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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장 ― 융합
1
선명히 불타는 서쪽 태양이 늘어선 건물 그림자에 숨어 보이지 않게 되고, 가라앉는 그것을 대신해 동쪽 하늘이 밤의 색을 띠기 시작한다.
천천히 바뀌어가는 하늘의 색채는 낮을 들이마시고 밤을 토해내는 심호흡 같다.
신카와하마 역 앞에 펼쳐진 번화가에선 역 건물 위에 있는 커다란 빌딩을 중심으로 몇 개의 음식점과 상점들이 왁자지껄하게 큰 길을 색칠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 약간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번화가라 부르기엔 퍽 한적한, 그림자를 휘감은 듯한 골목길이 이어진다.
그런 어둑어둑한, 저렴하게 생긴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한 길을 발켄하인과 레리우스는 서둘러 달리고 있었다.
“레리우스!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해라! 어디로 가는 거냐?!”
달리는 것 자체는 레리우스보다 발켄하인 쪽이 압도적으로 빠르다. 목적지를 알지 못해 제칠락 말락 하는 어중간한 속도를 유지해야하는 것에 짜증을 내며, 발켄하인은 한 걸음 앞서가는 레리우스에게 고함쳤다.
바로 전 폐빌딩에서 본 검은 그림자는 마법에 의한 것이었다. 술자의 얼굴은 발켄하인도 레리우스도 확인하진 못했지만, 요 최근 신카와하마에 나타나 며칠 전 키이로와도 접촉한 마술사 스피너 스페리올의 짓이란 것까진 바로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리우스는 그 스피너 스페리올의 짓일 터인 꿈틀대는 어둠을 쫓으려 하지 않고 빌딩을 나와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한 건, 레리우스가 이 사건에 관해 이미 흥미를 잃고 돌아가는 중은 아닐 거라는 것이다. 무언가 목적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남자가 이렇다 할 지시도 없이 자기 다리로 달릴 리가 없다.
“아까도 말했을 텐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그 해야 할 일 내용을 묻는 거다. 네놈 주둥이가 그 좋아하는 인형보다 잘 움직인다면 어디서 무엇을 할 셈인지 그 목적을 빨리 말해라!”
“…진(陣)의 파괴다.”
“뭐?”
일일이 말이 너무 짧다. 발켄하인은 협박하는 듯한 기세로 다시 한 번 물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레리우스가 갑자기 방향을 튼 탓에 한 순간 반응이 늦어 약간 다리를 서둘렀다.
숨기듯 덮은 눈으로 목적지를 바라보듯, 레리우스는 약간 턱을 들어올렸다.
“스피너 스페리올은 이 근처에 자신의 마법을 강화하기 위한 진을 펼쳐뒀다. 진을 파괴하지 않는 한 주변 일대는 놈의 몸속과 마찬가지지. 따라서 파괴한다. 진이 소멸하면 키이로가 스피너에게 공격을 가한다. 그 때까지의 시간은 아까 그 소년과 흡혈귀가 벌어줄 거다.”
냉철하고 무정한 목소리는 똑바로 단언했다. 스피너와 어둠을 쫓아간 소년과 흡혈귀는 시간벌이용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신들이 진을 파괴하고, 키이로 혹은 자신들이 스피너에게 도달할 때까지의.
죽어있으면 그뿐. 살아있었다 하더라도 그뿐이다.
발켄하인은 무의식중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 일행에 대한 동정심 따윈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레리우스의 지금 같은 발언엔 번번이 불쾌감이 느껴졌다.
저 남자의 눈에 세계는 어떤 식으로 비치는 것일까. 그 감각은 분명 이후 얼마나 긴 삶을 살게 되던 공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진은 어디에 있지?”
“첫 번째는 이 앞이다. 나머지는 네가 진을 파괴하는 동안에 찾아두겠다.”
막힘없이 레리우스는 말한다. 과연 진의 파괴는 내 몫이로군, 하고 발켄하인은 이해했다.
“진의 파괴방법은?”
“술이 걸려 있는 장소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면 된다. …전문분야잖나.”
담백한 말투가 이렇게까지 기분 나쁘게 들리는 남자도 많지 않다. 이쪽을 향했다고 감각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레리우스의 한 마디를, 발켄하인은 거칠게 코를 울리며 떨쳐냈다.
좁은 뒷골목에도 허연 가로등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밤의 장막이 내려온다.
레리우스와 발켄하인은 때때로 그 이상함에 돌아보는 인간들의 눈을 무시하고, 밤을 시작하려 하는 거리를 그 속도에 비해선 실로 고요하게 달려 나갔다.
2
하늘이 저녁과 밤의 두 가지 색으로 물든다.
서쪽에 태양, 동쪽에 달. 한창 모습을 바꾸는 중인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없이, 나오토는 허연 가로등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 뒷골목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긴 머리카락을 금실 리본처럼 휘날리며 달리는 라켈이 있다. 다른 데선 본 적도 없는 금색 눈동자는 격렬하게 전방을 살펴 나오토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킨다.
목적지는 당연히 스피너가 있는 장소다.
스피너의 어둠이 사야를 데리고 사라지고, 나오토가 그것을 옥상까지 쫓았지만 놓친 후. 뒤늦게 옥상에 올라온 라켈은 바로 그 자리에 마법진을 그려 스피너의 추적을 시작해주었다.
이유는 딱히 사야가 걱정되어서 같은 게 아니다. 아니, 어떤 의미론 걱정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재빠르게 그 기묘한 붉은 문자로 나오토는 이해할 수 없는 문양을 늘어세우며 라켈은 배어나오는 초조함을 목소리에 담아 중얼거렸다.
“스피너가 노린 건 분명 소울 이터야. 목적은 모르겠지만…”
그 남자의 목적이, 나오토나 라켈에게 있어 달가운 것일 리가 없다.
서둘러 마법진을 완성시켜 그 중심에 서 바람을 모아 잠시. 감지한 아오의 기척을 똑바로 감각에 새겨 넣어 그것을 더듬어가듯 라켈은 스피너를 쫓고 있다.
기분이 너무 앞서나간 탓에 가끔 다리가 얽혀가며 나오토는 피로와는 다른 답답함에 호흡을 거칠게 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귀찮아진 건가. 일이 잘 풀리질 않는다. 더 성가신 방향으로만 굴러간다. 그런 감각에 나오토는 짜증이 나 으르렁거렸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그 바보 같은 여동생 때문이잖아!’
소울 이터인지 뭔지 모르겠다만 그놈의 드라이브에 여동생이 홀렸단 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주변이 어질러져버렸다.
라켈과 함께 사도를 사냥해 힘을 기르고, 스피너를 쓰러뜨리고. 1년 이내에 아오를 손에 넣어 인간으로 돌아간다.
