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자네 그거 자네 본래 덱인가?”
“금선이도 이 덱으로 상대했는데 이정도도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디스크도 일부러 두 개 가져왔는데, 시작했으면 끝은 봐야지.”
그렇게 말하고서 채은월 교장은 주머니에서 덱 하나를 꺼내 듀얼디스크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다른 듀얼디스크를 꺼내 남해에게 내밀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해는 디스크를 받아들고 어색하게 팔에 디스크를 차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팔에 디스크를 찬 은월과 달리 한참을 익숙하지 않게 이리저리 고생하다 디스크를 찬 남해는 덱 케이스 안에서 어제 짰던 그 덱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은월을 따라온 나의주 목사가 갑자기 남해의 어깨에 양 손을 얹었다.
“남해야.”
“네?”
“포기하지 마라.”
남해는 목사의 눈빛을 부담스러워 하다가 마지못해 고갤 끄덕였고 목사는 한숨을 쉬며 남해에게서 물러났다.
잠시 후 준비를 완전히 마친 둘이 운동장 한복판에 거리를 벌리고 서자 양쪽의 디스크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룰은 기본 룰을 따른다. 다 알고 있겠지?”
“아, 예!”
남해는 오는 길에 목사에게 택시에서 들은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라이프 8000, 처음 뽑는 카드 다섯장, 선공은 드로우 없음... 자신이 알던 그 평범한 룰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먼저 간다. 패에서 지속 마법 [앤틱 기어 캐슬]을 발동하고, 필드 마법 [기어 타운]을 발동!”
채은월 교장의 주변에서 스팀펑크 풍의 거대한 금속 구조물들이 부착된 건물들이 솟아올랐다.
저번의 호루스와는 사뭇 다른 그 풍경에 남해는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지 침을 꼴깍 삼키며 자신을 최대한 달랬다.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건물들을 둘러싸듯 그 뒤에서 첨탑이 달린 성채가 등장했다.
“[기어 타운]의 효과로 나는 일반소환 시에 앤틱 기어 몬스터의 릴리스를 하나 줄일 수 있지. [앤틱 기어 비스트]를 일반소환하고 턴을 마친다.”
끼기기기긱... 큼직하게 울리는 소리를 내며 건물들에 달린 기어들이 회전했고 저 뒤편에서 번개처럼 맹수 한 마리가 채은월 교장의 필드로 뛰어들었다.
[앤틱 기어 비스트/Lv6/2000→2300/2000]
-채은월/LP 8000/패 2장
어릴 적 만화에서 본 그 이미지와 다르게 SF 영화의 스크린을 뚫고나온 듯한 비스트의 모습을 보자 남해는 다시금 긴장이 됐다.
호흡하듯 몸을 움직일 때마다 딱딱거리고 철컥거리는 금속음이 같이 울리는 모습은 정말 저 안에 영혼이라도 든 것만 같은 기분을 남해에게 느끼게 했다.
한가롭게 저 홀로그램이나 감상할 때가 아니었다. 남해는 다시 심호흡을 하고 덱 위로 손을 가져갔다.
“제 차롑니다. 드로우.”
상성이 나쁘다. 비스트가 전투로 파괴한 몬스터는 효과가 무효가 되기 때문에 룡성의 특기인 리쿠르트를 통한 버티기가 불가능했다.
남해는 패를 쭉 보는 대신 방금 드로우한 카드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면...
“패에서 [크리스트론-로즈닉스]를 소환합니다.”
[크리스트론-로즈닉스/Lv4/1800/1000]
바닥에서 붉은 수정구가 올라왔고 파캉! 하고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수정파편을 휘날리며 그 안에서 기계 불사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상한 것보다 훨씬 화려한 로즈닉스의 등장에 남해는 또다시 넋을 놓고 로즈닉스를 쳐다보다가 금새 정신을 차리고 다음으로 이어갔다.
‘저녀석도 그렇고, 금선이도 그렇고. 대체 나형은 듀얼 한번 못해본 거 같은데도 재능 있는 애들을 어디서 데려오는 거야?’
“로즈닉스의 효과로 자신을 파괴하고 덱에서 [크리스트론] 튜너인 [크리스트론-시토리]를 특수소환합니다. 그 후 카드 한 장을 세트하고 턴을 마치겠습니다.”
