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왜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냐?”
“나 장롱 면허인거 알잖아, 왓슨.”
“까고 있네, 진짜...”
몇 년식인지 모를 낡아빠진 토요타 프리우스 차량을 몰고서, 셜록 키무라와 유빈과 피에트로는 토모의 안내를 받아 미나토구 서쪽에 위치한 부촌에 도착하였다. 도쿄의 이름있는 부촌 중 하나인 롯폰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연합군 최고사령부 점령하 미군이 주둔했었던 지역으로, 그에 따라 다양한 유흥업소들이 발생하였고, 미군이 철수한 후 지금과 같은 번화가가 되었다.
다 낡아서 이제는 폐차를 해야할 것 같아보이는 차를 보여주며, 나는 장롱 면허이니 대신 운전해주지 않겠느냐는 셜록 키무라의 물음에 유빈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어느새 운전대를 잡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도고속도로를 타고 퇴근길 러시아워를 뚫고 나서 롯폰기에 겨우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해가 저물어있었다. 거리에는 퇴근길에 롯폰기의 시내로 한 잔 하러 나온 넥타이 부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롯폰기 시내로 진입하여 키리시마 총리가 간다던 술집을 향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와중에, 조수석에 앉아서 길을 안내해주고 있던 토모가 유빈이에게 물었다.
“왓슨은 롯폰기 처음 와봐?”
“응, 처음 와봐.”
“난 가끔 셜록이랑 같이 오는데.”
“여기 회전 초밥집이 하나 있어. 한 접시에 100엔도 안 하는데, 싸고 맛있어!”
“그렇구만.”
“왓슨도 다음에 꼭 같이 오자?”
“헤헷.”
“...”
과연 다음이라는 시간이 존재할까.
아무리 실제와 똑같이 시간이 흘러가고, 온 몸으로 실제와 똑같은 온기와 촉감을 느낀다고 할 지언즉, 이 곳은 분명 가상현실이었다. 눈 앞에 있는 토모도, 지금 등 뒤에서 세상 편하게 등받이에 기대어 자고 있는 셜록 키무라도, 역사적으론 실존 인물이라고 할 지언즉 결국 게임 속 가상 인물이었다. 유빈이는 게임을 클리어 하면 자동으로 로그아웃 되어서 나가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도 결국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쪼가리가 되어서 사라지겠지.
가상현실 속 토모는 유달리 유빈이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에 코를 심하게 골면서 자고 있는 모습 마저 귀엽다고 했었을 땐 이게 대체 무슨 취향이란 말인가 하며 기겁을 하며 거리를 두려고 했었지만, 지금은 키리시마 – 은하수 사건의 단서들을 찾기 위해 같이 돌아다닌 덕분인지 오만 정이란 정은 다 든 기분이 들었다.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진짜 셜록의 조수 왓슨마냥 토모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데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토모가 다음에 꼭 같이 초밥 먹자는 말이, 유빈이에게는 마냥 씁쓸할 수 밖에 없었다.
약속할 수 없는 약속을 청하는 토모를 아련하게 보고 있자니, 토모가 갑자기 놀리듯 말했다.
“아, 왓슨 이상한 얼굴~”
“음? 누가 이상한 얼굴을 해?”
“지금 또 이상한 얼굴 하고 있잖아.”
“아, 아니야. 난 이상한 표정 지은 적 없어.”
“헤에~ 거짓말.”
“...”
...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어느새 토모가 알려준 술집 근처까지 도착하였다. 네 사람은 차를 근처 골목에 세워두고 차에서 내린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때 토모가 눈 앞에 보이는 커다란 빌딩 하나를 가리켰다.
“저 건물이야.”
“이야... 정말 으리으리하구만.”
“그런데 셜록, 저 안에는 어떻게 들어가? 사치코는 학생은 못 들어간다고 했는데.”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지. 꼭 전부가 다 들어갈 필요는 없으니깐.”
“... 그래, 왓슨이 잠입하자.”
