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진·여신전생 5 | 출시일 | 2021년 11월 11일 |
개발사 | 아틀라스 | 장르 | RPG |
기종 | 닌텐도 스위치 | 등급 | 15세 이용가 |
언어 | 자막 한국어화 | 작성자 | Graz'zy |
※ 스포일러 주의! 본편 줄거리와 등장인물, 주제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긴 기다림이었다. 아틀라스가 ‘진・여신전생 5’를 최초 공개한 건 지금으로부터 거의 5년 전, 2017년 1월이었다. 당시 아직 닌텐도 스위치가 나오기도 전이라 향후 일정 및 가격과 타이틀 라인업을 발표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우리 게임기 사면 이런저런 거 다 해볼 수 있어요~”하는 그런 홍보 차원이었다. 서드 파티로 ‘제노 블레이드 2’, ‘파이어 엠블렘 무쌍’, ‘옥토패스 트래블러’ 등이 공개되었고 1~2년 내에 모두 출시되었다. 단 한 작품만 제외하고. 그렇다. 스위치 신형이 나오네 마네 하는 이제야 정식 발매된 ‘진・여신전생 5’다.
‘여신전생(女神転生)’은 1986년작 소설을 원작으로 그 이듬해 시작된 유서 깊은 시리즈다. 워낙 외전이 많고 본가라고 내용이 다 이어지진 않지만, 대체로 신과 악마의 대립이 불러온 세기말을 배경으로 멸망과 창세라는 거대한 운명 앞에 놓인 일개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아울러 법의 신이 세운 질서(Law)를 따르거나 혼돈(Chaos)을 추종하거나, 둘 다 아닌 제3의 길로 중립(Neutral)을 표방하는 갈등 구도도 초창기부터 존재했다. 혹자는 이후 시리즈 전체가 1990년작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 2’의 메아리라 할 정도로 큰 골자는 비슷한 편이다.
1986년 출간된 니시타니 아야의 소설 '디지털 데빌 스토리'와 이듬해 발매된 게임 '여신전생'.
2000년대 중반부터는 본가 '진・여신전생'보다는 여신이문록으로 출발한 '페르소나'가 더 인기다.
수십 년간 컬트적인 인기를 끌며 오늘날 아틀라스를 있게 한 ‘여신전생’이지만 부침도 적잖았다. 아무래도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와 괴악한 난이도가 대중적인 취향은 아니었으니까. 대신 학원물 컨셉으로 트렌디한 감성을 추구한 외전 ‘페르소나 3’가 대박을 쳐 2000년대 중반 이후 시리즈의 주류로 올라섰다. 반면 본가 ‘진・여신전생’은 더는 만들지 않을 거란 풍문이 돌았고 실제로 3편에서 4편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나마도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결과물이었고 한국닌텐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정식 발매도 아쉬운 판매량에 그쳤지만 말이다.
‘진・여신전생 5’가 기획되고 출시되기까지 시리즈의 위상 변화는 본작을 이해할 중요한 단서다. 왜냐하면 ‘진・여신전생 5’가 재미있고 없고는 차치하고서, 게임 전반에 걸쳐서 최대한 안정적이고 대중친화적으로 다가서려 한 노력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그 기반으로 ‘페르소나 3’ 이전에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었던 ‘진・여신전생 3’가 선택되어 5편임에도 4편 색채는 거의 사라지고 마치 3편 직계처럼 느껴진다. AAA급 게임의 개발비가 매년 오르는 추세라, 컬트적인 시리즈라고 판매량조차 컬트적이어선 유지가 어렵기에 아틀라스도 고민이 컸을 듯하다.
'진・여신전생 5'는 여러모로 2003년작 '진・여신전생 3'를 닮았다. 직접적인 오마주도 아주 많다.
'페르소나'와 달리 상당히 컬트적인 영역에 머무는 시리즈인 만큼, 아틀라스의 고민도 컸으리라.
