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코! 귀한 손님에게 무슨 장난질이야!」
계속 이어지던 소녀의 웃음소리는 벼락같은 외침에 끊어졌다. 카나코님의 호통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소녀가 볼멘소리를 뱉어냈다.
「쳇. 딱딱하게 굴긴. 사나에가 드물게 데러온 남자라 조금 흥미가 생겼을 뿐이야.」
「사나에가 누굴 데러오건 괜한 참견이야.」
카나코님은 스와코라고 부른 소녀를 그렇게 일러준 뒤, 나와 눈을 맞추고 미안하다는 얼굴로 사죄의 말을 올렸다.
「저 녀석의 무례에 대해 제가 대신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사죄라니 당치도 않아요. 전 꼬맹이가 건방진 행동을 조금 한 걸로는 기분 상하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겸양을 보이는 카나코님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양 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순간 내 옆으로 온 소녀가 날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며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소녀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나 보고 꼬맹이라고?」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는 듯 물어오는 말에 나는 「아니야?」하고 의아해 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날카롭던 눈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설마, 겉모습만 꼬맹이인건 아니겠지? 혹시나 하고 카나코님을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다. 그런 나의 시선에 카나코님은 왠지 모를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소녀가 앙칼진 목소리로 내뱉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녀석이 건방지구나.」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 오는 것이 오한처럼 전신에 한기가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 것이다. 나는 무언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고 소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설마..」
카나코님의 입에서 나온 스와코라는 이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신사에 사는 또 한분의 신에 대해서. 분명 이름이 모리야.
「텐구면서 신도 못알아 보는 거야?」
「모리야 스와코님?!」
소녀. 모리야 스와코님은 싸늘한 표정을 지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씨익, 웃어 보이면서 내 말에 긍정했다. 설마, 텐구들 사이에서도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하는 그 재앙신이었다니. 심장이 쫄깃해진다. 이제 와서 두려워하는 것이 얼굴에 다 드려나서일까. 스와코님은 재앙신이 아닌 겉모습 그대로의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내가 바로 모리야 스와코. 이 신사의 진정한 본존이지!」
「아까 꼬맹이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신님인 줄도 모르고.」
「알면 됐어. 난 보다시피 사소한 일은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대해도 돼.」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스와코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넘겼다. 겉모습과 달리 무서운 재앙신이긴 하지만, 실은 좋은 신님일지도 모르겠다. 실수로 저지른 무례를 용서 받은 나는 안심이 되서 그런지,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나와 스와코님을 바라보던 카나코님이 온후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스와코는 저래뵈도 연륜이 깊고, 정이 많은 녀석이니까. 그러니까, 소우지 씨는 그녀가 재앙신이라는 사실만 가지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조금 짓궂은 면이 있어서 아까처럼 곤란하게 만드는 장난을 치긴 합니다만. 그땐, 제가 대신 저 녀석을 혼내 드리겠습니다.」
「겨우 그정도 가지고 혼내겠다니! 너무 깐깐한 거 아니야?」
그 말에 스와코님이 항의했다. 스와코님 입장에서는 그닥 대수롭지 않은 가벼운 장난. 하지만, 카나코님의 생각은 달랐다.
「환상향에 이주한 우리에겐 텐구 한명도 소중한 신도다. 그런 신도를 곤란하게 만드는 장난을 겨우 그 정도라고?」
「뭐 어때? 난 너처럼 신앙심에 집착하지 않거든. 너한테는 소중한 신도여도 나한테는 아니라고.」
「그 탓에 나한테 오는 신앙심까지 줄어들게 된다면 넌 뭘로 책임질거지?」
「책임? 그건 네 사정이지, 내가 왜?」
「민폐를 끼치면 당연히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도리다!」
어느새 말싸움을 시작한 둘 사이에 불온한 기류가 흘렸다.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 대판 큰 싸움이라도 벌어질 것 예감이 말이다. 그 둘 사이에서 나는 감히, 말리거나 중재한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둘의 드잡이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렇게 두 신님의 말다툼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둘을 말릴 유일한 삼자가 끼어 들었다.
「또 싸우시는 거예요?」
부엌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사나에가 이리로 다가오면서 내뱉은 말이었다. 이어서 그녀는 두 신님을 번갈아 쳐다보며 다그치듯 말했다.
「보나마나 스와코님이 잘못한 거겠지만. 그래도 손님이 와계신데 다투시면 어떻게 해요?」
「미안하구나. 사나에.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흥분을 하고 만 모양이다.」
사나에의 쓴 소리에 카나코님이 솔직하게 사과했다. 신님은 이어서 나를 바라보며 송구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신답지 않게 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뭐라고 사죄해야 할지.」
「괜찮습니다. 절 신경쓴다고 하신 말이니, 사죄하지 않아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 사나에는 다음으로 스와코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싸늘한 눈으로 차분하지만, 노기가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소우지 오빠에게 무슨 짓을 한 거에요?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짓이라니. 그냥 가벼운 장난을 친 거뿐이야.」
「가볍지 않으니까, 짓이라는 거예요!」
스와코님은 능청을 떨며 넘어가려 했지만, 성난 사나에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얼버무릴 수 없게 된 스와코님은 난처한 얼굴로 이실직고했다.
「그.. 날 보는 시선이 무척이나 뜨겁길래 장난삼아 로리콘이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카나코가 버럭 화를 내는 거 있지?」
반성을 보이지 않는 스와코님의 모습에 사나에는 언청을 높여 꾸짖었다.
