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less dreams
II. why to li(o)ve
#6. Wake me up.
얄밉다고 느껴질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하늘은 그 청명함이 한이 없었다. 흩뿌려진 깃털 같은 구름은 자유로웠다. 만약 하늘로 뛰어든다면 터무니없이 폭신폭신 해서 몸이 녹아버릴 것 같았다. 그 하늘은 누구에게나 너무도 유혹적이었다.
천국이라는 단어는 하늘의 아름다움 때문에 생긴 것이 분명했다.
바람은 시원하게 불고 있었고 태양은 맹렬하기를 영원히 빛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땅에서 느껴지는 태양의 열기는 딱 사람의 마음에 활력이 드는 정도였다. 아주 좋았다.
정말이지 얄미울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그렇지만 지평선의 밑으로는 칼에 긁히기라도 한 듯 상처가 많이 나 있었다. 상처가 깊었는지, 피도 여기저기 뿌려져 있었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역한 붉은 색의 피. 질척질척하게 땅을 적시고 있었다. 그에 대조적인 상록의 숲 역시 군데군데 좀이라도 먹힌 것 같았다.
하늘 때문인지 숲은 생명의 녹 빛보다는 허공의 푸름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땅에 대한 눈물일지 싶었다.
충격과 바람. 땅은 꺼지고 부스러기들은 일어났다. 숲은 흔들리고 푸름은 더욱 짙어졌다.
"꺄아아아아아아아!"
신지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아스카의 비명까지도 똑같았다.
하나, 둘, 셋, 넷... 신지는 모두 9마리의 하얀 악마를 발견했다.
그들은 정말로 악마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에반게리온과 같은 몸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매끈한 몸에서는 유동적은 작동 모습이 보였다. 근육같이 탄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겉은 하얗다. 관절이나, 움직임이 많은 곳은 에바시리즈 특유의 검은 라텍스 재질로 방어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얀 색에 대비가 되어서 더욱 검은 것 같았다. 겉보기에는 꽤 멋있는 것 같았다. 성기사를 연상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의 머리는 멋진 몸체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의 머리에 시선이 닫는 순간 이것들은 악마라는 결론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 역시 하얀 색이었다. 그렇지만 그 하얀색은 성스러운 뭔가를 느끼게 한다기 보다는 뭔가를 감추기 위해 덕지덕지 칠을 해놓은 것 같았다. 하얗지만 더러웠던 것이다. 밑이랑 같은 하얀색인데 왜 그런 느낌이 나는지는 확실했다. 왜냐하면 그것의 얼굴에는 붉은 입술이 길게 그려져 있는 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얼굴에는 눈조차 달려있지 않았다. 그저 탐란한 식욕에 표출인 것 같은 입밖에 없었다.
그것의 입술은 악어처럼 파충류의 포식자들이 으레 그러듯이 턱 관절까지 찢어져 있었다. 포악한 느낌이 그대로 들어났다. 게다가 입술은 아까 설명을 했듯이 붉었다. 붉은 것은 피가 묻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입이 턱의 모양을 따라 위를 향해 갈라졌기 때문인데, 어찌됐든 기분 나쁜 미소였다.
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제레에서 제조, 관리 하는 에바 양산기들이었다. 더미플러그가 있어서, 그들은 파일럿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봐도 봐도 살의가 일어나는 놈들이었다. 이미 신지의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된 듯한 그들의 모습. 그들의 가증스런 동작. 그들의 죽어 마땅할 목적.
아스카는 자신을 죽이러 달려오는 악마들의 모습을 보고, 또 그들 중 몇몇과는 싸우며 고통의 비명과 증오의 악을 질렀다.
이것은 꿈이었다.
꿈과 '비슷'했다. 라는 것이 아니었다. 꿈 그 자체인 것 같았다.
기억이란 비교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전보다 나아졌다.'라는 말은 '전'을 기억하고 있어야지만 가능한 것이다.
신지는 지금 이 상황을 꿈과 비교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 상황은 신지의 '기억'이라도 복사해온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또 몰라도 신지는 변화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지의 기억 범위 안에서 모든 것이 똑같았다.
하지만 어디서 주입이라도 된 듯, 근거 없는 확신이 하나 있었다.
이것은 뭔가 달랐다.
"아스카아아아!"
신지는 목청껏 아스카를 불렀다. 그가 악몽에 빠졌을 때처럼, 애타게 아스카를 불렀다. 그녀의 죽음을 보았다. 지금은 그녀의 죽음을 예견하며 덧없이 외쳤다.
꿈속의 그녀는 나를 향해 대답해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야 이 바보야! 왜 이렇게 늦었어? 죽고 싶은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지는 처음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그 '바보'는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꿈속에서 아스카가 인간다운 말은 거의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가 말한다는 것은, 다시 신지를 불러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 줄만 알았으니까.
신지는 자신이 에반게리온 초호기를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보니 처음부터 그는 에반게리온에 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가 달릴 때, 분명 에바도 같이 달렸으니까. 새삼 손에 쥐어져 있는 컨트롤러를 발견했다.
살짝 움직이니 딸깍하고 소리가 났다. 에바의 손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렸다.
에바가 움직였다. 신지의 의지대로... 예전의 무기력한 신지는 에바엔 타지도 못했다. 그저 묵묵히 아스카가 죽는 것을 보았을 뿐. 2호기의 그로테스크한 시체를 보았을 뿐.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분명히 달랐다.
재생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갱생이란 표현을 쓰는 것도 부합할지 모른다.
