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히스토리에를 읽다가 다음권이 언제 나올지 무지 궁금해서 검색좀 하다가 작가 인터뷰를 봤습니다.
일단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의 이야기까지 구상은 한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워낙 책이 나오는 속도가 느린터라 하도 답답해서 실제 역사는 어떻게 되나 그냥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읽었습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에우메네스 전기도 있는데 작가도 분명 이 책을 참고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에우메네스같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역사 인물을 다룬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하니까요.
사실 에우메네스가 본격적인 활약을 보이기 시작하는건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이후부터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밑에 장군들이 각자 휘하의 군대를 배경으로 제국 전체 혹은 일부를 장악하려고 하는데, 전체를 집어먹으려고 하는 녀석들이 페르디카스, 안티고노스(별명이 Monophthalmus인데 외눈박이란 뜻. 처음에 1권에 필리포스왕이 얜줄 알았는데 낚였음; 아직 등장안함),안티고노스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등등이고 나눠먹으려는 애들이 프톨레마이오스, 셀레우코스, 안티파트로스와 그 아들 카산드로스 등등입니다. 몇몇 인물들은 이미 6권까지 등장한 상태입니다.
이 사람들을 모두 통틀어서 디아도코이(Diadochi, 후계자들)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디아도코이들이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동생인 필리포스 아리다이오스(에우메네스한테 장난감 받은녀석, 후에 필리포스 3세)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알렉산더 대왕의 자식에게 왕위를 나눠서 계승시키려고 했는데 당연히 제국을 안정화시키려는 의도로 한 행동이었지만 별 의미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5권에서 나왔다시피 아리다이오스는 어딘가 좀 모자란 사람이고, 알렉산더 자식은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래봤자 간난아기라 할 수 있는게 없었거든요. 알렉산더 대왕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마케도니아 왕실에서 중심이 될 만한 인물이 거의 없는 상태죠.
알렉산더 어머니인 올림피아스는 야심이 많았지만 마케도니아의 실력자인 안티파트로스와 카산드로스에게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후에 마케도니아를 장악한 카산드로스에 의해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더 대왕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 모두 살해당함. 아리다이오스는 그 전에 올림피아스에게 암살당함)
만화에서는 안티파트로스가 군사적 능력이 거의 없는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어느정도 실력은 있는 사람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한참 페르시아 정복중일 때 본국 마케도니아는 안티파트로스가 통치를 맡고 있었는데 왕이 없는 틈을 타 스파르타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안티파트로스에게 패하고 전투 중에 스파르타 왕 아기스 3세도 전사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아테네도 반란을 일으켜 잠시나마 안티파트로스를 위기에 빠뜨리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죠.
어쨌든 야심많고 군사력도 쥔 디아도코이들이 제국을 두고 다투는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에우메네스는 페르디카스하고 손을 잡았는데 페르디카스가 에우메네스를 매우 신뢰해서 꽤 많이 밀어줍니다. 그 지원을 바탕으로 에우메네스는 다른 경쟁자들과 본격적으로 싸움에 나서는데 이 때부터 에우메네스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히스토리에 1권부터 에우메네스가 페르디카스와 마주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에우메네스가 칼데아 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무력시위하고 있는 마케도니아군 쪽으로 뭐라고 한참 소리치던 모습 기억하시나요? 그 때 이동하고 있던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겨눈 창에 찔리려는 찰나 한 지휘관이 손을 들어 병사들을 제지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페르디카스입니다. 5권에서 장난감을 들고 왕궁에 입성하는 에우메네스를 보고 그 때 일을 회상하는 페르디카스 모습이 나오죠.
근데 페르디카스가 프톨레마이오스와 싸우려고 이집트로 가는 도중 부하들에게 살해당하는 바람에 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에우메네스는 고립된 상태로 적들에 맞설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당시 에우메네스가 장악하던 지역이 현재의 터키, 흑해연안으로 만화책에서 에우메네스가 살았던 보아마을이 속했던 파플라고니아도 지배했던 셈입니다.
사실 에우메네스의 군사적 능력은 실제로도 뛰어났습니다. 원래 알렉산더 대왕의 서기관으로 알다시피 문관이었는데 군사적 재능도 인정받아 왕이 인도원정에 나섰을 때는 장군이 되기도 했죠. 그리고 필리포스 왕때부터 최정예 보병대로 이름높았던 '은방패 부대'도 휘하에 두었는데 알렉산더가 죽은 후에 떨어져있다가 나중에 다시 에우메네스 밑에서 싸우게 됩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는 은방패 부대에 대한 설명도 있는데 부대원 나이가 거의 70이 넘었고, 60세 미만 병사는 한명도 없었다는데(얼마나 군대에서 말뚝박은건지 ㅡㅡ;) 매우 용맹해서 그들이 돌격하는 곳마다 적들이 달아났다고 나와있습니다.
