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각했어, 어차피 토모 때문에라도 서너 번은 더 설명했었어야 했으니깐.”
“이번엔 제대로 들을게! 히힛!”
“그래, 이번에 우리가 조사하고 있는 건 붉은 아레나 불법도박 살인사건이야.”
“붉은 아레나...?”
“아, 이것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줘야 하나...?”
셜록 키무라는 유빈이, 그러니깐 왓슨의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노트북 화면을 켜서 유빈이에게 보여주었다. 셜록 키무라가 보여준 화면 영상은 조금 산만스럽게 흔들리더니 관중들 사이로 인간 여성 두 명이 노출이 많은 판타지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아머를 입고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고 결투를 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유빈이는 단순히 그것이 오락을 위한 쇼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휘두른 칼에 옆구리를 찔리자 적잖게 피를 흘리며 고통에 찬 단말마의 비명과 신음을 내었고, 그 모습에 관중들은 크게 열광하였다. 칼과 창을 휘두를수록 경기장은 점점 핏빛으로 물들어갔으며, 경기는 어느새 막바지에 다다랐는지 여기 저기서 어서 빨리 끝을 내라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두 여성 모두 많이 지쳐보이는 가운데, 한 명이 온 힘을 다해서 창을 높이 치켜들어올렸고, 그대로 상대방의 머리를 향해 깊게 찔러넣었다.
창에 찔린 여인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대로 입에서부터 뒤통수까지 굵고 긴 창에 뚫려버리고 말았다.
- 푸욱!!!!
“으윽!...”
유빈이는 그 모습에 순간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셜록 키무라도 왓슨의 그 모습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창에 찔린 여인이 쓰러지고 나서야, 관중석에 있던 사람들이 마치 아드레날린이 폭주하듯 미친 듯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가지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유빈이는 도대체 여기는 뭐하는 곳이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유빈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이 지하 경기장에서 콜로세움 경기를 치르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유빈이에게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프레스터 요안나. 오르카의 부통령이자 동생 라인하르트의 셋 째 유모.
다만 저기 나오는 요안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요안나 이모랑은 다른 사람일 것이다. 요안나 유모는 분명 이 시기에 미국에서 하원의원을 하고 있었었을 테니깐.
유빈이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분명 이 시기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아직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던 시기였다. 분명히 키리시마 게이트는 분명 제1차 연합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벌어졌던 사건이었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할로윈 테마파크와도 같은 풍경을 제1차 연합전쟁이 벌어지기 전의 시대에 보게 되다니. 키리시마 총리라는 사람도 그렇고, 도대체 이 나라는 뭐 하는 나라인가?
“자네, 괜찮나? 갑자기 안색이 안 좋은데?”
“아니... 이해가 안 가서.”
“카사하네 구미의 일원이 살해당한 거?”
“아니, 그거 말고...”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 정도 사건이면 분명 경찰이나 검찰에서 진즉에 눈치채고 사건을 수사했을 텐데, 이 영상이 찍히도록 두 손 놓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고?”
“모두가 키리시마로부터 뒷 돈을 받았으니깐.”
“뒷 돈 안 받고 우직허니 수사를 하던 사람들은 진즉에 한직으로 좌천되거나, 심지어 의문사 당하거나 둘 중 하나였지.”
“이 마저도 언론에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어째서?”
“자민당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으니깐.”
“정확히는 키리시마 계파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키리시마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야, 왓슨.”
“그리고 제국주의자이기도 하지.”
“그 이전에 있었던 바이오로이드 실종 사건 있잖아...”
“... 그 사건에서 실종된 사람들이 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이야.”
“뭐...?!?!”
셜록 키무라의 말은 유빈이를 당혹케 만들기 충분했다.
사관생도 시절 사관학교 현대사 수업 시간 때 배웠던 키리시마 스캔들에서 바이오로이드 인간들이 갑자기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다, 라는 것 까지는 스쳐 지나가듯 배웠는데, 그 실종된 바이오로이드들이 이 붉은 아레나라는 비 윤리적인 오락을 위해 잔혹하게 희생되고 있었다니.