에바의 다리가 움직였다. 처음엔 걸음마를 갓 배운 아기처럼 조심스럽게. 하지만 그 보폭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걸음은 어느새 달음박질이 되었다. 어느새 초호기는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내달렸다.
초호기의 낙뢰 같은 주먹이 신지에게 가장 가까이 있던 양산기의 얼굴에 떨어졌다. 인공적인 느낌마저 드는 양산기의 가지런한 이빨은 몽창 박살이 나 혀 여기저기에 박히고 말았다.
확실히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나 하면, 지금 여기 이 상황에 서있는 신지는 예전의 그 무기력한 신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더 이상 겁쟁이 울보 등신 애자 찌질이 같은 신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지는 예전의 자신에 대한 기억은 즈려밟고 지나갔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몇번이나 넘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매번 상처에 아파하고 또 상처를 두려워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났던 것이다.
신지는 숨을 들이켰다. 그러는 동시에 꿈과 같았던 기억들이 머리 속에서 회오리를 치는 것 같았다. 그런 지나온 기억의 소용돌이의 끝에는 자신이 있었다.
신지는 지금 이렇게 에바에 당당히 타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어찌됐든, 아스카를 지켜낸다. 신지의 세계를 지켜낸다. 다른 잡념은 그에게 더 이상 필요 없었다.
9기의 양산기는 수적우위를 이용해서 사방에서 그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둘의 공격범위 안에만 들면 날아드는 주먹질과, 발차기에 작살이 나고 피떡이 됐으니까.
양산기의 모습은 한마디로 걸쩍지근했다. 단단하고 탄력이 있어 보이던 모습은 없어졌다. 하얗던 겉도 피철갑이 된 상태였다. 관절은 빠지고 뼈는 아작이 난 모양이었다.
양산기들은 도저히 감당해낼 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한꺼번에 초호기와 2호기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두 거인은 각각 붉은 빛과 보랏빛을 내뿜으며 서로의 사이를 돌고 있었다.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장신구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팔다리만으로도 훌륭한 유희가 되었다.
날아드는 양산기들은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초호기와 2호기에게로 달려드는 것을 이제는 멈출 수가 없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
아스카와 신지의 목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터져 나왔다.
아스카와 신지의 공격이 번갈아 가며 일어났다. 9기의 양산기는 차례차례 박살이 났다. 그들은 땅에 부딪히며 전신의 피를 토해냈다.
"끼________이___________________익!"
양산기들이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리를 냈다.
신지와 아스카가 어떻게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들은 일순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등에 숨겨진 날개를 펼쳐냈다. 날개라기보단 행글라이더의 그것과 닮아 있었는데, 투박해 보였다.
하늘에 뛰어올라 바람을 타고 날고 있던 그들은 태양을 가리고 땅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홉 기의 양산기는 원을 그리며 활강을 하고 있었다.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아..."
신지는 탄식을 흘렸다. 분명 신지와 아스카 둘이 있으니 양산기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하려고 하는 '짓'은, 극악의 것이었다.
신지의 기억을 틀리지 않았다면(틀릴 수도 없지만), 하늘에선 이제 창이 떨어지려고 했다.
그 창의 이름은 롱기누스의 창, 대(對)사도 최강병기인 그것은 AT 필드를 무력화 한다. 사도를 해치울 수 있는 것은 에바뿐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AT 필드는 모든 통상물리적 공격을 모두 무력화 한다. 에바는 AT 필드를 가지고 있었기에 사도와 맞붙을 수 있었던 것인데, 에바에게 AT 필드를 무력화 시킨다는 것은 곧 에바를 알몸에 가깝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된다. 에바의 장갑은 AT 필드의 도움이 없이는 거대한 질량을 가진 체 하늘에서 떨어지는 롱기누스의 창을 견뎌낼 수 없었다. 장갑은 창에 에바의 몸속으로 말려 들어가겠지.
즉 지금 롱기누스의 창에 의한 공격은 필살이란 것이다.
이상의 지식은 몰랐던 신지지만 그는 그것을 몇 번이나 보아서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창이 2호기의 머리를 꽤 뚫어 뇌 속을 휘젓고, 팔을 양쪽으로 깨끗하게 가르는 것을 보아 왔었다. 그리고 그것을 또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신지는 아스카가 그런 참혹한 꼴을 안 당하게 할 수 있었다. 에바를 타고 있었다. 예전처럼 쭈그려 앉아 손을 놓고만 있던 그가 아니었다.
"뭐야?"
아스카의 의문에 가득 찬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녀도 뭔가 불길한 것을 느낀 것이겠지.
신지는 기억과 감각으로 미루어 봐 공격이 이제 얼마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호기는 고개를 숙였다.
"신지..."
아스카가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토끼와 같은 목소리였다. 겁을 먹었지만 강한 척을 하려는 것 같았다. 목소리에서는 떨림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걱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2호기가 초호기에게로 몇 발짝 다가갔다. 수줍은 듯 하기도 했다.
그리고 신지는 훗. 하고 웃었다. 그는 결심을 내렸다.
분명 저 창은 에바의 AT 필드를 부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AT 필드를 부술 뿐, 에바 자체를 박살을 내지는 못했다. 그것은 신지가 잘 알고 있었다. 2호기는 분명 그것들에 공격을 당했지만 형태가 없어지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찌른다'는 공격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하여튼 저것은 필살(必殺)의 공격이지 필멸(必滅)의 공격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에바 자체가 '장갑'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이제 2호기에게 날아들 창을 초호기로 막아주면 되는 것이니까.
9개의 창은 모두 초호기의 몸을 꽤 뚫어 버리겠지. 대신 아스카는 괜찮을 것이다.