처음에는 에우메네스가 잘 나갔습니다. 예전부터 사이가 매우 나빴던 네오프톨레모스(알렉산더의 근위대장이었음. 6권에 올림피아스 침실에 들어갔던 병졸이 얘일지도 모르겠음)의 군대를 격파하고 네오프톨레모스와는 1대1로 싸워서 죽였고, 알렉산더 대왕 이후 마케도니아 군대에서 가장 명성높았던 크라테로스마저 격파하고 전사시키는 등 세력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근데 그때부터 상황이 안좋아지기 시작합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어떻게 돼든 상관없었지만 크라테로스는 마케도니아 최고의 장군으로 이름높았고, 마케도니아 출신이 아닌 외국인인 에우메네스가 그를 죽이는 바람에 적은 물론 아군한테도 미움을 사게됐죠. 사실 전투 전에도 에우메네스는 휘하의 마케도니아 군대가 배신할까봐 아군에게 적의 사령관이 크라테로스라는 사실이 알려지는걸 두려워했습니다. 이 때 이후로 에우메네스는 안티파트로스와 안티고노스라는 강적과 싸우게 됐는데 특히 안티고노스가 위험한 상대였습니다. 다른 디아도코이들은 그래도 제국 일부분을 확실히 장악하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안티고노스만큼은 마지막까지 알렉산더의 제국 전체를 차지하려고 했을만큼 야심이 컸고 군사력도 강했거든요.
에우메네스는 안티고노스와의 싸움에서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고 그랬지만 세력차가 컸기 때문에 점차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에우메네스가 싸움에 이길 능력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주도권은 안티고노스에게 있었죠. 그러다가 한 전투에서 다시 맞붙게 되었는데 에우메네스의 은방패 부대가 안티고노스의 보병들을 격파했지만 기병대가 패하는 바람에 보급부대가 털리고 말았습니다. 전투가 끝난 후 은방패 부대의 지휘관인 테우타무스는 안티고노스에게 사람을 보내 빼앗긴 물자를 돌려달라고 했는데 그때 포상을 약속한 안티고노스의 제안으로 에우메네스를 배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원래 이전부터 테우타무스는 질투와 경쟁심때문에 에우메네스를 싫어했습니다. 테우타무스가 전달한 안티고노스의 제안에 다른 은방패부대 병사들도 동조하여 마침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에우메네스를 사로잡아 안티고노스에게 넘겨버렸습니다. 안티고노스는 에우메네스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마침내 죽이기로 결정하고 거의 굶어죽을 때까지 밥을 굶긴 다음 사형집행인을 보내서 죽였습니다. 이게 에우메네스의 최후입니다..
근데 안티고노스는 그렇게 눈엣 가시같던 에우메네스를 죽인 다음 측은한 생각이 들었는지 에우메네스를 배신한 은방패 부대의 병사들을 자기 부하에게 넘긴 후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에우메네스 전기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은방패 부대 병사들은 단 한사람도 마케도니아의 고향에 가지 못하게 했고, 죽어서는 그리스의 바다조차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고 나와있습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평도 실려있는데 에우메네스는 천성적으로 전쟁과 투쟁을 즐기고, 안전보다 전쟁에서의 명성에 큰 뜻을 둔 사람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자기편에서도 그에 대한 음모를 꾸미는 자가 많았기 때문에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고, 에우메네스에게 있어 새로운 승리는 늘 새로운 위험의 실마리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죠. 만화에서도 출신때문에 고생하는데 실제로도 평생 출신민족이 핸디캡이 되었습니다(만화에서는 스키타이인으로 나오지만 원래는 그리스인). 하지만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진 사무관 출신에서 알렉산더의 최측근으로 출세한데다 특히 죄다 마케도니아 명문귀족인 디아도코이들 중 유일하게 외국인인 그리스인이라는 점은 그의 능력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 무명인 인물이긴 하지만 그만큼 사실과 만화적 상상력을 조화시켜 매력적으로 부각시킬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실제 에우메네스의 일생은 이렇게 흘러가는데 작가가 실제 사실 그대로 만화를 그리는건 아니니까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알렉산더가 등장했는데 만약 히스토리에가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반영한다면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네요. 연재도 느린데..;;
알렉산더 대왕 시절 이야기는 일부로 적지 않았는데 플루타르크도 별다른 에피소드를 소개하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에우메네스란 인물이 당대에 두드러지기 시작하던 때는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6권 마지막에 헤파이스티온과 관련하여 뭔가 앞으로 중요한 일이 일어날 듯 싶은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하죠? 실제 역사에서도 헤파이스티온과 관련하여 에우메네스와 알렉산더 사이에 큰 일이 일어날 뻔 합니다.
