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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쿠하'님의 허락 하에 저 게시글의 짤을 소재로 소설을 써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포이 중파짤도 그려놀리신다고 햇는데(19금게에요) 마침 제가 구상한 줄거리와도 맞아떨어지는군요. 비록 중파짤은19금짤로 그리실 터이라 글에 삽입하진 못하겠지만, 잘 된 일입니다.
제가 원래 글을 다 쓴 다음에 올리는데, 이건 좀 길어질 것 같아서 이번에는 쓰면서 올려보려고 합니다. 4~5편 정도로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정확히 저 분량을 맞출지는 잘 모르겠어요. 가급적 이번 주, 혹은 다음 주 안에 다 써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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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전의 시쳇말로 ‘걸어다니는 풍기문란’이라는 말이 있었더랜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단어였음에도 포이는 그 어감이 싫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가 성욕이 강한 건 사실이기도 했고, 성적 매력이 넘친다는 게 자랑하면 자랑할 일이지 대체 왜 부끄러운 일이겠냐고 그녀는 생각했다.
“주인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사령관의 귀에 요염하게 속삭이면서 그녀의 손이 사령관의 고간을 향했다. 규칙적인 템포로 그 엉덩이를 씰룩이면서, 그리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사령관의 허리를 매만지면서 포이는 인간 사령관의 귀에 바람을 후, 불어넣었다.
“저기, 포이, 호위를 해주는 건 고마운데 조금 떨어져 줄래? 나 일 해야 해서...”
“하아아...포이를 이렇게 가까이 두고서 호위만 맡기시게요?”
“네가 전술제안서 검토를 나 대신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일하는 거, 재미없잖아요? 저랑 더 재밌게 놀고 싶지 않으세요?”
꿈틀, 하고 눈썹이 일그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인간의 귀에 들릴 리는 없지만 고양이의 귀에는 들릴지도 모른다. 아니, 고양이 귀에도 안 들리더라도 사령관의 반대편에서 다소곳이 서 있는 페로의 눈썹이 움찔하는 것은 포이의 곁눈질로도 보인다.
“그쯤 해두시죠, 만들어진지 이제 겨우 며칠 된 주제에 너무 주인님을 괴롭히는 거 아닙니까?”
“음~? 우리 하얀 고양이도 주인님과 놀고 싶은 걸까나~?”
그리고 포이는 페로의 가슴을 비웃듯이 바라보았다. 멸망 전 기준으로 결코 작다고는 말할 수 없는 가슴이지만, 포이의 그것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빈약해 보였다. 이것이 상대적 빈유라는 것인지. 갑자기 페로는 자신이 나이트 앤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불행한 기분을 느꼈다.
“그, 그게 아니죠! 우리의 본분은 주인님의 호위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는 건 그저 주인님께 장난치는 거잖습니까! 무례한 짓 그만두세요!”
“어머, 이 언니에게 다 맡기면 페로도 주인님이랑 재미있게 놀 수 있을 텐데. 하얀 고양이는 주인님이랑 놀고 싶지 않은가봐?”
“당연히 나도 같이 놀고 싶...냐아! 이게 아니라!”
“후훗, 앙탈부리긴. 주인님의 애정을 독차지하고 싶은 거구나?”
“아녜요! 아니라구요! 그보다...왜...왜 당신이 내 언니라는 거죠?”
포이는 비릿하게 웃었다. 성적 매력이 넘쳐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수많은 남자를 홀려 본 그녀는 이게 뭔지 잘 알았다. 이게 여자의 질투란 거다. 귀엽긴.
그녀가 인간 사령관에게 다가가 앵기다 보면 사령관도 포이를 상대해줄 수밖에 없다. 그게 부러운 거다. 하지만 어려서(?) 그런지 그 질투를 표현하는 방식이 유치하다. 노련한 상대였다면 훨씬 귀찮았을 테니, 포이에게는 잘 된 일이다. 한심하기는, 귀찮은 예의범절과 메이드의 규칙에 얽매여 솔직한 마음도 표현하지 못하는 겁쟁이 고양이라.