또 그렇게만 된다면 신지는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어느새 양산기들은 모두 손에 길고 넓적한 칼 같은 것들을 들고 있었다.
그것들은 하늘을 돌며 타이밍을 점쳤다. 과연 필살이었나 보다. 여유마저 느껴지는 것은 지상에 있는 에바들로서는 전혀 공격을 할 수 없어서 이겠지.
하지만 신지에겐 이것은 목을 죄는 듯한 줄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에겐 더없이 좋은 일이었던 것이다.
신지는 아스카가 어떻게 공격을 당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후방에서부터였다. 처음엔 AT 필드에 막히는 듯 했지만, 이내 칼날 같았던 것은 창으로 변해 AT 필드를 뚫고 보란 듯이 2호기의 두부를 직격 했다.
크게 틀리지 않은 이상 그들은 이번에도 머리를 공격할 것이었다. 그렇게 당장 큰 부상을 입혀놓고 남은 여덟의 창을 이용해 에바를 완전히 파괴하겠지.
그들이 초호기를 공격할지, 2호기를 공격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초호기나 2호기는 이미 그들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고, 또 그 시커먼 칼날 같은 게 창으로 변하기까지도 몇 초뿐이지만 시간이 있었다.
즉 아스카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기회는 2번이었다. 그들이 공격을 할 때 공격을 미리 읽고 가로막을 수 있었고, 창으로 변하기 전에 또 한 차례의 기회가 있었다.
신지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양산기들은 검은 날개를 펼친 체 조금씩 활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양을 숨겼다.
공격은 조용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원을 그리며 돌다가 어떤 양산기를 시작으로 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초호기로 향해 낙하했다. 돌진이라는 표현이 옳을 수도 있다.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신지는 죽은 사람과 같은 침착을 보이며 눈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쫓았다. 그들의 공격이라면 벌써 수천 번을 보았다. 침착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긴장이 안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 아스카가 공격을 당할지 몰랐다.
첫 번째 주자가 초호기의 코 앞에 도착했을 때야 신지는 비로소 진정 웃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그들의 공격은 초호기에게로 당첨이 되었다.
"피해!"
아스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지는 굳이 피해봤자 어차피 뒤에 따라오는 녀석들에게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아스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다. 행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세상에 울리겠지. 그들은 필살의 무기를 초호기에게 쏟아 붓고 더 이상 싸울 방법이 없으니 2호기가 그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지는 맘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 미련 따윈 남지 않았다. 드디어 그녀를 지켜냈다.
신지는 칼날의 끝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초호기의 앞에 AT 필드가 나타났다. 동시에 쏜살같이 날아오던 칼날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것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부딪히는 충격음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는 고요했다.
신지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다시 피곤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오랫동안 잠에 들 수 있었다. 더 이상 꿈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꿈을 이루었으니까.
칼날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모습을 바꾸었다. 그것은 점점 창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팽팽했던 AT 필드는 액체가 되는 듯 했고, 액체에서 또 기체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공기 중에서 사라졌다.
창이 공기를 가르고, 시간은 멈춘 것 같았다. 호흡의 사이. 시간이 좌우로 깊게 늘어지는 것 같았다. 신지는 창의 정점을 보았다. 창 자체는 신지에게 가까워 지면서 커지는 것 같았지만 점은 커지지 않았다. 점은 점으로서 검은 빛을 내뿜었다.
신지는 마음이 편했다.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 전에도 말했듯이, 다소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입 꼬리는 말려 올라갔다.
그런데 창의 끝이 갑자기 신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머리는 무거워 졌다. 중력을 느꼈다. 피가 쏠리는 느낌이 났다. 눈앞을 보니 땅이 다가오고 있었다.
초호기는 앞으로 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순간 기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지는 땅에 넘어지기 직전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시간은 갑자기 몇 배나 빠른 속도로 흐르는 것 같았다. 어딘가로 말려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아까 전에 그 고요함도 사라졌다. 신지는 세찬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었다. 창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인지 귓가에 맴도는 공기의 소리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날카롭고 처량한 그 소리는 신지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신지의 동공은 확장이 되었고, 붉은 2호기의 모습이 신지에게 보였다. 데자뷰가 일어났다. 꿈 속의 그 장면이 떠오르는 듯 했다. 그리고 눈 앞에서 그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꿈에서 현실로, 잔혹함은 자연스레 오버랩이 되었다.
창이 날아들어 2호기의 머리를 뚫고 땅에 꽂혔다. 그렇지만 창은 기이할 정도로 길었기에 2호기에 머리는 아직도 창신에 매달려있었다. 2호기의 머리에는 창이 꽂혀져 있었던 것이다.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뇌수와 피는 창을 타고 조금씩 흘러내렸다.
"꺄-아아-아-, ㅡ악."
아스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명에 가까웠던 목소리는 위태롭게 이어지다가 끊겼다. 대신 욱, 하는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비정하게도 초호기의 HUD엔 2호기 플러그 내부의 모습이 팝업 되었다. 신지는 아스카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아주 감싸 쥐고 낑낑대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눈은 눈가가 찢어질 정도로 크게 떠져 있었다. 그녀의 긴 아랫눈썹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또 이를 악물고 있어서 이빨은 박살이 날 것 같았다.
"아스카?"
신지는 맥없는 목소리로 아스카의 이름을 불렀다. 신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있는 흔들리는 눈도, 그녀를 부르는 떨리는 목소리도, 그녀는 숨을 참아가며 막고 있지만 여지없이 터져 나오는 신음을 듣고 있는 귀도...