-강남해/LP 8000/패 4장
산산조각난 로즈닉스의 파편들은 다시 뭉치며 노란 큐빅으로 변했고 그 안에서 크리스트론의 문양이 반짝이더니 다시 수정을 박살내고 시토리가 안에서 뛰쳐나왔다.
[크리스트론-시토리/lv2/500/500]
“그렇단 말이지. 드로우.”
교장은 잠시 패를 말없이 살피다가 한 장을 뽑아들었다. 배경의 앤틱 기어 캐슬이 서서히 무너지며 부품이 하나둘씩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기어 타운과 캐슬에서부터 새로운 부품들이 교장의 필드로 모여들었고 하나둘 부품들이 서로 합쳐지며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뼈대의 조립이 끝나고 외장이 하나씩 붙는 모습을 보며 남해는 그 카드의 정체를 기억해냈다.
저거, 저걸 어떻게 잊어? 그래, 분명 봤잖아. 바로 그 카드...
“어...?”
“앤틱 기어 캐슬에 놓인 카운터는 두 개. 릴리스 대상 두 개의 몫을 할 수 있지. 캐슬을 릴리스하겠다. 강철의 거신병, [앤틱 기어 골렘]을 어드밴스 소환한다!”
[앤틱 기어 골렘/Lv8/3000/3000]
채은월 교장이 아니라 배경의 건물과도 비견될 덩치의 앤틱 기어 골렘을 보자 남해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앤틱 기어 골렘의 붉은 눈빛을 보자 전의가 푹 꺾이는 것만 같았다.
“배틀 페이즈로 간다. 비스트로 시토리를 공격!”
“시토리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묘지의 [크리스트론-로즈닉스]를 소생시키고 소재로 싱크로 소환! 레벨 6 [인잭트론 파워드]!”
시토리가 양 팔을 위로 올리자 바닥에서 큼직한 황수정 안에 갇힌 로즈닉스가 솟아났고 시토리가 빛으로 변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수정을 깨고 그 안에서 곤충을 닮은 로봇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이이이이잉-!!! 로봇의 엔진이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에 남해는 자신도 모르게 양 팔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고 이어서 골렘의 집채만한 주먹이 로봇을 내리찍자, 로봇의 양 집게발이 열리며 그 안에서부터 방출된 에너지가 방벽을 형성했다.
콰아아앙-!! 방벽이 울리는 소리에 남해는 움찔했지만 끝끝내 방벽은 공격을 버텨냈고 남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잭트론 파워드가 소환에 성공한 턴 파워드는 파괴되지 않고, 저는 데미지도 받지 않습니다!”
“턴 종료다.”
-채은월/LP 8000/패 2장
“제 차례, 드로우합니다.”
남해는 드로우한 카드를 보고 여기가 기점이라고 생각했다.
드로우한 카드는 [크리스트론-설퍼프너]였고 패의 카드들과 연계한다면 [크리스트론-그리온간드]를 뽑아내는 것도 문제없었다.
“패의 [크리스트론-프라시레타]를 버리고 [크리스트론-설퍼프너]를 특수소환 합니다! 여기서 설퍼프너의 효과로 자신을 파괴해 덱에서 두 번째 시토리를 꺼내오고, 프라시레타를 제외해 패의 [크리스트론-쿠온]을 특수소환!”
남해의 필드에 수정 원석들이 연달아 솟아오르며 순식간에 두장의 크리스트론 몬스터가 필드에 나타났고 남해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자, 레벨 1 쿠온과 레벨 2 시토리, 레벨 6 인잭트론 파워드를 소재로 레벨 9 [크리스트론-그리온간드]를 소환합니다!!”
“뭐?”
남해를 오늘 처음 듀얼을 하는 것 같은 아마추어로만 보던 은월은 그리온간드라는 말에 살짝 놀라며 남해의 필드를 주시했다.
쿠온과 시토리는 하이파이브를 하고 바닥에서부터 무수한 수정조각들을 끌어올렸다.
이윽고 인잭트론 파워드를 덮은 수정파편들은... ...도로 무너졌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지...’
둘의 듀얼을 지켜보던 나의주 목사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쭉 쓸어내렸다. 남해는 그제야 어제 나의주 목사가 한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분명 레벨의 합계도 9, 소환 조건도 아무 문제없고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필드에 소환을 제약하는 카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해온 것이 안되자 남해는 손이 떨려왔다. 아직 제대로 한 게 없는데 이대로 턴을 끝낸다면... 공격력 500의 쿠온과 시토리가...