“내가 프로토타입인데 당연히 내가 언니지. 안 그러니?”
전형적인 텃세 부리기다. 서열 싸움이다. 포이는 파악했다. 그러니까 이 하얀 고양이는 늘 주인님의 옆에서 함께하던 자신의 자리를 뺴앗길까 봐 두려운 것이다. 자신한테 주인님을 빼앗길까 봐 무서운 것이다.
‘그러기엔 아직 한참 부족해 보이지만 말이지’
무리도 아니다. 자신의 그 흉악한 가슴과 남성을 홀리듯 흔들어대는 엉덩이에 버틸 수 있는 남자는 얼마 없고, 사실은 그게 그녀 모델이 사라진 이유기도 했으니까. 하지만...그런 유치한 방식과, 자신의 절반도 따라오지 못하는 그 빈약한 몸매와, 계속 규범에 얽매여 있는 그런 소극적인 태도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검은 고양이를 못 이길 것이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오르카에서는 내가 언니입니다! 언니라고 부르세요!”
“아라아라, 그렇게 우기니까 나 같은 ‘신참’에게도 주인님을 뻇기는 거 아니겠니?”
“우, 웃기는 소리하지 마세요! 아니, 하지 마!”
그래, 그래, 어떻게든 언니 행세를 하고 싶어서 급하게 말이라도 놓는 거군. 정곡을 찔리자 감정이 흐트러졌다는 전형적인 반응을 보이네. 포이는 느긋하게 미소지었다.
그녀든 페로든 지금 사령관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녀들은 보디가드 메이드다. 원래대로라면 그녀들은 얌전하고 절도 있게 인간 주인님 뒤에 서서, 주인님의 분부를 기다리며 정숙하게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귀는 쫑긋, 코는 씰룩이며 주인님에게 다가올지도 모를 만일의 위협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할 그녀들이 이렇게 주인님 눈앞에서 고성을 지르는 것은, 그야말로 꼴불견을 넘어서 경호원의 본분을 망각하는 짓이다. 주인님 앞에서만큼은 늘 정숙하고 절도있어야 하는 메이드 컴패니언즈 얼굴에 먹칠하는 짓이다. 리리스 언니가 이걸 보면 또 한소리 하겠군, 하고 포이는 속으로 웃었다. 자기야 주인님에게 꽤 즐겁게 장난을 쳤으니 그 대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페로에게는 좀 억울할지도?
“보자보자 하니까 안 되겠어! 해보자는 거지?”
“아라, 버릇없는 동생이네. 교육이 좀 필요하겠는걸?”
“교육이 필요한 건 너겠지! 메이드의 예의도 컴패니언즈의 몸가짐도 제대로 모르는 무례한 아이에게, 이참에 누가 위인지 확실히 가르쳐주겠어!”
페로가 외치면서 클로에서 단분자 손톱을 뺴들었다. 완전히 주인님이 보고 있다는 걸 망각했구만. 하지만 먼저 무기를 꺼내든 건 저쪽이니 이쪽도 이제 명분이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포이 역시 천천히 단분자 손톱에 날을 세웠다.
“하아...네가 먼저 시작한 거란다, 동.생.아?”
두 단분자 클로 중 형태도 기술력도 이쪽이 좀더 구식이지만, 대신 이쪽이 더 길이가 길다. 재미난 싸움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저기, 얘들아, 싸우지 말...”
어느 새 구석에 쭈그러든 사령관이 안타깝게 중얼거렸지만 이미 두 바이오로이드는 사령관의 명령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이 또한 주인님의 분부에 따르고 또 봉사해야 할 메이드와는 전혀 거리가 먼 일이다. 헤, 알 게 뭔가. 포이는 생각했다. 주인님의 명령은, 이번엔 못 들은 걸로 하자. 눈 앞에 주제를 모르고 까부는 연적(戀敵)이 있는데, 일단 제거하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너 때문에 주인님이랑 못 놀잖니? 이거 끝나면 주인님 무릎 위에 앉아 놀 거니까 꺼져줄래?”
“냐아아아아!”
