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중턱에 굉음이 터져 나오면서 거대한 토사가 솟구쳐 올랐다. 진원지는 슈텐과 코우가 있던 작은 폭포였다. 산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의 여파로 진원지 주변을 뒤덮은 희뿌연 흙먼지들이 가라앉자, 드러난 것은 초토화된 주변 풍경이었다. 코우를 쓰러뜨리고 슈텐을 표적으로 삼은 사내와 병사들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단지, 그들이었을 살덩이가 곳곳에 흩어져 있을 뿐. 그리고 인간들을 작은 폭포 채로 날려버린 슈텐은 충격으로 생긴 커다란 구덩이의 중심부에 서있었다.
슈텐은 말아 쥔 자신의 주먹을 눈높이에 둔 채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저질러 버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윽고, 그녀가 중얼거렸다.
"에구구, 다 날려 버렸네.."
진짜로 큰일을 내버린 것이었다. 제 딴에는 일단, 코우의 생사여부를 확인한다고 서둘려 상대한다는 게 그만 힘 조절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쓰러져 있던 코우마저 충격에 휩쓸려 토사 더미에 덮혀 버렸다. 만약, 간신히 살아 있었던 것이라면 의도하지 않게 숨통을 끊어 놓은 게 되어버린다.
아직, 그렇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가슴에 구멍까지 난 자가 충격에 쓸려 나갔는데 낙관적인 기대를 가질 수 없지 않은가. 슈텐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신이라도 건져 보자는 생각으로 주변을 가득 메운 토사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
코우는 금방 발견 되었다.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열도 넘게 만들어서 샅샅이 뒤졌는데, 당연한 일이다. 수색 작업에 동원된 분신들은 코우를 발견하자마자 슈텐의 몸으로 돌아갔다. 슈텐은 코우의 몸을 덮고 있는 흙더미를 치우내고 입가에 귀를 가까이 댔다.
다행이도 숨이 미약하게나마 이어가고 있었다. 이어 구멍이 나 있던 가슴을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돋아난 새살이 구멍을 메우고 있었다. 아직 나약한 주제에 불사력 하나는 대요괴급이네. 감탄하면서 슈텐은 그의 양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야 인마! 일어나!!"
완전히 정신을 잃은 건지 좀처럼 눈을 뜨지 않자, 슈텐은 코우를 깨우는 것을 포기하고 잡았던 어깨를 놓았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자신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못했지만, 빡빡머리 사내의 영력은 상당히 강한 편에 속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감히 자신, 슈텐을 퇴치하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 했을 테니까. 인간들이 발휘하는 영혼의 힘, 영력은 요괴들의 요력과 그 뿌리는 같되 서로 상반된 성질을 지닌 힘이다. 비유하자면, 요력이 정제되지 않은 거친 파도라면 영력은 고요하지만 착실하게 밀려드는 밀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다른 성질로 인해 영력과 요력은 서로 섞어짐이 없이 서로 반발한다. 따라서 요력을 지닌 요괴의 몸엔 인간의 영력은 독과도 같은 법. 일반적인 상처는 순식간에 치유 되도 영력에 의해 입은 피해는 좀처럼 낫지 않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코우가 입은 가슴의 상처도 영력에 의한 것이라 쉽게 치유되지 않아야 했다. 게다가 사내가 봉 끝에 담은 영력의 양과 질은 어지간한 퇴마사를 아득히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영력으로 가슴이 뚫렸으니 어지간한 요괴는 절명하고도 남는다. 물론, 자신을 포함한 대요괴라면 그 정도 영력으로는 가렵지도 않겠지만, 코우는 이제 겨우 오니 티를 내는 수준이니 얘기가 다른 것이다.
본래라면 이렇게 치유되지 않고 죽어야 정상인데.
살아있으니 천만 다행이긴 하나 기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대요괴에 범접하는 불사력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수행과 실전을 거듭하면서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걸로 그가 쉽사리 죽지 않는 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다.
자칫, 위험할 뻔 했으나 그걸 안 것만으로도 충분한 소득. 슈텐의 얼굴에 좋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미소가 어렸다.