이 시점에서만 봐도 상당히 귀찮은데,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찾아온 여동생이 휘말리기까지.
‘얌전히 아마노호코사카네 집에 처박혀있기나 할 것이지!’
어때서 그 녀석은 언제나 쓸데없는 짓만 해대는 건가.
무의식중에 혀가 또 한 번 불평의 소리를 낸다.
그것을 나무라듯, 라켈이 날카롭게 목소리를 냈다.
“찾았어, 나오토.”
라켈의 목소리에 깨어나듯 나오토의 눈과 의식은 현실을 향했다.
도착한 곳은, 번화가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근처에 있는 빌딩 건설현장이었다.
빌딩 주변은 하얀 임시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건너에 얇은 녹색 덮개를 뒤집어쓴 공사용 발판이 높게까지 짜여있다.
건설이 예정된 빌딩은 상당히 높이가 높은 모양인지, 발판은 제법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것을 올려다보고, 나오토의 시선이 방황했다.
“이 안이냐…”
다행히 오늘은 휴일인지, 혹은 무언가 트러블이라도 있었는지, 현장엔 사람의 모습은 없었다.
점점 어두워져가는 시각이라곤 해도, 주변은 아직 어슴푸레 밝다. 하지만 발판 안쪽은 어디까지 이어져있는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둡다. 아무도 없으니 당연히 조명은 없다. 안을 뒤지는 건 큰일일 것 같다.
그래도 찾을 수밖에 없지, 하고 나오토가 하얀 담 안쪽으로 들어가려던 것을 라켈의 손이 소매를 붙잡아 멈춰 세웠다.
“나오토. 위야.”
위. 그 말을 듣고 나오토는 빌딩을 우러러본다. 아마 8층 정도는 예정돼있는 모양이다. 나오토가 살고 있는 맨션보다도 높다.
그 가장 위, 옥상에 해당하는 부분을 라켈의 눈은 바라보고 있었다.
나오토는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여기선 옥상에 누가 있는지 어떤진 알 수 없다.
하지만, 갑자기.
오싹.
하고, 무시무시한 오한이 나오토의 등골을 훑었다.
“윽…”
무심코 나오토는 겁먹은 숨을 삼킨다. 굉장히 불길한 느낌이 든다.
‘기분 탓인가? 라켈이 저러고 있으니 영향을 받아서…라던가.’
혹은… 이것도 흡혈귀의 피가 섞인 탓일까.
무언가가 있다. 그런 기분이 지워지질 않는데다, 지금은 그 직감을 간단히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상식과 이성이 지배하는 상황이 아니다.
“라켈.”
건설중인 빌딩을 올려다보며 나오토는 빠르게 불렀다.
그 의도를 라켈은 곧바로 읽어내, 스윽, 하고 미끄러지듯 나오토의 팔을 끌어안는다.
찰싹 달라붙은 몸의 얌전한 감촉에 무심코 나오토는 몸을 딱딱하게 긴장시켰다.
자신이나 자신 주변에 있는 남자 놈들과는 명백히 다른, 부드럽고 왠지 희미하게 달콤한 소녀의 기척이 바로 옆에,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이다. 약간 긴장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충분히, 주의해.”
라켈은 가슴팍에 뺨을 갖다 대는 듯한 자세에서 고개를 들었다. 진지한 눈빛 속에 약간 당황한 나오토의 얼굴이 비치고 있다.
“커다란 힘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게 느껴져. 스피너는 정말 강해. 당신 한 명의 손으론 감당할 수 없어. 그걸 잊지 마. 알았지.”
“어, 어어.”
겁주는 듯한 라켈의 말에, 나오토는 몸속을 바늘 한 개가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부터 향하는 곳엔 그 스피너가 있다. 사야를 되찾아야 한다는 감정만 앞서 있었다만, 자신이 그 남자의 앞에 서서, 싸워서,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자각은 나오토에게 공포를 주었다. 하지만 기분 나쁜 공포가 아니다. 이것은 필요한 공포다.
겁 없이 달려들어도 될 상대가 아니다.
“똑바로 붙잡고 있도록 해.”
그리 말하고, 라켈은 입술을 앙다물고 의식을 집중시켰다. 감각이 맑아져간다.
라켈의 발치에서 선풍이 소용돌이쳤다. 하고 생각했더니, 곧바로 그것은 광풍이 되어 날뛴다. 그리고 단숨에 라켈과 나오토의 몸을 하늘 높이 불어 올렸다.
바람을 휘감고 펄쩍 날아올라 내려선 빌딩 옥상은, 건설 중임에도 불구하고 똑바로 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잿빛의, 아마 이제부터 도장이니 뭐니 손을 댈 휑한 콘크리트가 깨끗하고 평평하게 펴져있다. 그걸 철골 발판이 빙글 둘러싸, 간소한 링처럼도 보였다.
목표 인물은 찾을 것도 없었다.
지상에 있었을 때보다도 약간 차가운 바람이 강하게 불어치는 가운데, 그 남자는 여유롭게 옥상 중앙에 진을 치고 서있었다.
검은 고급 양복으로 몸을 감싼 마른 체구, 쓸어 붙인 잿빛 머리칼, 뺨에 크게 새겨둔 흉흉한 문신.
예리하게 치켜 올라간 째진 눈은 차갑고, 입가엔 가느다란 냉소를 띠었다. 스피너 스페리올은 나타난 나오토와 라켈을 조금도 놀란 눈치 없이 쳐다보고, 긴 손발을 정중히 움직여 깊게 경례했다.
“또 뵙게 되어 기쁩니다, 라켈 알카드. 다시 봐도 당신의 아름다움엔 눈이 휘둥그레지는군요…. 오늘밤은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에서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을 숙인 자세 그대로 고개만을 들어 이야기하는 스피너의 입가에서 뱀 같은 혓바닥이 보였다.
그 뒤쪽에, 뭔가 거대한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해는 그다지 더 지지 않았는데도 빌딩 옥상은 지상보다도 훨씬 어둡게 느껴졌다. 어슴푸레하게 잔광을 띤 하늘이 가깝기 때문일까. 선 모습은 역광을 등진 그림자 같았지만… 눈을 집중시키는 동안에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해진다.
“윽…”
무심코 나오토의 입에서 혐오를 담은 신음이 흘렀다.
벌레다. 그것도 지금까지 나오토가 봐온 스피너의 사도와는 규모가 다르다. 크다.
키가 큰 스피너보다도 훨씬 높은 위치에, 둥글고 검붉은 눈이 파고든 머리통이 있었다. 반들반들 매끄러운 머리엔 크게 호를 그리는 턱이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어, 그것이 놈이 자랑하는 무기란 것은 일목요연하다.