아스카는 그 와중에도 신지의 부름을 들었나 보다. 그녀는 플러그 내의 캠을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그녀의 화면에는 언제나 초호기 내의 화면을 띄우는 창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덕분인지 신지는 그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땀으로 번들번들 해진 얼굴이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그리고 태양 아래의 데이지 같은 수수한 미소가 피어난 얼굴이었다.
하지만 신지는 그 미소를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아스카는 또 저렇게 되어있지?
푹. 하고 수박이 깨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수박을 자를 때의 소리도 들렸다. 질척질척한 소리. 게다가 한 번이 여러번 들렸다. 아스카의 표정은 다시 일그러졌다.
신지는 눈을 팝업 된 화면에서 본 화면으로 돌렸다. 2호기의 배에 2개, 오른쪽 어깨에 둘, 왼쪽엔 하나. 방금 두 다리에 각각 하나씩 박혔고, 신지가 화면을 보는 그 순간에 마지막 하나가 2호기의 심장을 뚫었다.
이렇게 모두 아홉 개의 창이 2호기를 뚫었다.
아스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지의 시선은 다시 아스카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아직도 웃는 것 같았다. 그 웃음은 너무 먼 것 같아서 야속하기만 했다.
"울지... 마, 이, 바보야..."
아스카는 목을 쥐어짜며 그렇게 말했다.
다시 꿈속의 장면이 오버랩 되었다.
꿈속의 그녀. 증오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매서운 눈빛은 지옥에서나 볼 수 있는 눈빛 같았다. 낮고 어두운 그녀의 목소리는 모두들 죽어버리라고 외치고 있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결코 편안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꿈속과는 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똑같이 길고 혐오스러운 창이 몸을 꽤 뚫고 있었고, 역시 죽음을 앞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째서 거기서 웃는 것인지... 그런 모습인체로 웃는 것은 너무 맞지 않았다. 눈물이 흘렀다.
"우는구나... 하하하하... 다행이다..."
아스카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편안해 보였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보니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시원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편안한 모습을 보고 신지는 방금 전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그도 지금 아스카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아스카도 신지와 똑같이 슬프지 않았을까?
"하. 하. 하. 하. 하아, 하아, 하아~"
아스카는 웃음인지 고통에 의한 거친 숨소리인지 분간이 안 되는 소리를 냈다.
"흐, 흐. 흐. 흐. 흑, 크... 크으, 큭."
거기에 신지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소리를 냈다.
신지의 머리 속은 급속도로 공백화 되어갔다. 여기서도 아스카를 잃었다는 허무감이 몰려오고, 또 그런 길을 자진한 아스카를 보고는 이성마저 잃을 것 같았다. 도대체 그녀의 마음은 이해 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행동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결국 아스카는 잃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상실감이 극에 달했다. 막장으로 치닫는 것 같았다. 수습을 할 수 없었다.
아스카의 숨소리가 이내 멎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주황색 LCL용액으로 가득 찬 플러그 내에서 그녀의 몸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 상태에서도 그녀는 상시 켜져 있던 초호기 내부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신지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눈물로 말이 아니었다.
'내가 가니 슬퍼하는구나.'
몸은 점점 플러그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아스카는 나른함을 느꼈다. 하지만 정신은 멀쩡한 느낌. 아스카는 단 한가지의 생각만을 했다.
'이제 더는 싫어.'
그리고 아스카의 몸은 용액 안에서 사라졌다.
기적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스카가 더 이상 신지에게서 멀어지기는 싫다고 생각 했을 때, 아스카와 2호기의 싱크로 율은 400%를 돌파했다. 아스카의 육체는 LCL용액으로 변했고, 그녀의 영혼만이 2호기에 떠돌았다.
꺼져가던 2호기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2호기의 입은 열리고 피가 입가부터 흘러나왔다. 그것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초호기는 어째서인지 거기에 동조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2호기와 공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초호기 역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2호기와 초호기 모두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괴성이었다. 공룡이 울부짖는 것 같았다. 땅이 소리에 의해 진동하고 있었다.
아스카의 영혼이 초호기로 전이를 한 것 같았다.
2호기를 집중공격한 후 다시 하늘로 날아간 양산기들은 그 소리에 반응을 해 초호기를 주시하고 다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신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신지는 지금 하얗고 새하얀 무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지금 그의 사방은 공백이었으니까. 밝았지만 그림자도 없었다. 공기도 없었다. 그나마 관찰자인 신지 본인도 사라지려고 하고 있었다.
신지의 손끝에 동그랗고 하얀 구멍이 생겼다. 발 끝에도 구멍이 생겼다. 머리칼의 끝에도 구멍이 생겼다. 구멍은 검은 파장을 일으키며 빠르게 늘어났다. 어디서 ㅤㅃㅛㄱㅤㅃㅛㄱ 하고 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상상속 에서의 일이란 것을 깨달은 신지는 우울했다. 구멍은 사지에서 몸으로. 신지는 구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신지는 아스카의 냄새를 맡았다. 아스카의 향기. 아스카의 채취. 아스카의 모든 것. 아스카의 존재 그 자체. 아스카의 영혼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지금 이 공간 그 자체인 듯, 그녀는 지금 신지의 안에 있는 듯. 공기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공백일 뿐인데 아스카의 냄새를 맡았다.
머리 속엔 아스카에 대한 모든 이미지가 나타났고 공백의 세상에 현실이 덧칠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엔 다시 플러그 내부가 나타났다.
체온이 느껴졌다. 심장의 고동이 느껴졌다.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 초호기 안에는 신지 혼자만이 아니었다.
"아스카?"
아스카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컨트롤러를 쥐고 있는 신지의 손위로 올라왔다. 살포시 포개져 있는 손은 너무 따뜻했다.
