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민을 정말 많이 한 이번화입니다. 몇번 갈았어요.
덕분에 늦었습니다.
거진 일주일에 한번은 내야겠다는 생각이라, 마감에 쪼들리는 작가의 기분이 들더군요. 정진하겠습니다.
이번화를 계기로 더 길어질 것 같습니다.
이걸 반기실 분들이 계실라나요?
월영전은 루리웹 활협전 게시판에서만 연재되고 있는 2차창작, 팬픽입니다. 본작의 스토리에서 따와 개인이 만든 것이니 본작과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있지 않습니다. 별개의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모여주시겠습니까? 전달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묵령의 부름에 따라 일반인을 제외한 나머지 협객들이 모였다. 광영무림대(光影武林隊)쪽에서도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이 보이지 않아 다들 몸이 근질거리던 때에 묵령은 무언가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우소매가 묵령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일이야? 광영쪽에서 무슨 이야기라도 나온 것이 있어?"
"아직은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세력불리기에 전념하는 모양입니다. 극락교의 세력이 워낙 크니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용상은 개인적으로 수련이라도 하고 온 것인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크게 들숨, 날숨 쉬더니 물었다.
"그럼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이고, 그쪽의 세력과는 무관한 것 같은데 우리 문제라고 예측해 보겠습니다만. 맞습니까?"
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저마다 본인들만의 실력을 갈고닦는 중인 것을 알고있습니다. 그 덕분에 당문 주변과 일대는 민생이 많이 회복하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으니 매우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묵령은 그들에게 크게 고개숙여 예의를 보였다. 곧바로 그녀들을 이곳에 부른 이유를 말할 참으로 보였다.
"다들 출전 준비에 전념하느라 몸이 근질근질 거리실 것이라 봅니다. 따라서 본녀는 당문대리인으로서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외성 중앙의 큰 공터를 이용해 무언가를 하려하니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녀의 말을 듣고 한 명 한 명 다가와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살펴보는 묵령. 다들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나같이 무슨 제안이 나올지 모를 묵령의 작게 다문 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은 입이 열렸다.
"당문이 주최하여 여러분들을 위해 대련대회를 열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수군수군 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단어의 등장에 대한 낯선 반응이었다.
"대련... 대회?"
"네. 단순히 비무대회로 끝내는 것이 아닌, 주변 당문 지역인들의 사기진작과 무림인들의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통한 대련을 실시하고 그에 따른 무력상승을 꾀함에 있습니다. 단순히 상승무공의 대련을 통한, 아직 무림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들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떻습니까?"
묵령의 이야기를 듣던 위국이 손을 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비무대회라면 모를까, 대련대회는 처음 듣는군요? 어떤 성격일지는 예상은 되지만 정확한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묵령은 위국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여 언니에 대한 예를 갖추었고, 자그마한 수줍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대련대회란, 말 그대로 대련을 통해 이기고 짐을 순위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말을 가져왔으니 의아할 수 있으나, 단어 그대로의 뜻을 가져오면 될 것 입니다. 대련이란? 서로의 합을 맞추어 겨뤄보고 그 안에서 보안점이나, 장점, 단점을 짚어주며 서로가 수련하는 것입니다. 이를 대회개념으로 실시한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들, 어찌 생각하십니까?"
하후란이 턱을 괴고는 그녀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당돌한 모습과 결단, 추진력을 눈여겨본 모양인지 눈을 슬쩍 감았다. 옆에 있던 번소천이 물었다.
"령 언니의 이야기, 어떻습니까?"
"어떻고 말고. 그간 별일이 일어나지도 않아 재미없었는데, 당 소저께서 저리 판을 깔아주시니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당문에 신세 지고 있는 우리가 무슨 염치겠느냐? 나는 즐겁구나. 좋은 생각인 것 같고. 광영에서도 별 이야기가 없으니 마침 필요한 것이 온 것 같구나."
하후란은 그 말을 하고 당당히 한 걸음 나서서 누구보다 앞서 선언했다.