갑충 같은 질감의 시커먼 피부를 가졌지만 몸통은 약간 길고, 상체를 들어 올리듯 몸을 일으킨 상태다.
그 몸통을 따라 갑각류 같은 완강한 다리가 6쌍, 합계 12개 나 있으며, 위에서 두 번째 다리가 똑바로 끌어안듯 가느다란 소녀를 자신의 몸에 고정시켜두었다.
“사야!”
나오토가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벌레에게 붙잡힌 소녀― 사야에게 의식은 없다. 꽃 색 같은 옅은 색채의 기모노를 두른 가느다란 팔이 힘없이 늘어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토는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사야의 머리 위에 보이는 숫자는, 엄청난 기세로 상승하고 있었다.
“뭐야, 저거… 왜 사야의 생명력이 뛰어오르는 건데?”
마치 망가진 측정기 같다. 때때로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곧바로 빨라졌다가 하는 불안정한 페이스로 숫자는 점점 늘어간다.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다, 했다가 나오토는 떠올린다.
바로 최근에 보지 않았다. 사야가 나오토의 집에 찾아왔을 때, 나오토의 생명력을 빼앗아 죽여 버리려 했을 때. 그 때도 사야의 머리 위 수치는 상승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같은 말도 안 되는 페이스는 아니었지만.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건가? 저 벌레에서?”
“아니야.”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뱉은 나오토에게, 라켈이 엄하게 부정했다.
“당신 여동생이… 그녀에게 깃든 소울 이터가 빨아들이고 있는 건, 이 빌딩 주변에 있는 인간 모두의 생명력이야.”
“뭐… 뭐, 야 그게?!”
한 순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나오토는 믿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목소리를 떨리게 했다.
“사야는 접촉한 인간의 생명력밖에 못 빨아들이는 거 아니었어?!”
분명히 라켈이 전에 그렇게 말했다. 나오토가 튕기듯 돌아보자, 라켈은 쓴 것이라도 씹어 삼키듯 표정을 비틀었다.
“그건 나오토의 여동생이 소울 이터를 제어하고 있을 경우의 이야기야. 말했지? 원래 소울 이터는 손 닿는 대로 무한히 사람의 생명력을 빼앗는다고. 테르미 사야는 의식을 잃었어. 그러니 지금, 소울 이터를 제어하고 있는 건…”
이 자리에서 그런 짓이 가능하고, 또한 그런 짓을 할 만한 인물은 한 명 뿐이다.
즉 라켈이 노려보고 있는 남자, 스피너.
“…라켈 알카드. 저는 적잖이, 낙담했습니다.”
나오토와 라켈, 두 사람의 적의와 경계를 받으며, 스피너는 비탄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손으로 눌렀다. 펼쳐진 가느다란 손가락은 마치 거미 다리 같았다.
“당신 스스로 저를 쫓아와주신 것, 지극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하오나 이 스피너 스페리올, 다음에 당신과 만날 때엔 『진짜 쿠로가네 나오토』를 대동해주십사 부탁드렸을 터. 그런데…”
각이 진 가느다란 몸의 어깨를 과장스레 떨구고, 스피너는 라켈에게서 나오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는 동안에, 눈빛은 급격히 식어 혐오감이 불붙는다.
“또 이런 쓰레기를 이끌고 오시다니.”
아예 생리적으로 못 받아주겠다는 듯한 눈이었다.
나오토는 마음 깊이 경멸하는 듯한 스피너의 눈을 째릿 되돌아본다. 쓰레기 취급을 달게 받을 생각은 없다만, 그런 값싼 모멸 따위 어찌되든 좋았다.
“뭘 기대했는진 알 바 없는데, 내가 정진정명 『진짜 쿠로가네 나오토』거든. 그딴 것보다 너, 빨랑 내 여동생이나 풀어주시지!”
신중히 간격과 상대의 반응을 살피면서도, 나오토는 분노의 감정에 따라 고함쳤다.
그걸 스피너는, 뺨의 커다란 문신을 일그러뜨리며 바라본다. 굉장히 질색한 듯한, 동시에 너무나 추악해 지겹다는 듯한 표정이다.
“공교롭게도, 쓰레기가 내는 소리에 기울일 귀는 갖고 있지 않아서 말이지. …실례지만, 기를 애완동물은 좀 더 잘 생각해서 고르는 편이 좋겠습니다. 당신 품위마저 떨어지니까요. 통탄할 일입니다….”
“이 새끼…!”
존엄이라곤 요만큼도 인정하지 않는 담담한 혐오의 말과, 그와는 고의가 느껴질 정도로 대놓고 정반대인 라켈을 향한 태도. 대체 자신은 얼마나 가치 없게 보이는 건가 하고 나오토는 증오를 담아 적의를 토해낸다.
그런 나오토의 옆에서, 라켈이 몇 걸음 앞으로 나선다. 겁먹지 않고 턱을 들어 올려 등을 펴고, 빛나는 눈동자로 스피너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는 모습은, 소녀의 용모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당당함으로 가득했다.
“스피너 스페리올. 나도 당신에게, 나오토와 같은 것을 요구하겠어. 즉각 그 소녀를 해방하고 소울 이터를 멈춰.”
찌르는 듯한 명령조는 유무를 따지지 않는 강함이 있었다.
그 자연스런 위압감을 받고, 스피너는 어딘가 기쁘단 듯이 깊은 웃음을 띠었다.
“죄송하지만, 아무리 『진홍의 마안(당신)』의 부탁이라도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시기…. 인간의 영혼이 듬뿍 필요하거든요.”
“중요한 시기? 당신, 대체 무엇을 할 생각이지?”
라켈의 눈썹이 좁혀든다.
불길한 소리를 하는 남자였다. 거기에 악의나 해의란 감정은 없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듯한 태도와 표정으로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제 사랑하는 라켈 알카드를 위해.”
거기에 깊은 정열이라도 간직했단 것처럼, 스피너는 가슴팍에 펼친 손을 떨었다. 애절하게 눈썹을 좁히고, 어두운 눈동자가 라켈을 바라본다.
스피너가 라켈에게 향하는 시선은 변질적이며 음침해, 본인도 아닌데 불쾌감이 발치에서부터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라켈은 결코 표정도 바꾸지 않고 스피너를 바라보고 있다.
스피너는 노래하듯 뒤를 잇는다.