아니, 어쩌면 예상 가능한 범위였을지도 모른다. 실종된 바이오로이드 인간들. 경찰과 검찰을 향한 윗선의 외압.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키리시마 총리와 카사하네구미, 그리고 덴세츠 엔터테이먼트. 하토모리 총리가 사망한 직후 얼마 안가 키리시마가 내각총리대신으로 당선되고 나서 바이오로이드 인간 실종 사건이 급히 종결되었다고 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셜록 키무라의 말대로 키리시마는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동시에 제국주의자이기도 하였다.
키리시마는 자유진영 노선 국가들의 정부수반 중 거의 유일하게 반미성향을 띄고 있었고, 부라쿠민이나 아이누, 재일 한국인 같은 소수 민족에 대하여 배척하는 성향이 매우 강했다. 일례로 사관학교 현대사 수업 때 배운 키리시마에 관한 내용들 중 키리시마가 하토모리 총리를 향해 노골적으로 배척성향을 드러냈던 이유가 하토모리 총리가 부라쿠민 출신의 후손이기 때문이라고 배웠을 정도였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소수민족을 향한 배타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 과연 시험관에서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 인간을 인간으로 받아들일까? 어쩌면 이런 그의 성향 덕분에 덴세츠 엔터테인먼트가 일찍이 정부와 손을 잡고 제1차 연합전쟁 때 국가 단위로 기업군에 종속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일본국은 제1차 연합전쟁 때 유일하게 기업군 진영에서 싸운 나라였으니깐.
아무리 가상현실이라고는 하나 이 이후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이 나라도 참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 붉은 아레난지 콜로세움인지를 운영하는 건 누군데?”
“일단은 카사하네구미.”
“뭐, 정확히 말하자면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와 카사하네구미의 합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키리시마는 이 붉은 아레나랑은 관련이 없는 거야?”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키리시마가 덴세츠 엔터테인먼트랑 카사하네구미랑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상황에서, 키리시마가 법무성이랑 검사국에 실종된 바이오로이드들의 사건 수사를 종결하라고 지시한 이상 아예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적어도 존재 자체는 인지하고 있을거야.”
“그렇구만...”
“토모는 이런 잔인한 결투 싫어.”
“나도 그래. 바이오로이드고 나발이고 다 똑같은 인간인데, 태어난 방법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런 잔혹한 짓을 태연하게 자행하다니...”
“... 아니 잠깐만.”
“왜 그래, 왓슨?”
“셜록, 너도 기자잖아, 맞지?”
“그렇지?”
“아니 그 전에, 여기 영상 나오는 거 누가 찍었어?”
“나! 잘 찍었지?”
“키무라랑 같이 몰래 잠입해서 찍었어! 헤헷~”
유빈이의 물음에 토모가 손을 번쩍 들어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영상도 이렇게 찍어서 증거로 남겨놓았으면 너가 언론에 대서특필해서 충분히 공론화 시킬 수 있었던 문제 아니야?”
“왓슨,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아니... 넌 한 평생 군대에 있었으니깐 잘 모르려나...”
아무래도 여기 왓슨이란 양반은 전직 군인 출신인 모양이었다.
근데 일본은 법적으로 군대가 없는 나란데, 대체 어느 나라 군대를 말하는 거지?
“내가 할 수 있었으면 진즉에 그렇게 했겠지. 안 그래, 토모?”
“응! 셜록이라면 진즉에 신문 1면에 쓰고도 남았을 걸??”
“내가 아무리 정의감 불타오르는 기자라지만, 내 목숨 소중한 것 정도는 알고 있거든?”
“이대로 만약 1면에 올렸다간 쥐도 새도 없이 사라지는 건 바로 나라고.”
“그럼 뭐 어떻게 할 건데?”
