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몇 번이나 하는 거지만 갑자기 어렸을 때의 몸으로 변하는 것에는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굉장한 위화감이 온몸을 감싼다.
그나저나 이번엔 대체 어떤 상황이야? 눈을 뜨고 나서 일단 주위부터 둘러본다.
여기는…내 방이로군. 어렸을 때의 내 방이다. 지금과는 방에 있는 물건이 다르긴 하지만 구조는 똑같으니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나는 방 가운데쯤에 서 있었고, 어린 선미가 내 옆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저번에도 그랬듯이 이것만으로는 도저히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 미안해 오빠.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거지? 어쨌든 내가 잘못한 건 아닌 것 같으니 마음이 한결 놓인다만…. 일단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헉!"
바닥을 바라본 나는 곧바로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바닥에는 MP3 플레이어, 정확히 말하자면 MP3 플레이어였던 물체가 떨어져 있었다. 왜 과거형을 쓰냐면 액정이 박살 난 상태기 때문이지.
그래. 그러고 보니 이런 일이 있었어. 내 MP3 플레이어를 선미가 만지작거리다가 고장 내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땐가 그랬다. 당시 나는 MP3 플레이어를 미치도록 갖고 싶어 했다. 지금이야 MP3 재생만 되는 기기라면 중학생의 한 달 용돈으로도 구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MP3 플레이어라는 건 제법 고가에 팔리던 시기였다. 적어도 내 용돈 가지곤 어림도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갖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MP3 플레이어를 구입하기 위해 나는 일단 용돈을 계속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리 모아도 당시 내 용돈으로는 어림도 없는 가격이었기에 나는 일부러 부모님 앞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도 보이고 집안일도 열심히 도우면서 착한 아들로서 행동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모아놓은 용돈을 꺼내 들고 부모님께 하소연하자 내 모습을 기특하게 여기셨는지 그 돈에 얼마간의 돈을 보태어 MP3 플레이어를 사주신 것이다.
그때의 기쁨이란 마술 펜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고, 나는 열심히 자랑하며 다녔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미가 부러워하며 빌려달라고 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지만, 나는 손도 못 대게 했다. 그랬기 때문에 내 방에 몰래 들어와 그 신기한 도구를 만지작댔던 것이리라. 그러다가 내가 갑자기 방에 들어오자 놀라서 떨어트렸던가…자세한 내막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그랬을 것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때 엄청난 충격과 분노에 사로잡혔던 나는 자제하지 못하고 선미를 심하게 나무랐었다. 말로는 이렇게 간단하지만, 아마 상당한 욕설을 내뱉으며 길길이 뛰었을 게 분명하다. A/S를 통해 수리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그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린 나이의 나로선 그 소중했던 것이 부서져 있는 걸 보게 되었을 때 MP3 플레이어에 대한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선미가 내 인생을 방해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었겠지. 하긴, 고치려면 거의 본체 값이 든다고 해서 결국 못 고치기도 했지만.
그나저나…기왕 과거로 간다면 애초에 부서지기 직전의 상황으로 점프했으면 되는 거잖아! 왜 하필 이 시점으로 보내서 나를 두 번 슬프게 만드느냔 말이다….
나는 MP3 플레이어를 주워들었다. 크흑. 지금 나오는 제품들에 비하면 쓸데없이 부피만 크고 액정 화면도 조그맣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의 추억이 한꺼번에 떠오르다 보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 이 일 이후로는 MP3 플레이어를 쳐다도 보지 않고 살아왔으니까.
"미, 미안해 오빠. 정말 미안해."
내가 이걸 얼마나 아꼈는지 잘 알고 있던 선미로서는 바들바들 떨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그게 더 안타깝게 보였다.
바보같이. 이런 게 아무리 비싸도 하나뿐인 동생인 너보다 중요하진 않은데….
어차피 고장 난 것. 다시 시간을 물릴 수도 없고, 나무란다고 해봤자 고쳐지는 것도 아니니. 화를 내는 건 무의미한 짓이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지.
이미 시간이 지나버린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그때의 나로선 그런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일단 너무 어렸고, 가족에 대한 소중함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니까.
"괜찮아. 그렇게 미안해할 거 없어."
"하, 하지만, 이거 오빠가 굉장히 아꼈던 거…."
"됐어. 됐어. 그것보다 다치진 않았어?"
설마 파편 같은 게 튀진 않았나 해서 선미의 발밑을 살핀다. 이상은 없는 것 같다. 하기야 액정이 유리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1m 정도 높이에서 떨어트린 정도로 산산조각이 날 리는 없는 건가?
내 기억 속에서도 그 애가 다쳤던 기억은 없으니…어쨌든 다행이다.
"와앙! 오빠, 미안해!"
"에?"
갑자기 그 애는 울기 시작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니, 나무란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우는 거야? 어쩐지 내가 잘못한 것만 같잖아….
"자, 잠깐만. 울지 마. 난 괜찮다니까 갑자기 왜 우는 거야?"
"우엥. 우에엥."
"시, 실은 이거 이미 고장 났던 거야. 그러니까 미안하게 생각할 거 전혀 없어. 나 화 안 났다니까?"
물론 선미를 달래고자 한 거짓말이다. 선미는 그 말을 듣고서 울음을 멈췄지만, 여전히 훌쩍거리며.
"거짓말! 아까 켜졌단 말야!"
"그, 그러니까 켜지긴 하지만 재생은 안 돼. 음악이 안 나온다고."
"거짓말. 아까 음악 나왔단 말야!"
"그, 그러니까 음악이 나오긴 하지만 금방 다시 안 나온다니까? 고장 난 거야. 고장 난 거."
그렇지만, 선미는 내 말을 믿을 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마냥 겁이 난 건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난 점점 조바심이 났다. 아니,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한단 말이야?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이거, 이러다가 부모님이 들으시고 내가 선미를 혼내는 거라고 오해라도 하신다면…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잖아?
"울지 마. 제발 좀 그쳐."
왠지 나까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급한 마음에 선미를 부둥켜안고 등을 토닥여 주며 계속해서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이 애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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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 여동생 만들기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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