“제 바람은 당신… 그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아오의 예지(叡智)에 누구보다도 가까운 청순한 처녀, 그 전부를 손에 넣는 것…”
말하는 도중에, 갈증에 타듯 스피너는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핥았다. 엿보인 혀는 길고, 거기에도 시커먼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그 머리칼도, 눈동자도, 숨결도 고동도 모두! 그 전부를 제 것으로 만들어, 염원해 마지않던 아오의 심연에 이른다…. 그러기 위해서도, 당신을 붙잡지 않으면 안 돼. 하지만 평범한 벌레론 걸맞지 않아. 라켈 알카드를 맞이하기에 걸맞는, 특별한 벌레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거, 부탁한 기억은 없는데.”
“부탁받은 것밖에 준비하지 못하는 남자 따위, 모자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내뱉은 라켈의 말마저 포용하듯, 스피너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유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뒤를 이으려다, 그 표정을 아주 약간 흐렸다. 슬픔에 잠기듯.
“하오나… 이 특별한 벌레를 완성시키기 위해선, 굉장히 많은 인간의 영혼이 필요하죠. 어느 정도는 한꺼번에 채취할 수 있도록 벌레에게 인간이 모이는 장소에 둥지를 틀게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렇군, 그래서 이사를 고른 거였냐.”
하고 싶지도 않은 납득에 나오토는 목소리를 무겁게 낮췄다.
이사가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직장은 학교다. 인간이라면 매일, 잔뜩 모인다. 신카와하마 제 1고등학교는 하마터면 스피너의 사냥터가 될 뻔했다는 것이다.
“채취는커녕 둥지도 채 틀기 전에, 당신이나 거슬리는 놈들에 의해 몇 놈이나 사도를 파괴당해버려서요…. 저는 곤란한 참이었습니다. 그런 때에…”
스피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곁에 얌전히 있는 거대한 벌레를 바라보았다. 만족한 듯한 웃음으로 가느다란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저는 이 소녀와 만나게 된 겁니다…. 이 소울 이터와! 듣던 것과 다르지 않은 굉장한 힘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인간의 영혼 따위 마음 가는 대로 모을 수 있죠. 이제 사도 같은 걸 퍼뜨려서 일일히 회수하는 작업 따위 필요도 없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오늘밤 안에 다 갖춰질 겁니다. 이 밝게 빛나는 보름달의 밤에…”
촛불을 불어 끄듯, 또 한층 주변이 밤의 색채를 띠었다.
동쪽 하늘에서 달이 빛난다. 오늘의 달은 금색이었다.
스피너는 양팔을 넓게 벌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워진 공기에선 이제 완전히 밤의 냄새가 난다. 몸속을 돌게 한 뒤 기분 좋게 토해내고, 스피너는 라켈을 기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시겠습니까, 라켈 알카드?”
묻는다.
라켈은 휘청거리듯 반걸음 발을 뺐다.
그것을 쫓듯 스피너는 긴 손을 뻗는다.
“이건 운명입니다. 결코 저항할 수 없는…. 당신은 제 것이 됩니다.”
그리 선언한 순간, 주변 공기의 질감이 변했다.
무겁다. 원래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중력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잡아당겨지는 감각이 들었다. 당기는 건 스피너… 아니, 그 옆에 있는 벌레의, 그 다리 속. 사야다.
나오토는 깨닫는다.
빨려나가고 있다. 그것도, 아까까지완 비교도 되지 않는 급속도로 생명력을 빼앗긴다.
빼앗기고 있는 건 나오토뿐만이 아니다. 곁에서 라켈이 현기증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다리를 휘청였다.
금색 머리칼을 묶은 검은 리본 위에서 자릿수가 다른 생명력이 카운트다운이라도 하는 것처럼 줄어드는 것을, 나오토의 눈만이 포착한다.
“제기랄… 웃기고 있어…!”
휘청거리지 않기 위해 기운이 빠지는 다리에 힘을 주고, 나오토는 곁에 있는 라켈을 받쳐주며 목소리를 거칠게 내었다.
받친 팔에 라켈이 달라붙어 격한 표정을 짓는다.
“안 좋아…. 소울 이터를 막아야 해. 이대로는 이 주변 인간 전부의 목숨을 빨아내서, 스피너는 벌레를…”
“그게 아니지! 벌레가 어쩌고 할 게 아니라…!”
나오토는 양손으로 라켈의 어깨를 붙잡아 자신에게서 떼어내, 똑바로 서라고 그녀의 가느다란 몸을 가볍게 흔들어 힘을 내도록 했다.
라켈은 시퍼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줄어드는 라켈의 머리 위 숫자는, 멈추지 않는다. 이대로 계속 줄어들었다간 언젠가 숫자는 『0』이 된다.
“이대론, 전부 죽는다고!”
이 빌딩 근처에 우연히 있던 본 적도 없는 누군가도, 어디서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도. 나오토의 몫까지, 2배로 생명력을 빼앗기고 있는 라켈도.
그런 사태를 일으키게 놔둘 수 없다. 절대로다.
나오토는 스피너를 노려보고, 차가운 바닥을 강하게 박찼다.
다리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르게 달렸다. 몸은 가볍고, 생각 이상으로 매끄럽게 손발이 움직인다.
이거면 닿는다.
나오토는 겨우 몇 초만에 스피너의 눈앞까지 육박해, 그 주먹을 망설임 없이 들어올려….
“너, 제멋대로 날뛰지 말라고오오오오오!”
있는 힘껏 휘둘렀다.
3
축축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건 피 소리였다. 그리고, 살이 찢어지는 소리.
“윽, 크…”
치밀어 오르는 호흡과는 다른 것에, 나오토는 악문 이빨 안쪽에서 신음을 억눌렀다.
올라온 건 내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었다. 실제로 도려내진 건 갈비뼈 아래 옆구리 살로, 다행히 장기까지는 닿지 않았다.
하지만 온몸의 핏기가 단숨에 빠지고, 뒤이어 단숨에 날뛰는 듯한 고통과 충격이, 휘둘러 때리기 위해 올라간 나오토의 팔을 힘없게 떨어뜨렸다.
손이 멋대로 움직여 옆구리를 누른다. 흘긋 시선을 주자 손은 교복 아래에서 배어나온 것에 의해 붉게 젖어 있었다.
“망할…!”
나오토는 재빨리 고개를 들어 자신의 눈앞에 끼어든 것을 올려다보았다.
그 벌레다.
아까까진 더 뒤쪽에 있었을 텐데, 올려다볼 정도로 커다란 갑충인지 애벌레인지 모를 벌레가 복부에 사야를 끌어안은 채 어느새 나오토 눈앞에 있었다.
보면 볼수록 기분 나쁘고 생리적인 불쾌감이 밀려드는 추악한 외견의 벌레였다.
지금까지 대치해온 스피너의 사도와 분명하게 다른 건, 규격외의 사이즈만이 아니다.
가위꼴의 톱 같은 턱에 두껍고 예리한 다리, 빠르게 움직이는 주제에 그 소리에서 느껴지는 물리적인 무거움.
