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 좋게 날아 오른 건 좋았는데, 착지가 문제였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10리가 넘는 거리를 뛰어 넘었지만 그 반동으로 땅에 두 발이 닿았을 때는 기세를 줄이지 못하고 화려하게 구른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늘 그렇듯 높은 곳에서 낙하 했을 때, 제대로 된 착지를 보여주지 못했던 슈텐은 그대로 땅에 구덩이를 만들어가며 그 자리에 파묻혔고, 코우는 그 반동으로 다섯 번이나 땅바닥을 튀었다.
이런 차이는 단순히 슈텐과 코우의 무게에 따른 것이었다. 슈텐의 체중은 실제로 커다란 바위보다도 무겁다. 10리나 되는 거리를 날아 왔으니 그 충격이야 오죽하랴. 반면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코우는 꽤 멀리까지 튕겨져 나가 버렸다.
낙하의 충격을 그 몸으로 받아낸 코우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이젠 매일 당연하다시피한 망신창이 그 자체였다. 흙투성이가 된 옷은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고, 살갖도 온통 벗겨져 있어 새빨간 피가 철철 흘려 내렸다. 그 너머 뼈도 두 말 할것도 없었다. 골절 정도가 아니고 산산조각이 났다고 봐야 한다.
그런 중상을 입었는데도 목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대요괴에 범접한 불사력 때문이었다. 슈텐이 땅에 박힌 자신의 상반신을 두 다리를 버둥대서 빼내는 사이에도 코우의 몸은 빠르게 치유되어 갔다. 슈텐이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반쯤 찢겨나간 망토를 정돈한 뒤에 코우를 찾았을 때에는 조각이 난 뼈가 다시 원래대로 붙어 있을 정도였다.
붉은 망토를 나부끼며 엉망이 된 코우 앞에 선 슈텐이 거만한 얼굴로 내려다 보며 말했다.
"안 되겠다. 그냥 걸어가자!"
자신을 겁쟁이라 헐뜯은 괘씸한 놈들이 있는 곳까지 도약만으로 가는 편이 가장 빠르긴 하나 아직 몇 번이나 더 이 꼴을 겪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연히 다른 방법을 택하게 되는 법이었다.
그러나 아직 남은 거리가 있는 만큼 걷는 걸로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잠시, 생각에 잠긴 슈텐이 다시 입을 열고 정정했다.
"뛰어 가자!"
간신히 몸을 일으킬 정도로 회복한 코우는 질색하는 얼굴로 신음했다.
"지.. 진작 그렇게 하면 좋았을 거 아닙니까!"
"생각 보다 행동이 앞서서 미안하다 새캬! 그런데 너 요즘 부쩍 트집을 잡는다?"
"휘둘리는 입장이되면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매일 죽을 뻔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 잖습니까."
그 동안 계속 강해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버텨왔지만, 사실 코우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각오는 한 일이지만, 슈텐의 도전자를 일일이 상대한다는 것은 그에겐 너무 가혹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내색한 것은 처음 있는 일.
처음 보인 반항기에 슈텐은 '어쭈, 이것봐라?'하는 심정으로 그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는 이내 능청스럽게 웃었다.
"가슴에 구멍이 났는데도 산 주제에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그건...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야 이 새끼야. 그게 운이 좋다고 살 수 있는 수준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단순히 운이 좋아서 살았다고 말 할 수없는 상황이었다. 가슴이 뚫려 심장이 파괴 되었는데, 그게 어떻게 운만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비웃음을 부르는 변명일 뿐이다. 코우는 아직 자신이 가진 불사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깨달고 있지 못했다.
그런 어리숙한 코우에게 슈텐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내 백귀야행 무리 중에서 날 제외한 너 만한 불사력을 지닌 오니는 없어. 그게 네 특성인지는 몰라도 네가 지닌 불사력은 대요괴 수준이야. 그러니까 어지간해선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제.. 제가 대요괴 수준의 불사력을 가졌다고요!?"
언젠가부터 아무리 큰 부상을 입어도 순식간에 치유되는 몸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였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코우였다. 그저, 불사력 만큼은 선배에 근접했겠느니 어렴풋이 느꼈을 뿐. 대요괴 수준이라니.
자신이 바라고 있는 강함에 한 걸음 가까워진 소식이었으나, 코우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 인마! 잘 안 뒤지니까, 좀 험하게 다루더라도 군말 하지 말고 참아."
