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나면 <용왕이 하는 일!>을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트리비아를 정리해봤습니다.
<용왕이 하는 일!>에는 7개의 타이틀 기전과 6개의 여류기전이 나옵니다.
각 타이틀 기전에서 우승하게 되면 해당 타이틀을 1년간 보유하게 되죠.
주인공 야이치가 가지고 있는 '용왕' 타이틀, 긴코의 '여왕'과 '여류옥좌'처럼요.
당연히 현실에도 해당하는 기전들은 존재하지만, 어른의 사정 때문에 작중에서는 이름이 살짝 다르게 나옵니다.
뭐 그래봤자 눈 가리고 아웅 수준이지만요.
타이틀 기전과 일반 기전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타이틀전'의 유무겠죠.
일반 기전은 대개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 우승자가 되고 거기서 끝나지만,
타이틀 기전에서 우승하면 그 해의 도전자가 되서 작년 타이틀 보유자에게 도전하는 타이틀전을 치르게 됩니다.
타이틀전은 7번 대결 또는 5번 대결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먼저 과반수 승리를 거둔 쪽이 올해의 타이틀 보유자가 되는 거죠.
타이틀은 어느 것이든 매우 명예로운 칭호들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서열 비슷한 게 존재합니다.
이 서열은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중요한데, 그 때문에 자주 생기는 문제 중 하나가 '두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한 경우 호칭 문제' 입니다.
이를테면 왕장과 기성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프로기사를 공식적으로 언급할 때 '왕장 기성'로 불러야 하나 '기성 왕장'으로 불러야 하나 같은 거죠.
연고전이냐 고연전이냐 제3자가 보기에는 그게 그거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중요한 거랑 비슷하다고 할까요.
특히나 일본처럼 공식적인 형식을 굉장히 따지는 나라에서는 저런 사소한 순서도 문제거리가 될 수 있는 모양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타이틀을 한 번에 나열할 경우의 순서는 위의 표에 나열된 순서 그대롭니다. 경우에 따라서 뒤바뀌는 일도 종종 있지만요.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건 '명인'과 '용왕'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두 타이틀만은 <용왕이 하는 일!>에서도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나왔죠.
저 둘의 위상이 어느 정도냐면, 타이틀을 세 개 이상 동시에 보유한 경우에는 그냥 '3관' '4관' '5관' 하는 식으로 줄여쓰지만,
만약 그 중에 '용왕'이나 '명인'을 포함하고 있다면 다른 타이틀은 죄다 생략하고 그냥 '용왕' '명인'이라고만 불러도 무방합니다.
이 둘만큼은 다른 타이틀보다 확실히 한 수 위라는 암묵적인 합의라고 할 수 있죠.
명인은 프로기사 제도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있던 유서 깊은 칭호로, 바둑계의 명인 타이틀과도 역사적으로 약간 관련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장기 가문에서 대대로 세습하던 종신 칭호였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실력제 단기 보유 칭호로 바뀌게 되었죠.
사실 프로기사 제도가 만들어지게 된 것 자체가 명인 제도가 실력제로 변경된 것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프로기사 제도의 원점이자 정점이라고 할 수 있죠.
때문에 나중에 생긴 다른 타이틀들과는 확실히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용왕의 경우는 왜 특별하냐면, 역사는 별로 길지 않지만 상금 액수가 넘사벽으로 높기 때문입니다(...)
속물적인 이유라 좀 깨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상금이 많을수록 그만큼 승리에 대한 동기부여도 클 테니까 납득이 가는 면도 있죠.
명인과 용왕은 대회 방식 역시 다른 타이틀과 꽤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기전들은 대개
예선 토너먼트 -> 본선 토너먼트 -> 도전자 결정 리그 혹은 도전자 결정 승부 -> 타이틀전
와 같은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한편 명인 도전자를 결정하는 순위전은 토너먼트 없는 리그제입니다.
C급2조, C급1조, B급2조, B급1조, A급 5개 리그로 나눠져 있고 매년 리그 성적에 따라 상위 리그로 올라가거나 하위 리그로 떨어지거나 하는 식이죠.
최종적으로 A급 우승자가 명인전 도전자가 됩니다.
즉 애초에 A급이 아니면 그 해에는 명인에게 도전할 기회조차 없는 겁니다. 착실하게 매년마다 승급해서 A급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죠.
프로기사가 되면 처음에는 C급2조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명인에게 도전할 기회가 생기는 A급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순위전 대국을 전부 이긴다고 가정해도 최소 4년이 걸리죠.
현실에서는 실제로 4년만에 C급2조에서 A급까지 올라간 건 프로장기 역사상 딱 두 명밖에 없습니다.
용왕전 역시 순위전과는 별도의 리그전으로 운영됩니다.