생긴 것 자체는 단순한 외견과 구조를 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간단히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방적인 무기다.
올려다본 가장 위, 유달리 두껍고 날카로운 벌레의 다리 끝이 약간 피로 젖어있었다.
말뚝 같이 생겼지만 날카로움은 창이나 낫에 가깝다. 눈에 보이는 이상으로 예리한 끝부분이, 나오토의 옆구리를 찢어놓은 것이다.
반사 덕분인지 우연한 행운인지 스친 정도로 끝났지만, 만약 저것을 제대로 맞았더라면 나오토는 떨어져나간 자신의 하반신에 절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벌레는 뒤이어 다른 쪽 다리를 휘두른다. 빠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빠르게, 나오토의 발치에서 바람이 휘몰아쳐 낚아채듯 상처입은 몸을 거두었다.
바람을 그러모으며 라켈이 달려온다.
“무모하네. 정면으로 파고드는 것밖에 생각 못 해? 얄팍하긴.”
“그럼 달리 어쩌란 거야.”
스피너가 반격할 것이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저런 속도로 벌레가 가로막을 것이라곤 생각 못 했다. 그게 얄팍한 거라고 하면 반론의 여지도 남지 않지만.
“상대가 사람 형태면 어느 정돈 체술의 응용도 가능하겠지, 근데 저렇게 대놓고 괴물이어서야…”
“벌써 약한 소리야?”
“약한 소리 한 번 정돈 하자 좀!”
윽박지르듯 건성으로 대답하고, 나오토는 다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이번엔 벌레를 향해서가 아니라, 옥상 가장자리를 향해서다.
도망치는 것을 쫓는 습성도 있는 것인지, 날카로운 다리를 콘크리트 바닥에 세우고 벌레는 나오토를 노려 돌진한다. 어깨 너머로 돌아본 그 광경은 공포영화를 방불케 했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나오토는 목적한 물건을 붙잡는다.
반쯤 억지로 잡아채 손에 넣은 것은 발판을 구성하던 쇠파이프다. 뒤돌아봄과 동시에 바로 그곳에 덮쳐든 벌레의 다리를 크게 휘두르는 공격을 옆으로 후려쳐 튕겨낸다.
“딱딱하네…!”
둔한 소리가 짧게 울린다. 감촉은 마치 전봇대라도 후려치기라도 한 것 같다. 되돌아온 충격에, 파이프를 쥐고 있던 팔이 어깨까지 저린다.
물론 이걸로 벌레 다리를 두들겨 부러뜨리겠단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 전봇대 같은 두께의 다리를 맨손으로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도 못 한다. 무기가 아니라 방어구로서 기능해주면 된다. 아무리 재생능력이 있다고 해도, 부상을 입으면 아프고 팔이 떨어져 나가면 재생할 때까지 공격도 할 수 없다.
사야가 맞지 않도록 파이프를 크게 옆으로 휘둘러 무수한 다리의 견제를 막아내고 나서, 나오토는 벌레의 배 쪽으로 파고든다.
투박한 무기를 왼손에 맡기고, 모가지를 쳐들듯 몸을 세운 벌레의 몸통을 오른손 주먹으로 후려쳤다.
“끅…”
역시 딱딱하다. 다리를 파이프로 쳤을 때에 비교하면 훨씬 생물적인 딱딱함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칫하면 주먹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
나오토는 자신의 오른손을 보고, 작게 혀를 찬다.
‘아냐…. 이런 느낌이 아니었어. 그때는 더…’
그때란, 이사를 때려서 쓰러뜨렸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무아지경이었기 때문인지 똑바로 기억나진 않지만, 몽롱한 기억 속에서, 강하고 무겁게 이사의 몸에 꽂힌 나오토의 주먹은 분명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피의 강철을 두른 것처럼.
그때처럼 할 수 있다면, 이 괴물에게도 좀 더 대미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을 나오토는 알지 못한다.
“이 새끼!”
어쨌든 박아 넣을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발, 하고 나오토가 아직 저리는 주먹을 꽉 하고 당긴다. 그 발치를, 벌레가 하반신을 꼬리라도 흔들 듯 비틀어 강렬히 쓸었다.
다리걸기보단 몸통박치기에 가깝다. 세로로 잡아 충격을 받아내려고 한 쇠파이프 째로 나오토는 인형처럼 날려진다.
말도 안 되는 힘이다. 쇠파이프가 없었으면 갈비뼈 하나는 금이 갔을지도 모른다.
추격을 경계해 나오토는 뛰어 일어난다. 하지만 그 박자에 생각지 못한 고통이 밀려와 얼굴이 일그러진다.
“뭣…”
아픈 건 가슴이나 등보다도, 옆구리다.
숨을 삼키고 나오토는 시선을 내린다. 찢어지고 피에 젖은 교복의 터진 부분을 손으로 누른다. 축축한 감촉과 함께 격통이 달린다.
나오토는 경악에 눈을 크게 떴다. 슥 들어 올린 손은, 새로 난 피에 젖어 있엇다.
“말도 안 돼…, 어째서…”
상처가 낫지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이 정도 상처는 진즉에 사라져있었을 터. 그런데 아물기는커녕 격렬한 움직임에 따라 선혈을 토해내고 있다.
나오토의 이변은 바로 라켈에게도 전해졌다. 거친 눈빛으로 라켈은 스피너를 노려본다.
“어떻게 된 거지…. 그 벌레는 대체, 뭐야?”
“어라, 흥미가 있으신가요? 이거 의외로군요. 당신 같은 고귀한 분에겐 장미나 홍차 쪽이 잘 어울립니다만.”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야!”
딱 자르듯 라켈은 목소리에 가시를 세운다.
그 목소리를 달콤한 자극으로 맛보듯, 스피너는 마음 편히 눈썹을 들어올린다.
“예에…, 알고 있습니다. 안심하시죠, 라켈 알카드. 이 스피너 스페리올, 당신에게 농담은 하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않을 테니.”
남의 불쾌감을 긁는 듯한 태도로 말하고, 스피너는 무대 위의 연기자 같은 과장스런 몸짓으로 손을 뻗어 거대한 벌레를 가리켰다.
“그 벌레는 원래, 클라비스 알카드를 상대할 예정이었습니다. 당신의 소유자는 슬프게도 그 환상생물이니까 말이죠.”
클라비스 알카드란 이름에 라켈의 어깨가 흠칫 반응했다.
나오토도 또한, 쇠파이프를 지팡이 삼아 일어나며 들려온 이름에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싸악 하고 핏기가 가신다.
스피너는 괴롭게 눈썹을 좁혀 긴 손가락을 기게 하듯 뺨의 문신을 덧그렸다.
