당황한 듯 멈칫하였으나, 이내 방금 전 토모로서 그랬듯, 유빈이의 감촉을 더욱 짙게 느끼고자 고개를 부비며 그의 품 속에 안겼다.
“맞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어.”
“이 포근한 감촉... 따뜻한 이 느낌...”
“분명 방금 전에도 이렇게 똑같이 껴안아주었는데... 나 왜 이렇게 눈물이 나려는 건지 모르겠어...”
“미안해... 나 사실 아직도 유빈이한테 주려고 했던 그 선물, 찾지 못했어.”
“내가 잃어버려놓고 못 찾고 있다니... 나 아직 바보인가봐, 유빈아.”
“나, 원래 초 천재 미소녀 형사인데... 왜 자꾸 너 앞에서는 바보가 되려는 건지 모르겠어...”
“리앤...”
유빈과 만자나마자 그의 품에 안겨진 리앤은 유빈이를 보고 활짝 웃더니, 이내 갑자기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앤은 갑작스러운 반응에 애써 웃으려고 했지만, 눈가가 점점 촉촉해져 가는 것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것은 마치 오랜 만에 만난 소중한 사람 앞에서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망가진 것과 같은 기분을 들게 하였다.
불과 방금 전까지 왓슨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리앤으로서 직접 그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으니깐. 그래서 가상현실 속에서 긴 시간을 토모로서 왓슨의 곁을 지낸 그녀가 이제야 본 모습으로 유빈이를 만나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감정이 복 받쳐 오른 모양이었다. 그녀의 의도대로 게임을 완전히 클리어해준 것도 있고.
그래서 리앤은 유빈이의 넓은 가슴 팍에 얼굴을 다시 묻고는 소리 없이 한 참을 눈물을 삼키다가, 이내 고개를 추켜 세우곤 손으로 눈가를 비비며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순간적으로 자신의 망가져버린,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토모 특유의 한 쪽 눈을 찡그리고 웃는 제스처를 취해보이면서 말이다.
“... 헤헷, 미안해, 막 이래, 내가~”
“그러니깐... 으음...”
“... 네~! 정식으로 다시 인사하겠습니다!”
“초 천재 미소녀 형사, 리앤이라고 합니다!”
“자비로운은 좀 빼줘, 알았지?”
“그래, 알았어.”
“그나저나 유빈이랑 피에트로 정말, 그 동안 게임하면서 엄청 헤짚고 다니고 치트키도 엄청 많이 쓴 거 알아??”
“그러면 안 돼! 반칙이라고! 원래라면 강퇴사유란 말이야. 거기다가 유저들을 그렇게 많이 접속시키다니, 자칫 잘못하면 서버가 과부화가 걸릴 뻔 했다고.”
“뭐, 잘 만든 게임 하나 나오면 유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게리 모드 만들고 하는게 바로 모더들의 심리 아니겠냐.”
“원래 그것도 저작권법상 불법인 거 알고 있지, 피에트로?”
“물론 멸망 전에 이야기지만.”
“그리고 사실 나도 실수한 게 몇 번 있어서 몇 번 도와준게 있으니깐, 이번 만큼은 그냥 용서해줄게!”
“그래, 고맙다!”
리앤과 처음 만난 피에트로도 은근히 케미가 잘 맞았다. 자기도 실수를 했으니 용서해주겠다는 리앤의 선심쓰는 듯한 말에, 피에트로도 마치 선심 쓰듯 맞받아쳤다.
“그나저나 어떻게 나랑 피에트로의 이름을 안 거야?”
“사용자 정보를 입력하고 들어왔잖아. 진즉에 알고 있었지.”
“그런 것도 다 확인할 수 있구나.”
“당연하지~ 내가 만든 게임인데.”
“너 바깥에서 엄마랑 이모들한테 과금 받아가지고 여기서 뭐뭐 사먹었는지, 얼마 들었는지도 내가 다 알고 있어.”