1조, 2조, 3조, 4조, 5조, 6조 총 6개 예선 리그로 나눠지는데
순위전처럼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내년에는 상위 리그로 올라가고, 반대로 성적이 나쁘면 하위 리그로 떨어지게 되죠.
참고로 이름은 리그이긴 하지만, 실제 형식은 토너먼트제입니다.
여기서 각 조별 본선 진출자 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총 12명이 진출해서 본선 토너먼트를 치르게 되는 거죠.
특이한 건 6조 리그에는 프로기사만이 아니라 아마추어 기사, 여류기사, 장려회원도 참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프로기사가 아니더라도 만약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다음해부터는 승격해서 상위 리그에서 출발할 수도 있죠.
심지어 프로기사가 아니면서 새로운 용왕이 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여류기사나 아마추어가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상위 리그에 승격한 경우조차 극히 드물지만요.
어쨌든 용왕전은 다른 타이틀 기전에 비해 하위 리그에 속한 기사들에게 비교적 유리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역대 용왕 타이틀 보유자들은 다른 기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프로 경력이 짧은 기사들이 많은 편입니다.
작중 주인공 야이치 역시 프로가 되자마자 바로 다음해에 용왕이 되었다고 하죠.
라노벨적 과장이 아주 약간 섞이긴 했지만, 이것 역시 엄연히 현실의 사례에서 모티브를 따온 겁니다.
아무튼 저렇게 여류기사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는 용왕전의 특징상
<용왕이 하는 일!>에도 언젠가 하나츠루 아이와 야샤진 아이가 여류기사가 되서 용왕전에 나가는 전개가 거의 틀림없이 나올 거라고 봅니다.
어쩌면 아예 둘 중 한 명이 용왕전 도전자가 될지도 모르죠.
혹시 긴코나 케이카도 참가해서 야이치에게 도전할 자격를 두고 치열한 승부를 펼친다든가 하는 내용이 나올지도 기대되네요.
마지막으로 저 표에서 가장 이름이 특이한 타이틀 '쿠라시키 토우카'에 대해서 잠시 설명해보죠.
작중 대응하는 타이틀 '야마시로 오우카' (정발판에서는 산성앵화)는 쿠구이 마치 양이 보유하고 있는 타이틀로 나옵니다.
쿠구이 마치 양은 원래 예스러운 교토 사투리를 구사하는 아가씨 컨셉 히로인입니다만 (뒤에 나오지만 진짜 부잣집 아가씨였습니다)
정발판에서는 걸걸한 경상도 사투리가 되버리는 바람에 개인적으로는 살짝 안타까웠습니다. 뭐 한국어 번역의 한계상 어쩔 수 없지만요.
아무튼 '쿠라시키 토우카'는 쿠라시키시에서 주최하는 '오야마 명인배'의 타이틀 이름입니다.
15대 영세명인 古오야마 야스하루를 기리는 의미를 담아서 매년 오야마 명인의 고향 쿠라시키시에서 열리는 여류기전이죠.
우리말로 번역(?)하면 '쿠라시키의 등꽃'이라는 뜻입니다. 그윽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운치있는 이름이죠.
그런데 <용왕이 하는 일!>에서는 이걸 살짝 패러디해서 '야마시로 오우카', 즉 '야마시로의 벚꽃'으로 바꿨습니다.
야마시로는 교토 키즈가와시의 옛 지명인데, 이곳 출신의 대표적인 프로기사로 古미나미구치 시게카즈 9단이 있습니다.
미나미구치 9단은 쇼와 시대의 대표적인 관서 장기인이자 은퇴 후에도 고향인 교토에서 장기 보급에 힘쓰며 많은 문하생들을 길러낸, 말하자면 관서 장기계의 대스승격인 인물이죠.
카토 히후미 9단도 장려회 시절 잠시 문하생으로 있었다고 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프로기사 古무라야마 사토시 9단 역시 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또 미나미구치 9단은 위에서 언급한 오야마 명인과 장려회 동기이기도 했고요.
즉 <용왕이 하는 일!> 작중에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야마시로 오우카'란 건 아마도 미나미구치 9단을 기리는 가공의 여류기전이 아닐까~하고 추측할 수 있는 거죠.
뒤에 붙는 꽃 이름도 그냥 붙인 게 아니라 쿠라시키시의 상징 꽃인 등꽃에 그대로 대응되도록 교토의 상징 꽃인 벚꽃을 붙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아는 만큼 보이는 깨알같은 패러디들은 <용왕이 하는 일!> 작중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여담으로, 작년부터 현실의 프로장기계에 새로운 타이틀 '예왕'이 추가되면서 타이틀 기전은 총 8개로 늘어났습니다.
3권에 '현왕전'이라는 일반 기전이 잠깐 언급되는데 어쩌면 저걸 염두에 둔 걸지도 모르겠네요.
쓰다보니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다음번에는 작중 등장인물들의 모티브를 따온 현실 기사들에 대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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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였네요 수정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17.12.02 15: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