“흡혈귀의 왕을 상대할 것이니, 당연히 필요최저한의 성질은 갖춰야겠지요. 그 벌레의 턱은, 이빨은, 발톱은… 『존재 그 자체』에 상처를 입힌다. 아무리 흡혈귀가 육체의 손상을 순식간에 수복한다고 해도, 존재에 새겨진 상처는 고치지 못합니다. …그렇죠, 라켈 알카드?”
이미 다 아는 문제의 정답을 묻듯, 스피너가 기분 나쁘도록 유연하게 라켈에게 묻는다.
라켈은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스피너의 말보다도 라켈의 그 표정 쪽이 나오토에게 사정을 쉽게 이해시켰다.
어려운 이론은 모르고 물어볼 생각도 들지 않지만, 대충 저 벌레한테 당한 상처는 안 나을 모양이다.
‘야, 야, 야, 장난이 좀 심한데…. 『특별한 벌레』가 그런 뜻이었냐.’
어지간한 게 아니면 바로 고쳐지는 몸이니 더욱, 무모하게 정면으로 달려들 수 있는 건데.
아연실색하면서도 나오토는 쇠파이프를 다시 잡고 벌레를 시야 중앙에 넣었다.
아까 스피너가 하던 말로 볼 때, 그리고 지금도 사야가 주변에서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걸 볼 때, 아직 특별한 벌레 뭐시기는 완성되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그럼, 완성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그때야말로, 클라비스와의 싸움에도 견디는 벌레가 된다는 것인가.
‘그렇게 되면, 나한테 승산 같은 건 없어…!’
위기감이 축축히 나오토의 등을 적셨다.
금속 말뚝이라도 박아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벌레는 날카로운 다리를 콘크리트에 새우고, 나오토에게로 돌진한다. 유지된 속도와 기세로 벌레는 위쪽 2개의 다리를 세워 뒤잇듯 나오토를 향해 내리쳤다.
“우, 왓…!”
망설임도 없었으며, 호흡의 리듬도 없었다. 육박해온 살아있는 흉기의 공격을 나오토는 크게 뛰어 물러나 피했다.
하지만, 너무 물러나 등이 발판에 부딪힌다.
그 머리를 노리고 정면에서 벌레의 어디 것인지 모를 다리가 내질러졌다.
주저앉듯 몸을 낮춘 나오토의, 머리카락이 약간 흩날렸다. 공포에 질려 있을 때가 아니다. 움츠러드는 몸을 끌고, 나오토는 앞쪽으로 몸을 던졌다.
방금까지 나오토의 엉덩이가 있던 장소는 휘둘러진 벌레의 다리에 의해 손쉽게 부서졌다.
손을 짚고 일어선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건가 하고 나오토가 돌아보니, 벌레의 하반신을 받치고 있던 다리 하나가 나오토의 교복을 장딴지 살 째로 콘크리트에 꿰어놓은 채였다.
“익…”
봐버린 탓에, 고통이 뇌까지 북받쳐 오른다. 꿰뚫고 선 벌레의 발끝에서 붉은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위험해…’
훅 하고 머리 위가 어두워져, 나오토는 텅 빈 머리로 돌아보았다.
먹잇감을 사로잡은 벌레가 날카로운 다리를 나오토를 노리며 들어올리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다. 막아내야 한다. 벌레를 올려다보며 나오토는 가지고 있던 쇠파이프를 더듬어 찾는다. 하지만 아까 넘어졌을 때 손에서 떨어진 모양이다. 손끝이 차가운 금속을 스쳤지만,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다.
공기가 날카롭게 갈라진다. 나오토는 숨을 멈추고 충격과 격통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 몸을 무언가가 급히 건져 올렸다.
“가가가가가가가가가!”
양치질이라도 하는 듯한 탁한 비명과 함께 끈적한 물방울이 주변에 튀었다.
그것을 나오토는 시야를 가릴 만큼 강하게 부는 바람 건너로 보고 있었다.
“아…하, 살았다…. 땡큐.”
안심한 순간 웃음이 번졌다.
나오토를 안아 올려 궁지에서 빼낸 건 돌풍을 두르고 날아든 라켈이었다.
나오토의 다리를 꿰매 고정시킨 벌레 다리는 뿌리 부분에서 절단되어있었다. 극한까지 날카롭게 굳힌 바람이 칼날처럼 베어 가른 것이다.
벌레에게서 충분히 거리를 벌린 후 나오토는 라켈의 바람에서 해방된다.
떠나가는 순간 콰아 하고 울리는 소리를 내며 밤하늘에 빨려 들어간 바람에 떠밀려 나오토는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 옆에서 라켈도 바람에 발이 걸린 듯 가볍게 휘청였다.
“윽, 하아, 하아…”
얕은 가슴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라켈이 거칠게 호흡한다. 평소와는 다른 여유 없는 표정은 계속 줄어드는 생명력이, 숫자로 치면 보통 인간의 몇 배는 되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야, 괜찮아?”
살짝 열린 입술과 창백한 뺨을 보고 나오토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라켈은 나오토를 바라보지 않고 대답한다.
“그건 이쪽이 할 말이야…. 하인 주제에, 이 내게 수고를 끼치다니…”
“의외로 멀쩡하구만.”
핫, 하고 웃어 보이지만, 나오토도 라켈 이상으로 여유 같은 건 요만큼도 없다.
“이대로 장기전으로 흘러가면 안 좋아. 어떻게든 소울 이터만이라도 멈춰야 해. 이대론 금방 나도 움직일 수 없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나오토도…”
거친 호흡을 사이사이에 끼워가며 말하는 라켈을 제지하듯, 몸을 숙여 돌아선 벌레가 또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위험해, 하고 목소리를 내며 나오토는 몸을 끌어 일으켜 오른쪽으로, 라켈은 왼쪽으로 각자 뛰어 괴물의 돌진을 피한다.
벌레는 곧바로 나오토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이쪽이 첫 번째 표적인 모양이다. 쓸어내듯 휘둘러진 다리를 한계까지 몸을 낮춰 피하고, 나오토는 낮게 달려 나갔다.
이대로 소울 이터가 생명력을 계속 빨아들이면, 이윽고 라켈의 생명력이 다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나오토도 죽는다.
아니 애초에 특별한 벌레라는 게 충분한 영혼을 모아 완성형이 되면, 대 클라비스용 벌레라 했겠다, 나오토 따윈 맥없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저 벌레 앞에선 나오토는 아주 약간 신체능력이 뛰어난 그냥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소울 이터를 멈춘다…, 멈춘다…, 하지만, 어떻게. 어찌됐던 저 벌레 놈부터 어떻게 못 하면 사야를 떼어놓는 것도 무리잖아!’