이왕 글쓴 김에 만화에 등장한 인물 몇명에 대해서도 소개해 보겠습니다.
멤논 - 1권 시작부터 나오는 인물. 페르시아 군에 속해있던 그리스 로도스섬 출신의 장군.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침공하자 섣불리 맞서지 말고 초토화 전술을 써서 적군의 발목을 잡은 후 우세한 해군을 이용해 마케도니아 본국을 뒷치기 하자고 주장했으나 다른 페르시아 장군들의 반대에 부딪혀 기각됨. B.C. 334년 소아시아 남부 할리카르나소스에서 알렉산더의 공격에 성공적으로 방어했으나 이듬해 에게해 레스보스 섬 미틸레네에서 사망.
개인적으로 멤논의 생각대로 페르시아가 전쟁을 치뤘다면 알렉산더는 실패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마케도니아는 자체적인 해군이 없었고 아테네 등 동맹군의 해군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리스인들은 내심 알렉산더를 싫어하고 있었고, 알렉산더도 이들 동맹국 해군을 신뢰하지 않았죠. 실제로 원정 중에 스파르타를 비롯한 몇몇 도시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아테네도 결국 나중에 반란을 일으켰잖습니까? 만약 페르시아가 해군을 파견해 이들과 연대했다면 알렉산더에게 재앙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알렉산더도 페르시아 해군의 존재에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에 이수스 전투에서 승리한 후 곧장 페르시아 심장부(메소포타미아)로 진격하지 않고 남쪽 지중해 연안으로 방향을 돌려 페르시아 해군의 항구가 있는 페니키아, 이집트를 정복했던 것이죠.
바르시네 - 4권에서 표지로 나왔죠? 멤논의 부인으로 멤논의 상관이었던 페르시아 귀족 아르타바주스의 딸. 멤논이 사망한 후 알렉산더와 썸씽이 생겨 헤라클레스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실하진 않음. 참고로 아르타바주스는 페르시아 제국 멸망 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박트리아 총독으로 임명됨.
헤카타이오스 - 만화에서는 에우메네스 최대의 원수로 나오는데 실제로도 에우메네스는 그를 미워했음. 알렉산더 대왕 시절 에우메네스는 고향인 칼데아 시민들에게 자유를 주기위해 항상 헤카타이오스를 비난했고, 왕에게 그를 탄핵한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음. 한창 디아도코이들이 쌈박질 하던 시절 페르디카스는 레온나투스를 시켜 에우메네스에게 보낼 군대를 지휘하게 했는데 도중에 헤카타이오스가 아테네의 반란으로 곤란을 겪고 있던 안티파트로스를 구해야 한다고 레온나투스에게 연락을 하여 방향을 돌리게 함. 헤카타이오스가 꼭 에우메네스를 방해하려고 그리 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에우메네스를 엿먹인 셈이 됨.
칼리스테네스 - 아리스토텔레스의 친척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공식 역사가. 만화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쫓기던 중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넘어갈 궁리를 하던 에우메네스와 만나 싸가지없게 굴지만 그래봤자 모터 신세. 알렉산더 대왕에게 엄청나게 아첨을 했음에도 왕과 사이가 벌어져 반역죄 혐위를 뒤집어쓰고 처형됨.
네아르코스 - 6권에서 에우메네스가 승마공부를 할때 만난 인물. '누구보다 신뢰할 수 있는 남자'라는 에우메네스는 물구나무를 서도 얻을 수 없는 별명을 갖게된다고 소개됨.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들 중 보기 드문 해군 제독.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에서 귀환할 때 함대를 이끌고 인도에서 페르시아만을 거쳐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바빌론까지 항해했다. 이에 대한 기록이 A.D. 2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을 연구했던 아리아노스가 쓴 인도여행기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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