도쿄 수태로부터 18년 후, ‘진・여신전생 3’의 그림자
이야기는 이러하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고교생 주인공은 귀가 도중 사라진 친구를 찾다가 터널 붕괴에 휘말린다. 정신을 차린 소년이 마주한 풍경은 폐허로 가득한 사막 다아트(Da’at). 다름아닌 18년 전 수태되어 마계로 전락한 또 하나의 도쿄였다. 그곳에서 악마들에게 위협받던 찰나 어디선가 나타난 신조 마인 아오가미에게 구해지고, 마침내 둘은 금기의 존재라 불리는 합일신 나호비노(ナホビノ)로 합체한다. 그렇게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도쿄를 구하려는 조직과 함께 싸워가며 천사, 악마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
18년 전 벌어진 도쿄 수태, 그러나 주인공은 신의 권능으로 복원된 도시에서 여태껏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시리즈 팬이라면 잘 알다시피 도쿄 수태를 다룬 작품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진・여신전생 3’다. 당시에는 도쿄 수태로 세계가 멸망한 그 시점을 조명했다. ‘진・여신전생 3’가 나온 건 일본 기준으로 2003년 2월 20일. 즉 ‘진・여신전생 3’와 ‘진・여신전생 5’ 사이에 딱 18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서로 양립하기 힘든 설정이 적잖아 동일한 세계관으로 보긴 어렵겠으나 그만큼 3편의 오마주가 강하게 담겼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겠다.
창세를 위하여 도쿄를 통째로 파괴하고 마계로 전락시켰던 '진・여신전생 3' 충격적인 도입부.
18년 후 출시된 '진・여신전생 5'에선 작중 18년 전 도쿄 수태가 일어났다. 동일 세계관은 아니지만.
이외에도 반인반신 나호비노는 3편 주인공인 반인반마 인수라를 연상케 한다. 둘 다 별도의 무기나 악마 소환 프로그램을 쓰지 않고, 줄곧 파티의 중핵으로 활약한다는 점도 닮았다. 마침 지난해 ‘진・여신전생 3’가 HD 리마스터되기도 한 터라 나호비노로 인수라와 전투를 벌이면 왠지 모를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본작이 ‘진・여신전생 3’의 if 전개스러움(인수라가 다크 카오스 루트서 법의 신을 죽였다든지)을 고려할 때 실로 히든 보스로 적절하나, 세가와 아틀라스는 이걸 만 원짜리 DLC로 팔아버렸다. 옛날이었음 제대로 넣어줬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각종 설정과 실제 게임 플레이가 맞물리는 만큼 시스템 및 콘텐츠도 ‘진・여신전생 3’의 색채가 짙다. 특징적인 시스템 및 콘텐츠는 시리즈 대대로 계승되었지만, 이전에 존재했거나 4편을 통해 추가된 요소보다 3편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 사실 ‘진・여신전생 3’가 출시될 당시만해도 올드비 사이에서 “이건 ‘여신전생’이 아니야!”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던 걸 떠올리자면 격세지감이다. 다만 완전히 똑같진 않고 ‘진・여신전생 3’를 기반으로 전투, 육성, 진행 등이 전반적으로 쉬워지고 편의성도 개선됐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존보다 쉽다는 거지 여전히 어렵다.
전작의 주인공 반인반마 인수라와 새로운 주인공 반인반신 나호비노는 여로모로 닮았다.
주요 시스템 및 콘텐츠도 '진・여신전생 3'에 기반하고 있다. 물론 각종 편의성은 훨씬 개선되었다.
여전히 중독적인 악마 합체와 허물로 편리해진 육성
그러면 혹여 있을지 모를 입문자를 위해 기초부터 짚고 넘어가자. ‘여신전생’하면 떠오르는 건 식인·살해·저주가 횡행하는 세기말, 각양각색 악마와의 회화·소환·합체, 그리고 약점 찌르기로 풀어가는 고난도 전투 등이다. 본작의 설정과 서사에 대해선 후술하기로 하고 우선 나머지 둘을 보자. 악마는 더 말이 필요 없는 ‘진・여신전생’의 마스코트다. 게임에서 조우하는 대다수 악마는 잘 구슬리고 적당한 대가를 치러 아군으로 삼을 수 있다. 또한 사교의 세계(5편 이전까진 사교의 관)서 2체 이상의 악마를 제물로 삼아 더욱 강력한 악마를 소환하기도 한다.