“그, 그렇다면... 패의 [염룡성-슌게이]를 일반소환하고 레벨 1 쿠온과 레벨 6 인잭트론 파워드로 레벨 7 [사룡성-가이저]를 소환합-”
남해가 가이저의 이름을 부르자 쿠온이 뭔가 하기도 전에 남해의 필드에 검은 돌풍이 몰아치며 인잭트론 파워드와 쿠온을 집어삼켰다.
그 안에서 흑룡의 형상이 드러났고 어딘가에서 날아온 갑주들이 흑룡에게로 달라붙으며 서서히 흑룡의 몸이 팽창해갔다.
이윽고 검은 돌풍이 걷히며 어딘가 뒤틀린 듯한 모습의 흑룡이 나타나 포효했다.
[사룡성-가이저/Lv7/2600/2100]
“뭐... 야...?”
가이저는 가이저대로 지금까지와 다른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골렘이나 호루스가 풍긴 분위기가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이라면 가이저의 모습은 맹수를 눈앞에 마주할 때의 공포 같았다.
거친 숨소리가 울릴 때마다 대못 같은 이빨이 줄줄이 난 입가가 파르르 떨렸고 4족보행과 상반신이라는 기이한 체형과 핏빛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남해는 자리에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았다.
‘괴물이 따로 없잖아...’
“어, 아... 아... 아, 가이저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방금 일반소환한 슌게이와 골렘을 대상으로-”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남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슌게이는 불덩어리로 변해 가이저에게 흡수됐고 가이저는 한번 발을 구르며 하며 숨을 들이마시더니 앤틱 기어 골렘을 향해 보랏빛 브레스를 매섭게 뿜어냈다.
처음에는 공격을 버텨내던 골렘이었지만 공격받은 부위에서부터 부품이 부식되더니 이윽고 그 거체가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 났다.
“슌게이가 효과로 파괴되었을 때, 덱에서 룡성 몬스터 하나를 수비 표시로 소환합니다... 제가 소환할 몬스터는 [지룡성-헤이칸]... 그리고, 헤이칸과 시토리를 튜닝해 레벨 5 [원룡성-보우텐코우]를 싱크로 소환할게요...”
슌게이가 사라진 자리에 남아있던 붉은색 구슬이 일렁이다 갈색으로 변했고 바닥의 흙더미들을 끌어당기며 구슬은 호피무늬의 용으로 변했다.
그리고 시토리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녹색 고리로 변했고 그 안으로 헤이칸이 들어가자 빛을 발하며 하늘에서부터 금빛의 용이 한 마리 내려왔다.
[원룡성-보우텐코우/Lv5/0/2800]
가이저와 다르게 보우텐코우에게선 아무런 해로운 느낌이 들지 않았고 남해는 힐끔하고 잠시 가이저의 눈치를 보다가 덱으로 손을 가져갔다.
“보우텐코우가 소환에 성공했으니 덱에서 [룡성의 휘적]을 패에 넣고, 다른 효과를 발동할게요. 덱에서 환룡족 몬스터인 [광룡성-리훈]를 묘지로 보내고 레벨을 1로 바꾼 배틀 페이즈로 돌입할...”
남해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가이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앤틱 기어 비스트를 향해 달려들었고 비스트도 기다렸다는 듯 가이저에게 뛰어들었다. 비스트의 턱이 가이저의 팔을 물어뜯었지만 이내 비스트에게 물린 가이저의 왼팔은 흑안개가 되어 스스스 흩어졌고 반대편 팔로 비스트의 허리를 붙든 가이저가 비스트를 넘어트리며 한 발로 비스트를 밟았다.
그리고 흑안개로 변한 왼팔을 다시 구성시켜 비스트의 머리를 콱 움켜쥔 가이저는 그대로 비스트의 머리를 뜯어내버리고는 채은월 교장을 노려보며 남해의 필드로 천천히 뒷걸음쳤다. 남해는 자기 자리로 돌아온 가이저가 휙 들고 있던 비스트의 머리를 던져버리자 괜히 헛구역질이 나는 기분이었다.