그 능청스러운, 혹은 뻔뻔한 태도가 페로의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인간 주인님이 보는 앞에서, 원래대로라면 주인님의 경호와 시중에 힘써야 할 메이드들이, 서로 격하게 격돌했다.
...
둘의 충돌은, 그간 오르카 안에서 (특히 키르케가 열었던 오르카 주점에서) 바이오로이드들끼리 떠들고 서로 격론을 나누던 것 - 두 고양이 중 누가 더 강할까, 라는, 호사가들이나 좋아할 법한 유치한 VS놀이 말이다 - 과 달리, 너무도 싱겁게 끝났다.
“하아, 하아”
“동생이니까 팔다리 자르는 건 참았어. 누가 위인지 가르쳐준다고 했던가? 이제 알겠네?”
“큿....!”
포이는 옷이 다 찢어지고 갈라져 거의 반라(半裸)상태가 뒤어 쓰러져 숨을 몰아쉬는 페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조금 잘려지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롤 가다듬으면서 마치 정말 고양이처럼 자신의 달아오른 단분자 커터를 핧았다. 구형 단분자 커터는 너무 빨리 과열되는 게 문제다. 뭐. 싸운 뒤에 그 온기가 남는 점은 좋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잘 싸우긴 하네’
포이는 페로가 찢어놓은 자신의 소매와 코르셋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이 사정없이 갈가리 잘라놔서 거의 반쯤 알몸 상태로 만들어버린 페로의 옷보다야 훨씬 상태가 양호했지만, 아무튼 페로도 두 손 놓고 당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흠, 브라 쪽이 찢어졌다면 큰일 날 뻔 했어. 가슴이 노출된 상태로 오늘 오후를 보내야 했을 테니. 아니, 주인님과 장난치려면 이쪽이 더 나았으려나?
“뭐, 재미있었어. 내 바로 밑 여동생 정도로는 인정해 줄게”
“다...닥쳐”
확실히 페로는 포이의 개선된 기종이었고, 하얀 고양이의 몸놀림에는 포이조차 감탄할 만한, 그녀도 따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탁월한 동작들이 몇 있었다. 더 진보된 반사신경과, 아직 포이에게는 없는 실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날 만큼 날랜 동작들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애초에 리미터가 걸리지 않은 프로토타입인 포이의 신체스펙은, 때로는 그녀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불균형과 불안정할 정도도 힘이 넘쳤다. 인간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봉사를 제공하기 위해 힘이 제한된 페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몇 번을 다시 싸워도 결과에 큰 이변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정하지 않으시겠다? 고집 센 아이네?”
“닥치라고, 난 인정 못 해. 너같은 게 내 언니라는 거, 인정 못 한다고!”
꽤 거친 ‘닥쳐’라는 말까지 튀어나오는 걸 보니 어지간히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흐음? 확실히 졌는데 승복 못하는 건 어디서 배운 버릇일까나? 약자는 약자답게 고개를 숙여야지?”
“.....”
페로의 오드아이가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았지만 포이는 코웃음쳤다. 약자의, 패배자의 원한 따위 두렵지 않다. 여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 역시 옛 포이의 링크 속에 기록되어 있다. 포이에게 남자를 빼앗긴 여자들의 분노 말이다. 그런데 그녀들이 뭐 어쩐단 말인가? 그녀는 여유만만 느긋한 태도로 페로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보렴, 동.생.아. 우리는 경호원 메이드지? 경호원은 강해야 주인님을 지킬 수 있겠지? 그런데 내가 너보다 아득히 더 강하네? 그러면 주인님의 옆자리에 더 잘 어울리는 건 누구일까?”
“........”
“응? 누가 더 뛰어난 경호원 메이드일까? 누가 더 주인님을 가까이서 잘 지켜드릴 수 있을까?”
“........”
말없는 페로의 모습에 포이는 승리감을 느껴가기 시작했다. 안다. 이 아이도 주인님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주인님의 옆에 있고 싶어한다는 것을. 주인님 옆, 가능하면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자신의 자리가 있기를 바란다는 것을. 주인님의 숨소리, 그 표정, 그 웃음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하지만 바란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 그러자면 능력이 있어야 하는 법. 패자는 얌전히 손가락이나 빨거라.
