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재호(메가엔터프라이즈 마케팅부 과장)
30대 후반이 되어도 게임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내가 20대 초반, 길거리에서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던 그 암울한 시기, 구로동 공단 오거리 근처 한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흑백 모니터로 접했던 “페르시아의 왕자”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면, 그 부드러운 움직임과 화려한 칼싸움, 거울에서 튀어나왔던 왕자의 그림자와 싸우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면, 당연히 그러하다. 게임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벌써 10년이 넘게 게임을 해오면서(PC 게임만... 아케이드 게임으로 치면 25년이 넘었군...), 결국은 게이머에서 게임유통사의 입장에 서게 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보았던 게임에 대한 첫인상이 내 운명을 결정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간단히 추억해보면 처음 256칼라로 충격을 받았던 `원숭이섬의 비밀\', 처음 CD-rom의 위력을 알게해준 `레벨 어썰트\', `7번째 손님\', 처음 컴퓨터 업그레이드의 강한 욕구를 느꼈던 `윙커맨더3\', 온라인 게임의 진수를 알게 해준 `디아블로\'... 등이 기억에 남는데 아직도 이 게임들은 내 책장 한구석에 아마 있을 것이다. 가끔 컴퓨터를 켜면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그동안 PC 게임만 해오다가 작년 6월 드디어 PS2 유저가 되었고, 12월에는 Xbox도 사게 되었다. 그러고는 이젠 PC 게임보다 콘솔 게임을 훨씬 많이 하고 있다. 나도 이젠 겨우 멀티 유저가 된 셈인가?
이제 초등학교 입학하는 딸 아이를 둔 가장의 신분으로 게임을 하기엔 걸리적거리는 것도, 방해하는 것도 많긴 하지만 그나마 게임회사를 다니는 것으로 방패를 삼고 있어서 다행.... 안그랬으면 멀티 유저는 꿈도 못꾸었을꺼라고 생각된다.
다행히도 좋아하는 일을 이제와서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아직 내가 게임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다. 사실 나이가 들면 게임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편이다. 좋아하는 스포츠를 할 수도 있고, 술을 먹을 수도 있고, 뭐 어떤 사람들처럼 외도를 할 수도 있지만... 난 다행스럽게도 그것들보다는 게임을 백배 더 사랑한다.
몇 달간 기다리던 게임을 예약판매나 아니면 용산이나 국전에 나가 직접 구입하고는 패키지 여기저기를 살펴보면서 밀봉 봉지를 뜯으면서 혹시라도 상처가 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벗겨내고는(그런 점에서 Xbox의 밀봉테이프는 조금 패키지 훼손의 여지가 있어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매뉴얼을 조심스럽게 읽어보는 재미라니...(요즘은 게이머들이 최소한의 매뉴얼도 안읽어보는 것같아 심히 걱정스럽다... 쉽게 쉽게 뭘 얻을려고 웹 게시판에 사소한 질문들도 올리는 것을 보면... 패키지 사서 매뉴얼은 최소한 한 번이라도 읽어보는게 게임을 만든 회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더욱이 집에 와서 집사람과 아이가 잠든 틈을 타(이게 유부 게이머의 비애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 총각인 분들의 결혼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바란다.), PS2나 Xbox를 구동시키고 숨죽여 플레이하는 기분이란!!!
게임이 주는 매력은 참으로 여러 가지라는 것은 게이머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서 타인이 만든 가상 세계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등등... 이런 재미있는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이런 즐거운 게임을 즐기는데, 최근 몇 가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향이 있어 노장 게이머로서 한 소리 하자면, 먼저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는 것이다.
취미 생활로, 여가 생활로, 즐기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지 게임 가지고 싸우기 위해, 기종 싸움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PS22와 Xbox 유저 중 일부 친구들이 종종 그런 모습을 보이는데 자중했으면 한다. 또, 일부 복사 유저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항상 하는 말이지만, 즐겁게 즐기기 위해 하는 게임 때문에 머리아프고, 힘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항상 다른 게이머들이나 기종 유저들을 서로 존중하는 자세가 되었으면 더 좋을 것같고..
마지막으로 공자님의 말씀을 빌리면, 좋은 게임을 찾아서 재미있게 즐기면 이 아니 기쁠소냐...(好娛樂求樂樂, 不亦說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