"설산파 하후란. 본 대회에 참가할 것이니, 이 기회를 잡아 본녀를 이겨볼 기회를 주겠소이다. 소언. 소매. 너희 설산파 제자들도 나오거라. 그간 얼마나 정진했는지 사부가 직접 봐주겠다."
번소천은 기쁜 표정으로 스승의 이야기에 함박웃음치며 승락했다.
"네, 넵! 분부대로! 번소천! 참가하겠습니다!"
우소매도 기대한 바가 있었는 듯, 들뜬 모습으로 스승의 말을 반겼다.
"좋아! 화섬전(火閃電)!! 우리들의 연계기를 선보일 때다! 스승님을 납작하게 하는 거야! 우소매, 화섬전! 참가하겠습니다!"
"학! 학!... 학?"
최근 들어 다시 내력 회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하후란의 상태도 많이 호전되고 있었다. 백발이 흑발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은발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윤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탈백유란이라는 호칭도 이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사라졌고, 은화지란(銀化之蘭)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번소천은 탈백유란의 재림이라는 호칭과 함께 설산파 창빙란천(蒼氷蘭天)이라 불리기 시작했으니 짧은 세대내에 두 여협의 이름이 세간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설산파의 재건이 머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우소매도 탈태환골한 이후로는 그것을 더욱 갈고 닦는 것에 열중했다. 분심화인을 잡아가두고 그 성질을 자기것으로 만들어서 스승의 내력과 합쳐 만든 또다른 무공. 설산파의 뿌리를 둔 무공과,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조화의 단계로 접어들었으니, 그녀에게 있어서도 이번 대련대회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하후란, 또는 여타 다른 무림인들과 겨뤄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으니, 대회의 의미가 더욱 커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사라졌던 반려동물인 화섬전을 다시만나 그녀와의 연계를 더욱 돈독히 했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무공이 기대가 되었다.
"상 소저. 그대도 나갈거요?"
당포의가 신나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고는 가만히 미소 지으며 묵령을 바라보던 용상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용상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오른 주먹으로 왼손을 짝! 치며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아직 우리 사이에 못 다한 합이 있었지요?"
순간 싸늘한 기억이 잠시 당포의의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용상은 지체없이 당포의에게 비수를 찔러넣었다.
"그때의 연장이면 볼만 할 것 같은데. 여전히 피할 생각이면 접는게 좋을 것입니다?"
용상이 도저히 피할 틈을 주지 않자 당포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마음을 놓았다.
"차마 도망도 못 가게 하는구려. 결판을 꼭 보아야 하겠소?"
"그대가 도망치는 바람에 내 입술을 누구에게 빼앗겼더라?"
뜨끔.
피식 웃고는 용상도 한 걸음 앞으로 나서고는 선언했다.
"용녀협 용상! 이번 대련대회에 참가하겠소! 더불어 복수전을 신청하고자 하니 당포의도 참가하겠소!"
당포의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차마 입을 열지 못 했다.
굳게 닫혀 있던 외성 성문 망루에서 보초를 보고 있던 엽운주와 비연이 당문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고는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본인들만 알고 있을 것이었지만, 오래지나지 않아 금방 눈을 뜬 엽운주는 비연의 입 없는 가면을 바라보더니 어색하게 한마디 했다.
"어떻...소?"
뜨끔한 모습의 가면은 살살 고개를 돌려 엽운주와 마주쳤고, 금방 다시 묵령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와 대련하고 싶...습니다. 저번에는 워낙에 정신머리없이 싸우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상태로 마주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를 지명이 가능하다면 좋겠습니다만..."
엽운주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갑자기 손을 번쩍들고 멀리있는 묵령에게 고했다.
"당 소저! 하나 제안 드릴 것이 있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묵령이 답했다.
"말씀하지요!"
비연의 하얀 가면을 슬쩍 쳐다보더니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그녀의 몸짓에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대련대회는 비무대회가 아닙니다. 따라서 비무대회와 같은 대진형식의 규칙 말고, 지명하는 방법으로 상대를 고르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순서는 제비를 뽑고 정하며, 그 순서에 따라 지명하는 것이지요."