“이젠 뭐만 하면 무조건 내가 희생양이로구만.”
“그래, 어떻게 들어가면 될까?”
“혹시 암벽등반 잘 해?”
“잘 하게 생겼니?”
“그러면... 문지기를 매수...”
“어이, 돈이 없으면 이 바닥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썩 꺼지라곰마!!!!”
“으아아아아악~!!!!”
“...”
“...”
“아하하핫~ 저길 봐, 험상궂은 아저씨가 누굴 집어던졌어!”
“엄청 멀리 날아가는 걸??”
술집 입구를 지키는 바운서의 손에 의해 던져진 취객의 모습을 보며, 셜록 키무라와 유빈, 피에트로는 입을 다물었다. 토모만이 그 모습이 재밌는 냥 웃을 뿐이었다.
저렇게 된 이상 마땅히 들어갈 방법이 없어보이지만...
“아니, 애초에 꼭 몰래 들어가야 해?”
“무슨 소리야?”
“그냥 손님인 척 당당하게 입구로 들어가면 되잖아.”
“...”
“... 아~!”
“뭔, 아~ 야, 아는...”
피에트로는 어이가 없는 지 도끼눈을 뜬 채로 셋을 쳐다봤다. 하기사 결국 술집일 뿐인데, 미성년자만 아니면 됐지 손님이 술집에 들어가지 말란 법은 없잖는가. 물론 실제 나이로 치면 유빈이와 피에트로도 미성년자였지만, 가상현실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피에트로의 둘 째 형인 에드가는 담배까지 피는 판국에.
“모리아티, 똑똑해!”
“하지만 그래도 그냥은 못 들어갈 거 같은데, 그냥 술집도 아니고 다름 드레스 코드가 정해진 술 집 같아 보인단 말이지.”
“그렇단 말이지...”
“정장이라도 입으면 되나?”
“맘 같아선 내 껄 빌려주고 싶지만, 니 몸뚱이를 봐라.”
“내가 예전부터 말했지? 니 키에 딱 10cm만 떼어서 나한테 좀 달라고.”
“그게 되었으면 진즉에 그렇게 했겠다.”
“어떻하냐? 이온몰(일본의 대형마트. 이마트 같은 곳)이라도 가서 기성복이라도 사야하나?”
“... 음?”
“어, 잠깐만 기다려봐.”
아무래도 술집이 드레스코드가 있는 모양인지라, 들어갈 땐 들어가더라도 옷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하던 찰나, 피에트로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더니 이내 유빈이에게 잠시 이리로 와보라는 듯 손짓을 하였다.
피에트로의 손짓에 셜록과 토모만 두고 차를 세워둔 골목길로 다시 들어가, 피에트로가 말하였다.
“왜?”
“닥터 누나가 문자 보냈네. 트렁크에 정장 보내놨다고, 그거 꺼내 입으라는데?”
“이야, 역시 닥터 누나야. 가상현실이 이래서 편해.”
그렇게 닥터가 보낸 문자대로 트렁크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잘 다려진 정장이...
... 아니, 유빈이의 해군 동정복이 들어가있었다.
“...”
“...”
“...”
“...”
“... 이게 왜 여기 있어?”
“몰라, 보낸게 이거라는데...?”
“뭐, 아무리 가상현실이라고 해도 그렇지, 막 나가자는 건가, 이쯤되면?”
“우리도 저 쪽에서 엄마랑 이모들이 충전해주는 돈으로 사고 막 그랬으면 할 말은 없지 않냐.”
“그렇긴 한데...”
유빈이는 닥터 누나가 보내주었다던 정장을 보고는 어이가 없어서 정장과 피에트로를 번갈아가면서 훑어보다가, 이내 그 정장, 아니 정복을 꺼내어 입었다.
제 몸에 아주 딱 맞는 옷이었다. 당연했다. 애초에 유빈이의 옷이었으니깐.