바로 저것. 슈텐이 이제 자신을 적당히 다루지 않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그런 불사력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에도 험하게 다루어졌는데, 밝혀진 지금에서는 얼마나 더 험하게 다뤄질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하지만, 이것도 강해지기 위한 수행이라면.
그렇게 스스로를 마음을 다잡는 것으로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코우는 "네."하고 짧게 수긍하고는 이를 악 물었다. 그 결심에 찬 얼굴에 슈텐은 흡족한 듯 미소를 방긋 지었다.
그리고 손뼉을 짝, 쳤다.
"갈 길이 머니 이 놈을 타고 가자."
말과 동시에 슈텐의 배후에서 커다란 인영이 솟아났다. 머리에는 다섯 개의 뿔이, 눈은 부리부리하고 입은 열 명이 넘는 사람도 단 숨에 삼켜버릴 듯이 큰 20척 가까이 되는 붉은 귀신이었다.
그 거대한 귀신이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편 채 손등을 땅에다 대었다. 슈텐은 그 손바닥 위에 올라타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도 타."
거역할 수 없는 권유에 코우는 순순히 슈텐을 따라 거대한 귀신의 손바닥 위에 올라 탔다. 슈텐과 코우, 둘이 나란히 올라타 있는 손바닥이 점차 고도를 높혀갔다. 손바닥의 손날 부분을 그대로 자신의 가슴팍에 붙인 귀신이 꿇었던 무릎을 펴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둘을 태운 귀신의 정체는 슈텐의 분신 중 하나인 귀왕. 미래에 사람들에게 알려진 슈텐도지의 모습이 바로 이 귀왕이었다. 그 앞도적인 위용에 귀왕을 본 자는 누구라도 저것이 슈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아니, 반대로 슈텐의 정체가 위엄을 느낄 수 없는 방정맞은 여자라는 것을 알아챈 자가 적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0척이나 되는 거구다보니,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도 손에 올라탄 둘의 몸은 상하로 크게 흔들렸다. 만약, 오니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 타고 있었다면 단 두 걸음 만에 심한 멀미를 느끼고 구토 증세를 일으켰을 것이다. 보폭도 매우 켜서 한 번의 걸음으로 일반 성인의 여덟 걸음에 맞먹는다.
그러나 그 정도의 걸음으로도 괘씸한 자들의 거처에 도달하기 까지는 한참이나 걸린다. 슈텐은 귀왕에게 대충 몇 걸음 걸어보게 하고는 적응이 되었다는 듯 본격적인 뜀박질을 시켰다.
쿵.쿵.쿵.쿵.
20척의 거구가 뛰어가니 풍경도 뒤로 빠르게 넘어간다. 이 속도라면 머지않아 백귀야행의 거처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너무 요란하다는 것과 손 위에 탄 코우가 죽을 지경이라는 것 정도.
슈텐 본인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코우에겐 심각한 일이었다. 걷는 거야 상하로 크게 흔들리기만 할 뿐이지 별다른 충격이 없어서 견딜 만 했으나, 뜀박질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크게 솟았다가 지상으로 내려찍는 듯한 충격이 몸으로 계속 가해졌고, 그럴 때마다 온몸의 뼈가 부셔지는 듯한 감각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우의 불사력은 범상치 않았다. 계속되는 충격에도 고통만 받을 뿐이지, 몸은 건사하니 슈텐은 귀왕을 멈춰 세울 생각 없이 더욱 가속시키기만 했다. 그렇게 곡소리가 나는 최악의 승차감은 슈텐을 헐뜯었던 백귀야행 무리를 만나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
어느세 날이 저물어 어두컴컴한 밤이 되었다. 예상대로라면 진즉에 발견 했어야할 괘씸한 백귀야행 무리는 코우가 정신적으로 곤죽이 되어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유는 정확한 위치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겁쟁이라고 헐뜯은 괘씸한 백귀야행 무리에 대한 얘기를 접했을 때, 대략적인 방향과 거리만 알았지, 정확히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없어서였다. 그러면서도 당장 행동으로 옮긴 것은 조급한 성격 탓이리라.
이런 조급한 면은 비단 슈텐만이 아닌 대다수의 오니들이 가진 성질이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는 코하루도 실은 급한 성격인 것을 비추어 볼 때, 오니의 특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참 헤매기는 했으나 어둠이 내린 덕분에 멀리서 보이는 불빛으로 백귀야행 무리를 특정 지을 수 있게 된 슈텐은 분신의 손 위에 탄 채로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당장 쳐들어가지 않은 것은 생각에 잠겨 있어서였다. 혈혈단신(코우가 있으니 단신이 아니지만)으로 쳐들어가는 거 기왕이면 멋지게 등장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목숨을 건 싸움을 앞두고 이 무슨 엉뚱한 생각인가 싶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슈텐이라면 그런 여유조차 허용된다. 그리고 그것은 슈텐 본인에겐 중대한 문제이기도 했다.
