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길어지는 글입니다.
장편을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진행하면서 점점 길어지네요.
8월입니다. 곧 활협전이 업데이트 될텐데 기대반 걱정반입니다.
과연 괜찮을지, 또 실망을 주게될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월영전은 루리웹 활협전 게시판에서만 연재되고 있는 2차창작, 팬픽입니다. 본작의 스토리에서 따와 개인이 만든 것이니 본작과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있지 않습니다. 별개의 작품입니다. 월영전은 활협전이 아닙니다.
저는 활협전의 본 스토리를 존중합니다.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당포의와 모용비의 대련이 끝난 후, 다시 돌아온 팽소월과 대련순서를 정하기 위한 제비뽑기가 시작되었다. 매란국죽 사자매는 아직 나오지 않은 채, 다음을 이어가기 위한 그들만의 시간을 지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미 한번 치뤄진 당포의, 모용비를 제외한 시합이 될 것이었다.
두 번째 대련 무대의 주인공이 뽑혔다.
"...좋아. 나쁘지 않아."
용상이 뽑혔다.
그녀는 곧바로 당포의를 쳐다보았지만, 당포의는 기겁을 하며 용상의 눈빛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그러나 첫 번째 대회를 보고난 뒤에 무언가 굳게 결심한 것이 있었는지, 곧바로 지명하기 시작했다.
"본녀는 팽 소저와 대련하겠습니다."
꾸욱.
소월은 그녀의 지목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당문에서 힘으로 가장 강하다고 뽑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비전투원인 욱죽을 제외하고 용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튼튼해 보이는 몸과 강인해 보이는 의지. 그리고 수려함 속에 감춰진 불꽃같은 투기를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용상의 지목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신의 검이 얼마나 먹힐지가 궁금했다. 비로소 자신을 쏟아부을 생각에 감정적으로 흥분되고 있었다.
용상은 천상검과 자신이 애용하던 검을 내려놓고 욱죽이 밤새워 만든 목검 두 자루와 검집을 패용한 뒤 무대 위로 올라갔고, 소월도 봉용검(峰蓉劍)을 내려놓고 욱죽이 만든, 그것과 비슷한 무게와 크기, 짜임새로 만든 대검을 쥐었다.
' 과연... 굉장하군요. 단순히 목검에 불과할 줄 알았는데 손잡이를 쥐고 알았습니다. 나무를 열처리한 결과물이 이리 단단할 줄이야. 도대체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는 것 인지... 본녀는 도저히 가늠이 안되는 군요. 이 검, 잘 쓰겠습니다. '
한참을 감탄하다가 고개를 세워 용상의 모습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굳은 입 모양을 마주했을 때는 자신은 아직 하염없이 작고 보잘것없는 뱀처럼 느껴졌고, 용상은 그야말로 황금빛 여의주를 입에 문 창룡(蒼龍)과 같았다. 하지만 자신도 결코 그녀에게 만만치 않으리라, 팽가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검을 꽉 쥐고 무거운 한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둘이 마주했다.
"초출이라 봐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대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철저히 지켜보겠으니 부디 온 힘을 다하도록 부탁드립니다."
용상의 다짐을 받들은 소월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선배에게의 예를 보였다.
"본녀도 그것을 원합니다. 부디 힘을 빼시는 일은 없도록 부탁드립니다."
살짝 언행에 건방을 섞었으나, 그녀의 바램이 섞인 것이었기에 몸의 긴장을 전투력으로 승화시키기 좋은 대답이었다.
바람이 이른 아침보다 한결 따뜻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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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검과 검이 아닌, 목검과 목검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부딪히며 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시작부터 전력을 내려나 했지만 역시 탐색전이 우선이었다. 정면에서 덤빈다면 오히려 불리한 것은 용상이었다. 그것은 잠시 한 번 맞댄 목검의 둔탁한 소리가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부들부들.
용상의 팔이 단 일 합만으로 저릿저릿함을 느낄 정도였으니, 그 무게감이 나무가 아닌 쇳덩이를 후려쳤다는 느낌이 강했다. 용상은 고운 피부를 타고 흐르는 땀 한 줄기가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졌다.
' 혹시나 했는데 역시 완력으로는 저 여협을 이길 수가 없다. 잠시 스쳐 맞댄 것 뿐인데도 이리도 팔이 저리다니. '
소월도 용상의 대응에 여간 놀란 것이 아니었다.
