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의 장(고바야카와 다카카게)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5대로 중 한 명이었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죽었을 때, 시대의 현인이 죽었다는 애도가 많았음.
- 쥬코쿠 10국 태수였던 "모리 모토나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무수한 전공을 세움
* 수군을 이끌고 오우치 가문의 "스에 하루타카"를 격파.
* 무라카미 수군을 모리군으로 수용...(임진왜란 때 구루지마 미치유키, 미치후사 형제는 무라카미 수군이었음)
- 쥬코쿠로 침공해 온 히데요시와 평화교섭을 진행.(빗츄.다카마츠성 수공전).
이 직후 노부나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여 회군하는 히데요시군을 추격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일 때,
"맹세를 쓴 종이의 피가 마르기 전에 맹세를 어기는 것은 불의한 일"이라고 주장.
* 참고로 다카카게의 형인 "킷카와 모토하루"는 히데요시를 끔찍히도 싫어했다고 함.
세키가하라에 모리군을 끌고 왔다가 서군을 배반하고 출병하지 않은 것은 "킷카와 히로이에"...모토하루의 아들임.
- 모리 가문에 불똥이 튈 수 있는 분란을 피하기 위해 네네의 조카를 양자로 삼음...이 인간이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임.
- 규슈에서 농민봉기(잇코잇키)가 일어나 그 지역 다이묘(삿사 나리마사)가 이를 진압하지 못하자
쿠로다 칸베에와 함께 이를 진압함.
말하자면,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의리 있고, 지략에도 능통하며, 대국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현인으로
살아있을 때도 칭송받았고, 죽어서도 존경받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 당시 히데요시가 폭정을 하던 때라서, 다카카게가 죽은 것을 두고 쿠로다 칸베에가 많이 슬퍼했다고 합니다.
다카카게 사후, 남은 5대로 자리는 "우에스기 카케카츠"에게로 돌아갔고,
우에스기 가문은 영지를 에치고에서 아이즈로 교체하게 됩니다.
이 때 영지 교체를 하면 거둬들인 세금을 반 정도 남겨 교체해 오는 다이묘에게 줘야 하는 관례를
나오에 가네츠구가 깨 버립니다. 걷은 세금 전부를 들고 아이즈로 이봉한 것이었지요.
에치고로 들어온 다이묘는 "호리 히데마사"...만화 센고쿠에 나오는 "호리 큐타로"와 동일인물입니다.
이 히데마사가 이에야스에게 보고를 하지요.
........."우에스기에 불온한 기운이 있다..."라고.
즉, 다카카게의 죽음은 적게라도 [도쿠가와의 아이즈 정벌], [세키가하라]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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