묵령은 엽운주의 말을 듣고 미소로 그를 반겼다.
"좋은 제안이라 생각합니다. 필히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결정에 엽운주는 웃으며 마저 선언했다.
"창송검객(蒼松劍客) 엽운주! 참가토록 하겠습니다!"
엽운주가 비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비연은 우물쭈물하더니 그의 떠밀음에 손을 들고 외쳤다.
"비, 비연도 참가하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쭈욱 듣고 있던 사사형 당유원과 상관형이 묵령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기쁜 어투로 말했다.
"그럼 그날은 나와 상관 소저가 크게 잔치판을 만들겠으니 주지육림은 아니더라도 고기와 마실 것을 풍요로이 제공하겠소!"
"본녀의 상단은 지금은 사용 할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유원 사형을 도우며 자리를 빛내는데 아낌없이 힘 쓰겠습니다!"
상관형은 현재 무림에서는 행방불명인 상황이었으니, 변장을 하고 가장 자신의 일에 잘 맞는 당유원에게 붙어 당문상단의 일을 돕고 있었다. 그러다 묵령의 이와 같은 선언을 듣고는 기뻐하며 그녀의 뒤를 든든히 하고자 했다.
대장간 일을 하던 욱죽과 그녀를 돕던 조운 역시 즐거워하며 한마디씩 붙였다.
"좋아! 그럼 대회일정에 맞춰서 대련용 무기를 만들어 놓겠습니다! 말만 하십시오! 필요한 무구는 내가 만들어서 제공토록 하겠습니다! 준비하자꾸나 운아!"
"네! 반드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같이 자신의 의견에 동참해주는 당문식구들의 든든한 이야기에 그저 고마울 뿐인 묵령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아직 그때는 오지 않았다. 마냥 초조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자신은 아직 미숙하니 다른 사람과의 맞부딪힘과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거사를 치르기 이전 사기 진작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결과가 대련대회.
아직 무림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에 마음은 찢어질 것 같지만, 그것을 잠시 비워두고 자신을 재확인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것이 끝이나면.
그에게 달려가리라.
"일시는 사흘 뒤! 다들 충분히 준비 부탁드리겠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
"그런가. 그들마저."
무거운 분위기. 침울한 소식이 새하얀 의복의 청년으로부터 전해졌다. 애초에 행화림이 점령당했다는 소식은 들어서 상황은 파악이 되었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이제 막 자신을 찾아온 그에 의하여 직접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으니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행화선을 지키는 힘에는 두 분이 있었지 않았소? 과거, 신출귀몰의 시체를 먹는 매, 응인(鷹人) 만리붕정과 점창의 검성의 이름을 가진 그 자가? 심지어 만리 형님은 그대의 고운산 스승이 아니시던가?"
청년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입술을 깨물고 부들부들 거렸다. 그러자 뒤에서 나타난 백의의 여협이 와서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응인(鷹人) 선배께서는 항상 노고가 많으십니다. 필시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매는 항시 사냥할 때는 신중합니다. 우리가 볼 수 없게 태양을 등지고 하늘 높게 솟아서는 그 자취를 감추지요. 그 그림자가 아직 땅에 당도하지 않았으니 아직은 때가 아닌 것입니다. 참으셔야지요 소협."
청년은 가까스로 참아왔던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짧게 대노했다.
"웃기지 마십시오!! 스승님은... 그 사람은...!"
당중령이 다가와서 불타오르던 청년의 어깨를 거듭 두드리며 그를 진정시켰다. 만리붕정과 점창검성. 당중령은 소협의 기세를 보건대, 그 둘이 행화림을 배신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타오르는 분노를 겨우 삭히고 있는 인내심이 잠들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화를 내서는 그릇된 선택을 하기 쉬울 것 이었으니, 진정시키는 것을 우선했다.