' 정면은 분명히 피할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무기끼리 맞부딪혔다는 느낌조차 없이 내 검의 궤적을 교묘하게 흘렸어. 귀신이 왔다 간 것인가? '
둘의 생각이 끝나고 뒤를 돌아봤을 때의 둘은 보기 좋은 얼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두근거림이 멈출 줄을 몰랐고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 거대한 두 개의 바위의 울림이 주변을 완전히 잠식했다. 힘과 힘의 대결일 것인지, 귀신과 귀신의 대결일 것인지 손끝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따닥! 촥! 파악! 탁!
용상이 계속해서 그녀를 향해 흘려베기를 두어 번 하면, 소월이 큼지막한 한 손 베기를 아래에서 위로 들어올렸다. 한 손의 힘만으로 어마무시한 풍압이 대회장의 관람객석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였으니, 만일 진검이었다면 아찔한 상황이 펼쳐졌겠다. 모두가 그리 생각하니 자신들도 모르게 식은땀과 긴장 가득한 응어리진 침을 삼켜버리게 되었다.
용상이 틈을 발견하고 곧바로 뛰어들어갔다. 큰 검을 등에 지는 것쯤, 너무 간단해 보이는 움직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힘싸움을 할 만한 여유 따위 있을 리 없었다. 깊게 파고들어 소월의 움직임을 최대한 봉인하는 것, 그것을 어떻게든 노리려고 했다. 그러나, 소월에게 있어 간격 싸움은 의외로 익숙한 나머지, 한 손으로는 검을 등에 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용상이 들어오려는 간격 안에서 길게 뻗어 길을 완전히 차단했다. 용상은 소월의 대처에 한 번 더 놀랐다.
"한 손의 사용법이 익숙하다?? 오히려 깊게 들어가다간 내가 당할... 윽?!"
소월의 눈빛은 완전 정갈히 용상을 주시하고 있었다. 흐트러짐이 없었으니 불안함만 증폭되어 빠르게 다가질 못하고 속도를 늦추었다. 소월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곧바로 등에진 큰 검에 공력을 실어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월하검신공(月下劍神功). 광풍파(光風破)!"
용상은 갑자기 휘둘러오는 소월의 광풍파에 고개를 재빨리 숙여 가까스로 피하는데 성공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일합에 의해 시전자가 큰 빈틈이 만들어질 것 이었지만, 소월은 보통이 아니었다. 용상이 그녀의 공격이 끝이라 생각할 때 즈음, 다시 머리 속으로 계산하니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직감 할 수 있었다.
용상은 고개를 숙인 채로 자신의 왼쪽으로 무게를 실어 방향을 틀으니, 그녀가 있던 빈자리에는 곧 바로 엄청난 풍압과 함께 검이 떨어져 내려왔다.
쾅!!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갈라냈고, 그제야 소월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러나 용상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월의 검이 떨어져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드디어 기회를 포착한 듯 소월과의 거리를 멀리한 뒤, 왼손에 패용하던 검집을 그대로 직선의 궤도로 찔러 던졌다.
따악!!
날카롭게 뻗어 나가던 용상의 검집은 그대로 소월의 검에 막혀버렸지만 의외로 검집의 충격은 고스란히 소월에게 빨려들어가 뒷덜미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용상의 공격은 그대로 끝난 줄 착각했는지, 순간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버렸다. 그것도 잠시, 용상의 망설임없는 기세에 소월은 무엇이 자신을 덮치려는지 긴장이 풀린 채로 그것을 기다렸다. 소월의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마치 섬광과도 같았고, 엄청난 빠르기로 자신의 검에 막힌 검집을 향해 검을 찔러들어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겨우 알 수 있었다.
"용연칠절(龍燕七絶). 용퇴격살(蓉退激殺)!!"
콰창!!
용퇴격살은 검집을 상대에게 집어던져 맞추는 첫번째 섬격(閃擊), 그리고 검집이 도착함과 동시에 섬광과도 같은 빠르기로 검을 다시 검집에 찔러넣는 충격(衝擊)의 이단 격의 무공이었다. 그 타격이 어찌나 강고한지, 소월의 괴력조차 무색하게 순식간에 방어가 깨져 잡고있던 그 커다란 검이 얼굴 위를 지나 크게 젖혔다. 빈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린 것이다.
