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코에서 제작한 RPG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게이머들에게 화제가 되었던 테일즈 시리즈도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은 시리즈물이 되어버렸고, 그간 발매되었던 타이틀의 수도 묵직하게 느껴질 정도로 쌓였습니다. 하나의 타이틀이 10여 년 동안 꾸준히 후속작을 낼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게이머들에게 어느 정도의 안정감 있는 타이틀로 다가온다는 의미가 될 것이며, 제작사 또한 의욕을 가지고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법한 대형 RPG 시리즈들에 비하면 그 중량감은 조금 모자랄지 모르겠지만 테일즈 시리즈는 꽤 안정적으로 시리즈를 이어오는 RPG 시리즈라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며, 다른 RPG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적지 않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시리즈입니다. 시리즈가 주욱 이어져 오면서 다른 기종으로 리메이크되거나 이식되기도 했으며, 이번 리뷰 타이틀인 PSP용 테일즈 오브 데스티니 2 역시 지난 2002년 PS2로 발매되었던 타이틀을 5년 만에 휴대용 기기인 PSP로 이식한 타이틀입니다(일본에서는 2007년 2월 15일에 발매되었으며 지난 3월 7일 한국에도 정식으로 발매).
전통적인 스크롤 연출의 타이틀 화면. |
테일즈 시리즈라면 역시 멋진 애니메이션 오프닝. |
인기 작가가 그린 캐릭터에 화려한 오프닝 애니메이션, 멋진 주제가 등 테일즈 시리즈를 만드는 요소는 다양하게 있습니다. 본편을 진행하면서 나오는 이벤트 외에 만담을 하는 듯한 스크린 챗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는 테일즈 시리즈만의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른 RPG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전투 시스템도 팬층 확보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데스티니 2에 사용된 전투 시스템은 리얼 타임 배틀 시스템을 베이스로 동료와의 전투 분담, 콤보 시스템을 발전시킨 트러스트 & 택티컬 시스템이 사용되었으며, 스피릿츠 게이지를 도입해서 명중률이나 회피력이 달라지도록 했습니다. PSP 버전 역시 기본 시스템과 스토리는 PS2 버전과 차이가 없으며, PS2 버전에서 발견되었던 자잘한 버그를 수정한 정도에서 그쳤습니다.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배틀 시스템은 테일즈 시리즈의 백미. |
앞서 언급했듯 데스티니 2는 오리지널 작품이 아니라 이식 작품이며, 이식작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에 쏠리게 마련입니다. 먼저 얼마나 원작을 잘 재현했느냐와 원작과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인데, PSP용 데스티니 2는 두 가지 모두 높은 점수를 줄만 합니다. 원작이 비록 2D 베이스 게임인데다 5년 전 게임이기 때문에 PSP로 이식하기에 무난하다면 무난한 케이스였지만 두 기종 사이의 성능차를 생각하면 조금은 부담스러운 이식작이라는 선입관이 작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원작 재현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았을 때 PS2 버전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비주얼적인 측면은 이식을 잘했습니다. 4:3 사이즈였던 원작과 달리 16:9 사이즈가 기본인 PSP 버전은 부득이하게 아래위 화면을 잘라내는 방법으로 화면 처리를 했기 때문에 PS2 버전을 플레이해본 유저에게는 좁아 보이긴 하지만 해상도 차이를 제외하면 원작의 모습을 빠진 부분 없이 잘 재현했으며, 원작에서 호평을 받았던 오프닝까지 그대로 옮겨놨기 때문에 거치형 기기의 게임을 휴대용 기기로 이식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래픽 품질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PSP용 데스티니 2의 화면. |
PS2용 데스티니 2의 화면. PSP용 데스티니 2는 아래위를 잘라서 16:9 화면을 만들었다. |
이전에 발매되었던 PSP용 테일즈 오브 이터니아의 경우는 원작이 PS1용이었기 때문에 전투 화면에서 캐릭터의 크기가 원래부터 작은데다 PSP로 이식하면서 캐릭터 그래픽을 조금 뿌옇게 처리한 감도 있었기 때문에 캐릭터가 큼지막하게 확대되는 데스티니 2 역시 전투 화면에서 캐릭터의 크기가 작아진다거나 표현 방식이 이상해지지 않을까 생각되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PS2 버전에 가까운 모습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에 PSP로 넘어오면서 비주얼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은 필요 없을 듯합니다.