신지의 등에 아스카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피부의 감촉. 부드러운 가슴이 먼저 닿았고 그 다음엔 아스카의 아랫배가 닿았다. 복근 때문에 가슴보다는 딱딱한 배였지만 역시 따뜻했다. 그리고 뱀이 감겨오듯이 온몸이 붙어왔다. 팔에는 그녀의 팔이, 허벅지에는 그녀의 허벅지가 느껴졌다. 등은 이미 뜨거울 정도였고 그녀의 얼굴은 뒤에서 신지의 어깨에 기대어진 듯, 신지의 뺨은 그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신지의 근육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경직되어가고 있었다.
"가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지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손위에서 에반게리온의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모든 양산기들이 미소를 지으며 초호기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신지. 끝까지 같이 가줄게."
식어버린 땀과 눈물로 범벅인 신지의 볼에 뜨거운 눈물이 흘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신지와 함께, 초호기가 포효했다.
초호기의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철로 된 주먹이 공기를 갈랐다.
먼저 한 마리. 초호기의 주먹에 머리가 박살이나 버렸다. 그것은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두 번째는 낮게 날아들어 초호기의 배를 물었다. 세 번째는 연달아 날아와 초호기의 어깨를 물었다.
신지는 먼저 배를 문 양산기를 해치웠다. 물고 있던 입을 힘으로 벌렸다. 계속 열리던 입은 상하로 찢어졌고,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리더니 턱뼈가 빠졌다. 그리고 신지는 찢는 것을 멈추지 않아 양산기는 결국 배 끝까지 찢어졌다.
어깨를 물었던 세 번째는 초호기의 ㅤㅊㅛㅂ에 목이 잘렸다. 얼굴 부분은 계속 어깨에 물려져 있었다. 하지만 목부터 시작한 아래 부분은 좋은 무기가 되 주었다.
신지는 날아오던 네 번째에게 세 번째를 던졌다. 네 번째는 세 번째의 시체와 함께 땅으로 떨어졌다. 신지는 뛰어올랐다. 그리고 오른발로 땅바닥에 널브러져 아직 일어나지 못한 네 번째의 얼굴을 짓밟았다. 역시 수박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섯 번째는 초호기의 공격을 약화하고자 초호기의 오른팔을 안쪽에서 물었다. 오른손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왼발로 내려찍기를 했다. 약간 굽어져 있던 양산기의 등에 떨어진 발은 거친 칼날 같았다. 양산기의 등뼈부터 갈비뼈까지 분쇄하면서 찢어버렸다. 다섯 번째는 내장을 쏟아내며 죽었다.
초호기가 오른팔을 털며 성가신 다섯 번째의 머리를 떨어트렸다. 오른팔은 너덜해졌고 흐늘거렸다.
여섯 번째가 갑자기 등뒤에서 신지를 잡았다. 일곱 번째가 신지의 앞으로 날아들며 손으로 초호기의 배를 뚫었다. 손은 초호기와 함께 뒤에 있던 양산기까지 뚫었다. 깊숙하게 들어온 팔 때문에 양산기는 더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초호기는 그나마 멀쩡한 왼손으로 일곱 번째의 목을 꺾어버리고 또 손으로 똑같이 배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배보다는 가슴부근이지만...
뒤에 있던 여섯 번째는 매치기로 쓰러트린 다음에 역시 머리를 발로 밟아주었다. 아주 많이. 곤죽이 되어 버릴정도로.
그러던 초호기를 여덟 번째가 안았다. 그리고 여덟 번째는 아주 S2기관을 이용해 자폭을 했다.
사방이 불타올랐다.
하지만 초호기는 염화 속에서도 죽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것은 불꽃 안에서 걷고 있었다. 하지만 폭발의 여운이 가시지도 않았을 때, 아홉 번째가 날아들었다. 아홉 번째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초호기와 부딪혔다. 그 결과, 마지막 양산기와 초호기는 같이 땅을 나뒹굴었다.
이윽고 도그파이트가 계속되었다. 마지막 남은 양산기는 미친개처럼 초호기에게 달려들었다. 초호기는 마직막 힘을 다해 싸웠다. 초호기도 양산기와 마찬가지로 미친 것 같았다. 그들은 서로 뒤엉켜 싸웠다. 몸 중에 성한 곳은 모두 이용해 싸웠다.
"ㅁㅁㅁㅁㅁㅁㅁㅁ!"
초호기가 폭발하듯 굉음을 내뱉었다. 결국은 초호기가 우위를 점했다.
초호기는 아홉 번째 위에 앉았다. 양산기는 거의 망가진 상태였다. 그렇지만 초호기도 역시 거의 부서지려고 하고 있었다. 양팔이나 두 다리 모두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였다.
그래서 초호기는 박치기를 했다. 땅 위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양산기의 머리를 해머로 치는 것 같이 박치기를 했다.
양산기의 피인지, 초호기의 피인지 모를 것이 초호기의 찌그러진 얼굴장갑에 잔뜩 묻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쿵. 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쿵쿵-
동작은 기계처럼 고정화되며 점점 빨라졌다. 양산기는 이미 모두 파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쿵.
그리고 갑자기 멈춰버렸다.
드디어 고장이 난 것이다. 초호기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어두워진 플러그 내에서 신지는 눈을 희미하게 뜨고 있었다. 화면은 꺼졌고, 에바도 완전히 동작을 멈춰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렸다. 그저 얄팍한 숨소리가 계속되었다.
머리 속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체속 LCL용액도 탁해져 숨을 계속 쉬는 것도 힘들었다. 힘이 너무 없었다.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느낌. 어느 때보다도 분명한 죽음이 떠올랐다.