"크윽! 마, 말도 안돼...!!"
용상은 크게 벌어진 빈틈을 파고들고자 그대로 앞으로 원을 그리며 공중제비 한 뒤, 공중에서부터 크게 검을 내리쳤다.
"용섬뢰(龍閃雷)!!"
콰창!!
용상은 벼락과도 같은 기세로 검을 내리쳤지만, 소월은 그 짧은 사이에 가까스로 자세를 잡고, 떨어지는 용섬뢰를 두 손으로 검을 받쳐 막아냈다. 하지만 공중에서부터 떨어진 참격이라 무게가 실린 공격은 제아무리 소월이라 해도 바위가 떨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했다.
소월은 재빨리 자신의 검에 내려꽂힌 용상의 검을 있는 힘껏 뿌리치고 공중에 떠있는 그녀를 향해 크게 올려베었다. 용상은 소월의 뿌리침을 역으로 이용해 베어올린 검끝에 자신의 검을 찔러 맞부딪히게 한 뒤, 그대로 공중에서 굳어 기이한 모습을 연출했다.
둘의 표정은 냉정한 입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힘에서는 밀리지만, 그녀보다 더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기이한 모습이었기에 마치 정말로 검을 가지고 추는 춤을 연출해낸 것 같아 관객들의 입이 열린 모습이 대부분 이었다.
소월이 먼저 검을 움직여 정적을 베어냈고, 용상은 그대로 공중제비를 돌며 그대로 땅에 사뿐히 내려왔다. 흰 도복을 휘날리며 정갈히게 내려오는 모습은 마치 선녀강림(仙女降臨)과도 같았고,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딱 삼키는 자도 있었다.
' 워, 원래 용 소저가 저런 여성이었던가? 용연칠절의 강고하고 유려한 움직임은 둘째치고, 콩깍지가 이리 씌여서야, 원... 나도 남자이긴 했나보구나. '
시선을 느낀 것인지 용상은 '그쪽'을 바라보았고, 그저 좋지 않은 표정을 유지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그의 모습을 보니 괜히 자신을 지탱해오던 마음이 흐트러질까, 애써 무시하고 지금의 대련에 집중하고자 한 것이었다.
소월은 말없이 다시 검을 치켜들어 등에 지고 무언가 큰 것을 준비하는 듯, 호흡을 하며 공력을 모이기 시작했다. 용상도 무엇이 자신을 덮칠지를 생각하면서 자세를 다잡았고, 소월도 준비가 끝났는지 한 손으로 검을 쥔 채 그대로 경공을 펼쳐 달려들었다. 여전히 큰 검을 사용하기 위한 거대한 거합이었다.
휭!! 휭휭!! 휭휭휘이이잉!!!
무거운 검이 무거운 검압을 사방으로 퍼뜨리면서 주변 공기를 찢고, 그 관성을 이용해 계속해서 돌며 묵직한 연속 베기를 휘날렸다. 용상은 그런 그녀의 움직임을 확인하려 회전을 따라 눈을 굴렸고, 가벼운 몸놀림을 유지하며 소월의 무거운 베기를 천천히 곱씹었다. 한바퀴, 한바퀴를 연달아 검을 휘돌리며 다가오는데 사정거리 안에서 피하는 것 만을 염두하고 유지하니 다가오는 태풍이 무서운 줄 몰랐다.
