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잠입했어. 아주 잘 보이는데?”
- “감도는 어때?”
“딱 맞아. 이 정도면 굳이 마이크를 배기관 밖으로 빼내지 않더라도 충분히 다 녹음하고도 남겠어.”
술집을 나온 유빈이와 옷을 바꿔 입은 피에트로는 곧 바로 술집으로 들어가 2층 화장실로 향한 뒤 화장실 천장 뚜껑을 열고 배기관으로 들어갔다. 키 2미터에 몸무게가 130kg이 넘는 근육질 거구인 유빈이와 달리, 피에트로는 키는 클 지언즉 호리호리한 체형이었기 때문에 쉽게 배기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건물 자체가 커가지고 층과 층 사이의 배기관이 큰 것도 한 몫 했겠지만.
하지만 체격의 차이 때문인지 제복이 헐렁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키는 고작해야 10cm 정도 차이지만, 앞서 말했듯 피에트로는 호리호리한 체형이었기에 바지의 허리띠를 유빈이보다 더 길게 조여야지만 겨우 바지를 제대로 입을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배기관 안으로 들어가니 제복이 이리 쓸리고 저리 쓸려 먼지가 묻는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가상현실이니깐 문제는 없겠지.
주렁주렁 매달린 약장에 카메라와 녹음기를 떼내어 배기관 쪽으로 살며시 가져갔다.
카메라 렌즈에 4번 VIP 룸에 모인 사람들이 얼굴들이 자세히 비춰지고, 곧 그들의 대화 소리가 녹음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키리시마 총리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카메라에 포착되어졌다.
“앗?”
- “왜 그래?”
“카사사기 후쿠다야.”
- “국회의원들에, 기업가, 심지어 옆 나라 국방무관까지 온 자리에 야쿠자 오야붕까지 올 정도면, 확실히 키리시마 총리가 나타나겠구만.”
- “분명 최근에 붉은 아레나 사업 축소 관련해서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네.”
이어폰 형 무전기로 들리는 셜록 키무라의 말이 끝나자, 곧 문이 열리면서 바로 그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났어, 키리시마 총리야...!”
-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셨구만, 키리시마 총리...!!”
키리시마 내각총리대신.
현 일본국 정부수반이며 자민당의 압도적인 정치적 영향력과 지분율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그 정체는 제국주의자며 인종차별주의자로서 등 뒤에 일본회의라는 거대한 극우 우파 정치 결사 조직을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역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대부분이 일본회의의 회원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키리시마 총리도 일본회의의 회원이라는 것은 딱히 유별난 점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대 총리들 중 약 3/4의 정도의 인원들이 일본회의의 회원이었다. 전임자였던 하토모리 내각총리대신은 일본회의의 회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키리시마 총리가 유독 역대 다른 총리들에 비해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의 행동력 때문이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을 만들어 일본이 NATO를 탈퇴하게 만들고, 십수 년 후 자신이 직접 총리가 되어 UN 상임이사국으로 진출을 하려는 그의 파격적인 행동력은, 역대 총리들을 봐도 전례가 없었다. 거기다가 상임이사국 진출과 동시에 키리시마는 평화헌법을 본격적으로 개정하여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려 하고 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키리시마 총리는 옆 나라의 불법적인 군 내 사조직과 결탁하여 일본의 UN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를 확보하고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는 것에 도움을 받는 다고 하는 것으로도로 모자라, 대한민국의 핵무기 개발 기술 이전까지 약속받았다. 거기다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을 일본의 연방국과로 한일합병 하여 동아시아의 대동아 공영권까지 꾀하는, 실로 무시무시한 양반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은 아직 천황제 국가인데, 일왕의 말을 총리가 감히 무시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키리시마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을 할 지도 모른다.
자신이 새로운 일본의 천황이 되겠노라고.
키리시마 총리의 등장에 룸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하였다.
“이거 제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군요, 여러분.”
“어서오십시오, 총리 각하.”
“아, 이거 일단 분위기를 좀 띄울 겸 해서 늦은 것에 대한 사죄의 이미로 제가 화끈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키리시마 총리가 테이블 위에 버튼을 누르자 4번 VIP 룸의 벽에 문이 열리고 노출이 심한 복장을 입은 여성들이 조심스럽게 줄 지어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
“이번에 붉은 아레나에 투입하지 않고 남겨놓은 바이오로이드들입니다. 특별히 덴세츠 사에서 새로 만든 장난감을 가지고들 있지요.”
“사람의 명령이라면, 그 어떠한 명령이라도 무조건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장난감입니다.”
“자, 장난감...?”