“지금것 키리시마가 카사하네구미랑 덴세츠 엔터테인먼트랑 커넥션이 있다는 건 어디까지나 ‘정황’ 상 그렇다는 거야.”
“물리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어, 현재로선.”
“이 영상이 있잖아.”
“뭐, 적어도 카사하네구미가 이 붉은 아레나를 주관하고 있다 정도는 밝혀낼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뿐이야. 키리시마는 그 순간 카사하네구미로부터의 꼬리를 잘라내겠지. 그러면 아무것도 밝혀낼 수가 없게 되어버려.”
“이거... 생각한 거 이상으로 어려운 상황이네.”
“그러니깐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야지.”
셜록 키무라가 노트북 자판을 한 번 더 치더니, 이내 아레나의 영상에서 어떤 한 사람의 사진이 나왔다.
“이름은 야마자키 토오루. 키리시마 내각 총리 대신이랑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카사하네구미의 일원이지. 이 양반도 붉은 아레나를 운영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어.”
“그런데 지난 주에 붉은 아레나 경기장 복도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지.”
“가슴 양 쪽에 남은 두 개의 자상 때문에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은 거의 확실시 되었지만, 사망 추정 시간 전후로 2시간 동안은 그 곳에 아무도 출입한 흔적이 없었다고 하더군.”
“발견 당시, 피해자는 벽에 기댄 채 앉아있었고, 양쪽 폐를 한 방씩 찔려 폐와 흉강에 혈액이 가득차면서 기흉이 발생, 비명은커녕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어보고 그대로 질식사 했다고 보면 돼.”
“흉기에 의하 자상...”
“기흉으로 인한 공기 중 질식사라...”
“어쨋든 그 때문에 피를 엄청 토해냈는데, 범인이 손으로 피해자의 입을 막은 자국이 남아있었어.”
단 두 번의 자상으로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했다.
아버지를 따라 해군 장교로 임관 후 조종장교와 항해장교를 거치면서 중간에 BUD/S 훈련 및 해군 특전단에서 짧게나마 복무를 한 경험이 있던 유빈이에게는, 이러한 살인 방식이 얼마나 프로페셔널한 것인지 완벽하게 알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군생활 겨우 3~4년 일찍 해본 게 이리 도움이 될 줄이야.
“우발적 살인은 아니라는 거군.”
“적어도 분명 사람 여럿 손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게 분명해.”
“오, 역시 군인 출신이라서 그런가? 정확하네.”
“그리고 이어서 설명하자면, 피해자는 오른쪽에 상처가 먼저 생겼고, 반대쪽 상처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어.”
“그렇다면 범인은 왼손잡이라는 뜻인가?”
“정답이야.”
셜록 키무라는 왓슨을 보며, 이제야 자네의 추리 실력이 돌아온 거냐며 우스며 말하곤 이어서 설명을 해나갔다.
“붉은 아레나에도 CCTV가 있을까?”
“있지, 당연히. 자기네들이 납치한 사람들이 도망 못가게 감시할라면 적어도 빼곡하게 CCTV를 설치해놨을 거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피해자가 사망한 장소에는 CCTV가 없었다는 군.”
“어째서?”
“사람이 하도 많이 들락날락 거리는 곳이라서 그런지 설치를 안 해놨더라.”
“근데 잠깐만, 경찰도 이 사건을 알아??”
“응, 알지, 당연히.”
“아니 그러면...”
“지하 투기장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데려다가 그 사단을 벌이고 있는데 경찰이 사건 수사는 커녕 아무런 의심도 안 하고 있었다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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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그 어떠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도 카야쨩이랑 린쨩 좋아해옹 악의는 없어옹.
그리고 사실 서울의 봄 오마쥬긴 합니다만...
두 도시 이야기 챕터 자체는 그 전부터 꾸준히 구상해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당...
부디, 민포스를 기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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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유의 베타적인 환경이 더해졌죠 | 24.01.23 20: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