"끓어오르는 열을 머리 속에 채우지 마시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그 이유가 비록 납득이 어려워도 이해해야 하는 법이라오. 이리 오겠소. 소협? 할 이야기가 있소."
가까스로 터져 나오는 울분을 당중령의 한마디로 삭혔다. 그는 감히 대선배 앞에서 추태를 부리기 싫었던 것이었다. 나름 자존심이 강한 것도 있지만, 자신의 올곧은 모습만큼은 굳게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결의에 찬 다문 입술을 눈치챈 당중령은 그저 두 눈을 감으며 먼 후배의 철벽 같은 인내심에 무림의 미래를 안도하였다.
"그래. 그러면 되오. 인내야 말로 이 무림계를 이끌어나갈 후배기수들의 중심이오. 우리 선배들이 보기에 아주 좋군. 그나저나 마침 쟁아가 자리를 비웠으니..."
뒤에 있던 흰 의복의 여협을 향해 말했다.
"화선아. 네가. 거들어주겠느냐?"
여협이 그의 부름에 살짝 놀라워 한다.
"어머. 알고 계셨습니까?"
"금향궁에서 궁주가 왔다길래 어떤 모습일까 찬찬히 살펴보았다. 소영향의 손끝 발끝을 어떻게든 따라해 보려한 것 같은데, 이 늙은 눈은 아직 시력이 멀지 않았을 뿐, 멀쩡하다. 천등루를 버리고 금향궁에 몸을 안착한 것은 소영향의 당부임이 틀림없는데, 맞지 않느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모양새로 모른척, 반응하는 것이 그녀의 특기 중의 특기였으니, 꼬리 아홉달린 여우와도 같았다.
"그것 또한 어찌."
"쟁아가 금향궁의 행보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참으로 기이한 운명이지. 너희 두 자매가 오랜 기간 싸워 놓고 한 명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화해를 하니 그 운명이 참으로 간악하기 짝이없군. 비록 금향궁의 궁주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너는 내 제자 화선아다. 어딜 가 있든 말이지. 제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알 수는 없지만, 관심 있게 제자들을 본다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더구나. 하나 의문인 것은, 대체 쟁아는 어떻게 꼬드겼느냐?"
화선이라 불린 여협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호! 호! 웃으며 꼬리짓을 이리저리 부렸다.
"호호! 그야말로 절대영도! 절대 깨지지않는 본녀의 미모 아니겠습니까? 본녀가 입을 열면 동백꽃내음이 퍼져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본녀가 교태를 부리면 끌려오지 않는 남녀가 사방천지에 없을지언데 무표정, 무미건조, 날수상공 당쟁 소협이라도 별고 있겠습니까? 호호호!"
척!
그때 그녀의 허황 장황한 연설에 당쟁이 어디선가에서 나타나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이 여자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입니까 장문인? 무엇을 물으셨기에 이리 허황된 소리를 장황하게 하는 겁니까?"
"오! 쟁 소협. 오셨습니까? 우리들의 따스했던 만남을 한참 이야기 중 이었지요. 호! 호! 호!"
"......그 웃음은 도저히 적응이 안되는 군."
당중령은 둘의 모습에 무릎을 탁치고 폭소했다.
"하하하!! 상황이 참으로 재밌구나. 나는 여기, 서 소협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자 했거늘, 어찌 너희들의 노닥임에 내가 다 즐거워지다니. 미안하오 서 소협. 늙은이가 말년에 결국 노망이 들었나보오. 하하!"
서생은 그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 하하! 재밌군요. 당신의 기지에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
지난 날의 기억이 자신의 눈 앞에 잠시 아른거리자 그저 주먹을 쥘 뿐이었다. 그 주먹을 다시본 당중령은 그저 미소지을 뿐이었다.