손을 뻗어 빼앗을 수 있다면 진즉에 그렇게 했다. 하지만 똑바로 사야를 구속한 벌레의 다리를 비틀어버리고 사야를 되찾으려고 했다간 그 전에 3번은 꼬치가 되어 죽을 것이다. 톱 같은 턱으로 목을 잘라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망치는 나오토를 쫓아 벌레의 턱이 덮쳐든다.
라켈이 쏘아낸 바람에 떠밀려 나오토는 가까스로 그것을 회피했지만, 바로 근처의 콘크리트가 폭파된 것처럼 씹어 으깨져 그 파편이 우박처럼 쏟아진다.
못 견디고 나오토는 양팔로 머리를 감싸며 충격에 버티지 못해 쓰러진다.
다친 다리가 방해된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는 둔해진 다리를 질질 끌며 엎드려 기듯 더욱 도망친다.
반격해야 한다, 도망치기만 할 뿐이잖은가. 어떻게든 공격을.
“나오토!”
날카롭게 위기를 알리는 라켈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에게서 날카로운 바람이 내쏘아졌다. 하지만 바람은 벌레의 튼튼한 등 피부를 미끄러지기만 할 뿐 그 살에 상처를 내진 못한다.
칼날 같은 바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등으로 받아내며, 벌레는 넘어진 채인 나오토를 노리고 두 개의 다리를 내리쳤다.
그것을 나오토는 그저, 눈뜬 채 바라볼 뿐.
벌레의 다리는 나오토의 왼쪽 어깨를 스치고, 얼굴 옆에서 콘크리트에 파묻혔다. 다른 한쪽도 아슬아슬하게 나오토의 몸통을 손상시킨 정도였다.
회피는 완전히 야생의 직감 같은 것이었다.
왼쪽 귀가 뭔가 이상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을 망연히 멀게 느끼며, 나오토는 몸 전체를 떨듯 거친 호흡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직 살아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깨닫는다.
벌레는 지금, 나오토 위에 올라탄 듯한 자세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오토의 바로 눈앞에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축 처진 사야가 있었다.
“나오토…, 소울 이터를―”
달려오려다 휘청거린 라켈이, 도중에 말을 끊었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듯한 끊김이었다.
하지만 라켈이 말하려던 내용을, 나오토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벌레의 팔을 끊고 사야를 탈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죽이는 거라면 가능하다.
사야를 죽이면 소울 이터는 멈춘다.
멈춘다.
―죽일 거냐?
목소리가 물었다.
어디서 들려온 것인가. 나오토는 그 순간, 자신 주변이 검게 닫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것에 당황했다.
쓰러져 있던 몸은 정상적으로 서 있는 감각이었다. 상처의 아픔도 없고, 벌레가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공포도 없다.
그렇다면 여긴 어디고 지금 자신은 어떻게 된 것인가.
나오토가 상황의 정리를 요구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 목소리는 곧바로 재차 물었다.
―죽일 거냐?
무엇을. 누구를.
물어볼 것도 없다. 이 상황에서는.
여동생… 사야를, 이다.
질문을 던지는 건 들어본 적 없는 남자의 목소리다. 깊고 무겁고, 힘이 있는 목소리가 묻는다.
―동생을 죽일 거냐?
“그거야… 당연, 하잖아.”
자신의 모습마저 내려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나오토는 메마른 목소리를 짜냈다.
소울 이터를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라켈도 자신도 죽어버린다. 상관없는 사람들도 잔뜩 죽을 것이다.
사야는 나오토에게 있어 부모님의 원수다. 사야 한 명 때문에 나오토의 평온했던 생활은 핏빛 참극으로 끝났다. 그 기억은 뇌수 안쪽의 안쪽에 철썩 달라붙어, 결코 없었던 일 따위로 할 수 없다.
더욱이 사야는 나오토를 죽이려 하고 있다. 당주가 되기 위해. 겨우 그 정도 목적을 엄청난 대의라도 되는 것처럼 내걸고, 나오토의 목숨을 전부 빼앗으려 하고 있다.
죽인다고 누가 비난하겠는가.
죽인다고 누가 진심으로 슬퍼하겠는가.
모두가 두려워하고, 꺼리던 소녀다.
…하지만, 그래도.
나오토는 토해낸다.
“구하는 게, 당연하잖아!!”
외친 순간, 나오토의 시야가 팍 트였다.
눈앞에는 올라타듯 다가온 거대한 벌레와, 그 복부에 의식을 잃고 붙잡힌 사야가 있었다.
상황은 아무것도, 무엇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검은 세계에서 망설이던 시간은 현실에선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거칠게 흐트러져 있던 호흡이, 빨려들듯 진정되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먹잇감을 끝장내려고, 벌레의 턱이 용수철 장치 같은 움직임으로 벌어졌다. 완만하게 호를 그리는 턱은 끝으로 갈수록 넓적하고 날카롭게 갈려 있어, 사람의 살이나 뼈 따위는 아주 손쉽게 절단해낼 것이다.
하지만 그 턱이 목을 잘라내기 전에, 나오토는 튕기듯 움직였다.
뱃속이 뜨거웠다. 몸이 안쪽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듯한 감각이었다. 움직이고 토해내지 않으면 타버릴 듯한, 초조함과도 비슷한 감각에 재촉되어 나오토는 벌떡 일어나 눈앞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으아아아아아!”
무의식적인 외침이 목에서 넘치고 있었다.
휘두른 주먹은 똑바로 벌레의 배에 꽂힌다. 그 오른팔은 새빨간 피의 강철을 두르고 있다.
다시 한 발, 이번엔 아래쪽에서 찔러 올리듯 벌레의 몸통을 후려치고, 왼손으로 벌레의 다리를 꽉 붙잡는다.
주먹은 딱딱한 벌레의 피부를 부수진 못했다. 하지만 방금 전과는 분명히 다른, 혈육의 감촉이 돌아왔다.
통한다. 벌레의 머리 위에 보이는 생명력의 숫자는 『0』이니 실제로 대미지가 발생했는지 어떤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오토에겐 그렇다는 확신이 있었다.
“사야를…”
예상하지 못한 반격에 당황한 벌레가 뒤늦게 날뛰기 시작했다.
반격하기 위해 뒤틀리는 그 거체를 억누르듯 나오토는 오른손으로도 벌레의 다리를 붙잡는다. 그리고 그 붙잡은 다리를, 있는 힘껏 당겨 찢었다.
“내놔아아아아아!!”
뿌직, 하고 딱딱한 것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며 나오토의 눈앞에서 새카만 벌레의 갑옷 같은 피부가 깨졌다. 관절을 비틀듯 힘을 주자 벌레의 다리가 더러운 액체를 뿜어내며 몸통에서 떨어져 나갔다.