*
타고난 사고뭉치인 슈텐은 누군가로부터 책망을 듣는 것에는 익숙했다. 그 누군가가 코하루라면 더욱이.
결과적으로 죽지 않았으니, 잘 된 게 아닌가 싶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슈텐의 생각일 뿐. 산 중턱에서 울러 퍼진 굉음에 불길한 예감이 든 코하루는 슈텐이 저지른 참상에 혀를 내둘렸다. 그리고 아직도 눈을 뜨고 있지 않은 코우의 모습에 화가 솟구쳐 오른 것이 조금 전의 일이다.
추궁하는 그녀에게 전후사정을 숨김 없이 뱉어낸 슈텐에게 이어진 것은 핀잔 소리. 슈텐은 결과를 떠나 안일함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사실을 지적 받으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슈텐의 모습에 코하루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지쳐갔다. 결국, 그녀는 그 동안 참아왔던 말을 꺼내 들었다.
"코우가 당신에게 수행 받는 걸 지금이라도 그만두게 할 거야."
"이 녀석,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서 쉽게 그만두려 하지 않을 텐데?"
슈텐의 말에는 자신이 강제로 시킨 게 아니라 코우가 원해서 하고 있는 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코하루도 알고 있다는 듯 반론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강제로라도 그만두게 만들려고."
"그래?"
강한 의사를 내비치는 코하루를 슈텐은 능청스런 눈으로 바라보다가 양 입가를 활짝 찢어 올렸다.
"미움 받더라도?"
그렇게 되더라도 정말로 괜찮겠냐는 물음이었다. 미움 받고 싶지 않아하는 주제에. 슈텐은 본심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코하루를 어리석다며 책망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코하루의 마음은 확고했다.
"상관없어."
쯧. 슈텐의 입에서 혀 차는 소리가 나왔다.
"과보호가 심하네."
"난 그저 코우가 네 여흥거리로 전략하는 게 싫은 것뿐이야."
"그게 과보호라고."
슈텐이 비웃음을 터트렸다. 그에 코하루가 사납게 노려보았고, 슈텐이 추가로 말했다.
"그리고 여흥거리인 게 뭐가 나빠서? 내 눈엔 널 포함한 오니 백귀야행 전체가 내 여흥거리인데."
"그러고 보니, 그랬지."
코우뿐만이 아니라 오니 백귀야행 자체가 단순히 슈텐의 변덕에 의해 생겨난 무리에 불과했다. 무리의 오니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슈텐도지라는 오니의 강함을 경외해 모여 들었지만, 그런 그들도 결국은 그녀의 여흥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사실은 코하루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오니가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따르는 것은 슈텐이 그만한 요괴이기 때문에.
코하루가 새삼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두령은 그런 오니였지."
모든 요괴가 자신의 아래에 있는 최강의 대요괴이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설령 오니 백귀야행이 해산되어 뿔뿔이 흩어지더라도 슈텐으로서는 아쉬울 것 하나 없었다. 백여 명이 넘는 오니들의 두령에서 혼자로 돌아갈 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만한 무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것이 슈텐이라는 오니였다.
슈텐의 말대로 자신이 코우를 과보호하고 있는 걸지도. 아니, 지나치게 애송이 취급을 했던 걸지도 모른다. 걱정이 된다고 해도 코우 자신이 결정한 일. 자신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
코하루는 강제로라도 슈텐의 제자를 관두게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그렇다고 코우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갈등은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 되었다.
*
지체 높은 텐구들의 심부름꾼답게 구힌들은 소식통에 밝았다. 산에서 오니들의 시중을 들면서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 하리마 전역이라는 광대한 범위의 소식들이 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현재 오니 백귀야행이 거주하는 산으로부터 100리 이상 떨어진 강가에 군집해 있는 또 다른 오니 백귀야행의 소식이 그러했다.
그들은 슈텐의 오니 백귀야행과 달리 오니로만 이루어져 있진 않았다. 그들 중 오니는 약 3할. 나머지는 전부 잡요괴로 구성된 백귀야행이었다. 그런데도 오니 백귀야행이라 불리는 것은 오니가 속해 있다는 것 하나뿐.
즉, 슈텐의 백귀야행에 비하면 가짜에 불과한 오니 백귀야행이었다.