"후후. 참으로 궂은 기세로다. 그놈의 만리형님의 제자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당의 이름을 하사하고 제자로 받았을 터인데 아깝군. 참아내시오. 소협이 생각하는 것은 소협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마음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새하얀 술잔처럼 비워두시고 시원하고 투명한 백화엽주(白花葉酒)를 한 방울, 한 방울 흘려 담는 것이오. 그리고 잔을 다 채웠을 때, 비로소 소협의 시간이 도래했으니 그것을 입 안에 가득 털어 비우고 이루고자 하는 것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이오. 오랜 시간 동안 모으고 모은 값진 술의 맛은 기어코 그대의 소망을 다시금 술잔 안에 채워줄 것이니, 서두를 필요는 없소. 기회는 올 것이오.
긴박할 수록 차분해야 하오.
머리가 뜨거우면 헛된 선택을 낳을 뿐이오.
길이 복잡할 수록 멀리 돌아가야 하오.
지름길은 가장 멀리 있는 법이오.
그러하더라도 만약, 가까운 곳에 지름길을 발견했다면.
그때는 그 지름길을 통해 반드시 쟁취하시길 바라오.
한 올의 후회를 남기지 마시오.
기회는 붙잡는 자의 것이니.
자신을 불태울 정도로 덤벼보시오.
결과는 얼마나 부딪히는가에 달렸소.
실패를 두려워 마시오.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것이오.
그것이 젊음이고 패기이외다.
늙은이는 그저 그대들을 위한 발판이 되어드리지."
당중령은 서생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한결 차분해진 눈빛에 안심할 수 있었다.
"큰 소동은 우리 늙은이들이 치르겠으니, 젊은 후배는 우리가 뚫고 가는 흐름에 몸을 맡기게나.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기를 빌겠소. 청화자(靑和子). 듣고 있는가?"
"하하하! 알고 계셨소, 중령 형님?"
가벼운 중년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 자리에 있던 서생을 제외한 나머지들이 그의 호쾌한 목소리를 듣고는 그저 조용히 미소지을 뿐이었다.
당중령이 윤지평을 맞이했다.
"어서 오게. 청화자(靑和子). 멸문되었을 문파의 마지막 끄나풀이 된 소감은 어떠한가?"
윤지평은 그의 가벼운 손짓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허! 마지막이라니요 중령 형님. 목숨은 끊을 수 있을테지만, 인연의 붉은 끈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 것이 세상의 도리이자 이치요. 불법(佛法)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 않던가?"
"후후. 전진의 도법서에 불법도 포함이 되었던가? 여튼 다시보니 감격이 이만저만이 아니군. 살아서 다시 얼굴을 마주하니 기쁘구나."
"하하하!"
호쾌하게 웃어보이며 별일아닌 듯, 손을 저으며 답했다.
"본인도 죽을 뻔했지요. 안타깝게도 팔 하나가 날아갔지만, 싸우지 못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없어지고 나니 짐 하나 덜은 기분이라 가볍습니다. 중령 형님은 괜찮소?"
아직 무거운 손으로 겨우 뛰고있는 심장부근을 포개어 다시금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여전히 쉽게 내력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기력이 쇠했다. 나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해. 하지만, 이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 내 한 목숨, 불사질러야 속이 후련할 것이다."
손뼉을 치며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윤지평.
"그렇지요? 후배들과 후손들의 강성(强成)을 위하여 선배들이 몸소 앞장서야 할 것 이외다. 각오는 진작에 했으니, 형제동지들과 함께 뜻을 함께할 것이오. 그런데 광영(光影)이 뭐요? 광영이. 촌스럽게시리 쯔쯔."
"여전히 까다롭구만. 이럴거면 형 동생사이는 관둘까싶군."
"하하하! 동생이 그렇게나 조언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형님도 여전하오. 그나저나, 서생이라 했던가?"
서생은 갑자기 나타난 대선배의 호쾌한 모습에 그저 정중히 예를 올려보였지만 그만, 몸이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리 굳어버린 서생을 보고 호기심이 도진 나머지, 눈을 머리카락만치 가늘게 뜨고는 이리저리 용모를 살폈다.