“어우야,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 근데 왜 이런 게임을 만든 거야?”
“그건...”
“‘나’와 내 친구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알아줬음 했거든.”
“아...”
키리시마 스캔들.
아니, 키리시마 게이트는 분명 현실 역사에서도 키리시마 총리와 은하수 쿠데타의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를 해결한 용감한 기자 셜록 키무라와 그의 조수 즐거운 토모에 대한 이야기는, 기업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제1차 연합전쟁 이후에도 사람들의 입에 전해져 내려왔지만, 철충의 습격과 휩노스 병이라는 원인 모를 질병으로 인해 바이오로이드 인간들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멸망하면서 그들의 용감무쌍했던 이야기는 점점 흔적을 잃어가고 있었다.
“인간 님들...”
“으응... 아니지, 우리 원래 모두 인간이었으니깐.”
“맞아, 리앤.”
“우리 모두 원래 인간이었어. 지금도 인간이고.”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렸지, 우리는 철충 앞에서 무력하지, 덕분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점점 그 실체가 사라져 가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 리앤들이 모여서 의논을 했지. 언젠가 훗날에, 누군가 우리를 찾게 된다면, 우리의 의식과 유전자 정보를 이 게임에 업로드하고 각자의 경찰서의 비밀 공간에 숨기로 한 거야.”
“우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혹시 들은 적 있어?”
“어... 들은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글세, 잘 모르겠는데...”
“그게 이 이유야.”
“우리 자비ㄹ...”
“푸훕!”
“괜찮아, 그냥 말해도 돼.”
“난 오히려 그 이명이 멋있다고 생각하니깐.”
“고마워, 역시 유빈이 뿐이야~”
“하여튼 우리 자비로운 리앤들이 즐거운 토모의 유전자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아마 알 거야. 그 과정에서 즐거운 토모의 유전자 뿐만 아니라 기억들도 우리 모두에게 계승되어졌지.”
“생김새가 비슷하고, 유전자가 몹시 비슷할 뿐인 존재가 다른 존재의 기억을 갖고 있다해도, 우리는 적어도 우리들 스스로를 즐거운 토모라고 인식하고 있어.”
“그래서 리앤들끼리는 기억을 공유하는 쌍둥이 자매들처럼 지내기도 했지.”
“그렇구만.”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고, 이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
“그래서 만들어진게 이 게임이야.”
“아, 그럼 나 궁금한거.”
리앤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피에트로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하였다.
“그럼 굳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어?”
“그것도 서브 이벤트까지 준비하면서까지.”
“서브 이벤트는 말 그대로 서브 스토리로 준비한 거였고, 사실...”
“첫 번째 질문은 나름 사정이 있었거든~ 그건 나중에 꼭 설명해줄게.”
“나중에?”
“게임을 클리어 하고 ‘나’를 만났으니깐, 곧 이 세상은 없어질거야.”
“걱정 마, 서브 스토리에 접속했던 동생들은 이미 로그아웃 했으니깐.”
“하지만 메인스트림은 여기니깐, 너희들은 클리어 특전을 받아야지. 좋은 게임의 필수 요소는 멋진 후일담이라구~”
“얼른 가 봐. ‘나’ 랑 셜록이 기다리고 있으니깐...!”
“대신 ‘나’ 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초밥, 엄청 맛있다고??”
“초밥이라...”
“특전이 초밥이라니, 이거 무시할 수 없겠는걸?”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가슴 속에서 번지는 따듯한 온기.
유빈과 피에트로는 뭔지 모를 고양감이 내면에서부터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학생회장실 밖으로 나섰다.
... 아니, 나서려고 했다.
“왓슨!!!! 모리아티!!!!”
- 탕!! 탕!!! 탕!!!!
“?!?!?!?!”
총성이 울렸다. 그것도 세 발 씩이나.