필드에서 파티원을 조달하고 상황에 따라 교체하는 방식, 뭔가 떠오르는 게임이 없는가? 그렇다. 악마를 소재로 한 ‘포켓몬스터’라 생각하면 쉽다(물론 이쪽이 더 선배이고 진짜 ‘포켓몬스터’를 겨냥한 외전은 따로 있지만). 귀여운 포켓몬과 달리 악마는 사납고 음흉하고 탐욕스러워 협상이 진창에 빠지곤 한다. 대가를 다 치렀더니 뒤통수를 쳐 공격하거나 도주하기도 하고, 역으로 이쪽이 먼저 갈취할 목적으로 말을 걸기도 한다. 이런 회화 자체가 상당한 재미 요소로 본작에선 서로 연관된 악마가 조우했을 경우의 온갖 황당한 만담이 대거 추가됐다.
아휴~ 악마님이 지루하시다는데 제가 춤이라도 춰야죠! (기다려라, 합체 재료로 갈아버린다…)
5편 만에 등장한 히드라에게 형제 케르베로스가 반가움을 금치 못한다. 얼빠진 만담이 많은 편.
어찌저찌 포섭한 악마는 주인공처럼 경험치를 얻고 성장도 한다. 그래봐야 하위 악마는 스탯과 스킬이 영 볼품없어 중후반까지 끌고가긴 힘들다. 계속해서 합체를 통해 상위 악마로 바꿔주거나 그냥 손쉽게 후반부 필드서 배회하는 상위 악마를 꼬시자. 악마 합체 시 제물이 된 악마들의 스킬이 일부 전승되는데 ‘진・여신전생 3’은 이게 무작위라 뭇 게이머의 멘탈을 터트린 바 있다. 다행히 4편부터 고유기만 아니면 자유롭게 선택 전승하도록 바뀌어 스킬 코디가 굉장히 쾌적해졌다. 다만 본인 속성과 맞지 않는 스킬은 애써 배워봐야 성능이 반감된다.
여기에 악마의 허물이라는, 전작 데빌 소스가 떠오르는 성장 시스템도 매우 편리하다. 허물에는 그 악마의 정수가 담겨있어 굳이 합체하지 않고 스킬만 배우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니호비노는 스킬뿐 아니라 내성까지 그대로 옮겨와 인수라의 마가타마 교체보다 훨씬 범용성 좋게 육성할 수 있다. 상위 악마의 허물을 얻으려면 한정된 수량의 필드 보상을 노리거나 운 좋게 선물로 받아야 한다는 게 유일한 흠. 그럼에도 기존 시리즈서 주인공과 악마 육성에 골머리 썩으며 노가다로 허비한 시간을 되돌아보면 정말 많이 가벼워진 부분이다.
악마 합체와 전서 채우기는 여전히 최고의 재미 요소다. 출연 악마가 다소 적은 게 흠이지만.
새롭게 추가된 허물 덕분에 스킬 코디가 무척 쉬워졌다. 요령만 있으면 극딜 세팅도 가능하다.
긴장감 넘치는 보스전, 뇌지컬과 노가다로 넘어서라
다음으로 전투 시스템 역시 ‘진・여신전생 3’서 정립된 프레스 턴을 충실히 계승했다. 전통적으로 ‘여신전생’이 어려운 게임으로 통하긴 하지만 약점 찌르기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건 프레스 턴의 역할이 크다. 프레스(Press, 징발·임시변통)란 명칭처럼 적과 아군의 행동 횟수가 고정되지 않고, 속성 공격 및 대응에 따라 늘기도 줄기도 한다. 가령 상대의 약점을 찌르거나 크리티컬이 터졌다면 행동 횟수를 나타내는 아이콘에 불이 들어오며 행동 횟수가 +1 된다. 그저 내 턴이 늘어났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고 “반 턴만 소모했다(즉 반 턴이 남았다)”고도 한다.
단순히 약점 찌르기로 행동 횟수가 늘어날 뿐이라면 유용한 시스템이겠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민첩한 적이 공격을 회피해버리거나 해당 속성을 무효화할 경우 턴 아이콘 2개가 깎인다. 심지어 무효화를 넘어 반사나 흡수 내성을 지녔다면 창졸간 모든 턴이 날아간다. 즉 약점 찌르기와 크리티컬은 +턴, 회피·무효·반사·흡수는 -턴이다. 따라서 여느 RPG처럼 레벨만 믿고 별 계획 없이 싸움을 걸었다간 어? 어; 어! 거리다 적 턴만 계속 돌아가는 와중에 GAME OVER 문구를 보게 된다. 내성을 무시하는 만능 속성이나 관통 스킬도 없진 않지만 후반부에나 얻는다.