-채은월/LP 8000 → 7400
“그럼 이제 턴을 마칩니다...”
-강남해/패 2장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내 차례군, 드로우.”
은월 교장이 패에서 카드 한 장을 내자, 어딘가에서 쿠구구... 하고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너져버린 성채 안에서 포탑 하나가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패에서 [앤틱 기어 캐터펄트]를 발동하겠다. 기어 타운을 파괴하지.”
기껏 은월의 옆까지 굴러온 포탑은 그대로 포신을 뒤로 돌려 은월의 주위에 놓인 건물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하나둘 건물이 부숴질 때마다 파편이 쏟아지고 먼지구름이 남해에게로 다가왔고 그 안에서 불길하게 끼기긱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두 개의 빛이 보였다.
“캐터펄트의 효과로 덱에서 앤틱 기어 몬스터를 하나 소환 조건을 무시하고 소환하고, 기어 타운이 파괴되었으므로 역시 앤틱 기어 몬스터 하나를 덱에서 불러온다. 내가 부를 카드는 [앤틱 기어 리액터 드래곤]과 [앤틱 기어 가젤 드래곤].”
[앤틱 기어 리액터 드래곤/Lv9/3000/3000]
[앤틱 기어 가젤 드래곤/Lv8/3000/2000]
쇳덩이들을 밀쳐내고 그 잔해 안에서 두 마리의 기계비룡이 날아올랐다.
두 용이 남해를 노려보고 울부짖자, 보우텐코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가이저는 유독 송곳니를 드러내며 거칠게 반응했다.
“배틀페이즈, 리액터 드래곤으로 가이저를 공격하겠다.”
리액터 드래곤의 가슴에 달린 동력로가 시끄러운 굉음을 울리며 가열차게 돌아갔고 리액터 드래곤의 입에서 발사된 숨결에 가이저는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박살나고 말았다.
-강남해/LP 8000 → 7600
“리액터 드래곤이 공격할 경우, 상대는 데미지 스탭이 끝날 때까지 효과를 발동할 수 없다. 가이저의 리쿠르트 효과도 무효다. 거기에 공격이 끝나면 필드의 마법이나 함정을 하나 부술 수 있지. 세트된 카드를 파괴한다.”
리액터 드래곤이 날개를 한번 펄럭이자 돌풍이 일며 남해의 필드에 세트되어 있던 [크리스트론 임팩트]가 파괴되었다. 가젤 드래곤은 잠시 보우텐코우를 노려보다가 턱만 딱딱 거리며 경고음을 내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보우텐코우는 헤이칸을 소재로 썼으니 전투로 파괴되지 않겠지. 내 턴은 여기까지다.”
-채은월/패 2장
남해는 두 몬스터를 보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다 간신히 카드를 뽑았다. 호루스때도 그랬지만 공격력 3000의 보스급 몬스터가 둘씩 늘어서자 단순하게 매트 위에 카드를 늘어놓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중압감이 느껴졌다.
남해가 선택한 길은 최대한 자신을 달래는 것뿐이었다. 그래, 저 덩치랑 공격력이 뭔 상관이야? 내성 하나 없는 종이조각이 쟤들의 본질이야. 못 싸울게 어딨어.
“드로우하고, 패에서... [보룡성-세피라후우시]를 일반소환합니다. 그리고 덱의 [마룡성-토우테츠]를 덱에서 묘지로 보내고 보우텐코우의 레벨을 5로 올린 다음 레벨 3 후우시와 레벨 5 보우텐코우로 레벨 8 [휘룡성-쇼후쿠]를 싱크로 소환할게요.”
[휘룡성-쇼후쿠/Lv8/2300/2600]
보우텐코우가 쨍-!! 하고 맑게 울리는 소릴 내며 녹색 고리로 변했고, 그 안으로 후우시가 날아올랐다. 고리 안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나왔고 남해의 필드로 천천히 거대한 용이 빛을 발하며 내려왔다.
“여기서 쇼후쿠의 효과를 발동! 쇼후쿠의 싱크로 소환에 쓰인 환룡족 몬스터의 원래 속성의 수만큼 필드의 카드를 덱으로 되돌립니다. 쓰인 속성은 둘이니 가젤 드래곤과 리액터 드래곤을 덱으로 되돌립니다!”