아스카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신지는 그저 혼자서 어둠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깊고 깊은 어둠 속.
신지는 거기에 가보았던 기억이 있고, 그것을 본 기억이 있었다.
"안녕."
붉은 눈. 시무룩한 하늘색의 머리. 창백한 피부. 갸름한 턱. 유리 같은 목선. 부서질 것 같은 쇄골...
레이.
신지는 갑자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마치 오랫동안 물 속에 있다가 겨우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어느새 격투의 고통도, 수면부족으로 인한 만성 피로도, 근육통이라든지 심지어는 눈곱마저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정신은 오랜만에 맑아진 것 같았다.
"뭐야?"
신지는 자신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레이는 사정없이 바로 핵심을 말했다.
"꿈이야."
무미건조한 설명조의 목소리.
"내심 알고 있지 않았어?"
신지는 혼란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도대체 뭐가 꿈이라는 거지?"
그는 꿈이란 말에 바로 '악몽'을 떠올렸다. 하지만 또 갑자기 '꿈'이라니... 뭔가 자신의 기억이 처음부터 꼬인 것 같았다.
레이는 신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꿈이었어. 지금 네 기억속에 있는 현실은 모두 꿈이었다고. 그리고 네가 혼란스러워 하는 그 '악몽'은 말하자면 꿈 속의 꿈. 역시 꿈일 뿐이야. 지금 이 곳도 꿈속이고."
신지의 머리 속엔 의문이 솟구쳤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레이의 반응을 보고 마구잡이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럼 마지막에는 뭐야? 꿈에서 악몽으로 자연스레 빠져드는 것 같기도 했고, 그리고 또 나는 꿈속에서 움직일 수 있었단 말이야!"
"설명하자면 나는 네 꿈을 관리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꿈속에서 나는 '신'이야. 네가 마주칠 일들은 모두 내가 그렇게 되게 설정을 해두었던 것이야. 그 악몽 속으로 빠져드는 듯 한 것도 내가 그렇게 되게 해놓은 것뿐이야. 모든 것은 나의 시나리오이었어. 물론 너만큼은 네 본인이 맞지만. 하여튼 네가 보고 왔던 것은 모두 나의 창작물. 너의 기억을 토대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지만 내 오리지널도 있지. 그리고 너는 여태껏 그런 꿈속이 현실이라고 믿고 살게 된 거야."
신지는 이해를 할 수 있을 듯 했지만 아직도 어려웠다. 혼란스럽기까지 해 전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전에 꿈이라는 것 자체를 아직도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던 것이다.
"난 네가 꿈을 바로 받아드릴 수 있도록 했지. 현실 속의 네가 가지고 있던 기억중 적당한 부분의 기억은 내가 봉인시켜 버렸어. 그리고 내가 만든 꿈이 네게 남은 현실 속 마지막 기억에서 계속 되게했지. 그렇게 너는 기억상 현실에서 꿈으로 빠져드는 '틈'이 사라졌고, 네가 꿈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것을 못 알아차렸어. 꿈속의 기억이 네가 생각하는 현실의 기억으로 둔갑하기 시작했고 원래 현실 속의 기억은 거의 잊혀졌지. 그리고 너는 이 꿈이 현실이라고 착각하게 된거야. 지금도 너는 '꿈'이 현실이라고 느껴질 거야. 어쨌든 이제 꿈도 끝났으니 기억은 돌려줘야겠지?"
레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눈도 깜짝하지 않았지만 신지는 갑자기 폭풍우라도 만난 것 같았다.
신지에게 레이가 말한 현실이란 것의 기억이 몰려들었다. 그것은 신지로 하여금 단숨에 현실과 꿈을 분간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레이가 만들어낸 꿈은 바로 '꿈'이라는 기억으로 남아버리게 된 것이다.
신지는 숨을 고른 후 떨며 말했다.
"내가 '악몽'속에서 본 것. '현실'이었구나."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카를 지키지 못 한 것. 현실이었구나."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세상을 멸망 시켜버렸었어."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스카의 목을 조르기도 했었고."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또 네가 중간에 잠깐 일어났을 때는 아스카가 너를 바닷물 속으로 처넣으려고도 했었지."
신지는 분명 그랬던 기억이 났다. 신지는 그것을 꿈으로 받아드렸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끔찍했던 '악몽'들은 모두 현실이었다.
"레이. 왜 꿈을 꾸게 한 거야? 또 왜 깨어나게 한 거야?"
"그건 네가 쓰레기였기 때문이지."
레이가 사정없이 대답했다.
신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신지가 짊어진 죄악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신지. 고개를 들어. 하지만 꿈을 통해 너는 바뀌었어. 마지막에 분명 너는 아스카를 선택했고, 아스카 역시 너를 선택해 주었으니까. 마지막에 영혼의 교류를 기억해? 그녀의 말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 꿈은 끝났지만 현실은 계속 될 거야. 그러니까 울지마."
신지는 어느새 흘린 눈물을 팔뚝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신지. 기적은 꿈에서만 일어나는 거라고. 그래서 너는 꿈을 꾸었던 거야. 기적을 위해서."
신지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의 붉은 눈을 보았다. 똑같이 붉은 눈을 가진 한 소년이 떠올랐다.
"그리고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생각해. 이제 꿈이 끝났잖아."
신지는 그 기적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신지가 자기 자신을 보자 알 수 있었다.
"레이. 이만 깨어나게 해줘."
"알았어."
레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옅어지기 시작했다.
신지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큰소리로 사라져 가는 레이에게 말했다.