역겨운 썩은 고기 같은 냄새가 물컥 눈앞에서 자욱해진다.
빼앗은 다리를 불쾌감을 참으며 던져버리고, 나오토는 사야를 끌어안고 있는 다른 한쪽 다리에 달려들어 그것도 뜯어낸다.
폭력적인 행위에 화가 난 벌레가 나오토의 머리를 노리고 턱을 휘둘렀다. 크기에 반해 움직임은 재빨라 떨어지는 단두대 날 같았다. 회피 같은 걸 하다간 미처 피하지 못한 머리 반쪽을 가져갈 것이다.
그러니 나오토는 양팔을 얼굴 옆에 가로로 들어 올려 좌우로 엄습하는 칼날을 막아냈다.
왼팔은 무사히 막아내지 못해 살에 턱이 파고든다. 하지만 뼈까지 부러지진 않았다.
“큭, 이게…!”
벌레의 턱은 그대로 무작정 나오토를 씹어 으깨기 위해 더욱 힘을 실었다.
피로 된 막으로 싸여 1밀리도 칼날을 받아들이지 않는 오른팔과는 다르게 눌리면 그만큼 살이 파고드는 왼팔의 불타는 듯한 고통에 견디며, 나오토는 턱을 꽉 밀어낸다.
그곳에 바람이 날아왔다. 금색 리본 같은 머리칼이 나오토의 시야 구석에서 흔들린다.
날아든 라켈이 벌레의 턱을 아래쪽에서 강렬하게 차올렸다. 딱딱한 소리가 나며 벌레의 힘이 한 순간 약해진다.
그 틈을 타 나오토는 절단당할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공중에서 몸을 반전시켜 라켈은 다시 한 발 턱에 발차기를 작렬시켰다. 소녀의 외견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힘은 역시나 흡혈귀다워, 벌레는 버티지 못하고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난다.
그것을 쫓아 나오토가 발을 굴렀다.
말뚝 같은 다리가 가로로 휘둘러져 덮쳐든다.
그것을 들어 올린 오른팔로 받아내고, 나오토는 품으로 파고들듯 벌레의 배 쪽으로 접근한다.
약간만 실수해도 밟혀 으깨질 것이다. 마구 꿈틀대는 무수한 다리에 꿰뚫리면 끝이다. 조금 전에 관통당해 아직도 피에 젖어있는 다리를 강제로 축으로 삼아 무릎을 꽂아 넣었다.
또 딱딱한 피부가 갈라진다.
다시 한 발, 두 발. 계속해서 무릎을 꽂아 넣고 이번엔 주먹으로 바꿨다.
벌레의 턱이 미친 듯이 날뛰어 복부에서 분투하는 나오토를 옆으로 쳐 날렸다.
진자처럼 날아가던 나오토를 놓치지 않고 라켈의 바람이 받아낸다. 그 틈을 노린 벌레가 라켈 또한 턱으로 쳐서 날려버렸지만, 그러는 동안에 나오토는 벌어진 거리를 뛰어넘었다.
라켈의 바람이 등을 밀어준다. 달리는 나오토는 바람과도 같은 속도였다.
미끄러지듯 방금까지 두들기던 복부에 파고들어 힘껏 오른손을 처박는다.
드디어 살이 짖이겨지는 소리가 나며 나오토의 붉게 물든 주먹이 벌레 몸속에 구멍을 뚫는다.
축축한 감촉을 질질 끌며 팔을 뽑아내자, 거기서 무거운 체액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엄청난 냄새다.
신경 쓰지 않고 나오토는 땅을 박찬다. 바람이 날개가 되어주었다.
높이 뛰어오른 나오토는 벌레의 머리 위까지 도달해 이번엔 아래쪽으로 바람의 힘을 빌려 벌레의 눈알에 오른팔을 박아 넣었다.
플라스틱을 깨뜨리는 듯한 감촉 다음에 젤리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가가가각, 가가, 가각가가가가가가!”
벌레가 움찔움찔 경련하며 날뛴다. 하지만 고통에 괴로워하는 쓸데없는 반응은 없었다. 그저 나오토를 공격하려고, 그것만을 위해 벌레는 꿈틀거리며 날뛰어 나오토가 붙어있는 채로 머리를 콘크리트에 처박는다.
“…윽!”
목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이 나오토의 목에서 넘쳤다.
아픔은 멀고, 그저 무겁다. 벌레의 모든 체중에 깔려 콘크리트 바닥에 파묻힌 나오토는, 손끝도 움직이지 못하고 무참하게 박살나있었다.
‘…아냐, 움직여.’
그때완… 처음 사도를 상대해 돌더미에 묻혀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던 때와는 달리, 나오토는 벌레에게 깔렸으면서도 움직일 수 있었다.
그제서 깨닫는다. 자신의 몸은 애초에 박살나있지 않았다.
얄팍한 막 같은 것… 바람이, 나오토와 콘크리트, 그리고 나오토와 벌레 사이에 끼어들어 얇은 방호벽이 되어있었다.
‘라켈…’
숨을 쉴 수 없는 건 나오토를 낀 바람의 압박감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두려워할 것 따위 아무것도 없다.
“고맙구만…, 주인님아!”
거의 쉰 목소리로 경박하게 말을 짜내며, 나오토는 씨익 하고 입가로 웃었다.
바람이 힘을 잃듯 풀어진다. 그만큼 벌레의 무게는 늘지만, 나오토의 몸도 자유로워진다.
이윽고 바람이 완전히 흩어짐과 동시에, 나오토는 양팔로 벌레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흐린 신음소리를 흘리며 온몸에 힘을 넣는다.
“흐, 으읍… 이, 야, 아…아아아아아아압!”
포효 같은 목소리를 배 깊은 곳에서부터 토해내며 나오토는 혼신의 힘으로 벌레의 거체를 밀어냈다. 꿈쩍도 안할 것 같던 그 무게가, 나오토의 힘에 밀려 움직인다.
나오토는 온몸에 불타오르는 피가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힘이 돈다. 끓어오른다기보다는 쥐어짜내는 감각으로 나오토는 그대로 끌어안은 거체를… 들어 올렸다.
시야 저편으로 검은 그림자를 찾아냈다.
부글부글 화가 밀려온다. 사나운 분노를 불꽃같은 온도의 숨결과 함께 토해내며.
“으랴아아아아아아아아앗!”
나오토는 들어올린 벌레의 거체를 휘둘러 역겨운 것이라도 보는 듯한 눈을 하고 선 스피너를 향해 그것을 집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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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라고 긴 것 보게... 이번 장 아직 요만큼 더 남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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