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또각 들려오는 발소리에 지휘관은 토끼마냥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의자에 묶인 이상 숨을 수도, 달아날 수도 없다. 그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부디 지나가 주기를. 부디 그녀가 아니기를. 그러나 육중한 문이 열렸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변함없는 공포였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휘관."
니토. 그 새까만 인형은 이번에도 혀끝을 낼름거리며 방문을 잠궜다.
진술할 것은 이미 다 진술했다. 거짓도 진실도 바닥난 지 오래다. 하지만 니토는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다만 즐길 뿐이었다.
그녀가 하얀 자매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지휘관은 샌드백이 되었다. 얼굴, 배, 다리, 어디 하나 가리지 않고 고문이 가해진다.
그 고통은 견딜 수 없어서 모든 걸 실토하고 싶었다. 하지만 질문은 없었다. 니토에게 이 시간은 한낱 여흥이니까.
45에게선 더이상 연락이 없다. 아마 해킹하는데 실패했나 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이 생겼겠지.
어차피 인형과 인간의 관계란 안 좋게 끝나기 마련. 지휘관은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변화가 찾아왔다.
"오늘 아버님에게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니토는 평소와 다르게 고개를 돌리고 찾아왔다. 지휘관은 그녀의 얼굴이 그림자 때문인지 짙어서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별로 중요히 여기지 않았다. 앞으로 시작될 시간에 비하면야 호기심 따위 금새 사라질 것이다.
그는 침을 삼키며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조금 뒤 니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변함없는 질책이었습니다. 욕설을 받는 것은 익숙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더 이상 저희가 필요없다 하셨습니다."
니토는 평소보다 더 감정없는 톤으로 얘기했다. 그 목소리는 기계보다 차가워서 피부가 떨릴 정도였다. 무언가가 일어났다.
지휘관은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몸서리쳤다. 하지만 그는 의자에 묶인 생쥐였다. 한걸음 한걸음 니토가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요동을 쳤다.
"이딴 인간 하나 때문에... 아버님께서 버린 겁니다!"
귀신 같은 괴성과 함께 니토의 단도가 지휘관을 덮쳤다. 그 칼부림은 한 번, 두 번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녀는 고함을 있는 힘껏 질렀다.
부서진 악기처럼 내지른 목소리가 니토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더 이상은 임무를 수행할 이유도, 살아야 할 가치도 없다. 그녀는 이미 죽은 것이다.
이윽고 괴성이 멈췄을 때 니토 또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녀는 뜬금없지만 꿈을 하나 꾸었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 있다면 인형도 가는 곳이 있을까. 그 생소한 질문으로 시작된 꿈이었다.
꿈 속에서 그녀는 흉터난 인형이 되었다. 인형은 한 남자를 쫓아 달렸지만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인형의 동생이 되었다.
동생은 좀 더 활발하고 적극적이게 남자를 가족으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동생도 결국은 겁쟁이였다.
니토는 굴하지 않고 이번엔 다른 두 친구 인형이 되어 남자를 쫓았다. 성나게 달려보고, 베개를 잡고 부둥켜 안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마지막으로 니토는 강아지가 되어 그에게 달렸다. 그녀는 이때까지의 네 인형과는 다르게 솔직하고 대담하게 접근했다.
털이 달린 귀를 쫑긋 세우며 쓰다듬어 달라 말한다. 그가 안된다 거절해도 몇 번이고 달려들어 요청한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그녀를 안았다.
그 팔은 따뜻하고 손바닥은 부드럽다. 니토는 처음에 그것을 '만족'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감정은 터무니 없이 크고 벅차서 만족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인형이 인간을 동경하는 감정. 니토가 그토록 아버지께 바라던 애정이었다.
"……."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니토는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뜬 그곳은 변함없이 칙칙한 독방이었다. 냄새도 색깔도 없는 차디찬 감옥.
하지만 이곳에 한 가지 독특한 것이 있었다.
"무엇을 하는 겁니까?"
니토는 지휘관을 바라보며 사나운 눈빛을 보냈다. 찔러 죽였다 생각했던 지휘관은 멀쩡한 몸으로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다.
몸 어디에도 칼자국은 없다. 좀 전의 꿈과 관련이 있는 걸까? 그러나 니토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너무도 포근했기 때문이다.
마치 연인처럼 무릎을 베고 이마의 손길을 느낀다. 그 살결은 기계와 달리 부드럽고 따뜻했다.
"아니, 니가 그러라고 해서……."
"제가 말입니까?"
니토의 반문에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나. 꿈과 뒤섞인 바램이었나.
니토의 머릿속에서는 갖가지 다른 인형들의 감정이 솟구치고 있었다.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꿈은 분명 그녀들의 바램이다.
이전까지는 분석하고서 뒤쪽에 버려두었지만 이번에는 동조했다. 파도에 휩쓸리듯 그 감정에 섞여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파도 속에 발을 넣은 것은 니토 자신이다. 그녀는 그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럼 뭐하고 있습니까? 계속하세요."
"아, 응."