"고마웠어!"
그리곤 다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미안해. 나는 현실 속에서도 끝을 낼 생각이야."
신지의 숨이 멎어갔다. 죽어가는 것처럼.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Endless dreams.
외전
#2. 소녀의 꿈
언제부턴가 나는 망가져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이 분명한 경계선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을 멀리했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나는 가면을 썼다.
내숭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중인격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뭐라하든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내 눈에 그들은 그저 도구일뿐이었다.
가면도 그들을 잘 부려먹기 위한 도구 중 하나였다.
내 모습이 고약하게 변해가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았다.
일부 사람들은 나의 모습을 보고 멀리 떠나갔다. 쓸만한 말이 없어졌다는 것도 그랬지만, 하여튼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썩 기분이 좋은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기분이 많이 안좋았다. 그럴 때마다 구역질이 나곤 했다. 거부반응이었나 보다. 하지만 되짚어 보면 나에겐 나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나는 나에게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를 가리기 위해 나의 가면은 점점 교묘해졌다. 어떤게 진짜 나인지 모를 정도로.
분명 우울한 쪽이 진짜 나이겠지.
나는 점점 더 솔직하지 못해졌다.
누구든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면 어떻게든 나에게 멀어지게 하고 싶었다.
이유는 당연했다.
나는 초인이 아니다. 나도 언제나 가면을 쓰고 있을 수 없었다.
만약 그 사람이랑 같이 있다가 나의 모습이 나타난다면? 그와 있어서 너무 편한했기에 방심을 하고, 안심을 해서 그에게 나의 모습을 들어낸다면? 나의 치부를 보인다면?
무서웠다. 나를 떠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그러기 전에 멀리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나에게 다가오면 나를 파먹는 방법을 써서라도 멀어지겠금 했다.
나에겐 점점 많은 가시가 돋아났다. 나는 점점 추해졌다.
그러니까 더 멀어져. 그 누구도 나에게 다가오지마.
너무 무서워.
"히히히."
나의 웃음소리. 정말 기쁜 듯한 목소리였다.
뜸금없지만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듣는 나의 목소리와 상대방이 듣는 나의 목소리는 다르다고. 그 이유는 상대는 공기로 전해진 나의 목소리를 듣지만 나는 공기와 뼈의 진동으로 전해진 목소리를 들어서이다.
나는 그게 무서웠다.
'저 사람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이 목소리를 싫어 할까?'
하지만 지금은 '뭐 그딴 것 어때.'라는 심정.
그것은,
"하하하하하하하!"
상대방도 허심탄하게 웃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아~ 웃겨라. 토지가 정말 그랬단 말야?"
신지는 꽤나 유쾌해 보였다.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되겠구만."
"그래도 싸. 그녀석은."
나는 오늘 있었던 그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색골대마왕 같으니라고. 다시 히카리에게 걸렸다간 뼈도 안 남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신지가 나를 껴안았다.
"안녕 대신."
아아. 웃으며 길을 걷다보니 벌써 해어질 때가 되었나보다.
예전 같았으면 욕을 고래고래 하며 신지의 정강이를 부서질 때까지 차버렸겠지만, 지금은 그냥 받아드렸다.
따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내일 봐."
나는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집을 향해 멀어졌다.
신지가 안보이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레이가 거기 서있었다. 정말이지 저 여자를 보면 웃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바로 정색을 했다.
"알고 있겠지?"
레이가 말했다.
"너도 꿈에서 보았을 거야. 이 꿈의 끝을."
"그래 네가 나왔지. 그리고 끝났어. 허무하게. 그냥 너를 만나고 어둠에 빠지고 끝이라고. 무슨 짓거리야 레이? 사람을 이런 인형극 같은 놀이에 빠트리고 말야."
레이는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역시 너는 알고 있구나."
당연히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현실' 같은 곳은 레이가 만든 꿈이란 것을...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잘 있어주었는데."
레이는 나를 내리보며 말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인형극이란 것을 알면서 잘 놀아나 주었구나.'
나는 그런 그녀의 태도는 최대한 무시하려 애쓰며 말했다.
"닥치고 내 말에나 대답해. 너와 이 꿈 속의 너는 동인 인물이야?"
"아니."
"그럼 어느 쪽이 현실이야?"
"지금 눈 앞의 내가 현실에서 온거야. 너의 라이벌 격되는, 기분 나쁘지만 마음이 맞는 그런 레이는 꿈이야."
"그렇다면 여기의 신지도 꿈일 뿐이네. 그렇다면 내 악몽 속의 신지가 현실 속의 신지였어."
나는 약간 낙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녀석은 천하의 후레자식이었으니까.
"대충 알고 있었잖아."
레이가 담담히 말했다.
이렇게까지 되면 어쩔 수 없었다.
"나를 깨워줘."
"안 그래도 그럴려고 했어."
레이는 사라졌고, 세상은 칠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에필로그.
신지는 눈을 떴다.
그의 시야는 아직 흐리멍텅 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와 하늘은 볼 수 있었다. 아직은 어두운 하늘이었지만 바다와의 경계선은 빛이 나는 것 같아 분간 할 수 있었다.
뭐 그렇지만 역시 흐리멍텅 했다. 그 어떤 것도 흐릿하게 보였다.
그래도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는 깨끗하게 들렸다.
신지는 돌에 가만히 기대 그 소리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모래를 향했고 모래는 점점 선명해졌다.
파도 소리에 그의 정신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이제야 일어났구나."
그는 소리의 근원지인 해변가를 보았다. 아스카가 거기 서있었다. 그녀는 신지에겐 등을 돌리고 서있었다.