그런 가짜 오니 백귀야행이 어째서 구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가 하면, 그들이 퍼트린 소문 때문이었다. 그것은 코우가 슈텐의 자식이라는 것과는 달리 당사자가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종류의 소문이었다.
다름 아닌, 슈텐도지가 겁쟁이라는 헛소문이었다.
근거는 이랬다. 무수한 도전자들을 받으면서도 전부 부하에게 맡긴다고. 웃기지도 않는 도발에 불과한 소리였다. 당연하게도 슈텐을 경외하는 오니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저 괘씸한 놈들을 쳐 죽이러 가자고 아우성이었고, 그러한 노성에 정보를 제공한 구힌들은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 드디어 그 헛소문을 접한 슈텐이 부하들 앞에 모습을 드려냈다.
"시끄러우니까, 모두 입 닥치고 조용해."
낭랑하게 울러 펴지는 슈텐의 목소리에 아까까지 노발대발하며 고함을 지르던 오니들이 입을 싹 닫고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수많은 부하들을 앞에 두고 슈텐은 가볍게 발을 굴려 지면에서 평평한 요철이 솟아나게 했다. 약 4척 가량 솟아오른 그 요철 위에서 슈텐은 부하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요즘 날 만만하게 보는 놈들이 많아진 모양이야. 그런 개소리를 씨부리는 걸 보면."
실상은 단순히 자신을 화나게 만들기 위한 조롱이겠지만, 그간 도전자들을 코우에게 상대 시킨 것이 그런 망발의 빌미를 마련한 것도 사실. 슈텐은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부하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
"천하의 슈텐이 겁쟁이라. 아무도 안 믿을 개소리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려니 참 괘씸해."
"저희가 가서 아주 박살을 내버리고 오겠습니다!"
자신이 따르는 두령이 겁쟁이 취급을 받는 것에 참지 못한 부하가 그렇게 외쳤다. 부하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헛소문의 진원지에 한 걸음에 달려가 박살을 내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슈텐은 그런 부하들을 제지했다.
"진정하고 내 말 끝까지 들어봐."
그 한마디에 부하들은 격해진 감정을 조금 누그러뜨리긴 했으나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 중에는 땅을 찍어대며 씩씩 거리는 자도 있었다. 조용하지만 험악한 분위기 속에 슈텐이 허리춤에 양 손바닥을 대고 말했다.
"그 놈들은 나 혼자서 조진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손 댈 생각 말고, 가만있어."
"그런 강아지들은 두령이 나설 가치도 없지 않습니까?"
부하의 물음에 슈텐이 즉답했다.
"그 새끼들은 내가 나서지 않는다고 겁쟁이라잖아. 그런데, 니들이 나서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겁쟁인지 아닌지 직접 알려줘야 하지 않겠어?"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지만, 표표한 두 눈만은 노기의 불길이 사납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보고 이해한 부하들은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슈텐은 고개를 홱 돌려 코하루 옆에 서있는 코우를 쳐다봤다. 코우와 눈을 마주친 슈텐이 말했다.
"이것도 좋은 기회지 않나. 넌 나와 같이 가서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견학이나 좀 해라."
제자이기에 다른 부하들을 제치고 특별히 데러가 준다는 말이었다. 어지간한 요괴들은 전부 주먹 한 방에 정리하는 슈텐의 싸움에서 배울 점이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코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것도 좋은 기회일지 모르니까.
어떻게 하겠다는 것만 결정되면 그 뒤의 행동은 빨랐다. 행동력이 넘치는 오니답게 슈텐은 요철에서 내려 코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가자!"라는 한 마디를 내뱉은 후, 그를 낚아채듯 팔로 허리를 감아 자신의 몸과 바짝 밀착 시켰다.
이다음 이어질 행동은 그녀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자들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것이었다.
그리 하기로 결정했으면 미적대고 있을 슈텐이 아니지.
예상대로 살짝 굽힌 무릎을 힘차게 뻗으며 하늘 높이 솟아 오른 슈텐과 그런 그녀에게 허리를 붙들린 코우는 순식간에 저 멀리 한 줌의 점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