' 점점 검에 속도가 붙는다. 무게를 이용해 저 넓은 범위를 멈추지도 않고 휘두르다니, 일반적인 여성이라면 금방 지쳐 무너질텐데 그런 모습은 일절 보이지 않고 기세만 나날이 날카로워 지는구나. 역시, 정면은 답이 없는 것인가? '
용상은 어떻게든 원을 계속해서 그리며 다가오는 소월의 모습이 마치 태풍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움에 기세가 눌려 치를 떨기 시작했다. 자신의 검을 그것에 맞댄다면 결코 무사치 못 하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렸을 때, 어느 덧 소월이 자신의 바로 앞에 다가왔음을 뒤늦게 마주했다. 용상은 서둘러 바닥을 박차 더욱 거리를 벌렸으나 그것은 결코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태풍의 눈 안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몰아치늣 바람은 그저 고요한 줄 알았으나, 스스로 그 영역을 벗어나 멀리서 관찰하려하니, 거대하고 치명적인 검날의 회전이 자신을 속수무책으로 덮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소월은 용상이 기세에 눌려 더욱 거리를 두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를 악물고 황금빛 안광을 드러내며 곤륜산의 바위와도 같은 거대한 참격을 위해 공중으로 뛰어올라 그녀를 향해 검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광풍굉암격(光風轟巖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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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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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콰콰콰쾅!! }}}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인정사정없이 내려쳐진 지면은 거대한 검풍과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그것이 얼마나 강렬한 무공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 여파로 관람객석에는 모래먼지가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가 눈도 못뜨고 기침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대기자들이 있던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대회장의 엄청난 소리에 안에 있던 하후란 조차도 위국을 살펴보는 것을 잠시 맡긴 뒤에 뛰어나올 정도였다. 하후란은 그것을 입을 열고 지켜보던 번소천을 불러 물었다.
"무, 무어냐? 무슨 일이 벌어진게냐??"
"괴, 굉장합니다. 팽가의 여협께서 만든 장관입니다. 제자마저 두근거릴 정도입니다, 스승님! 굉장합니다!"
하후란은 여태껏 그녀의 괴력을 딱 욱죽 정도로만 생각했었지만, 지금의 상황을 눈여겨 보고는 생각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욱죽은 괴력이 있음에도 봉인하여 사용하지 않는 의미의 몸이었다면, 소월은 그 괴력을 갈고닦아 차곡차곡 쌓아올린, 완성된 몸이었다. 욱죽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막상 갑자기 뛰어나온 하후란을 보고 놀란 번소천이 물었다.
"스승님, 안의 일은 괜찮은 것 입니까?"
하후란은 제자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다.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얼마 남지 않은 것은 그 아이들에게 맡겨도 좋을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구나. 소국이 많이 힘들어 보이지만 초기보다는 훨씬 낫다. 그러니 나는 남은 경기를 확인해야겠구나."
"네!"
그러고는 슬슬 모래먼지가 걷히기 시작했고,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소월의 거대한 참격에 용상은 어찌되었는지 걱정이 되면서도 앞으로가 기대되는 국면이었다.
"......"
"......"
참격의 모래바람 속에 가려졌던 대결의 양상은 이랬다. 소월은 자신의 검을 바닥에 내리꽂은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고, 용상은 자신의 검끝을 그녀의 검끝에 붙인 상황이었다. 소월의 검이 떨어지는 그 틈까지 파악한 용상이 그것을 가까스로 빗겨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지면의 상태만 봐도 일촉즉발의 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소월이 뿜어낸 검압의 여파로 주변이 산산조각, 완전 박살이 나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조차 소월이 힘조절한 것이었고, 용상은 다시 한 번 힘으로는 정면승부를 볼 수 없다고 되새겼다.
둘은 검을 거두고 마주했다.
"용녀협께서 제 혼신의 힘을 부은 검 마저 부리시는데 성공하시다니, 역시 경험의 차이에서 본녀가 모자란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힘에서는 결코 지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모든 공격이 용녀협의 검 끝에서 끝나는 군요."
소월이 앞서 그녀의 기개를 칭찬하며 놀라워하자 용상도 소월의 힘에 어색한 부분을 지적하며 충고해주는 선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힘을 조금은 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실리는 힘은 끝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끝을 조금만 흘리면 가볍게 그 궤적을 빗길 수 있는 것이지요."
용상은 아무렇지 않게 그리 말했지만, 본인도 그리 성하지 않았다. 겉으로 어떻게든 떨리는 팔을 숨기려했지만, 멈춰선 검 끝을 제외하면 손가락부터 어깨까지 부들부들거리는 것 만큼은 숨길 수가 없었다. 완력 만으로 이렇게까지 자신을 밀어붙이리라 한 상대는 소월이 처음이었고, 경외심까지 생길 수준이었다.
소월은 그녀의 이야기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과거, 그 누구도 자신의 힘에 관련하여 함부로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였기에 더더욱 기쁨이 차올랐다.