대위 계급을 나타내는 수장 계급장에 왼쪽 가슴팍에 세 줄 짜리 약장과 왼쪽 어깨부터 가슴팍을 한 바퀴 두르는 식서(견식줄)가 달린 해군용 동정복에 정모까지 쓰고 나오니, 셜록 키무라와 토모가 놀란 듯 쳐다봤다.
“허어... 이거면 되려나?”
“와, 왓슨, 그런 옷은 또 언제 챙겨온거야?”
“모리아티가 출발하기 전에 혹시 몰라서 챙겼더라고.”
“히힛.”
“웃지마, 칭찬 아니니깐.”
“왓슨! 너무 멋있다!!”
“아, 그...”
“고, 고마워.”
언제 또 현역 시절 제복을 챙겨왔느냐며 당황스러워 하는 셜록 키무라와 달리, 토모는 멋있다며 연신 감탄을 해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토모가 멋있다 말해주니, 묘하게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차라리 잘 됐다. 아무리 바운서까지 둔 술집이라고 해도, 외국에서 온 제복 입은 손님까지 하대하지는 않겠지. 오르카 인류 저항군의 제복 자체가 멸망 전 미 해군의 것과 동일하게 만들었다고 하니, 아마도 주일미군 소속 장교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때마침 도쿄의 이웃 도시인 요코스카에는 미 해군 제7함대 기지가 있기도 했기에 술집에 들어갈 명분 자체는 충분했다.
하여튼 닥터 누나가 보내준 장교용 해군 정복 덕분에 술집에 들어갈 만반의 준비를 끝낸 유빈이에게, 셜록 키무라는 녹음 기능이 달린 초소형 카메라를 유빈이의 정복 약장 사이에 안 보이게 잘 달아주었다.
“장식물이 이렇게 있으니 오히려 잘 됐네. 이러면 누가 봐도 그냥 주일미군 소속 해군 장교라고 생각하겠어. 거기다 자네는 키도 크니, 뭐라고 의심할 사람도 없을 거야.”
“안에서 좋은 장면 좀 찍어오라고. 우리는 그 동안 CCTV를 해킹하고 있을 테니깐.”
“그래, 잘 다녀오마.”
유빈이는 대충 그렇게 능청스럽게 대꾸하곤 술집 입구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아까 취객을 저 멀리 길바닥으로 내동댕이 치듯 던져버리던 바운서는, 해군 장교용 정복을 입고 나타난 유빈이를 보며 깍듯이 대하며 술집 안 쪽으로 안내하였다. 주일미군이 어지간히 많이 오는 동네긴 한 모양이었다. 술집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오니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수 많은 남자, 여자들이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술집에 들어온 유빈이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키리시마 총리가 어디에 있는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키리시마 총리 뿐만 아니라, 셜록 키무라가 건네준 사진 속 인물들도 찾아봤지만, 어째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하기사, 일반 중의원 따리도 아니고 엄연히 한 나라의 정부수반 씩이나 되는 사람일텐데, 이런 술집에서 그냥 다른 손님들 마냥 앉아서 술을 마신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기도 했다.
그렇다는 건...
“이 술집엔 VIP 룸 같은게 있나보네.”
대충 그렇게 짐작할 수 있겠다.
마냥 흔한 술집은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데, 잘 보면 유빈이 자신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덩치가 있는 바운서가 서너 명 정도 코너마다 위치해있었다. 분명 정상적인 술집은 아닐 것이다.
계속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만 있으면 저들의 눈에 금방 띄어질 것이라 생각한 유빈은, 매캐한 ·담배 연기를 뚫고 카운터로 다가가 정모를 벗으며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능청스럽게 술을 주문하였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술을 주문하는 게 제법 능숙했다.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카운터 앞 1인 좌석에서 보드카 마티니 한 잔 시켜 마시며 여유롭게 주변 상황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고, 당연히 키리시마 또한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시라유리의 정보가 잘못된 것인가 생각하는 순간...
“음?”