프레스 턴의 기본은 약점 찌르기와 크리티컬로 행동 횟수를 최대한 늘리는 것이다.
다만 아군이나 적이나 동등한 조건임을 잊지 말자. 약점이 찔리는 순간 파티 전멸로 이어진다.
즉 적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아예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 수준이다. 보스전만 그런 게 아니라 동레벨대 필드 악마에게도 자칫하면 전멸의 고배를 마시기 십상. 그나마 중하위 악마는 약점 속성이 많아 대충 찍어도 맞지만 보스전이라면 요행 따윈 바랄 수 없다. 다행히 상대 스킬과 내성을 낱낱이 보여주는 만리의 안경을 상점서 저렴하게 판매하니 적극 활용하자. 동일한 악마라면 다른 개체라도 스킬과 내성이 같으므로(게이머가 코디한 경우는 제외하고) 매번 볼 필요는 없다. 시리즈를 오랫동안 즐겨온 올드비라면 대충 다 외우고 있을 터이다.
다만 초심자라면 설령 만리의 안경을 끼더라도 보스전이 다소 힘겹기 마련이다. 속성 스킬이 적당히 분배된 파티로 그럭저럭 정리되는 필드 악마와 달리, 압도적인 보스를 넘어서려면 그에 최적화된 세팅이 필요하다. 아무리 강력한 보스라도 스킬과 내성은 고정이므로 반드시 돌파구가 존재한다. 이쪽은 허물로 스킬과 내성을 바꾸고 파티원도 교체할 수 있으니까. 아닌 말로 전격 스킬만 주구장창 때리는 보스라면 그에 맞춘 내성으로 둘둘 말아서 호구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후반부 연이은 보스전은 그야말로 세팅 → 클리어 → 세팅의 반복이다.
일견 가혹한 시스템 같지만, 상대의 스킬과 내성을 엿보는 아이템을 상점서 저렴하게 판매한다.
어차피 적의 스킬과 내성은 바뀌지 않으므로, 아예 바보로 만드는 파티 세팅도 가능하다.
이렇게 전투 자체보다 그에 앞선 전략 수립에 역점을 둔 시스템 덕분에 ‘진・여신전생 5’가 그저 어렵기만한 괴작이 아닌 것이다. 마치 ‘다크 소울’서 망자가 장비와 기적을 고르고 ‘몬스터 헌터’서 사냥꾼이 수렵 도구를 챙기듯 ‘진・여신전생 5’도 보스전을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여기선 피지컬이 아니라 뇌지컬 그리고 노가다가 요구될 뿐. 그렇다. 태생이 JRPG라 노가다가 좀 필요하다. 심볼 인카운터지만 꾸준한 전투로 레벨을 맞추지 않으면 스토리조차 따라가기 힘들다. 악마 합체도 제한이 걸리기 때문에 어쨌든 전력 향상의 기본은 레벨업이다.
결국 보스를 넘어서기 위한 전략 수립, 그걸 실행에 옮길 파티 세팅, 세팅을 완료할 만큼의 노가ㄷ…노력이 ‘진・여신전생 5’ 게임 플레이의 요체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다른 것, 가령 보스전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지루한 과정이 아니다. 제물이 될 악마를 찾고, 합체 돌리고, 전서 채우고, 스킬 코디하고, 보스에게 들이대고, 조이콘을 던지는 그 모든 과정이 모여야 비로소 특유의 중독성이 발휘된다. 여기에 지정된 장소에서만 저장이 허용되어 이따금씩 진행 과정을 날리거나 하는 요소가 더해져 우리가 아는 “어려운데 재미있는 게임”이 완성되는 것.
다음 구역에 진입할 때마다 레벨 허들이 올라간다. 처음에는 필드 악마조차 위협적일 정도.
최적의 세팅이고 뭐고 레벨 격차가 심하면 아무 것도 안된다. 노가다가 좀 필요하다.