“경호원이 경호 대상에게 사랑을 느끼는 건 흔한 일이지. 이해한단다, 동.생.아. 하지만 능력이 되어야 그 사랑도 지킬 수 있...”
“그건 사랑이 아니야”
“뭐?”
갑자기 날아든 패배자의 반격에 포이는 일순 당황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이라 더더욱.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무슨....소리를....하고 싶은 걸까나?”
“포이, 넌 그냥 발정하는 것뿐이야”
순간, 포이의 그 큰 가슴 속에서, 페로와 직접 단분자 클로를 맞부딪힐 때조차 느끼지 못했던, 짧지만 격한 짜증이 뭉클하고 솟구쳤다.
“뭐....?”
“다시 말해줘? 넌 사랑과 발정난 것도 구분 못 하는 애야.”
“너....계속 떠들어 봐....”
포이는 입술을 씹으며 내뱉었다. 수납한 단분자 커터가 분노의 냄새를 맡고 다시 튀어나왔다. 그러나 페로는 그에 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응, 그럴 거야. 컴패니언즈가, 경호원 메이드의 자격이 싸움실력만으로 되는 줄 알아?”
“......”
“네가 주인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 그게 사랑인 것 같아? 웃기지마. 넌 머릿속에 그냥 성욕만 들어차 있을 뿐이야.”
“......”
“넌 주인님을 사랑하지 않아. 그저 주인님으로 네 욕망만 채울 생각 뿐이지, 배려도 절제도 없이. 주인님 생각은 추호도 안 하지. 그건 컴패니언답지 않아.”
“......”
“사랑과 발정도 구분 못하는 애, 난 언니로 인정 못해.”
“이...약해 쳐빠진 암코양이 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포이는 날이 설대로 선 단분자 클로를 들어올렸다. 적당히 봐주려 했는데, 안 되겠어. 팔다리 하나씩 잘라 주면 좀 고분고분해지겠지. 다신 주인님 곁에 못 서게 되겠지만.
“그만 해 제발!”
갑작스레 들려 온 호통에 둘은 움찔했다. 참지 못한 사령관이 결국 고함을 지른 것이다. 평소에 바이오로이드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웬만하면 자기들 문제는 자기들이 처리하도록 놔두는 그였지만, 이번에는 선을 넘어도 제대로 씨게 넘었다. 사령관 집무실에서, 인간 사령관, 그러니까 주인님 바로 눈앞에서, 두 자매들이 대놓고 싸움이라니.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으므로 포이는 천천히 클로를 내려놓았지만, 비웃는, 그리고 분노한 표정은 그대로였다.
“운이 좋구나, 동생아”
“닥쳐. 넌 내 언니가 아니야”
“그만하랬지!!!”
그 사람 좋던 사령관이 정말로 화난 것 같았다. 무리도 아니다. 그는 이런 꼴을 보려고 둘을 오늘 호위로 세운 것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과중한 업무로 피로한 중에 이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바이오로이드들이, 그것도 자신과 가까이서 동고동락하는 이들이 서로 미워하며 증오하는 말을 내뱉고 싶은 꼴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딱딱하게 말을 이었다.
“둘 다 나가.”
“네? 하, 하지만, 주인님, 저희는 경호를 해야....”
“페로, 너는 그 꼴로 무슨 경호를 해. 포이 너도 나가.”
“주인님, 하지만 저는 주인님이랑 더 놀고 싶은...”
