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하고 있는 도서관에는 주방 - 쿠킹 스튜디오가 딸려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도서관에 딸린 건 아니고, 도서관이 소속된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에서 관리하는 거긴 하지만요.
그래도 같은 회사인지라 관리부서에 미리 요청만 하면 다른 스케쥴하고 겹치지 않는 이상 어지간해서는 사용이 가능합니다.
요리학교나 고오급 레스토랑 주방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요리학원이나 교양요리교실 수준은 됩니다.
오늘 쿠킹 스튜디오에 침입한 이유는 깨찰빵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도서관에서 맡고 있는 문화 프로그램에서 현지 탐방을 가는 날이라 참여 회원들에게 나눠줄 간식으로 쓸 예정이지요.
다과비로 책정된 예산이 있기는 한데, 문제는 이 예산을 식당이나 카페에서 사용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마트에서 파는 공장빵을 간식으로 대접하기에는 식문화 특화 도서관에서 주는 간식이라기엔 좀 초라해 보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많은 돈도 아니라 1인당 5천원 한도.
제한된 예산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려면 인력을 갈아넣는게 정답입니다.
깨찰빵믹스 두 봉지가 든 한 상자가 4,750원인데 이게 5 상자.
달걀 10구짜리 한 줄에 4,850원. 우유 900ml 한팩에 1,980원.
재료비는 30,580원이 소요되었습니다.
한 봉지에 9개 만들 수 있으니 총 90개 분량. 개당 340원 꼴입니다.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
깨찰빵을 만들기로 결심한 또 다른 이유는 이게 만들기가 굉장히 쉬우면서도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참여 회원분들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다보니 브라우니나 파운드 케이크같은 달달한 것보다는 이렇게 고소한 빵이 더 좋을 것 같더군요.
게다가 반죽이 질척거리는 다른 빵이나 과자에 비하면, 우유 180그램 무게 재서 넣고 (180ml를 계량하는 것보다 편합니다), 달걀 두 개 깨서 넣고, 믹스 두봉지 털어넣고 스크레이퍼로 슥슥 긁듯이 섞다보면 어느 새 한 덩어리로 보기좋게 성형됩니다.
나중에는 찐득거리지도 않고 탄력있는 반죽 한 덩어리로 변하지요. 어찌나 잘 뭉치는지 믹싱볼에 반죽의 흔적도 남지 않을 정도입니다.
한 번에 다 손반죽하기엔 너무 많은 양이라 한 상자 분량씩 나눠서 반죽합니다.
마음같아서는 반죽기에 넣고 한 방에 돌려버리면 좋을텐데, 아쉽게도 쿠킹스튜디오에는 반죽기가 없네요.
깨찰빵 만들 때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부분은 분할 성형 단계입니다.
개당 40그램씩으로 무게 맞춰서 둥글게 모양을 잡고, 분무기로 물을 뿌린 후에 구워주면 됩니다.
일단 반죽을 대충 8등분 한 후에 각각의 조각에서 10그램 정도를 떼어내서 무게를 재는 게 가장 빠릅니다.
깨찰빵을 하도 자주 굽다보니 이젠 대충 손에 쥐면 몇 그램 정도 부족하구나, 또는 좀 많구나 싶은 게 감이 옵니다.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40~43그램 사이면 통과입니다.
그 이상으로 크기가 차이나면 나중에 굽고 나서 부풀어 올랐을 때 너무 들쭉날쭉할 뿐 아니라 타거나 설익을 위험도 있으니까요.
쿠킹 스튜디오에는 대형 상업용 오븐이 아니라 가정용 오븐만 일곱 대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집에서 구워온다면 30분씩 열 번, 최소한 다섯 시간은 구워야 했을테니 이정도만 되어도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하긴 하지만요.
그래도 요리학교 시절 사용했던 설비들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60리터도 한 방에 반죽하던 호바트 반죽기, 반죽을 올려놓으면 알아서 자동으로 예쁘게 나눠서 공 모양을 만들어주던 성형기, 깨찰빵 90개쯤은 한 번에 구워낼 수 있는 오븐까지.
빵집 설비가 있었다면 45분만에도 끝날 수 있었을텐데, 소형 오븐에 맞춰서 작업하다보니 두 시간을 넘겻습니다.
뭐, 지금은 조그만 빵을 굽는거라 크게 상관이 없긴 한데, 나중에 도서관 요리 프로그램 운영할 때는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네요.
덩치가 큰 요리는 아무래도 무리일 테니까요.
설명서에는 180도 오븐에서 30~40분 가량 구으라고 했는데, 오븐 성능이 달라서인지 너무 타는 느낌이라 그 뒤로는 27분만 구워냈습니다.