오픈 필드로 재해석한 던전 RPG, 제발 3D 맵 좀…
여기까지가 ‘진・여신전생 3’를 기반으로 한 부분이라면 필드 구성은 본작에 들어 완전히 일신됐다. ‘여신전생’의 오랜 정체성 가운데 하나가 던전 RPG라는 것인데, 아무래도 대중적인 AAA급 게임으로 밀기에 부적합했는지 다소 평범한 오픈 필드로 선회했다. 흔히 말하는 심리스 오픈 월드까진 아니지만 각 구역이 굉장히 넓고 어느정도 비선형적 진행도 허용된다. 메인 스토리 외에 서브 퀘스트가 많이 늘어나 한번 지나온 구역이라도 용맥(기존 시리즈의 터미널)을 타고 자주 오가곤 한다. 딱히 좋은 그래픽은 못되어도 마계를 거니는 현장감이 썩 나쁘지 않다.
다만 아틀라스가 오픈 필드로 선회했다고 던전 RPG라는 정체성을 아예 버릴 마음은 없었던 모양이다. 본디 던전 RPG란 명칭 그대로 던전 탐사가 핵심인 장르다. ‘여신전생’식으로 표현하자면 필드서 이동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게임을 선사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각지고 연속된 타일 형태의 던전이 아니라 오픈 필드서 고통을 주려니 새로운 방법을 고심했으리라. 그 결과 3차원 공간에 고저차가 큰 지형지물을 다수 배치하고 경로를 복잡하게 꼬아 필드를 무슨 던전마냥 헤매게 만들었다. 고저차에 따른 낙하 위험이 커서 일종의 플랫포머로도 느껴진다.
마계로 떠난 소년은 돌연 자취를 감췄다. 컨테이션 무더기 사이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
겨우 올라왔다. 이제 다가가 챙기기만 하면… 으헛, 으아아~ 안돼~~ 아틀라스 &%#@!!
물론 플랫포머가 ‘슈퍼 마리오’로 대표되는 근본 중의 근본이라지만 솔직히 이제와 그리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다. 그래서 어떤 게임에 플랫포밍 요소를 넣을 땐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가령 FPS인데 사살당하는 것보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경우가 더 많다면 누가 좋아하겠나. ‘진・여신전생 5’도 줄곧 뇌지컬과 노가다를 요구하더니 갑자기 플랫포밍을 위한 피지컬까지 기르라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거기다 떨어진다고 깔끔하게 죽는 것도 아니라 목적지를 찾아 빙빙 도는 과정이 지루하고 짜증난다. 오픈 필드의 던전화는 실패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필드 설계가 어쨌든 고민과 기획의 결과라면 허접한 평면 맵은 의도한 바인지조차 모르겠다. 필자가 개발자는 아니니 감히 추론하기 어렵지만 일부러 열악한 맵을 제공하여 탐사 난이도를 높이는 레벨 디자인은 너무 비상식적이지 않나. 가뜩이나 꼬인 경로에 미망이란 숨겨진 요소도 쫙 뿌려 놓고 고저차를 알아보기 힘든 평면 맵이라니. 아무리 고난을 이겨냈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 시리즈라지만 이건 애써 길을 찾아도 별로 즐겁지도 않고. 차라리 그냥 아틀라스의 능력 부족으로 제대로 된 맵을 못 만들었다고 생각하려 한다.
낡은 건물 안까지 굳이 들어와 숨다니 너도 꽤 #&*%$구나? 전혀 안 괜찮다, 이 자식아.
3D 오픈 필드라면 그 맵도 3D를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걸 보라고 만든 건지.
자기 복제된 세계관, 얄팍하게 소모되는 등장인물들
끝으로 앞서 미뤄둔 설정과 서사에 대해서다. 상술했듯 ‘진・여신전생 5’ 게임 플레이의 요체는 고난도 전투와 그에 따르는 준비 작업의 순환 구조다. 그래서 스토리 감상이 주된 목적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몬스터 헌터’가 매번 비슷한 내용에 수렵 일변도라도 딱히 지적 받지 않는 것처럼, 혹은 ‘다크 소울’이 주변 상황을 거의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적게 말함으로써 더 많이 들려줄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시리즈가 RPG인 한, 그리고 이미 훌륭한 서사를 보여준 전작들이 존재하는 한 냉정히 평할 수밖에 없다. ‘진・여신전생 5’ 스토리는 잘 봐줘도 별로다.
