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이 어둠 속에 잠겨있던 시절, 게이머들은 높은 언어장벽으로도 모자라 밀수품의 위험까지 높은 가격으로 부담해야 했다. 게임의 평균 가격이 7만원 이상이었고, 웬만한 갑부 게이머가 아니라면 게임을 즐기다가 되파는 것이 보통의 구매 형태였다. 대한민국의 게임계에서 비디오게임이 시민권을 획득한지도 2년이 다 되어간다. 그저 즐긴다는 사실에 감지덕지했던 시절에서 벗어나 <테일즈 오브 데스티니>, <헤일로>처럼 음성까지 완벽하게 한글화된 게임들도 등장했다. 소프트웨어의 가격도 밀수 시절보다 저렴한 5만원 내외이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용산 등지의 게임 전문점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철 지난 게임 타이틀에 대한 조직적인 중고거래가 그것이다. 타이틀의 소비자가에 따라서 다르지만, 발매된 지 5개월 이상 지난 타이틀은 대략 2.5만원에서 3.5만원 사이 그리고 비교적 최근 타이틀은 3.5만원에서 4만원 사이에 거래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게임 전문점의 이러한 행태를 두고 루리웹의 여러 게시판에서 종종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게이머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갈린다. 하나는 ‘시장 보호론’이다. 파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고거래가 지나치게 비대해져서는 곤란하다.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시장이 사라질 수 있으므로 사용자들부터라도 소매점을 통한 중고 거래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에 맞서는 논리가 ‘소비자 권리론’이다. 중고품 거래는 마땅히 소비자의 소관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활성화되고 있는 중고거래는 기대보다 높게 형성된 타이틀 가격 때문이기도 하기에 관련 업체들의 개선 노력 없이 소비자만 일방적인 희생을 바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모습은 중고의 병폐가 만연했던 수퍼패미콤 말기의 일본 시장과 닮은 꼴이다. 당시 중고 소프트웨어가 넘쳐났던 이유는 간단한데, 소매점의 입장에서 신작을 파는 것보다 중고를 파는 게 훨씬 짭짤했기 때문이다. 고가의 소프트웨어에도 불구하고 소매점이 얻는 실익이 크지 않았으므로, 사용자에게 매입한 소프트웨어에 마진을 붙여 되파는 편이 훨씬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중고가 남는 게 더 많아요.” 왜 중고거래를 하느냐는 물음에 용산의 한 상인이 명쾌하게 답해주었다.
이러한 중고 거래의 문제를 유저의 의식에만 호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장의 힘은 개개인의 의식보다 훨씬 강하기 마련이다. 소프트웨어 가격의 합리적인 조정과 유통구조의 혁신. 일본에서 닌텐도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소니의 유통 전략은 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태어나자마자 조로 증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시장에서도 이러한 보편적인 처방이 통할 수 있지 않을까?
< 허준석 anarinsk@hananet.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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