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강진 1
젊은 담임선생님은 지도를 가리키며
중강진이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이라 했다
그곳이 세계의 끝인가요?
내 눈을 들여다보던 선생님은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나는 어느 추운 겨울날 중강진에 갈 거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필라멘트가 나간 전구 알에
구멍 난 양말을 씌우고 촘촘히 꿰매셨다
두켤레를 겹쳐 신으렴
학교 갈 때 춥지 않을 것이다
중강진도 갈 수 있나요?
어머니는 처녀 적 만주 봉천에서 살았다
하얀 솜옷에 무명버선 세켤레를 겹쳐 신고 거리에 나가
나무함지 속 삶은 옥수수를 팔았다고 한다
작은외삼촌이 중강진에서 벽돌공장 인부를 했구나
추운 땅이라 벽돌이 많이 팔렸단다
풍금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불렀지
어머니가 중강진을 알고 있다니
양말을 겹쳐 신으며 나는 눈이 커졌다
마적을 하던 큰외삼촌이 집에 돌아온 날
서탑 거리 조선 사람들 호개 두마리 잡았다고 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수수술 내음이 골목을 메웠다고 했다
호말을 탄 외삼촌과 털복숭이 동무들이 일렬횡대로
눈 덮인 벌판을 달리는 생각을 하는 동안 가슴이 뛰었다
그는 내가 모르는 세계의 끝을 가보았을 것이다
그가 밤마실 할 때 공식이 있었다 한다
회벽 집은 털지 않는 것
팔작지붕 집은 건드리지 않는 것
소작료 칠할 악덕 지주 곳간 열어 수수술 나누어 먹고
흥에 취해 진도아리랑 불렀다고 한다
눈보라 몰아치던 어떤 밤은
일본 헌병 주재소를 털었다고도 한다
자라면서 나는
중강진을 거쳐 만주 봉천에 가고 싶었다
허이허이! 말 달리며 세상의 끝까지 달리고 싶었다
그러려면 어머니가 알전구에 꿰매준 양말을
몇켤레나 더 신어야 할지 모른다
아홉살 적 내 꿈은 마적이 되는 것이었다
중강진과 만주 봉천을 나와바리 삼아
계통 없이 사는 인간의 운명을 털고
신나게 다음 지평선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창비시선 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