황금빛 도는 갈색이 먹음직스럽네요.
시험삼아 하나 맛을 보니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쫄깃하고, 고소한 맛과 참깨 향이 입 안에 확 퍼지는 것이 딱 기대했던 대로 구워졌습니다.
제빵 믹스 제품류 중에서도 굉장히 만족도가 높은 깨찰빵인지라 집에서도 엄청 자주 구워먹었더랬지요.
(이 포스팅은 금전이나 상품 등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제작되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대량생산이라 손에 익은 제품을 골랐는데 잘 만들어져서 다행입니다.
이렇게 만든 빵은 한 김 식혀줍니다. 빵이 식는 동안 새롭게 반죽을 섞고 무게 맞춰 분할합니다.
한쪽에는 반죽이 쌓이고, 다른 한쪽에는 구워진 빵들이 쌓입니다.
마지막 반죽이 오븐에 들어가면 포장지에 도서관 스티커를 붙이고 세 개씩 넣어서 끈을 묶어 완성합니다.
점점 쌓여가는 빵 봉지를 보면 왠지 흐뭇한 기분이 듭니다.
여기에 과자 좀 사서 나눠 담고 편의점에서 파는 음료수 하나 곁들이면 얼추 예산 내에서 간식 해결이 가능합니다.
이제 나중에 탐방 끝나고 간식 나눠주면서 "음식 문화 특화 도서관이 이렇게 좋습니다, 여러분!"하면서 홍보 할 일만 남았습니다.
ps. 길 위의 인문학 2차, "이야기 속 음식 이야기"의 참가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내 식탁 위의 책들"의 정은지 작가를 초청해서 여러 문학 작품 속의 음식 이야기를 알아봅니다. https://www.splib.or.kr/spalib/menu/11388/program/30014/eventDetail.do?currentPageNo=1&eventIdx=523756&educationTypeCd=&eventStatusCd=&eventTargetCd=&manageCd=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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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십니다 정부산하기관 예산 빡빡한건 모두 똑같군요 ㅠㅠ 깨찰빵 좋아하는데 믹스가 있는건 처음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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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빡빡한건 괜찮은데 식음업장 사용 불가가 좀 크지요 ㅠ_ㅠ 깨찰빵 믹스는 결과물 퀄리티가 꽤 괜찮습니다. 근데 사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지 어지간한 마트에선 안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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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요리하는 평범한 사서. 하지만 알고보니 전직 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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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품 상자 뒷면에도 치즈 넣어 굽는 응용 레시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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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왠지 촌스러운데 먹어보면 맛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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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십니다 정부산하기관 예산 빡빡한건 모두 똑같군요 ㅠㅠ 깨찰빵 좋아하는데 믹스가 있는건 처음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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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빡빡한건 괜찮은데 식음업장 사용 불가가 좀 크지요 ㅠ_ㅠ 깨찰빵 믹스는 결과물 퀄리티가 꽤 괜찮습니다. 근데 사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지 어지간한 마트에선 안보이더군요. | 22.06.28 17: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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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품 상자 뒷면에도 치즈 넣어 굽는 응용 레시피가 있습니다! | 22.06.28 17: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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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왠지 촌스러운데 먹어보면 맛있지요. | 22.06.28 17: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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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만든 사람이 특허 낼 타이밍을 놓쳤다던가요 ㅎㅎ 근데 레시피는 어차피 특허 등록이 안되는거라 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고... | 22.06.28 19: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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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농마트에서 시장 봤는데 평소에 못보던 거라 한 번 사봤습니다 ㅎㅎ | 22.06.29 09: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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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가 미술학원에서 만들어 온 거면 점토로 만든 햄버거도 맛있습니다! ...레알 맛있는 척 하지 않으면 삐지더라구요...ㅠ_ㅠ | 22.06.29 09:11 | |
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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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리우스
"변명은 죄악이라는 걸 모르나, 니트로 박사!"가 귀에 울려퍼집니다. ㅠ_ㅠ | 22.06.29 09: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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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바속쫀이죠 ㅎㅎ | 22.06.29 09:12 | |
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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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터는 생동까쓰
도서관에서 요리하는 평범한 사서. 하지만 알고보니 전직 CIA?! | 22.06.29 09: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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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노벨 제목이다!! 예산 안에서 만드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22.07.15 09: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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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회 강연 끝나면 체험활동으로 "내가 먹어보고 싶었던 책 속 음식" 시식회도 할 겁니다! 또다시 인력을 갈아넣는 거지요 ㅎㅎ | 22.06.29 09: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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