천하의 슈텐이 평범하게 등장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용납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평소라면 옆에서 코우가 트집을 잡았겠지만, 정신적으로 빈사상태에 가까운 그로서는 정신을 잃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태. 이때의 코우는 돌아갈 때만큼은 절대로 귀왕의 손에 타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좋아!"
등장 방법을 놓고 한참을 고민하던 슈텐이 손바닥에 주먹을 내려치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묘안이라도 떠올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어 팔짱을 낀 슈텐이 녹초가 되어 주저 앉아 있는 코우를 곁눈질로 내려다 보며 말했다.
"쎄게 날아갈 테니까, 단단히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뭐가 즐거운지 활짝 웃는 얼굴이 코우의 눈에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미소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불길함이 바로 현실로 다가왔다.
"날아가는 건 두령 혼자서도 되지 않습니까?"
"아니. 너도 날아가는 거야."
내리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다는 듯 슈텐과 코우가 타고 있는 손이 오므라들면서 둘을 꽉 쥐어든 형태가 되었다. 코우는 황급히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옆에 딱 붙어 있는 슈텐이 낄낄 거리며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저기 불빛이 보이는 곳 보이지? 괘씸한 놈들이 저기에서 놀고 자빠졌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우리가 뚝 떨어진다고 생각해봐봐. 놀라 자빠지겠지?"
"자빠지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일 건데요!"
"이번에는 실수 안 해! 너도 나와 같이 멋지게 착지할 거니까 그런 염러 말라고!"
슈텐이 그렇게 안심 시켰지만, 코우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지낸 세월은 짧지만 그 동안 보여준 슈텐의 착지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얼 믿고 성공하리라고 믿을 수 있을까. 코우가 무어라 반론하기도 전에 몸의 무게 중심이 뒤쪽을 향해 홱 쏠리더니 엄청난 기세로 불빛이 있는 방향을 향해 세차게 던져졌다.
얼마나 세게 던져졌는지, 코우는 틀림없이 땅바닥에 쳐박혀 사지육신이 다 망가질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대각선으로 땅에 처박히기 직전, 팔로 자신의 목을 감은 슈텐이 허공에서 수 바퀴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때에 맞춰 두 다리로 지면에 착지 한 것이었다.
쾅! 하고 흡사, 커다란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한 굉음이 터졌다. 발과 닿은 지면이 여지없이 부셔지며 반경으로 크게 푹 파여졌고, 사방이 갈라지며 깊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 충격에 일대가 지진이 난 듯 크게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 술을 퍼마시며 놀고 있던 백귀야행의 요괴들은 갑작스런 사태에 혼란해했다. 분명, 하늘로부터 무언가가 떨어지긴 했는데, 엄청난 충격에 지진까지 발생한 것이었다. 간소하게 나무로 지은 처소가 무너지고, 수많은 요괴들이 뒹굴었다. 낙하한 지점으로부터 희뿌연 흙먼지가 주변을 뒤덮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돌연 광풍이 몰아닥치더니 시야를 가렸던 흙먼지를 전부 날려버리더니 낙하했던 무언가가 그 정체를 드려냈다.
"야. 야. 야. 야. 야! 개새/끼들아-!"
노기서린 호통이 한 차례 뒹굴었던 요괴들의 시선을 어느 한 곳에 모이게 만들었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낙하의 충격으로 인한 구덩이의 정 중앙. 뿔이 없었다면 갑자기 생겨난 말괄량이 여자로 보일 법한 슈텐이 활활 타는 눈으로 그들을 훑어보며 서있었다. 그리고 또 한명. 코우는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슈텐의 팔을 손바닥으로 연신 쳐대며 반죽음 상태로 축 늘어져 있었다.
"컥..케엑... 이거 좀 풀어 주십시요. 질식 하겠습니다!"