장난감이라는 말에 피에트로는 벽으로 들어온 바이오로이드 여성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곧 그녀들에 목에 초커같은 것이 달려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만약에라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 년들의 목에 채워진 족쇄에서 머리에 강력한 전류를 흘려보낼 겁니다. 그렇게 되면, 바이오로이드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은 죄로 뇌가 완전히 타버려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겠죠.”
“!!!!”
“성능은 확실하니, 이 키리시마가 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야, 아주 제대로 된 장난감들을 데려왔구만!!”
키리시마 총리가 재치스럽게 제스처를 취하며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바이오로이드 여성들은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벌벌 떨고 있었다. 아직 바이오로이드들이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고 살고 있는 시기, 일본은 벌써부터 명령권 제어 장치같은 것을 만들어 납치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족쇄를 씌워 노예처럼 부리고 있었다. 이런 역사까지는 배운 적이 없었는데.
알지 못했던 역겨운 역사의 사실을 눈 앞에서 목도하고 피에트로는 역겨움에 속이 메스꺼워짐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셜록 키무라와 유빈, 토모도 마찬가지였다. 인공 수정관에서 유전자 씨앗으로 태어난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똑같은 인간일 바이오로이드를 외부의 강제적인 요인을 빌려 노예로 부리겠다는 저 태여한 모습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저런 인간이 어째서 한 나라의 정부수반인지부터가 도저히 제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ㅆㅍ... 역겨워 죽겠네...”
“왓슨, 셜록, 토모. 보고 있어?”
- “어... 보고 있어.”
- “바이오로이드 언니들이 불쌍해...”
- “셜록, 니 말이 맞았어.”
- “이 나라는 이미 자정 작용을 잃은 지 오래야.”
“진짜 맘 같아서는 내려가서 싹 다 조져버리고 싶을 지경이네.”
- “아서라, 괜히 일 틀어지니깐.”
“마음에 드실 대로 사용해주시지요.”
“어이쿠, 그리고 참. 내 정신 좀 보게나.”
“카사사키 군, 자네도 수고 많았어. 내가 괜히 붉은 아레나 사업을 축소하자 그랬을 때 자네가 많이 불편해 했었다는 거, 충분히 이해하고 있네. 부디 내 얼굴을 봐서라도, 그 노여움을 좀 풀어주게나.”
“아하하하!!!!”
“아닙니다, 총리 각하. 그저, 더 큰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하지요, 뭐.”
“앞으로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어서 국제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 가장 먼저 상임이사국 지위로서 세계 인권 헌장을 박살내고 말 것일세. 그렇게 되면 이 사업은 비단 일본 내수 시장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겠지.”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일세, 카사사키 군.”
“내 그렇게 되면, 정치판에 자리 하나 마련해주도록 하겠네...!”
“이거 이거, 기뻐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하는 일마다 날 귀찮게 하던 하토모리 녀석의 처리 건도 그렇고, 조금만 더 고생해주시게, 카사사키 군~”
“붉은 아레나 사업을 축소하라고 시킨 게 결국 덴세츠가 만든 명령 제어 모듈 장치를 만들어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장착해서 더 큰 사업을 이루기 위함이었어. 그래서 바이오로이드 시민들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키리시마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거였고!”
- “그리고 거기에 하토모리 총리가 계속 제동을 거니, 키리시마 입장에선 카사사키 후쿠다를 시켜서 하토모리 전 총리를 암살하게 한 거고.”
저들의 대화는 단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녹화, 녹음되어가고 있었다. 분명 키리시마 총리와 카사사키 후쿠다의 입에서 하토모리 전 총리의 처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키리시마 총리가 카사사키 후쿠다를 시켜다가 하토모리 전 총리를 암살하게끔 지시한 것이었다. 맥락을 들어보니, 키리시마가 의원이던 시절부터 하토모리 총리가 여러모로 그의 정치력에 제동을 많이 걸었던 모양이었다.
거기다가 UN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해서 유엔 인권 헌장을 박살내겠다는 그의 말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가소롭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상임이사국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상임이사국의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또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아마 그래서 키리시마 총리는 은하수를 통해 대한민국을 한일합병하여 동아시아의 세력을 키우고 미국과 대등하게 맞서 싸우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때 마침, 키리시마 총리를 향해 대한민국 육군 정복 차림의 남성이 말하였다.
“총리 각하, 방금 본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예정보다 거사가 일찍 진행이 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호오, 그래요? 그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인데...”
“일본은 신경쓰지 마시고, 필요할 때 자위대의 지원을 보내주시면 된다고, 윤도철 장군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구 소장. 육상자위대의 서부방면대와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 그리고 항공자위대의 서부, 남서항공방면대에게 출동 대기 명령을 내려둔 상황이니까요. 은하수에서 지원 요청만 해준다면, 언제든 한반도로 출격할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그 핵연료 재처리 시설 건과 관련해서 말인데...”