이전에는 동료였던 모용비 만큼은 자신의 힘에 대해 좀 더 진심을 담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그의 부상을 염려했기에 오로지 힘을 봉인하는 데에 급급했었다. 하지만 여지껏 만나보지 못 한, 자신의 힘을 조절 할 줄 아는 상대를 만나게 되었고, 용상이라면 자신의 힘을 한계 직전까지는 쏟아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쓴 미소를 머금고 용상에게 예를 표했다. 이 여협이라면, '그것'을 사용해 볼 만하다고 느낀 것이다.
소월은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으며 공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 하지만, 아직 아니야. 벌써부터 도월(刀鉞)을 꺼낼 순 없어. 좀 더 월하검신공(月下劍神功)으로 그녀를 더 끌어내 보자. 용녀협도 아직 숨기고 있어. 한 손에 검, 한 손에 검집. 아직 사용하지 않은 허리춤의 검 한 자루. 속도전으로 온다면 아무리 나라도 어려울 수도 있어. 그러나 용녀협의 전부를 받아내 보고 싶구나. 그러면 우선...... '
공력을 어느 정도 모은 듯, 호흡을 가다듬고 커다란 검을 또다시 한쪽 손으로 받쳐 들어 올렸다. 소월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던 용상은 그녀에게서 무언가 어색함을 느꼈다.
' 자신의 키보다 큰 검을 사용하는데 고작 한 손만으로 휘두른다는 것은... 그래. 일단 그렇다치자. 만에 하나 그녀가 진심으로 다가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어. 역시 정보가 부족해. 괴력 하나 만을 신경써야하는지, 아니면 아직 수가 남은 것인지, 모든 수를 염두해야 하는 것인가...? 힘 하나 만으로도 자신이 수세에 불리하다고 느끼는데 만약 다른 수가 들어온다면 내가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는... 아버지의 이름을... 넘어설 수 있을까? '
용상의 그런 생각은 곧, 두 여협의 마주친 눈빛을 통해 아직은 이른 고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월은 검을 치켜들었고, 용상은 검을 고쳐잡았다. 그뿐이었고, 자신의 힘을 부딪히려는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예의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여겼다.
용상은 잠시동안의 고민에 자신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별 시답잖은 고민을 해버리다니... 나는 아직도 모자라다. 잡생각을 버려라, 용상. 지금은 팽 소저와 대련 중이잖아. 무엇이 정보이고, 아버지의 이름이냐. 지금은 용녀협(龍女俠)의 이름을 가진 한 명의 무림인이다. 이런 의미 없는 고민은 그녀에게 예의가 아니다. 그녀의 진면목이 두렵다면 기권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또한 감히 그럴 수는 없다. 기권 역시 이 자리를 보고 있는 모두에게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내 이름을 걸고, 그녀의 모든 것을 이끌어야겠다. 집중해라, 용상. 순간을 파악하고 뛰어드는 것이다. 경험의 차이를 보여줘라. 그것이 내가 보여야 할 선배로서의 도리이며, 가르침이다.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몸짓을 하나도 놓치지 마라! '
소월이 큰 검을 내려치려 했을 때, 그 순간을 본능적으로 파악한 용상은 순간적으로 바닥을 박차고 소월의 코 앞까지 도착했다.
"......!"
소월은 갑자기 자신의 시야로 나타난 용상을 마주하고는너무 놀라 입 조차 벌어지지도 않았다. 그럴 시간도 부족했을 뿐더러, 이성조차 그것을 따라가기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용섬결(龍閃抉)!"
지면을 따라 쾌속으로 베어 올려진 용상의 검이, 내려쳐지려는 소월의 큰 검을 아주 작은 간격으로 쳐내어 궤적을 빗겨 냈다. 목표를 잃은 소월의 검은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향해 떨어졌고, 너무 놀란 소월은 비어 있는 다른 한 손으로 용상을 밀어내려 손을 뻗었다.
용상은 뻗어 들어오는 소월의 손을 가뿐히 피해 자신의 손으로 잡고 그대로 잡아당겨 그녀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이어서 바닥으로 온몸을 숙여 그녀의 다리를 걸어버렸고 소월의 시선은 그대로 하늘을 향했다. 그녀의 시야는 갑작스럽게 공격당한 덕에 점점 그 광경이 멀어짐만을 느낄 뿐이었다.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나, 나는 어째서......? '
소월의 머리가 바닥에 닿을 무렵, 용상의 친절한 손바닥이 그녀의 뒷덜미를 감쌌고, 다른 손은 몸을 감싸 안아들어 타박상으로 다치는 것을 막아주었다.