“두 번 놀면 컴패니언즈는 자멸하겠군. 나가. 나가서 리리스 데려와. 리리스가 피곤하다면 하치코라도 데려와. 오늘 호위는 걔한테 맡기겠어”
리리스는 어제 하루 종일, 다음 작전 지역을 답사하는 사령관을 경호했다. 리리스 본인은 그게 행복한 듯했지만, 아무튼 피곤할 것이다. 사령관은 리리스 성격에 자신이 오늘 그녀를 다시 불러서 호위를 맡긴다고 그녀가 거부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를 배려할 필요가 있다곤 느꼈다.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책상에 앉아, 두 고양이의 거친 싸움으로 흩날리고 찢어진 서류들을 주워들었다. 그렇다. 두 고양이가 집무실 전체를 무대로 날뛴 덕에, 사령관실이 난장판이 된 것이다. 그 바람에 사령관이 일을 못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주, 주인님. 죄, 죄송합니다, 제, 제가 그만....”
“됐어. 서류는 내가 주워서 정리할 테니까 둘 다 나가. 페로 너는 돌아가서 옷 갈아입고.”
“저, 저도 도와드리겠...”
“나.가. 명령이야. 나가라고 했어.”
사령관이 정말로 제대로 화가 난 걸 알아차린 페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주인님 앞에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는지도. 자신들의 난동으로 아수라장이 된 사령관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럴 수가. 포이에게 패배한 것 이상으로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컴패니언즈 실격이다. 메이드의 본분과 규범을 어겼다. 어겨도 아주 씨게 어겼다. 사령관이 오늘 일을 리리스 언니에게 말한다면 그 자매들에게만큼은 온화하고 착한 큰언니인 그녀도 이번 일만큼은 묵과하지 못하리라. 아니, 사령관이 리리스 언니에게 말해 줄 필요도 없다. 사령관이 페로와 포이를 위해 비밀을 지켜주려고 해도, 아수라장이 된 집무실, 여기저기에 깊게 새겨진 단분자 클로의 손톱자국을 보면 리리스 언니는 대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따지고 보면, 비무장한 인간이 한복판에 있는 상황에서 강철도 자를 수 있는 네 개의 단분자 클로들이 허공을 마구 가르고 사방을 할퀴었다. 맨몸의 인간이 있는 방에서 서로 총기를 난사하며 싸워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분노에 눈이 뒤집혀서 말이다. 정말,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위험에 빠질 뻔한 인간은 바로 그녀들이 지켰어야 할 주인님이었다. 경호대상을 위험에 빠뜨리는 경호원이라. 아무리 리리스라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못하리라. 그리고 페로는, 리리스 이전에 자기 자신부터가 사령관을 위험에 빠뜨린 스스로를 우선 책망했다. 이래서야...이래서야 자신이 컴패니언즈의 기강을 잡는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녀는 자책했다.
‘멍청한 고양이 같으니, 멍청한, 멍청한...’
“흐음- 오늘은 제가 좀 날뛰었네요.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오늘은 더 부를 일 없을 것 같군. 나가서 괜한 짓 하지 말고 쉬어. 밖에서 또 싸웠다간 진짜로 가만 안 둘 거니까 처신 잘하라고”
“헹. 명령이시니깐, 그럴게요. 대신 다음 번에는 단둘이서 더 화끈하게 놀아주셔야 해요?”
사령관은 말없이 머리를 감싸쥐고 나가라고 손짓했다.
포이는 능청스러운 것이지 멍청한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다. 그리고 그녀도 상황을 파악할 머리 정도는 있었다. ‘아, 지금은 놀 때가 아니다’란 것 정도는 그녀도 알았다. 지금 자신이 저지른 짓을 알아차리고 몸마저 부들부들 떠는 페로만큼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진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리리스의 호된 꾸지람이 기다리는 건 사실일 테고, 뭐, 그녀는 그게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리리스는 컴패니언즈에서 그녀가 인정하는 유일한 언니였고, 확실히 포이가 거의 유일하게 존경하는 대상이었지만, 그녀라고 해서 포이가 너무 ‘끼가 넘치고 사랑스러운 걸’ 뭐 어쩌겠는가.
다만, 한 가지 그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하나는 가슴 한 켠에 남았다. 그건 리리스 떄문도 아니고 귀찮은 컴패니언즈의 법도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패배자에 불과한 저 무례한 암코양이가 남긴 말 한 마디가, 해결되지 않은 채 포이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발정 혹은 사랑이라.’