일단 수십 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보장하는 RPG치고 서사의 비중 자체가 그리 크지 않다. 필자는 1회차에 약 70시간이 걸렸는데 이 가운데 스토리를 본 건 5시간이나 될까? 만약 모든 보스전을 칼같이 넘긴다면 엔딩까지 몇 시간이 필요할까. 서사에 할애한 비중이 작으니 당연히 상황 설명도 대충이고 여러 등장인물의 캐릭터 구축도 얄팍하기 짝이 없다. 질서, 혼돈, 중립을 표방하는 세 축 가운데 그나마 입장이 묘사라도 되는 건 다자이와 아브디엘 뿐이다. 아츠타는 여느 모범생 A보다 나을 게 없고 야쿠모의 과거는 여와가 구구절절 말로 설명해준다.
인상적인 등장 후 빠르게 공기화되는 야쿠모. 별로 안 궁금한 가족사를 여와가 들려준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게 이 친구의 급발진이란 점에서 얼마나 스토리가 별로인지 알 수 있다.
서사와 인물에 깊이가 없으면 분위기로라도 압도해야 한다. ‘여신전생’이 곧잘 해내는 방식 아니던가. 그러나 ‘진・여신전생 5’는 이조차 순한 맛이다. 18년 전 도쿄 수태가 벌어졌다지만 법의 신이 권능으로 대체품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도쿄 수호측의 목표는 18년 전 마계가 된 그곳이 아니라, 법의 신이 사라지며 함께 소멸할 대체품을 구하는 것이다. 이래서야 그냥 세계를 지키자는 소년 만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몇몇 NPC를 꽤 단호히 죽이지만 어차피 감정 이입할 새도 없었고. 자극적이고 세기말적인 요소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설정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게임 분량이 부족한 건 아니니 서사의 비중이야 방향성 차이일 수 있다. 수많은 글줄에 압도되어 ‘페르소나 5’를 중도 하차하는 게이머도 적잖으니까. 그렇더라도 자기 복제적 세계관, 묘사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 대다수 등장인물, 나호비노의 존재와 신들의 쟁탈전이란 흥미로운 소재를 날려버린 후반 급전개, 영양가 하나도 없는 서브 퀘스트 등은 스토리가 별로라는 아쉬움 외에 달리 평하기 어렵다. ‘진・여신전생 5’는 분명 재미있다. 지난 몇 주간 악마전서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하지만 본작의 캐릭터와 스토리는 채 일주일도 못되어 잊어버릴 듯하다.
언제부터 '여신전생'이 이렇게 따스한 작품이었나. 세기말적 분위기는 거의 느낄 수 없다.
'진・여신전생 5'가 가장 빛나는 순간. 곧장 흥미진진한 왕중왕전이 펼쳐질 줄 알았으나…
평범하게 잘 만든 게임이라 기쁘기도 실망스럽기도
정리해보자. ‘진・여신전생 5’를 둘러싼 시장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래서 아틀라스는 오랜만에 나오는 넘버링 타이틀에 과도한 실험을 하기보다 안정적인 노선을 택했다. 전체적인 게임성은 ‘진・여신전생 3’를 연상케 하고, 시리즈의 고유한 재미 요소는 유지하되 대중친화적으로 다가서려 한 노력이 느껴진다. 물론 새로운 요소도 추가되어, 본고서 중요하게 다루진 않았지만 일종의 필살기인 마가츠히 스킬과 방어가 가능하고 던전이 오픈 필드로 확장됐다. 반면 아무리 오마주라도 설정과 서사는 전작의 자가 복제 내지는 하위 호환에 그쳐 실망스럽다.
필자가 젠체한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리뷰를 할 때 혁신성을 따지는 편이다. 긴 기다림 끝에 출시된 ‘진・여신전생 5’가 평범하게 잘 만든 게임이라 기뻐할지, 평범하게 잘 만든 게임이라 실망할지는 저마다 기대치에 따른 문제겠다. 필자의 경우 기대가 너무 과했을지도. ‘진・여신전생 5’가 수작이라는데 동의하면서도 그 기준이 되는 작품이 18년 전 ‘진・여신전생 3’라는 게 묘하다. 대중성을 추구하다 특유의 엣지가 다소 마모되진 않았나 걱정스럽기도 하다. 결국 아틀라스는 컬트와 대중성을 모두 잡고자 애쓰다 절반의 창세를 이뤘다고, 졸필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소년의 IQ 150, 아오가미의 IQ 150. 더해서 총 300의 머리로 완벽한 엔딩을 선택해야 해.