마을 화면이나 기타 이벤트 장면에서의 도트 그래픽 역시 저해상도로 투박하게 그려진 것이 아니라 PS2 버전과 다를 바 없이 세밀한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폴리곤 연출이 들어간 월드맵 역시 이동을 한다거나 카메라 앵글을 바꾼다거나 할 때 무거운 느낌 없이 아주 가볍게 처리되기 때문에 이전에는 휴대용 게임이기 때문에 감수하고 그냥 넘어가야 했던 수많은 문제점들을 PSP용 데스티니 2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PSP용 데스티니 2(좌)와 이터니아(우)의 전투 화면. 캐릭터의 크기가 확연하게 차이난다. |
세밀하게 표현된 그래픽. |
월드맵도 무리 없이 뿌려준다. |
광속 로딩을 자랑하던 PS2 버전에 비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전투 로딩이 빠르기에 그간 PSP의 발목을 끈질길게 잡아오던 고질적인 로딩 문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다. 전투 횟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RPG 게임이니만큼 전투 로딩이 꽤 중요한 문제인데, 전투 돌입 연출이 나오고 바로 전투 화면이 나와서 체감 로딩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전투 종료 이후 다시 필드맵으로 돌아오는 시간 역시 굉장히 짧기 때문에 로딩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은 수준입니다.
로딩이 짧기 때문에 전투를 부담없이 할 수 있다. |
기동 로딩 외의 로딩은 거의 없다시피. |
PSP로 이식되면서 추가된 요소가 꽤 늘었는데, 먼저 전투시 비오의 컷인 연출을 새로 만들고 비오의 컷인 연출이 없던 일부 캐릭터들에게도 새롭게 컷인 연출을 넣었으며 캐릭터 디자이너인 이노마타 무츠미의 원화 일러스트나 SD 일러스트 등을 볼 수 있는 일러스트 책 아이템도 추가되었습니다(은근히 빵빵한 분량). 게다가 아쿠아 라비린스나 투기장에서는 1편의 캐릭터들이 게스트로 등장해서 플레이어와 대전을 하며, 1편의 캐릭터를 이기면 아이템이나 특별한 칭호를 얻을 수 있는 등 이식작이 아니라 완전판에 가까울 정도로 팬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PS2 버전에서 불편했다고 지적되던 일부 요소를 개선했으며, PS2용 컨트롤러와 PSP의 버튼수의 차이로 인해서 타겟팅이나 월드맵에서의 카메라 변경시 버튼이 조금씩 변경되었습니다.
새롭게 그려진 컷인 연출. |
아쿠아 라비린스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게스트. |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들일세. |
일러스트의 추가 역시 수집욕을 자극한다. |
테일즈 시리즈가 원래 애니메이션 오프닝이 워낙 강한 인상을 남긴 시리즈이기도 하고, 스크린 챗 등의 음성을 이용한 시스템이 인기를 모으기도 했기 때문에 휴대용 기기로 나오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용량 걱정이 없는 PSP로 시리즈가 몰리는 인상입니다. PSP 발매 초기 테일즈 오브 이터니아를 필두로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 풀보이스 에디션에 PSP용 오리지널 타이틀인 테일즈 오브 월드 -레이디언트 마이솔로지-까지 꽤 높은 수준으로 게임이 발매되었으며, 이번에 발매된 데스티니 2 역시 원작의 맛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이것저것 팬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듬뿍 담아서 유저 서비스를 제대로 해주는 타이틀이란 인상을 줍니다.
물론 아무리 추가 요소를 넣고 버그를 수정했어도 이식작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된 지 4년여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 음성까지 완벽하게 한글화를 했던 PS2 버전과는 달리 PSP용 데스티니 2는 일본어판 그대로에 공략집을 추가해서 출시를 했기 때문에 한글화의 여부가 중요한 RPG로서는 반쪽짜리 게임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동봉된 공략본이 꽤 충실하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데 무리는 없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을 듯합니다.
데스티니 2는 테일즈 시리즈 두 번째 타이틀이자 본격적으로 시리즈에 인기를 점화시켰던 데스티니의 정식 후속작입니다. 당시 PS2로는 최초로 발매되는 시리즈인데다 전작에서 활약했던 주인공의 아들이 등장하는 후소속이었기 때문에 큰 인기를 얻었던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연령이 낮은데다 스토리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여전히 큰 사랑을 받는 작품이며, PSP용 데스티니 2 역시 PSP로 이식하면서도 원작의 맛을 잘 살려낸, 잘 만든 이식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식이라기보다는 리메이크 버전에 가까운 PSP용 판타지아. |
오리지널 타이틀인 레이디언트 마이솔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