「잘못했으니까, 화를 내는 거죠!」
「우우.. 나 잘못 없는 걸.」
기가 죽은 스와코님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전히 반성이 없는 태도였지만 사나에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앞으론 조심 해주세요.」하고 주의만 주고 넘어갔다. 그런데도 스와코님은 불만 많은 얼굴로 볼을 잔뜩 부풀리고 있었다. 카나코님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심하다는 눈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일련의 광경들을 보고 있던 나는 어쩌면 사나에야 말로 이 신사의 실세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 정도로 두 신님을 꾸짖는 사나에는 너무 똑 부러져 내가 알고 있던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을 섬기는 무녀에게 야단맞는 신님이라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 덕분인지 두 신님이 아까보다 훨씬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잔소리를 끝낸 사나에는 카나코님을 바라보며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식사 준비 다 해놨는데, 안방에 계시지 않길래 혹시나 해서 찾아왔어요.」
「이 녀석이랑 입씨름을 하느라 잊고 있었다. 미안 하구나.」
「그럼, 카나코님. 스와코님. 그리고 오빠.」
모두가 호명된 순서대로 사나에를 바라봤다. 스와코님은 '오빠'라는 단어에 키득댔지만, 카나코님이 사납게 쏘아보자, 바로 입을 다물고 퉁명스런 표정을 지었다. 사나에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서 안방으로 가서 다같이 식사해요.」
「그래.」 「응!」 「어.」 긍정의 말이 카나코님과 스와코님. 그리고 나의 입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튀어나왔다.
*
신사의 점심밥은 소박하면서도 알찬 가정식이었다. 된장국을 중심으로 산채와 나물. 그리고 두부와 장조림. 모두 내 입맛에 맞았다. 모미지와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의 요리 실력이다.
과연, 두 신님들을 모셔온 무녀의 요리란 말인가. 이렇게 보니 더욱 레이무와 비교가 되었다. 그 아인 요리를 지지리도 못하니까. 요괴 퇴치는 일류면서 다른 건 절망적인 수준인데 반해 사나에는 신앙, 요리. 그리고 몸매까지 레이무를 이기고 있었다.
이것이 전직 여고생이란 말인가.
나이로 따져볼 때, 레이무는 아직 중학생 정도이니까 차이가 날 수밖에 없겠구나. 그만큼 성장의 여지가 있다는 거니까, 기대 좀 걸어 봐도 되겠지?
쓸데 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스와코님은 벌써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버렸다. 카나코님도 거의 다 비워가고, 사나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 반이나 남은 내 밥 공기를 내려다 보며 나는 상념을 지워내고는 밥 먹는 속도를 올렸다.
이윽고, 모두의 밥그릇이 비워졌고, 사나에가 익숙한 동작으로 뒷정리를 했다. 도중에 나도 도우려 했지만, 손님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설겆이를 위해 사나에가 부엌으로 가버리자, 안방에는 자연히 나와 카나코님과 스와코님. 이렇게 셋이 앉아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포만감에 배를 문지르던 스와코님이 날 게슴츠레한 눈으로 훑으면서 물어왔다.
「그러니까, 너 사나에와 무슨 관계야?」
기습적인 물음에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으며 어버버했다. 그런 날 대신해 카나코님이 책하는 투로 말했다.
「사나에에게 들은 말을 벌써 잊어 먹은 거야? 손님이 곤란해 하는 질문은 자중해!」
「칫. 재미없게.」
스와코님은 삐친 듯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나 이내 다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다른 질문을 꺼내 들었다.
「그럼, 사나에와 어디까지 간 거야?」
「스와코!」
이번엔 호통이 이어졌다. 카나코님은 단단히 화난 듯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 박력에 개구쟁이 같은 스와코님이라도 주눅이 들었는지, 바로 입을 다물고 얌전해졌다. 그리고 곤란한 질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장난을 칠 수 없게 된 스와코님은 몹시도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런 스와코님을 위해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부분까지 얘기해 주기로 했다.
「저기, 스와코님. 질문에는 대답해 드리지 못하지만, 대신 사나에와 조금 가까워진 계기라면 말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 그게 뭔데?」
내 말에 다시 부활한 스와코님이 눈을 반짝이며 뒷말을 촉구했다. 나는 천천히 익숙한 가전제품이 놓여 있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한 10년 간 바깥세계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그 덕분인지 의외로 통하는 부분이 많아서 앞으로도 바깥세계에 대한 걸로 대화를 나누기로 한 것뿐입니다. 뭐, 오빠라고 불리게 된 거는 예상외였지만요.」
그에 스와코님은 케로케로케로, 하고 크게 연 입으로 기괴하게 웃었다. 옆에서 카나코님이 눈총을 주었지만, 웃는 것을 멈추지 않은 스와코님은 무릎을 탁 치면서 「그런 거군!」하고 납득했다는 듯 말했다. 그 직후, 막 설거지를 끝낸 사나에가 방에 들어서면서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얘기를 나눈 거예요?」
「있지. 사나에. 너한테 좋은 짝지를 발견한 거 같아서.」
「그게 무슨?」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라하는 사나에에게 스와코님은 나쁜 것을 생각하는 악동 같은 미소로 답했다.
「옛날 같았으면 벌써 시집가서 애를 봤어야 할 나이 아니냐? 여긴 옛날 모습 그대로인 곳이니까, 지금 간다 해도 빠른 건 아니야.」
나는 지금 스와코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사나에도 마찬가지인지, 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외쳤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까부터 눈총을 주던 카나코님도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한 소리 거들었다.
「너 정말이지, 혼날 말만 골라서 하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