순간 익숙한 얼굴이 스쳐지나간 것 같았다. 혹여나 다른 사람들이 수상쩍게 눈치채지는 않을까, 눈을 가늘게 옆으로 뜨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해보니, 분명 셜록 키무라가 알려줬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맞았다. 눈길을 더 줄 필요도 없이, 그 이후로도 사진 속 사람 몇몇이 바운서의 안내를 받고 술집 안 쪽에 위치한 계단을 따라 윗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기다가 유빈이의 눈에 들어온 사람 중에는 시라유리가 알려줬던 정보 속 한 사람인,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 소속의 국방무관도 있었다. 오르카 인류 저항군의 해군 정복이 미 해군의 것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육군 정복은 작은 아버지 민하준이 있었던 대한민국 육군의 것을 사용했기에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어깨의 별 두 개와 스쳐지나가듯 본 왼쪽 가슴 주머니의 태극기까지, 확실했다.
저 사람도 은하수 소속인가?
“여기 화장실은 어디죠?”
“여자 화장실은 1층 복도 끝...”
“아뇨, 남잡니다.”
“아, 죄송합니다...”
“2층 계단으로 올라가시면 바로 있습니다.”
럭키. 운이 좋다.
술집 안이 아무래도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사람들 술 마시면서 대화하는 소리가 있다보니 여직원은 유빈이를 여자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럴 만 했다. 오르카에서도 얼굴부터 머리까지 유달리 엄마를 닮았기로 유명했으니. 그럭저럭 아빠 얼굴 엄마 얼굴 반반 닮은 막내 우랑은 다르게, 유빈이는 그냥 머리만 똑 떼면 엄마 그 자체였다. 하여튼 자리에서 일어난 유빈이는 목표를 쫓아 2층 계단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남자화장실 문의 앞으로 긴 복도가 이어졌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술집인 모양인데, 1층과 차이점이라면 룸처럼 되어있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복도 양 옆으로 숫자가 적힌 방들이 나라비로 줄지어져 있었다. 다행이 놓치지 않고 1층에서 봤던 주일한국대사관 소속의 국방무관의 뒷모습이 포착되어졌다. 기척을 들키지 않게 조용히 바짝 쫓아가니, 그는 4번이라고 적힌 룸으로 들어갔다.
그를 따라서 4번이라고 적힌 방을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손님, 이 앞부터는 VIP 룸이라 사전에 예약이 되지 않으신 분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난 또 제가 모셨던 상관인 줄 알았지.”
“이거 술김에 착각했나 보군요. 일들 보세요.”
맘 같아선 그냥 경호원을 제치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괜한 소란이 일어난다면 피차 피곤해질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유빈이는 돌아서 화장실로 들어간 뒤,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 셜록 키무라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였다.
“셜록, 너가 준 사진이랑 학교에서 얻은 정보에서 나온 사람들을 봤어. 한국군 장성까지 있는 거 보면 확실해.”
- “주일한국대사관 소속의 국방무관이구만!”
“다만 VIP 룸이라서 따라 들어가려다가 중간에 제지당했어. 이거, 아무래도 몰래 들어가던가 아니면 CCTV로 돌려봐야 할 거 같은데, 어떻게 되었어?”
- “아직이야. 이거 술집 자체가 고급 술집이다보니 CCTV 프로그램도 좋은 걸 쓰나봐. 도통 쉽게 뚫리지가 않네.”
- “게다가 설령 뚫는다고 해도, 방금 너 말대로 VIP 룸이라면 CCTV가 아예 없을 지도 몰라. 원래 그런 곳은 사람들이 몰래 밀담을 주고받는 곳이니, 술집에서 자체적으로 CCTV를 일부러 설치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아, 그건 또 그렇겠네.”
“이야, 이거 어쩐다...”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레이스 누나나 팬텀 누나라도 좀 들여보내달라고 할 걸.
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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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늘 말하지만 전 그 어떠한 정치적 색채를 띄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블아에서 나오는 색채가 뭔지도 잘 몰라요...
일본도 슬슬 터지겠군용...
여담이지만 민하준과 윤도철은 같은 지역 출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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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2.09 14: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