다행히 그의 말을 알아들은 슈텐이 그의 목을 곧바로 해방시켜 주었다. 죽다 살아난 코우 였지만, 목 아래로는 엉망이었다. 충격에 전신이 금이 가거나 골절이 된 것이었다. 그래도 이정도로 그친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착지에 실패했다면 절대 이정도로 그쳤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갑자기 나타난 이인조에 요괴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지진이 일 정도의 충격과 낙하의 흔적을 보건데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런 것 치곤 한명이 너무 멀쩡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평온을 깬 불청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 없었다.
용기 있는 요괴 한명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네 놈들은 어디서 나타난 거냐?"
그러자, 검지를 세워 똑바로 머리 위를 가리킨 슈텐이 위풍당당하게 대답했다.
"저 하늘 위에서 내려 왔지."
"뭐?!"
설마, 진짜로 낙하했단 말인가!
아직 반신반의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있지 않지만, 요괴는 불청객들이 하늘에서 낙하해 왔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게 저 둘은 척봐도 오니같았으니까. 요괴는 오니가 여럿 섞여 있는 백귀야행에 몸을 두고 있는지라, 저 들이 오니이지 아닌지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했다.
요괴이 술렁거렸다. 슈텐은 하늘을 향해 쭉 뻗은 검지를 내리지 않고, 사악해 보이는 미소로 모두에게 똑똑히 들리도록 말했다.
"날 겁쟁이 취급한 네놈들을 박살내려 내가 몸소 찾아 왔다. 이 개새/끼들아!"
요괴들은 일제히 경계 태세를 갖췄다. 저 정도의 흔적을 남긴 충격에도 무사한 여자가 단순히 불청객이 아닌 시점에서 위협적이었다. 적이라고 인지한 순간부터 요괴들에게서 무거운 긴장감이 흘렸다. 상대는 고작 둘 뿐이었지만, 쉽사리 나서는 자는 없었다. 본능적으로 여자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리라.
적이라고 선언 했는데도 요괴들이 움직임을 보이지 앉자, 슈텐은 위로 뻗었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좌우로 풀면서 다시 외쳤다.
"나더러 겁쟁이라더니, 실은 네 놈들이 더 겁쟁이인 모양이구나!"
요괴들 중 한명이 떨리는 음색으로 물었다.
"서..설마... 네 년이 그 슈텐이란 말이냐?"
"그래. 내가 슈텐이다. 어쩔래!"
슈텐이 정체를 밝히자, 요괴들에게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설마 했는데 진짜 슈텐일 줄이야. 정체를 알아버린 이상, 요괴들은 경계만 할 뿐. 더욱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요괴들이 한심하고 답답한 슈텐이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코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싸우는 지 넌 여기서 똑똑히 지켜나 봐라."
그리고 시선을 다시 요괴들에게 돌리며 이어 말했다.
"이제부터 난 1할의 힘 만으로 저 놈들을 때려 눞힐 거다."
다시 손을 하늘로 쳐든다. 이번엔 검지가 아니라 손바닥이 위를 향해 있었다. 어느새 그 손바닥 위에 작은 빛의 구슬이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바위처럼 큰 커다란 구체가 되었다. 붉게 활활 타오르듯 빛나는 그것은 마치, 작은 태양과도 같았다. 그 작은 태양은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더니 한 지점에 머무르면서 어두운 밤을 몰아내고 주변을 낯처럼 밝게 비추었다.
쳐 들었던 손을 다시 내린 슈텐이 코우에게만 들리도록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것은 내가 가진 힘의 9할 이상을 모아 놓은 정수지. 강대한 힘 없이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게."
자신만만하게 호언장담한 슈텐은 자신을 경계하는 요괴들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달려 나가는 그 뒷모습은 코우의 뇌리에 강하게 박힐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또 멋지다 생각 되었다. 두령에게서 그런 감상을 가지는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자신이 동경했던 선배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니, 그 보다 더.
그러나 그런 감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야야야야! 아악! 씨/발!! 뼈.. 뼈에 맞았어! 뼈에 맞았다고! 그만 때려 씨바아아알-!!"
요괴들을 향해 호기롭게 달려들었으나, 몇 번 투닥이더니 금세 둘러싸여 집단으로 구타당한 슈텐이 꼴사나운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었다. 1할의 힘으로도 강한 슈텐이었지만, 숫자의 폭력 앞에서는 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둘러싸서 밟아대고 있는 자들이 무리에서도 가장 강한 오니들이었으니 꼴사납게 얻어맞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자신이 원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된 슈텐은 울상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이 비겁한 새/끼들아! 한 놈씩만 덤비라고!!"
그 한심한 작태에 잠시라도 멋지다고 생각했던 코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