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서 있는 그 나무는 살구나무랍니다
오늘은 뭐 하나요 고운 하늘 아래에서 당신은 어느 하
늘로 서 있나요
나뭇잎은 다 피었습니다 무슨 꽃을 보나요
바람을 보고 해를 불러서 어디로 발길을 옮기나요
몇 가닥 머릿결이 이마로 내려와 해그늘을 만드네요
아이들 노는 소리가 먼 데서 들려옵니다
새가 어디로 날아가는지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하늘이
멀리 열려요
나는 그 하늘을 따라 그대에게 갔답니다
고요를 흔드는 바람같이 이쪽 나무에서 저쪽 나무 잎
새를 나는 건너서, 가요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든 햇살이 내 얼굴을 어
른거리면
나뭇가지들을 가져다가 제자리에 가만히 놓아주고 구
름이 지나간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냉정과 우아를 알지만, 말하자면 사실, 바람은 디딜 발
이 없어서 소리가 안 난답니다
비밀을 버린 당신 손에 한들한들 끈 가는 샌들이 들려
있네요
알고 있겠지만, 발뒤꿈치도 땅에 닿았습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나무는 살구나무랍니다
뭐, 꽃이 그리 중한가요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김용택, 문학과지성 시인선 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