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찾아다녔을까. 얼마나 헤매었을까. 얼마나 고되게 길을 잃었던 걸까.
“빕니다.”
그렇지만, 찾아다녔지만, 헤매었지만, 길을 잃었지만 찾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더.”
그렇기에, 못 찾았기에, 헤매고 있기에, 길을 잃고 있기에 빌고 있다.
길이란 녀석아, 보여라.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행복한 날이었다고 기억하기를. 행복한 마지막이 되기를.”
언제나처럼의 기도이다.
호수 근처에 있는 주인 잃은 절, 혹은 어떤 토속종교의 본산지 같은, 문패만 영묘사(靈妙寺)라고 멋들어지게 박혀 있는 한옥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빈다. 얼마나 비비면서 움직였을까.
다시 생각이 순환하기 시작한 나는 못한 말이 있음을 알고 다시 말을 시작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일 년 동안의 일을 없었던 걸로 해주시기를.”
완전히 고개를 올려 눈을 뜨고,
하늘을 한 번 바라보고,
몸을 돌려 호수를 떠나갈 생각을 한다. 언제나대로의 일. 그리고.
“없었던 일로 하는 건 도망이야.”
이것도 언제나대로의 일. 소녀의 목소리. 목소리만 들렸으니까 작을 소(小)보단 젊을 소(少)녀 목소리다. 그래, 익숙하다. 이 목소리.
“또 너야?”
“일 년 째 기도하러 오는 너도 참 포기할 줄 모르는 녀석이네.”
“일 년 째 이런 데서 살아가는 너도 참 신기한 녀석이야.”
1페이지만에 설정 오류가 될 수 있기에 말해 두자면 이 녀석은 주인이 아니다. 아마 아닐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절엔 누구도 없었고,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도 이 절이 어떤 곳이었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마을에 하나쯤 있는 ‘존재감 있긴 한데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 건물’쯤 되는 위치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 곳에서 저 녀석은 언젠가부터 나타나서 기도를 끝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서 나에게 말을 건다. 참 할 짓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된다.
“뭣하면 너도 여기서 사는 게 어때? 기도도 하기 편할테고. 심심하면 내가 놀아줄텐데.”
“네가 외로운 것 뿐이잖아. 내가 왜 네 부탁을 들어줘야 할까?”
“그야, 난 신인걸.”
항상 이 소리다. 말문이 막히면 나오는 소리.
언제나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절 건물 안에서 나와 대화하는 주제에 말이 많다. 말이 많으면 건질 것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딴 헛소리나 하고 있으니 웃길 망정이다.
“신이면 소원이나 들어줘봐.”
“으응, 그건 안 되겠는걸.”
“언제나대로의 일. 난 신인걸. 안 되겠는걸. 언제까지 그럴건데?”
“그야, 난 신인girl.”
아마 영어로 발음한 거겠지? 발음 하나는 좋다고 마음의 한 켠으로는 감탄하지만 그것보다도 역시나 제대로 된 대답은 바라지 않는 게 좋았다.
“신인 여자란 거야? 아니면 신이란 거야?”
“아마 나는, 둘 다일까. 그보다 반응이 시원찮은 게 짜증나.”
“그럼 1년이나 지나놓고 나에게 뭘 기대한거야?”
“그럴 리가.”
즉답.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아. 그럼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 누구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고 있으니까. 난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있지. 신앙심도 끊긴 지가 벌써……. 언제였더라.”
“약 70년 전.”
“응. 늙어서 잊어버렸어.”
“12월 13일에 대화한 이야기고 네가 방금 말한 것도 그 때와 같아.”
“아, 그러게, 그러게. 역시 기억력이 광범위하다는 건 불편하구나. 그런 사소한 일은 기억을 못하게 되니까 말이야.”
“그 이야기도 그 때와 같아.”
“……그래서 그 다음엔 내가 뭐랬는데?”
“라고 말했었어.”
“그럼 난 같은 이야기를 몇 번 한거지?”
“일곱 번. 한 번은 네가 처음으로 신앙심이 끊긴 이후의 이야기. 그 이후로는 쭉 이 이야기와 같은 패턴의 이야기.”