유빈이와 피에트로의 가운데로 정확히 뚫고 날아간 총알은 문을 뚫고 날아갔다.
총알이 날아간 문 뒤로 스파크가 파지지지직- 거렸고, 유빈과 피에트로는 곧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철충이잖아...?!?!”
“철충이 왜 여기에...?!?!”
“리앤, 이거 분명 가상현실 맞지?!?!?!”
“가상현실 맞아!!!”
“버그인가...?? 아, 아냐... 이, 이럴 리 없는데...?!?! 왜 철충이 가상현실에...?!”
“유빈아!!!!”
“피에트로!!!!”
“엄마!!!!”
컴퓨터 게임 속에 등장한 버그마냥 나타난 철충은 리앤이 빠르게 눈치를 챈 덕분에 저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쓰러진 철충 뒤로 유빈이의 엄마인 규리와 피에트로의 엄마 사라카엘이 나타났다.
이미 쓰러져버린 철충을 보며 서둘러 아들들을 찾아온 두 엄마들은 아이들이 무사한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난 후에야 걱정을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아들, 다친 데는?”
“저는 멀쩡해요, 엄마.”
“엄마야 말로 괜찮아요?”
“우리야 당연히 괜찮지.”
“우리도 갑자기 가상현실에 철충들이 나타난 걸 확인했단다.”
“적어도 미나토구 시내 쪽은 완전히 철충들로 잠식됐어. 이모들도 지금 겨우 철충들을 상대하면서 여기로 오고 있는 중이란다.”
“여기 말고도 다른 곳도요...?!”
“조금 안 좋은 소식이긴 한데, 철충이 나타나면서 외부랑 연결도 같이 끊겨버린거 같아. 철충이 나타나고 나서부터 닥터랑 통신이 안 돼. 정황상 저 쪽에서도 우리 쪽 모니터링이 안 되는 모양이야.”
“그럴 수가...”
“이모들 여기까지 오는 데 괜찮겠죠?”
“괜찮을거야, 이모들이야 다들 원채 강하잖니.”
“일단 이모들 올 때까지 안전한 곳으로 자리부터 피하자꾸나. 곧 철충들이 이 곳으로도 몰려들거야.”
“그렇게는 못 하겠군요.”
“누구냐?!?!”
리앤을 데리고 엄마들을 따라 철충들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려는 순간, 코너에서부터 여인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철충들과 함께 목소리의 주인공인 어떤 한 여성이 등장했다.
또각- 또각- 거리는 구두 굽 소리를 은은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울리며 등장한 여성은 가슴 골이 심하게 파인 검은 드레스에, 가슴 팍에 나비 문신을 한 미혹적인 인상을 가진 여성이었다. 유빈과 피에트로에게는 순간 알파 이모인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눈 앞에 나타난 여성은 외형이 알파와 상당히 닮아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의 알파 이모와는 다르게 뭐랄까, 약간 표독스러운 인상이 짙다는 것?
하지만 이미 규리와 사라카엘, 그리고 리앤은 그 여성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철충과 함께 나타난 여성은 이윽고 한 쪽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며 그들에게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밑으로 깔린 메조 소프라노 톤의 목소리로 듣는 이의 귀를 편안하게 해주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오만함과 간사함이 단어 마디마디 사이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인간 분들과 바이오로이드 분들. 저를 위해 이렇게 직접 선물까지 준비를 해두시다니. 덕분에 저도 수고를 덜고 리앤을 데려갈 수 있겠군요.”
“리앤을...”
“데려간다고...?”
“그럼요. 그녀는 우리 펙소 콘소시엄에서 생산한 바이오로이드이니까요.”
“리앤을 찾아다니느라고 고생 꽤나 했는데, 여러분 덕분에 저는 힘 하나 안 들이고 리앤을 데려갈 수 있게 되었군요.”
“아, 이거 제 이야기만 하느라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펙소 콘소시엄의 비서, 레모네이드 오메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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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3.02 19:3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