"소협께서는 뭐 이리 잘생겼나? 무공은 쓸 줄은 알고 있고? 잘생긴 놈이 무공을 잘 쓴다는 것은 그다지 못 미더운데? 하하하! 당연히 내가 못생겼으니 무공은 내가 한 수 위인 게 이치에 맞지 않겠나? 하하하! 농일세! 미간 펴게!"
"후후후. 지평이. 그쯤하게. 우리세대를 넘어서 다음세대를 잇는 중요한 주인공일세. 그를 욕보이면 미래 무림전체를 욕보이는 것이야."
"하하하! 소협. 미안하오. 이 선배가 너무 막무가내였으니 이쯤하도록 하겠소. 이 전쟁터는 이제 선배인 우리들이 맡겠소. 그러니 염려말고 하려는 바를 하도록 하시오. 후배의 길을 터주는 것이 선배의 미덕이니, 부디 우리를 양분삼아 다음세대로의 길을 열어주게나."
윤지평은 그 이야기를 하고는 당중령의 옆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긴장감에 굳어있는 서생이었으나 선배들의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경청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당중령이 말없이 서생에게 다가와서는 두 손으로 어깨를 다독이며 말을 건넸다.
"자. 이만 광영을 벗어나 당문으로 가게나. 그들의 힘이 되어주게. 그들에게는 한 명, 한 명의 힘이 더욱 필요하다네. 자네라면 분명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 의심치 않네. 부디, 자네 스승의 길을 헛되이 하지 말게. 필히 그러기 위한 것일게야."
당중령은 품에서 서신을 하나 꺼내들고는 서생의 손에 쥐어주었다.
"딸아이에게 전해주게. 광영이 건네주는 마지막 서신이니 이것에 일시와 계획을 적어두었네. 딸아이에게 내 생사를 가르쳐주고 싶었네만, 아직 때가 아니니 이 부분은 함구토록 부탁하네."
서생은 서신을 잡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예를 다하여 그들에게 고개숙였다.
"그래. 조심히 가게나.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게. 그것이 이 선배들의 바람이고 무림계의 미래일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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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문 대련대회 하루 전.
"이곳인가? 당문의 영역이."
"그런데 입구 쪽이 어수선한 것 같지 않나요?"
"이상하군. 분위기가 왜 이리 봄철이지? 풍경이 그간 봐온 것과는 너무 비교되는데..."
당문 외성 입구에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북적였고, 이상하리만치 활기를 띄고 있었다. 분명 침울한 무림계의 암흑기라고 보아도 나쁠 것이 없는 상황인데 마치 잘 닦아놓은 듯 한 풍경이 부부를 반기고 있었다.
길 주변으로는 상인들이 줄지어 상품을 파는 모습도 보였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웃음 꽃이 절로 피어나고 있었다. 그중 남자의 눈에 띈 것은 키가 작은, 투박한 여성의 망치질과 연장소리였다.
챙! 챙! 탁탁탁! 끼익! 끼익!
"오. 대장장이인가?......치고는 여성분이라니. 요즘에 여성 대장장이가 흔하지는 않는데. 한번 보러가겠소?"
"...젊은 여성이라서 가는 것인가요?"
"어허. 섭섭하게 갑자기 왜그러시오? 내가 뭐 잘못 이야기한 부분이 있었소?"
"아닙니다. 소부(小婦)가 어찌 지아비의 뜻을 감히 거스르겠습니까. 응당 따라야지요."
"아... 하하... 내가 그, 미, 미안하오. 그렇지. 대신에 이곳에 온 김에 선물하나 사드리리다. 반지? 금비녀? 그렇군. 봉용검에 장식같은 것을 달아놓으면 어떨 것 같소?"
"......나쁠 것은 없군요."
저벅저벅 걸어가는데 갑자기 웬 학 한마리가 멀뚱히 부부의 길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응? 뭐, 뭐야 이 학은."
학이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몇 초간 멍하니 부부를 응시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에는 학의 눈과 남자의 눈이 마주치고는 난데없이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끄으으응..."
"모, 모용(募蓉)랑? 뭐하시는..."
깜빡.
"제길. 졌다."
"네?"