어안이 벙벙해 멍하니 뻥 뚫려있는 쾌청한 하늘을 보던 소월의 눈빛에 용상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괜찮습니까?"
용상의 부드러운 어투에 겨우 정신을 차린 소월은 그녀와 눈을 마주했고, 어린아이 같이 휘둥그래진 눈동자가 너무나도 놀랐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괘, 괜찮습니다."
용상의 부축에 소월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웠고, 용상은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 소월의 반대편으로 자리를 잡았다. 용상의 이 행동은, 그녀와의 대련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용상은 입을 열었다.
"'제대로' 검을 잡으세요, 팽 소저. 본녀는 소저의 진면목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숨긴다는 것은 무림인으로서의 예의가 아닙니다. 혹여 걱정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지금 이자리에서 명확히 하겠습니다.
소저의 힘은 감히 정면으로 맞설 만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지닌 힘으로 본녀에게 오신다면, 그것을 흘려내 보겠습니다. 그러니 주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당신의 힘을 받아내 보겠습니다. 그것이 이번 대련의 이유이니, 저도 본격적으로 그대를 맞이하겠습니다. 이제 그만 본 실력을 보여주시지요."
소월은 그녀의 광휘(光暉)같은 이야기에 눈이 번쩍 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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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과거.
단약으로 인해 소녀의 내면에서부터 눈뜬 괴력을 받아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팽가의 아버지, 어머니, 시녀들과 가문의 명맥을 잇기 위한 사제들 조차도 그녀의 힘은 누가 상대해도 버거울 뿐인 거대한 통곡의 벽, 그 자체였다.
소월이 10살이 되던 때, 힘 만큼은 이미 장성한 어른을 뛰어넘고 있었다. 팽가의 무공을 홀로 수련하고 있을 적, 어떤 여사제가 소월을 부른 적이 있었다. 소월이 그 누구도 상대하기 어려운 것을 이유로 혼자 있는 모습을 보고는 안타까워 같이 대련을 제안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같이 있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복령(宓玲). 그녀 역시 사제들 중에서 완력으로는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동문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강한 사제였다. 그 때문에 소월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그녀는, 단지 홀로 수련을 할 수 밖에 없던 어린 아이를 동정했던 것이었고, 호기심을 덧붙여 그녀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고작 10살이라는 나이에 월하검신공을 이미 완성에 가깝게 터득했었으며, 그것의 심화단계인 월하용신심결(月下蓉身沁結)을 이미 터득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 도월용신심결(刀鉞蓉身沁結)이라 수정하여 만들정도로 천재였던 것이었다. 천재를 마주한 그녀는 자신보다 더 위가 있다는 사실에 어지간히 충격을 받아버린 것이었다.
복령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수련에 어떠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지만, 고작 10살의 어린 아이에게 졌다는 것에 왠지 공허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더 나아가 수치심까지 들었다. 아무리 단약 덕분에 괴력을 몸에 간직했다고 하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그녀를 사로잡아버렸다. 이 철없는 기분은 복령 역시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어린 날의 질투심으로 다가왔었다. 그 후 몇번이나 괴력의 소녀에게 도전했지만 도저히 씻기 어려운 충격으로 결국 팽가를 등져버리게 된 것이었다.
소월은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늘 하던 푸념을 마음 속으로 늘어놓게 되어버렸다. 자신이 혼자가 된 것은 단순히 자신 안의 괴력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며, 다시는 그 누구와도 대련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되어버린다.
어느 날 소녀가 한가로이 앉아있던 풀밭은 알 수 없는 하얀 꽃이 만개한 곳이었다. 외롭고 벅찰때마다 갔던 장소였다. 소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그 자리에 홀로 누웠다. 어느 것도 가리지 않은, 새파랗고 쾌청한 하늘을 바라보며 소녀는 생각했다.
