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전체에 성에가 낀 이상한 기분이다. 무엇 하나 판단을 호기롭게 내릴 수도 없었으며, 그 판단이 맨 정신에서 이루어진 것인지조차 불명확해 불가사의함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자신이 내려왔던 판단들은 자신의 서드아이로 들어온 목소리가 바란 것들이었다. 혹은 직접 말로써 전달받은 것들이었다. ‘하쿠레이의 무녀를 불러야 해.’ ‘네가 누구인지 잘 떠올려 봐.’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말로 내뱉어봐. 생각을 분산시켜.’ 같은, 그런 속삭임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이 순간 흐른 눈물은 명확히 코메이지 코이시. 자신이 내린 판단이었다. 짧게나마 흘렀던 눈물의 탓인지. 생각속의 성에가 약간은 닦여져 나간 기분이 코이시에게 들었다. 그 기분을 따라 처음으로 장애 없는 의문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왜 울었지? 라는.
우는 이유라. 코이시는 말없이 긴 팔목소매로 고인 눈물을 닦으며 생각에 빠졌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일어난 사고 같은 현재의 상황에 하도 얼척이 없어서일까? 그 탓에 느껴버린 상실감과 당황과 당혹의 탓일까? 아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듯했다.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전적으로라고 말하기엔 옳지 않았다. 코이시는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제 몸의 상실과 돌아갈 수 없다는 상황에 목 놓아 슬퍼할 만큼의 애절과 비통 따위를 느낄 재간은 없었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 세상 떠나라 울만큼 슬퍼할 이유 따위는 없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건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몸의 반응이다. 코이시는 그리 생각했다. 사소한 일에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은 어린아이의 몸인 탓이다. 의식은 신체에 영향을 받아 과도한 반응을 보인 것일 뿐이다. 어린아이와도 같은 육체에 담긴 정신이 어린아이처럼 여려져버린 거니까. 그렇기에 별 것 아닌 일에도 공포와 슬픔에 휩싸여, 금세 눈물을 터트리게 된 거다. 제 상황을 그렇게 끝없이 되뇌던 코이시에게 유카리가 입을 뗐다.
“미안해.”
“아니야.”
마음과 동일하게 울리는 목소리. 지금까지 양면성을 보이지 않은 유카리의 말이 코이시에게 전달됐다. 완전히 눈물을 닦아낸 코이시는 눈을 비비다 약간은 쉰 목소리로 답했다.
“괜찮아. 그렇게까지 슬픈 건 아니야. 그렇게까지 애절한 것도 아니야. 필사적인 것도 아니야. 그냥 몸이 멋대로 울어버렸어. 난 괜찮아.”
“그건…….”
유카리가 입을 앙 다물며 중도에 말을 삼켰다. 그러나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이어지려 했다. 단편적으로나마 마음속의 목소리가 코이시에게 흘러들었다. 단편적인 단어가 온전한 문장으로 변모하기 이전에 생각을 흩트려놓고자 유카리는 황급히 다시 입술을 떼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갈래? 저리 무너질 것 같이 보여도 일단은 튼튼해. 부적 몇 개 붙여놓으면 앞으로 수리 없이도 몇 년은 더 쓸 수 있을 정도일 거야.”
소리로 전달되는 말은 마음속 목소리의 껍질이 되어 전달을 방해했다. 단순히 하나의 음량을 높여 다른 소리를 죽이는 것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스테레오로 두 말이 동시에 전달되는 일은 없었다. 게 중에서 코이시가 들을 수 있던 것은 말의 소리뿐이었다.
“잠시만.”
유카리는 레이무의 품을 뒤적거리더니 부적 다발을 잔뜩 꺼내들었다. 레이무는 갑작스럽고, 또 대담하게 행해진 스킨십 같은 더듬거림에 볼을 수줍게 붉히면서 말했다.
“스킨십을 하고 싶으면 그렇다고 말해도 되는데…. 난 레이무를 포용해주고 포옹까지 해 줄 자신이….”
“지랄을 한다.”
유카리가 중지를 굽히고 엄지로 잡더니 그대로 튕기듯이 레이무의 이마에 쏘았다. 통칭 딱밤이다. 잔뜩 탄성을 받은 중지는 레이무의 이마에 작렬하며 딱!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러나 레이무는 살짝 밀려나기만 할 뿐 고통을 표하지는 않았다. 역으로 때린 이의 손가락에 얼얼한 감각이 남아서, 유카리는 손목을 휘둘러 찝찝함을 털어낼 수밖에 없었다.