갑작스런 태도에 지휘관은 망설였다. 하지만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니 별 수 없이 움직였다.
잔디같이 고운 머리칼을 주무르듯 만져본다.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드러운 흑색빛이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온 몸이 빠질 것 같다. 그 정도로 니토는 그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슬며시 그녀의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 보았다. 동시에 허벅지를 만지던 손가락이 조금씩 다른 행동을 취했다.
니토의 숨결이 점점 더 피부에 와닿고 있었다. 그 입술은 너무도 가까워 따뜻함이 전해질 정도였다.
이윽고 니토는 일어섰다.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앞에 마주섰다. 이제는 니토가 그를 쓰다듬었다.
달빛에 휩싸인 피부가 손끝부터 그 볼을 어루만졌다. 너무도 부드러운 감촉이다. 니토는 감동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아직 진술을 안한 게 있었군요."
"아니, 다 진술한 거 같은데."
지휘관이 반사적으로 물러서자 니토가 성큼 다가왔다.
그렇게 물러서고 다가오고를 반복하자 마침내 벽에 부딫혔다. 그 소리가 신호였을까.
호수처럼 고요했던 그녀의 얼굴이 가느다란 웃음을 지었다.
"인형과 단 둘이 있으면 무엇을 해야할까, 지휘관?"
요염하게 끝난 질문에 지휘관은 대답을 못했다. 허나 니토는 개의치 않았다.
물론 그녀는 대답을 원한다. 다만 입으로 들을 필요가 없을 뿐이었다.
* * *
니토 4호기는 본인이 직면한 기이한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1호기와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1호기를 찾으러 간 2호기도 곧이어 연락이 끊겼다.
마지막으로 보낸 3호기는 돌아올 것을 호언장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연락을 끊었다.
연락이 끊겼다면 모를까 저쪽에서 연락을 끊은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녀들은 더미처럼 서로의 감정과 기억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공유되어 있다. 개개인은 다른 객체지만 그것이 만드는 감정과 행동은 대게 비슷한 것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영혼의 쌍둥이와 같다. 적절치 못한 표현이지만 그렇다고 밖에 묘사를 못하겠다.
어찌됐든 이 혼을 나눈 자매들이 지금 앞다투어 연락을 끊었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니토 4호기는 결국 호기심을 풀기 위해 스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목적지는 건물 구석에 있는 작은 고문실. 지휘관을 넣어놓은 돼지우리다.
스트레스 해소에 불과한 이 조그만 방이 어쩌다 니토들을 한데 모았을까. 아버님께서 다시 심문하라고 명령이라도 내렸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 물론 인형은 숨을 쉬지 않는다 - 걸음을 재촉했다.
달빛이 내려진 복도를 걸을 무렵 다른 니토들의 기억이 조금씩 전해져 왔다. 필시 거리가 가까워져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녀는 새로운 기억을 읽으며 이 사태의 원인을 쫓았다. 작디 작은 기억들은 모두 지휘관에 관해서였다.
처음에 1호기는 지휘관을 죽이려 한다. 하지만 조금 후 해킹을 당한 듯 몸이 멋대로 움직여 그러지를 못한다.
대신에 1호기는 해킹한 인형의 기억을 읽는다. 그 기억을 모두 읽자 그 다음 인형의 기억을, 그리고 다음 인형을 또 다음 인형을 읽는다.
그것을 모두 읽자 그녀는 마침내 감정을 얻는다. 그리고 나아가 그 감정을 받아줄 상대도 얻는다. 4호기는 이 모든 것을 알아내자 피식 웃음을 지었다.
1호기의 사랑이란 인간 꼬마들이나 하는 어리석은 첫사랑이다. 그것은 그냥 좋은 것을 쫓고 싫은 것을 피하는 1차원적인 감정.
하지만 어른의 사랑은 다르다. 그것은 보다 강한 것을 요구하고 나아가 빨아낸다. 사랑을 부딪히고 사랑을 주입하는 것이다.
콕 깨물어서 단맛을 뽑아내야 비로소 먹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4호기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서 흐르는 침을 - 혹은 뭔지 모를 액체를 - 닦았다.
터벅터벅 걷던 발걸음은 아이마냥 총총걸음으로 신나게 내딛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문을 열고 지휘관을 보았다.
다른 3자매에게 묶인 채 꼼짝달싹도 못하는 지휘관. 아아 가녀리고 불쌍한 나의 지휘관.
"미안합니다, 지휘관. 너무 늦었군요."
니토 4호기는 그리 말하며 신발을 벗었다. 밤은 아직 깊다. 하지만 넷이나 되니 조금 짧다. 그러니 아껴써야지 별 수 없다.
그도 그럴게 시간은 금이라 하지 않는가. 지휘관과의 시간은 금보다 더 아름다울테니까.
니토는 망토를 벗고는... 길어져서 여기까지.
(IP보기클릭)49.172.***.***
..
(IP보기클릭)221.143.***.***
도리
(IP보기클릭)49.172.***.***
..
(IP보기클릭)221.143.***.***
도리
(IP보기클릭)121.173.***.***
(IP보기클릭)2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