잠시 생각하던 포이는 고개를 저었다.
‘흥, 무슨 상관이야.’
그런 거 깊게 생각하기에는 오늘 땀을 너무 흘렸다. 주인님이 어차피 페로랑 더 싸우지 말라고도 했고, 돌아가서 딱히 할 것도 없으니, 리리스가 와서 한껏 꾸지람을 내리기 전까지 씻고서 늘어지게 잠이나 자야지.
그럼, 일단 돌아가서 준비나 해 둘까나.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의 페로를 무시한 채, 거의 상처입지 않은 검은 고양이는 도도하게, 그리고 요염하게 뒤돌아서서, 그 자랑스러운 가슴을 출렁이며 집무실 바깥으로 사라져갔다.
장난은 내일 또 치면 되고, 주인님이랑은 내일 또 놀면 되니까.
<계속: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7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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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게 공지사항 상 구글판 중파도 금지되어서 원래 있던 페로 중파일러를 지웠는데, 공지가 변경되어 일부 구글판 중파는 괜찮다 하셔서 다시 삽입해봅니다. 문제가 된다면 알려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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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보기클릭)1.235.***.***
다음 화가 절반 조금 안되게 쓰여 있는 상태인데, 실제로 이 이야기의 주제는 아니라 크게 다루진 않았습니다만 비슷하게 언급은 넣어놨습니다. 그 상냥한 콘스탄챠(메이드장, 즉 오르카내 메이드의 대표자)가 리리스에게 호통치고, 다른 부대, 특히 라이벌 기믹이 있는 페어리에게서 끝없이 웃음거리가 되고, 몽구스팀으로 컴패니언즈를 대체하자는 청원서가 정식으로 올라오는데 이번에는 리리스도 할 말이 없어서 고개 숙이고 다닌다는... | 20.11.02 11: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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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라오게에서 설정 정리하시는 분이라서 질문드립니다만, 리리스가 동생들에게, 그리고 컴패니언즈들끼리 존대하던가요? | 20.11.02 13: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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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스와 하치코가 직접 대화하는게 메인 7-6 ed인데 리리스가 하치코에게 요자 써주는데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쓰는 말투고 하치코도 리리스에게 요자 쓰지만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쓰는 말투네요. 사령관 앞이라 호칭이 바뀐걸수도있지만. https://youtu.be/1Q4DTtLzlKg 31분 12초쯤과 33분 9초쯤부터 리리스랑 하치코가 대화하니 참고하시면 될거에요. 페로랑 펜리르 하치코끼리의 대화는 발렌타인 2-4 ed에 있는데 페로가 위인거같지만 딱히 존대말은 안보이네요. https://m.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72571 | 20.11.02 16: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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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1.02 17: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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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리리스가 적어도 남들(특히 사령관 앞에서) 정숙하고 다소곳하계 예의 차린다는 건 알겠는데, 창작에 따라 자매들만이 있는 사적인 자리에선 말 놓는 경우도 있어서 헷갈린 거 같습니다. | 20.11.02 18:11 | |
(IP보기클릭)58.227.***.***
https://m.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75426 소완외전 첫번째 파트에서 리리스 페로 하치코가 서로 대화하니 분위기 참고하시면 될거같네요. 유튜브 링크는 사령관을 앞에두고 서로 대화한거긴한데 그거랑 대화체만 두고보면 큰 차이 없어보이긴합니다. | 20.11.02 18: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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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요. 앞으로는 저거에 맞춰 쓰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설정에 빠삭한 사람이 있으니 도움이 많이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 20.11.02 18: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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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건 링크만 가져온거라...ㅎ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 20.11.02 18:33 | |
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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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추종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1.02 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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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 vs 포이 포이 외전 스토리로 나왔으면 하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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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지 않을까요 ㅎㅎㅎ 떡밥 좀 남기는 거 같던데... | 20.11.02 17: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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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보셨군요.원래는 에필로그까지 다 쓴 다음에 쪽지로 보고드릴 생각이었는데 먼저 오셨네요 ㅎㅎㅎ 만족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20.11.09 19:4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