하아. 짧게 한숨을 쉰 유카리가 바로 주술에 착수했다. 꺼낸 부적다발들 중에서 몇 개를 추려내더니 그대로 주문을 외워 부서진 신사 기둥에 붙였다. 무언가의 영험한 기운들이 느껴지긴 했다만, 안전을 확신할 수 있을 정도까지라기엔 또 아니다.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들어오라고 하는 유카리의 말에 코이시는 불안한 발걸음을 떼며 신사 내부로 발을 디디었다. 유카리는 홱 뒤를 돌아보더니 레이무에게 손찌검하며 말했다.
“야, 넌 힘 조절 할 수 있을 때까지 들어오지 마. 신사 더 부서지는 꼴하고 나 화나는 꼴 더 보기 싫으면.”
“아 진짜 너무해애애애!!!”
신사로 들어선 유카리는 평소보다 빠른 발걸음으로 내부를 누비며 손님의 접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접에 필요한 과자나 음료를 고를 때는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괜시리 그녀답지 않게 상품의 이름까지 중얼중얼 읊어가며 선택을 했다. 그것은 서드아이의 능력에 익숙치 않은 코이시를 배려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남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두려운 능력이다. 조절치 못하고 듣기 원하지 않는 목소리마저 듣게 되는 능력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래서 유카리는 자신이 딴 생각을 못하도록 일부러 하는 행동을 말로 읊어대는 것이었고, 또 코이시가 외부에서 전해져오는 감각에만 몸이 곤두서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 과자랑 탄산음료야. 먹어봐. 이거 여기에서는 꽤 귀한 간식이다? 외부랑 단절된 환상향 내부에서는 이런 거 쉽게 얻을 수 없거든. 습득할 수 있는 경로가 바깥세계로 한정되어있다 보니까.”
유카리는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과자봉지를 단숨에 뜯어 코이시에게 건네며 수다를 떨었다. 과자뿐이라면 섭섭하겠다며, 곧 거품이 잔뜩 올라오는 탄산음료까지 건넸다. 코이시는 아무런 생각 없이 컵을 들어 탄산 한 입을 홀짝였다. 혀끝이 알알할 정도로 탄산의 자극이 크게 전해져왔다. 코이시는 탄산이 담긴 컵을 살짝 찡그린 눈으로 보았다.
“달아….”
“그럼 탄산이 달지. 뭐 있겠어.”
와작. 유카리가 씹는 소리를 크게 내며 과자를 삼켰다. 코이시는 전해져오는 후각, 청각 등의 자극을 싸그리 무시하고 흔들리는 탄산의 수면 따위나 보며 상념에 잠겼다. 반쯤 감긴 눈으로 보는 탓일까, 잠시 나른한 기분마저 코이시에게 들었다. 가늘게 떠진 눈은 곧 거의 감긴 것처럼도 보이게 되었다. 유카리는 그것이 고민을 하는 모습이라 착각하여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걱정돼?”
“…아니, 아닐 거야. 난 지금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걸.”
“넌 이쪽 세계의 일원이 아니라고 했었어. 그건 네가 직접 내뱉은 말이야. 명심해둬.”
“그렇…지? 눈을 떴을 때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어. 왜였을까? 정말로. 왜 내 이름이나, 주변배경 같은 게 아니고. 하필 이쪽 세계의 주민이 아니란 단순한 사실뿐이었을까?”
“그거에 대해선 말해줄 길이 없네. 다만, 네가 직접 떠올린 너의 주체는 꼭 명심하고 있어둬. 그런 생각 하나하나가 결국에는 ‘너’라는 녀석의 전부를 이루게 돼. 남들의 소문 따위에 휘둘러져서 ‘네’가 이루어져서는 결코 안 돼.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지 마. 아무리 일부이더라도, 네 생각으로 인해 네가 이루어져야 하니까.”
“……명심할게.”
“그러면 됐어.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이 이변을 해결해줄게.”
유카리는 다시 과자를 소리 내어 씹었다. 뿐만 아니라 위아래의 이를 일부터 충돌시키며 딱딱 소리도 내었다. 잡념을 떨치기 위한 과장된 움직임이란 생각이 코이시에게 전해져왔다. 정말 단편적인 생각뿐이었다. 유카리는 또 생각이 심층적으로 넘어가기 이전에 말을 꺼냈다.
“너, 그러고보면 머무를 곳이 없으려나?”
“머무를 곳….”
머무를 곳이라. 그 키워드로 잠시 상념에 빠져보았으나 해당되는 장소라고는 몇 없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장소를 일단 코이시가 읊어보았다.
“언니…, 사토리. 지령전 쪽이면 괜찮을까?”
“아니.”
언니와 지령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유카리가 분위기를 짙게 내려 깔았다. 가볍게 들떠있던 목소리가 한층 깊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손가락을 놀려 손찌검과 비슷한 형태를 취하더니 말했다.
“사토리한테는 다가가면 절대 안 돼. 명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