쇼후쿠가 두 몬스터를 향해 포효하자 둘의 머리 위에서 빛의 기둥이 내리쬐어 가젤 드래곤과 리액터 드래곤을 집어삼켰고 빛이 걷혔을 때는 두 몬스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쇼후쿠의 옆에서 푸른 구슬이 생겨났다.
“또한, 보우텐코우가 필드를 벗어났으므로 덱에서 룡성 몬스터를 한 장 불러옵니다! 불러올 카드는 [수룡성-비시키]!”
바닥에서 물보라가 몰아치며 구슬로 회오리치듯 모여들었고, 모여든 물은 이내 거북을 닮은 푸른 용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 다음, 패의 [룡성의 휘적]을 발동합니다. 묘지의 [사룡성-가이저], [원룡성-보우텐코우], [마룡성-토우테츠]를 덱으로 되돌리고 덱에서 두장을 뽑습니다.”
남해의 머리 위에서 작은 유성이 떨어진 직후 남해는 묘지에서 뽑혀나온 카드 세장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덱에 끼워넣었다. 그러자 덱이 자동으로 셔플되며 가장 맨 위의 두장을 슥 뽑아냈다. 남해가 그 카드를 집은 직후 팡 하고 비시키가 터지며 사방으로 물을 튀겼고 그 안에서 나온 푸른 정수가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쇼후쿠의 효과로 비시키를 파괴하고 묘지의 슌게이를 부활시킵니다. 또한 비시키가 효과로 파괴되었으므로 덱에서 토우테츠를 공격표시로 리쿠르트 해오겠습니다! 그리고 배틀!!”
남해가 배틀을 선언하자 세 마리의 몬스터는 나란히 자리에 자세를 잡고 은월 교장을 노려봤다. 세 마리 몬스터의 공격이 쏟아졌고 공격이 걷힌 후 채은월 교장은 폭연 속에서 얼굴을 가린 팔을 내리고 잠시 쇼후쿠를 노려봤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채은월/LP 7400 → 1000
"턴 종료!“
-강남해/패 3장
채은월 교장은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카드를 한 장 드로우했다.
“드로우.”
잠시 고민하던 은월은 뭔가를 세기 시작했다. 그가 세던 숫자는 3에서 멈춰섰고 그는 패 한 장을 뽑아들었다.
“먼저 [앤틱 기어 나이트]를 일반소환하겠다. 그리고 묘지의 캐터펄트의 효과 발동, 나이트를 파괴하고 앤틱 기어 토큰 하나를 필드에 내겠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포탄을 맞고 나이트는 와장창 박살나버렸다. 남은 것은 앤틱 기어 나이트의 중심부를 담당하던 기어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남해는 뭔가 기운이 오싹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멀쩡한 몬스터를 파괴하고 토큰으로 갈아치울리 없다. 분명 뭔가가 더 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토큰 하나.”
채은월 교장이 불길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갑자기 박살난 부품들이 토큰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앤틱 기어 골렘의 프레임을 중심으로, 박살난 비스트의 머리부터 나이트의 다리와 기어 타운의 잔해까지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고철이란 고철 모두가 그곳으로 모여들며 서서히 뒤틀려갔다.
토큰, 비스트, 골렘, 나이트.
...앤틱 기어 네장.
“패의 [오버로드 퓨전]을 발동! 앤틱 기어 토큰과 묘지의 골렘, 비스트, 그리고 나이트를 제외하는 것으로 [앤틱 기어 카오스 자이언트]를 융합 소환한다!!”
[앤틱 기어 카오스 자이언트/Lv10/4500/3000]
“어, 어어어어...?!”
골렘보다도 한층 더 큰 카오스 자이언트의 거체를 본 남해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쇼후쿠도 슌게이도 그저 카오스 자이언트를 올려다볼 뿐 무슨 경고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앤틱 기어 카오스 자이언트는 상대 필드의 모든 몬스터를 공격할 수 있다. 배틀.”
카오스 자이언트가 왼팔을 뻗었다. 왼팔에 달린 거대한 턱에 느리게 에너지가 모여들며 빛을 발했고 그 빛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그때 남해의 필드를 굉음과 함께 압도적인 충격파가 뒤덮쳤다.
한번 가볍게 훑고 지나간 공격에 남해의 모든 몬스터는 필드에서 지워졌고 남해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팔을 내려 상대를 보고서 망연자실해했다.