“그것도 걱정 마시게. 안 그래도 지금 덴세츠의 지원과 교단에서 들어오는 헌금으로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만들기 위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건설 단계에 들어설 정도로 건설 자금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그 쪽은 걱정안하셔도 될 겁니다.”
“그거 다행이로군요.”
그리고 당연히 핵무장과 관련된 이야기도 빼먹지 않고 나왔다.
구 소장이라는 이름의 대한민국 주일한국대사관 소속 국방무관에게 말을 하기 무섭게, 총리의 비서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말하였다.
“각하, 주일미군사령관으로부터 계속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 자위대가 부대 이동을 하고 출동 준비를 하는 것이, 대체 무슨 사안이냐고...”
“눈치 있으면 그냥 무시해라. 내 옆에서 하루 이틀 일해본 것도 아니잖아, 자네.”
“아, 예. 그렇긴 합니다만... 계속 이러면, 미국에서도 연락이 올 수 있...”
“그건 내가 알아서 잘 할테니깐 자네는 신경 끄라고.”
“... 알겠습니다.”
자위대가 움직이는 것을 주일미군사령관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래서 자위대의 통수권자인 총리에게 연락을 하는 모양인데, 키리시마 총리는 이를 가뿐하게 무시하였다.
피에트로는 주일한국대사관 소속의 국방무관인 구 소장과 키리시마 총리 사이의 대화 또한 확실하게 녹음, 녹화를 하였다.
이 정도 증거만으로도 키리시마 스캔들과 은하수의 쿠데타를 공론화 하기엔 충분했다.
“좋아, 셜록?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 “어, 차고 넘치지, 이 정도면.”
- “좋아, 이만하고 돌아와, 모리아티.”
“오케이~ 금방 내려갈게.”
피에트로는 키리시마 총리, 카사사키 후쿠다와 은하수 조직 사이의 증거를 수집하고 다시 화장실 천장을 통해 내려왔다.
“어유, 정복에 먼지 다 묻었네.”
“... 음?”
“실례합니다. 수상하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화장실 천장으로 그대로 내려와 초소형 카메라를 떼고 옷의 먼지를 터니, 누군가 다가와 피에트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뒤를 돌아보니 피에트로보다 키는 작지만, 덩치는 유빈이처럼 곰만한 경호원이 서있었다. 둘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과 불편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하필 경호원은 피에트로의 손에 들린 초소형 카메라를 보고 말았다. 경호원의 표정이 순간 순식간에 험악한 인상으로 굳어져버렸다.
“아, 이, 이건...”
“아하하하하...”
“잠시 동행하시ㅈ...”
- 퍽!!!!
- 콰직!!!!
“으윽?!...”
하지만 경호원이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피에트로는 경호원의 낭심을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찼다. 뭔가 깨지는 것 같은, 둔탁하면서도 불쾌한 소리가 나긴 했다만 피에트로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사타구니를 걷어차여 다리 사이를 부여잡고 픽-! 하고 쓰러져버린 경호원을 향해 피에트로는 메롱-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대로 화장실을 나왔다.
“실례~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 없거든??”
그렇게 유유히 술집을 나오고 나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토모였다.
“모리아티!”
“토모!”
“셜록이랑 왓슨은??”
“응, 저기서 기다리고 있...”
“... 어?”
피에트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토모는 피에트로와 합류 후 차가 세워진 골목으로 향하려던 찰나, 유빈이가 온 몸에 문신이 잔뜩 새겨져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깐 우리 보스 말이야. 오리진 혈청을 맞고는 엄청 젊어졌다니깐? 당신처럼.”
“그렇구만.”
“그럼 오야붕 되시는 분이 오리진더스트 강화인간이라는 거군.”
“맞아, 당신처럼.”
“아니지, 당신 보다야는 못할려나?”
“당신은 슈퍼솔져 출신이라고 했지?.”
“암, 그렇지. 그렇고 말고.”
“그래도 군인 말고 강화인간 민간인들 사이에선 엄청난 건 사실이야. 내가 봤을 떄도 그 정도면 앵간한 바이오로이드 인간이랑 별반 다를 게 없다니깐?”
피에트로와 토모가 온 줄도 모르고 불량스러워 보이는 여자와 대화를 하는 유빈이를, 보다 못한 토모가 다가가서 큰 소리로 불렀다.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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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좀 더 토모랑 유빈이의 사이를 애틋하게 묘사를 해봤습니다.
과연 토모랑 유빈이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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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2.10 13:5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