“……이야. 매일 찾아와 주시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기억력이 점점 살아가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언제나 방금 부분에서 패턴이 갈라졌지.”
“기억력의 신이야?”
“아니, 메모.”
신이란 녀석이 신이냐고 물으면 어쩌자는 거냐.
그보다 이 녀석의 이야기는 언젠가부터 항상 메모하고 있다. 방금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도 귀찮지만, 마치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익숙함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셨던. 할아버지라고 하니까, 역시 이 녀석은 치매가 맞는 것 같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역시, 진지한 문제를 상담할 녀석은 이 녀석 뿐이기 때문이니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 녀석의 반응을 보며 스스로를 카운셀링하는 기분이다. 언젠가 모아 그 녀석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을까.
“네가 찾아온 지도 일 년이야.”
“그런 걸 기억할 시간에 나와 대화한 거나 기억해줘.”
“사사로운 일은 기억 못 해.”
“매일 찾아와주는 녀석한테 정곡이네.”
사사로운 일이라면, 나도 마찬가지다. 나라고 거품 물고 이 녀석과 대화하기를 갈망하는 건 아니다. 굳이 고르라면 피하고 싶은 쪽이다만.
“그런 것 따위 상관 없어. 다시 말하지만 내 이름은……”
“영면의……”
“잠깐! 적어도 이 정도 대사는 내가 하게 해줘!”
오랜만에 들리는 절의 미약한 병풍 사이로 들리는 고음. 구멍을 일일이 보수한 것 같기에 사는 집이란 느낌은 나지만, 역시 자세히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다.
내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지만, 언젠가 청소년 보호센터에 연락해두는 것도 좋을까.
“흠흠. 영면의 처리자이며 영겁의 관리자이며 영원의 총리자. 영월태사(詠月態巳)입니다.”
“애칭은 영월. 종족은 뱀. 그리고 지금은 문패만 남은 영묘사 안에서 숨은 듯 지내고 있지. 너무나 많이 말한 대사여서 나도 외워버렸어.”
신이 있으니 신령묘사다. 허나 그렇게 쓰면 가짜 신이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것을 짜증나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영묘사신이라, 대놓고 오기 싫은 이름이네.
“음, 반박 못하니까 더 짜증나.”
“그게 정상인이야.”
“정상인(正常人)이면 정상(頂上)이 아니잖아. 난 신인걸.”
“정상신.”
“그건 조금 예전에 살았던 빙고별좌(氷庫別坐)인데.”
“개그야?”
“개그일지도.”
빙고별좌란 의미불명의 단어를 중요한 의미의 말인줄 알고 메모했으나 지운다. 신의 개그는 어울려주기 힘들다. 여러 의미로 고차원적이라 3차원 생명체로서는 범접할 수 없다.
“쓸데 없는 이야기 할거라면.”
살짝 다리를 턴다. 조금 오랫동안 기도한 탓일까. 일 년동안 왔다갔다했으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익숙해질 일이 더 이상 없으면 좋겠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상관없으나, 왠만하면 좋은 쪽으로.
나는 절 앞에 걸터나온 대놓고 앉으라는 듯 있는 내가 ‘조선시대의 베란다’라고 부르는 것에 앉는다. 딱 처마에 가려지니 좋다. 겨울이니 별 다른 걸 못 느끼겠으나.
“이렇게 앉아서 이야기하자.”
“보통 자연스레 나오는 잡담은 의식하면 안 나온다고.”
“난 의식 안하는데.”
“나도.”
“그럼 됐네.”
“근데 어디까지 했었지?”
영월의 말에 살짝 메모를 뒤지고, 어디까지 이야기 했는지 찾는다.
하지만 말로는 꺼내지 못하고 금방 닫아버린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냥 오늘은 일 년 동안 찾아온만큼 과거를 돌아보고 싶달까.
“모르겠는데. 넌 기억하고 있어?”
“늙어서 잊어버렸어.”
언제나 이 패턴. 정말 잊어버린 건지 알고도 모른 척 하는건지 애매한 대답.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말을 꺼낸다.
“그럼 됐네. 내 이야기부터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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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결말까지 다 짜놓고 찍 싼 라노벨입니다. 나중에 연재할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버려진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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