'진・여신전생 5'는 수작임에 틀림 없지만, 시리즈의 미래상을 제시했다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작성 및 편집: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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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완전판으로 부족한 연출과 스토리를 보강해서 출시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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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디자인은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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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는 했지만, 맵때문에 별로엿음. 플레이타임의 80%이상은 맵 헤메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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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진5로 본가에 입문했는데 확실히 길찾기와 스토리는 최악이었습니다. 길찾기야 그냥그런가보다 했지만 저도 캐릭터의 급발진, 개연성 없고 이입하기 어려운 스토리 전개등이 정말 몰입을 방해하던군요. "진・여신전생 5’가 수작이라는데 동의하면서도 그 기준이 되는 작품이 18년 전 ‘진・여신전생 3’라는 게 묘하다." 이 말에 엄청 공감합니다. 수작이고 재밌는건 인정하지만.. 글쎄요.. 아무튼 오랜만에 60시간 정도 재밌게 즐긴 게임이였지만 다음작품(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에서는 좀 더 스토리나 캐릭터성을 강화해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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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이나 구멍점처럼 보이는것도 나름 탄탄하게 구성했는데 이 시벌 스토리에서 그걸 설명을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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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완전판으로 부족한 연출과 스토리를 보강해서 출시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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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신전생5 로얄 (풀프라이스) | 21.12.01 18: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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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진5로 본가에 입문했는데 확실히 길찾기와 스토리는 최악이었습니다. 길찾기야 그냥그런가보다 했지만 저도 캐릭터의 급발진, 개연성 없고 이입하기 어려운 스토리 전개등이 정말 몰입을 방해하던군요. "진・여신전생 5’가 수작이라는데 동의하면서도 그 기준이 되는 작품이 18년 전 ‘진・여신전생 3’라는 게 묘하다." 이 말에 엄청 공감합니다. 수작이고 재밌는건 인정하지만.. 글쎄요.. 아무튼 오랜만에 60시간 정도 재밌게 즐긴 게임이였지만 다음작품(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에서는 좀 더 스토리나 캐릭터성을 강화해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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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신4도 길찾기 짜증나면서 맵 이동 가시성이 최악이었는데... 왜그럴까요 진짜 ㅠㅠ | 21.12.02 02: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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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부터 입문했는데 거지같은 길찾기는 전통인듯 | 21.12.02 12: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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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클탐이 30시간 정도로 짧아서 어찌저찌 참고 햇지 되려 클탐 80시간짜리 이런 볼륨의 게임이엇으면 길찾기땜에 스트레스 받아서 떄려쳣을지도.... | 21.12.02 17: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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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하도 해매서 지금 플탐 80시간인데 지고천도 못들어갔어유 ㅋㅋㅋ | 21.12.16 22: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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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디자인은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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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는 했지만, 맵때문에 별로엿음. 플레이타임의 80%이상은 맵 헤메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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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이나 구멍점처럼 보이는것도 나름 탄탄하게 구성했는데 이 시벌 스토리에서 그걸 설명을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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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는 무인판도 스토리가 대단했는데 본작이 왜 이렇게 나왔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 21.12.02 22: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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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신전생 5 엔딩은 대충 이거면 끝 https://youtu.be/QgvHHUNRw_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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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합니다. 기믹이라도 있는 마왕성이 차라리 재밌었어요. 물론 3층 그 구간에서 패드 한번 집어던질뻔 하긴 했지만 그건 패치해준다고 하니까. | 21.12.03 08: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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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하든 플레이 하는 사람이 자신이 재미있으면 제일 좋죠 굳 | 21.12.03 14: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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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재밌어서 겜 두개삼. | 21.12.03 15: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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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 어렵다고 하길래 하고있는데 길 너무 싱겁네요. | 21.12.03 15: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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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찾기 짜증나서 차라리 모바일로 나온 진여신전생D2가 더 쾌적했음. 이건 피시판으로 포팅 안해주려나 그래픽 퀄리티랑 해상도 개선해서 | 22.03.21 20: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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