신지에게 아스카의 앞모습은 안보였다. 그래도 그는 아스카가 한 손에는 붕대를 감고 있고, 한 눈에는 안대를 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죄책감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신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여 일어났다. 옆에 돌이 있어 기댈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신지는 아스카에게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걷는 것처럼 불편했다. 게다가 모래사장이라 그런지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져 더욱 불편했다.
신지는 아스카의 뒤에 섰다. 그녀와의 거리는 약간 있었다. 신지는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아스카의 상처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미안해."
신지는 아스카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 한 마디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미안한 일이 몇천 몇만 개가 되었다. 하나하나를 떠올려 보자면 고통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잊을 수도 없었다. 그녀를 보고 있자면 모든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녀를 안 볼 수도 없었다.
말하자면 그녀를 안 보는 것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신지는 죄를 마주했다.
"미안해 라니? 나는 너를 용서 안 할거야."
아스카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으며 말했다. 그녀는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꽉 쥔 주먹에서, 치켜 세워진 어깨에서, 절대 돌아보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었다.
"난 너를 싫어한다고!"
신지는 고개를 숙였다. 예상된 말이었다. 하지만 막상 들으니 슬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말을 들으니 각오가 더 굳어졌다.
신지는 다시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딱히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스카에게 멀어지려고 했다. 그녀를 더 이상 볼 면목이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보고 싶다고 해도 보지 않는 것. 아무리 그리워도 찾지 않는 것. 악몽을 지나 겨우 현실 속에서 그녀를 만났지만 그래도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 아스카를 덜 고통스럽게 할 그것. 신지에겐 아마도 가장 고통스럽게 될 그것.
그리고 그것은 그의 끝이 될 터였다.
바람소리와 파도소리가 들렸다. 신지의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도 들렸다. 발걸음 소리는 바람과 파도의 소리에 조금씩 묻혀갔다.
아스카는 처음엔 그가 멀어져 간다는 것을 눈치 못 챘다. 그렇지만 없어져 버린 발소리와 사라지는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 보았다.
신지는 그곳에 없었다. 분명 뒤에 있어야 했는데...
아스카는 황급히 좌우를 보았다.
저 끝에서 해안선을 따라 멀어지고 있는 신지를 발견했다.
갑자기 바닷가에 한풍이 불었다. 세찬 바닷바람은 아스카의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아스카는 안절부절했다. 두다리를 동동 굴리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꿈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꿈을 왜 꾸었는지, 레이가 왜 그런 꿈을 꾸게 하였는지 떠올렸다.
그리고 아스카는 더 이상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그녀는 신지를 쫓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신지는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아스카의 발소리를 들었다.
서걱. 서걱. 모래가 무너지는 소리.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신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약했던 신지였기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주먹은 꽉 쥐어지고 흔들렸다. 하지만 그 역시 세찬 바닷바람을 느끼며 주먹을 힘없이 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추웠다.
아스카의 발소리는 계속 됐다. 헉헉거리는 그녀의 숨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발걸음 소리는 멈췄다. 신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기에 아스카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녀의 숨소리에 따라 신지의 숨소리도 커지는 것 같았다.
신지의 귀에는 그녀와 자신의 숨소리만이 들려 바람, 파도 소리도 모두 잊혀졌을 때, 신지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갑자기 아스카가 뒤에서 안아주었던 것이다. 성한 팔은 신지를 꼭 감싸주었고 그녀의 붕대 감긴 팔도 어색하게나마 신지를 꼭 안아주었다. 신지는 코 끝이 시리고 찡한 것을 느꼈다.
차가웠던 신지의 등에 아스카의 온기가 퍼졌다. 아스카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한 발짝 더 신지에게로 붙었다. 온기는 아스카의 몸과 함께 허리로 옮겨졌다. 그녀의 숨과 함께 얼굴로도 옮겨졌다. 그녀는 얼굴을 신지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상당히 빨개져 있었다. 뛰어온 탓도 있었지만, 십중 팔구는 지금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서워였다. 하지만 그녀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난 네가 싫어. 싫어 죽겠어.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야."
아스카는 자신이 말을 잘 못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정말이지 화가 나 있었다.
"미안해."
신지는 또 다시 사과를 했다.
"싫어! 용서하지 않을 거야. 네가 싫다고! 그런데 네가 멀어지는 것을 더 싫어..."
아스카는 신지를 더욱 세게 안았다.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신지는 아스카의 얼굴이 기대고 있는 어깨가 축축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지는 아스카의 뺨이 눈물 때문에 트진 않을까 걱정했다.
"더 이상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 말아줘.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네 속죄는 내가 지켜봐줄게. 끝까지 봐줄게. 그러니까 나랑 영원히 같이 있어줘. 나를 영원히 사랑해주고, 영원히 떠나지 말아줘."
두 남녀가 다정하게 새곤새곤 잠들어있는 바닷가에 파도소리가 들렸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은 더욱 밝아졌다.
그것은 새로운 여명이었다.
끝.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길게도 썼음.
미안하게도 부탁 하나만...
할일 없고 시간 많으면
http://old.ruliweb.com/ruliboard/list.htm?table=cmu_noval&main=hb&left=j&time=0&find=id&ftext=dldydvjr (주소창에 복사 부탁.)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진심으로 감상 부탁드림.
아니 재미없으면 없다거나 뭐라도 되니까 어찌됐든... 물론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앞으로의 글이 나아지기 위해선 부족한 점을 알아야 나아지지 않겠냐능.
쩝.
뭐, 반말이라서 죄송하고요.
부탁드립니다. 싫음 어쩔 수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