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휘관이 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적어도 PKP에게 지휘관이란 사과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거 없어도 나 혼자서 충분하다. 아무 걱정 말아라, 지휘관."
퉁명스러운 말투와 다르게 그녀는 지휘관을 다독이고 보듬어주었다.
그것이 PKP와 그의 일상이다. 다른 인형들이 전역에 나갈 때도.
"미안해, PKP. 이번에도 작전보고서 밖에 줄게 없어."
"마침 조용히 있고 싶었던 참이다. 아무 걱정 말아라, 지휘관."
새로운 의상을 구할 때도.
"미안해, PKP. 기껏 축제 의상을 구했는데 여름도 얼마 남지 않았네."
"지금부터 즐기면 된다. 고맙다, 지휘관."
PKP는 우왕좌왕하는 그의 팔을 잡으며 늘 한 발짝 리드해주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서먹해도 가까이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끈끈한 관계.
PKP가 부관직에서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게 바로 그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이가 좋다한들 시간은 누구에게나 야속하다.
"미안해, PKP. 귀중한 휴가가 나 때문에 낭비됐네."
"그런 말할 여유가 있으면 먹고 기운이나 차려라, 지휘관."
병원에서 사과를 깎아주며 PKP는 차분한 태도로 지휘관을 훈계했다.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진 그리폰의 병실은 그녀의 마음처럼 조용하고 차가웠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으니 건강을 해친 거다."
"미안해, PKP."
포크로 찍은 과일을 먹이며 PKP는 그가 잠들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간호한다고 해도 대화를 여는 쪽은 물론 지휘관이다.
그가 입을 열고 그녀는 귀로 듣는다. 그가 웃고 떠들면 그녀가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관계는 너무도 오래되어서 이미 PKP는 변할래도 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으리라. 그녀가 무덤을 보게 되었을 때.
"......"
볼품없는 이름과 연도만 적혀진 묘비는 그의 인생만큼이나 초라하고 별 볼 일 없었다.
기일이 되도 누구 하나 와주지 않는 평범한 죽음. PKP는 그곳에 서서 몇날 몇일을 멍하니 있었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무덤은 과묵하다. 사과도 하지 않고 표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PKP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미안해, 지휘관."
머리에 수북이 쌓인 눈이 녹아내릴 무렵 PKP는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부끄러워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평생을 미루게 돼 버렸어.
탄약통을 준비해 줘서 고마워, 지휘관.
보고서를 만들어 줘서 또 고마워, 지휘관.
몇 날 몇 일 모은 돈으로 새 옷을 사줘서 고마워, 지휘관.
부관을 바꾸지 않은 것도, 반지를 준 것도 너무나 고마웠어, 지휘관.
정말로 고마운 것 투성이었어."
PKP는 묘비를 바라보며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렇게나 쉬웠건만 왜 있을 때 얘기해주지 못했을까.
사람에게만 있다는 후회라는 감정이 지금 느끼는 그것인가 보다. 겨울을 참아야 봄이 오듯, 가고 나서야 소중한 것을 알았다.
봄이 곧 지휘관이었나 보다.
PKP는 반지를 빼서 묘비에 놓았다.
이제 이것을 보아도 기뻐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축제 의상도 경호 의상도 고이 접어서 가지런이 정리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전까지는 혼자서 쉬고 싶다. 그래, 어딘가 여행을 가보자.
그리하면 지휘관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아지겠지. 많고 많아서 하루 종일 얘기하면 더 이상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마지막 비밀을 꺼내볼까.
사랑해줘서 고마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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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이 떠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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