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어.. 오늘도 한번 시작해볼까?“
사쿠라네 미치루는 핸드폰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눈꼬리를 살짝 올렸다.
뒷 배경은 낡은 건물의 벽면에 뿌려진 다채로운 그래피티.
구두굽 소리에 맞춰 발끝을 튕기듯 앞으로 내딛으며, 셀카 타이머에 맞춰 포즈를 취했다.
“은근슬쩍 가슴골 보여주는 정도는 뭐… 소중한 팬들을 위한 서비스지. 자연산 J컵은 희소가치니까~”
찰칵.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올 새 게시물을 머릿속에 그리며, 미치루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계정에는 약 4,500명의 팔로워가 붙어 있었고, 대부분이 그녀의 독특한 패션과 묘한 분위기에 끌려 팔로우한 남성들이었다.
휴대폰 화면에 올라오는 댓글들.
「와 진짜 갓치루다…」
「이 얼굴에 이 몸매 실화임?」
「사진 찍는 장소도 센스 오지네.」
미치루는 피식 웃으며 화면을 내려보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게 나를 더 좋아해주면 되는 거야…”
말투는 가벼웠지만, 그 눈빛에는 어딘가 다른 감정이 스며 있었다.
⸻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미치루는 익숙한 편의점 골목을 지나다가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하야토?”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중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 ‘하야토’였다.
그는 벽에 기댄채 주눅이 들어 있었고, 그 앞엔 두세 명의 학생들이 서 있었다. 교복 상의는 걸쳐져 있지만, 넥타이도 느슨하고 표정은 짓궂기 그지없다.
“오.. 약속한 돈 잘 챙겨왔구나? 우리 ATM~”
그중 한 명이 하야토의 지갑에서 3600엔 정도의 돈을 빼내고는 비웃었다.
미치루는 다급히 그 장소로 뛰어가고는 그들에게 외쳤다.
“여럿이 모여서 한 사람 괴롭히니까 재밌어?”
일진 무리의 한 명이 뒤돌아보며, 비웃듯 말했다.
“어우, 누구신데 끼어드세요?”
“아, 인스타에서 봤어! 이년 젖탱이만 큰 지뢰년이잖아~“
“야,신경쓰지말고 저리꺼져.“
그리고는, 퍽.
일진 무리의 한명이,대뜸 미치루의 뺨을 후려쳤다.
피부에 얹힌 찰싹 소리와 함께 뺨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그녀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하야토 군에게서 뺏은 돈… 돌려줘.”
그 말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었다.
가장 무서운 건, 그녀의 눈동자였다. 흔들리지 않고, 확신에 찬 눈.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일진 중 한 명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투덜대듯 말했다.
“뭐야, 존나 재수없네… 야, 그만하자. 재수 똥 밟았어.”
그들은 떠났고, 남겨진 건 하야토와 미치루.
하야토는 어색하게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마워…”
그의 목소리는 마치 스스로도 자격이 없다고 믿는 듯, 작고 불안정했다.
미치루는 가만히 다가가더니, 말없이 하야토를 가슴에 얼굴이 파묻힐 정도로 꼭 안아주었다.
“많이 힘들었지…?”
하야토는 놀란 듯 몸을 굳혔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그녀의 등에 손을 얹었다.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도와줄게.”
잠시 후, 하야토가 낮게 중얼거렸다.
“…왜… 나 같은 애에게…”
그 말에 미치루는 조금 물러서서, 하야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네가 뭐 어때서?”
“넌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
그 말에 하야토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무너질 듯한 그의 감정에, 미치루는 한 번 더 웃어주었다.
장난스럽지도, 위악스럽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끌어안은 그녀의 진짜 얼굴이었다.
⸻
본문
[연재] 지뢰계 패션의 소녀에겐 뒷면이 있다 - 시즌 1 1화: 인연의 시작

2025.05.21 (12: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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