'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저리 뻥 뚫렸는데, 내 가슴 속은 이리도 회색빛 먹구름만 가득하구나. 나는... 이대로 누워서 그 누구하고도 친구로 지낼 수 없는 것일까...? 비록 형아(螢兒)가 먹인 단약 때문에 내가 괴물이 되었지만, 단 한번도 친구를 부정하지 않았지. 하지만 오늘 만큼은 그 아이가 밉기도하고... 보고싶기도 하구나... 하아... 어지럽다. 내 마음이... 어찌하면 진정이 될까...? '
그러자 질끈 감은 조그마한 눈망울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애꿎은 바람이 살살 불어오자 흘러내린 자국이 좀 더 차가워지니 외로움도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 예쁘다...... '
어떤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그만 우는 모습을 들켜 부끄러웠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부비적거리며 선명하게 남은 눈물자국을 지워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에게 다가온 남아를 바라보았다.
' 넌... 누구...? '
남아는 한없이 기분좋은 듯한 미소로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 나는 모용세가(慕容世家)의 장손(長孫). 비(枇)라고 해. 넌 여기 누워서 혼자 뭘 하고 있는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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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은 지난 날을 기억해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버렸다.
"알겠습니다. 여태껏, 한 손으로 사용하는 팽가의 월하검신공을 보시고 제 진면목을 숨겼다고 오해하신 것 같은데, 애초에 큰 검을 사용한 본녀의 월하검신공은 지금까지 보여드린 것이 최선입니다. 팽가의 무공인 월하검신공과 용신심결은 오로지 한손검을 위한 것입니다. 위력이 반감되지요. 그 때문에 대충했다고 보실만 합니다. 월하검신공은 저와 봉용검(峰蓉劍)과는 맞지않는 무공이기 때문입니다. 오해를 사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용 소저."
그 이야기를 하고는 드디어 한 손으로 어색하게 부여잡던 큰 검을 양손으로 고쳐잡아 자세를 잡았다. 용상은 그녀의 담담하고 결심이 선 어투에 긴장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보여주기를 바랬다. 진검을 잡고 서로가 검을 맞대는 순간을 상상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차마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단지 아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녀의 변화한 자세와 투기를 마주하고는 자신도 더욱 신경을 집중하고 소월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소월은 큰 검을 양손으로 잡은 채, 조용히 자세를 고쳐 잡았다.
순간, 주변의 공기가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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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월용신심결(刀鉞蓉身沁結). 단심격(亶心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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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상과 소월의 거리는 누가 봐도 서로의 검이 마주칠 수 없는 간격이었다.
그 먼 거리 안에서 소월의 검이 지필묵의 한 획처럼 그어졌고, 그 순간 오싹한 예감이 용상을 감쌌다.
그리고 짧고 간결한, 깔끔한 풍압이 순식간에 용상의 안면을 스쳐 지나갔고,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파도의 전조에 불과한 검압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용상은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소월에게로 고정한 채 방어를 더욱 단단히 굳혔다.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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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콰차차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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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의 뒤에 우뚝 솟아올라 성인 남성 세명을 합친 것 같은 굵기의 나무가 그대로 갈라져 천둥소리를 내며 반대편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적이 흘렀다.
대회장의 모두가 쓰러진 나무를 바라보고는 대치 중인 용상과 소월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자신의 진면목을 담은 첫 초식을 선보인 소월의 모습은 이전에 보였던 매섭고 강렬한 모습과는 다른, 깔끔하고 단정된 양상을 보이니 믿을 수 없다는 모습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고, 모두가 대련 중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강고한 무림의 재림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소월이 단심격의 자세를 풀고 한 걸음 앞으로 용상에게 다가갔다. 용상은 겨우 자신의 봉인을 풀고 당당해진 소월의 모습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기뻐서일까?
용상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무림인으로서의 두근거림이 도저히 멈추지 않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그녀를 이길 수 있을지가 궁금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싸워 보고 싶었다. 그녀와 검을 맞대 보고 싶었다. 이는 소월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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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두 번째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월이 예를 갖추어 말하자 이에 용상도 맞받아쳤다.
"가르침은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용상은 그제야 왼손에 들고 있던 검집을 내려놓고 허리춤에 거치했던 또 다른 검을 잡아들었다. 자세도 방검술의 자세에서 쌍검술의 형으로 고쳐잡았고, 그녀 역시 진심을 보일 것을 내비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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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쌍검공(龍兒雙劍功). 부디, 이것이 우리의 대련에 맞아 떨어지기를..."
월영전(月鍈傳) (29).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