학은 갸우뚱한 고개를 다잡고는 학학! 울기 시작했다. 마치 이겼다고 비웃는 듯 했다. 그러다 갑자기 어디선가 여성이 나타서는 학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며 상황이 종료되었다.
"어휴. 죄송합니다. 제 반려 학이 실례를 범했나 모르겠네요.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너그럽게 용서 부탁드립니다. 화섬전(火閃電), 너 이자식. 손님한테 무슨 짓하는거야? 밥 좀 굶어볼래?"
"학! 학!"
남성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하하! 괜찮습니다. 덕분에 재밌는 경험을 했습니다. 경솔하게 눈싸움을 거는 학이라니. 진귀하군요. 그나저나 이곳이 촉중당문이 맞습니까?"
학을 손봐주고 있던 여성이 그의 물음에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기 시작했다.
"예. 이곳이 당문입니다. 혹시 멀리서 오신 여행자이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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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가짐을 정리한다라... 당문인 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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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셈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군요. 지금 무림이 그다지 상황이 좋지 않을 텐데 유달리 축제 분위기이군요? 안전한가 봅니다?"
"네. 이곳은 무림맹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역입니다. 게다가 현재 당문의 책임자가 당문 장문인의 따님이기도 하고, 그녀가 지금까지 이 지역을 돌보고 있습니다. 주변이 평화로운 것은 그녀의 덕이죠. 그런...데..."
"?"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남성의 뒤에 있는 여성이었다. 그다지 요란스럽지는 않았지만 등 뒤에 거치되어 있는 길고 커다란 검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보통 인물이 아님을 직감한 여자는 살짝 긴장한 눈치였지만 왠지 모를 미소를 띠었다.
"아, 아닙니다. 그냥 여성분의 검이 유달리 크길래 눈에 띄는군요. 무림인이신가 봅니다?"
"하하! 그래보이십니까? 부끄럽게도 저희 부부는 무려 초출이지요. 큰 칼의 여성이 바로 본인의 자랑인 아내입니다. 저희는 볼 일이있어 당문으로 온 것인데 분위기가 생각보다 화기애애하니 안심이 되는군요."
"부부... 이시군요. 요즘 보기드문... 앗!"
그때 그녀가 붙잡고있던 학이 발버둥치면서 결국 풀려나게되었고 또 다시 잡힐라 재빠르게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학!학!학!"
"화섬전!! 죄, 죄송합니다. 저는 바빠서 이만..."
그 말을 남기고 엄청난 기세로 경공을 펼치더니 학을 따라가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는 부부만이 남겨졌다.
"흐음... 굉장한 고수. 경공이 이리도 가볍고 떠나간 자리가 흔적이 없다시피 하다니. 정말이지 세상은 넓군. 그렇지 않소, 소월?"
"......"
"소월?"
무언가 본 듯, 멍하니 서있는 팽소월. 모용비의 부름을 못 알아챌 정도로 멍하니 있었는데 겨우 그의 목소리가 닿았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장장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죠. 선물이 기대되는 군요."
"그렇지요? 그래도 왔으니 한번 돌아봅시다. 일단 대장장이부터... 자, 손 주시구려. 이래야 내가 한 눈 팔지 않는다는 것을 믿겠지."
"글쎄요. 버릇은 남 못 준다고 하지만... 지금은 봐드리겠습니다."
"후후. 그럴 일 없다고 그러네. 자, 갑시다."
모용비는 팽소월의 손을 잡고 학이 막아섰던 길을 따라 세공질을 하고있는 대장장이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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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팽소월은 무언가 꺼림칙한 기운을 읽고는 눈을 집중하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어렴풋이 익숙한 기운을 감지했었고, 모용비와 학 미녀의 이야기를 그냥 넘어간 것도 필히 익숙한 기운에 정신이 팔려서였다.
' 뭐지? 내가 알고 있는 기척인데... 살의는 없는 것인가? 단순 정찰? 뭐지? 마치 내가 어릴 적부터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
월영전(月鍈傳) (25).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