모든 몬스터를 공격할 수 있는 카오스 자이언트였기에 룡성들의 리쿠르트 효과를 발동하지도 못하고 그냥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거... 이건 대체...”
-강남해/LP 7600 → 500
“이제 메인 페이즈 2, [반마도대역]을 발동하고 턴 종료다.”
-채은월/패 1장
남해는 턴을 넘겨받고서 한참을 아무것도 못하고 카오스 자이언트를 올려다봤다.
대체 얼마인지 감도 오지 않는 덩치의 거신이 한순간에 가진 모든 것을 다 박살내버렸다. 지금 정말로 두려웠다.
호루스 때의 그 공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다리가 떨리고 동공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모습만 무시무시한 것도 아니다. 공격력만 따라잡기도 벅찬데 반마도대역의 효과로 인해 대상도 되지 않으며 마법과 함정의 효과도 받지 않는다.
채은월 교장 역시 그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남해같은 아마추어들이 이렇게 솔리드 비전의 크기 제약이 거의 없는 실외에서 카오스 자이언트 같은 몬스터에게 단숨에 필드를 제압당하면 느끼는 공포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가 노린 것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그래, 이걸 한번 넘을테면 넘어봐라.’
아무 말 못하고 떨던 남해는 머릿속도 새하얘져갔다. 도망치고 싶어,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갈 곳이 있나?
남해는 자기가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게 기억났다. 그리고 목사님이 시작 전에 해준 말도 기억났다. 포기하지 말라고.
“포기하면 안돼, 포기하면 안돼, 포기하면 안돼, 라이프 아직 0 아니야, 아직 게임 안 끝났어, 게임 아직 안 끝났어.”
남해는 혼잣말을 몇 번씩 하며 거친 숨을 최대한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덱에서 카드를 드로우했다.
...아직은 그래도 앞길이 남아있었다.
“먼저 [암룡성-죠쿠토]를 일반소환하고, 죠쿠토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패의 [비룡성-세피라시우고]와 [풍룡성-호로우]를 버리고 덱에서 공격력 0의 [수룡성-비시키]와 수비력 0의 [지룡성-헤이칸]를 특수소환!”
남해의 필드에 검은 비늘로 뒤덮인 거북을 닮은 용이 나타났다. 죠쿠토가 발구르기를 하며 꼬리를 휘두르자 바닥에서 푸른색 정수와 황토색 정수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패의 [크리스트론-스모거]를 버리는 것으로 묘지의 설퍼프너를 부활시킨 다음, 설퍼프너의 효과로 헤이칸을 파괴합니다! 이때 헤이칸과 묘지의 리훈의 효과가 발동!”
“아까 보우텐코우로 묻어버린 그 리훈인가...”
헤이칸의 몸이 수정으로 변해 쨍그랑 박살나자 그 안에서 붉게 타오르는 정수가 나타났고, 남해의 등 뒤에서 유성 하나가 떨어지며 리훈으로 모습을 바꿨다.
남해는 다시 머릿속으로 셈을 했다. ...이거라면, 이거라면 가능하다.
“헤이칸의 효과로 덱에서 [염룡성-슌게이]를 수비표시로 불러오고, 묘지의 리훈이 부활합니다. 이제 레벨 2 죠쿠토와 레벨 5 설퍼프너로 레벨 7... 가이저를 싱크로 소환!!”
남해는 또다시 이녀석을 마주하기가 머뭇거려졌지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심정으로 다시 가이저를 불러냈다.
다시 검은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한 가이저는 한번 발을 구르며 남해를 슬쩍 돌아보더니 콧김을 킁 내뿜고는 정면의 카오스 자이언트를 향해 송곳니를 들이댔다.
“그리고 레벨 1 리훈, 레벨 2 비시키, 레벨 4 슌게이를 소재로 레벨 7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을 싱크로 소환!”
리훈이 맑게 울리는 소리를 내며 금빛 고리로 변하자, 그 안으로 용오름과 불기둥으로 변한 비시키와 슌게이의 정수가 빨려들어갔다. 잠시 후 환한 빛과 함께 세찬 돌풍을 일으키며 그 안에서 하얀 용이 등장했다.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Lv7/2500/2000]
"또한 슌게이를 소재로 쓴 싱크로 몬스터는 공격력이 500 올라갑니다!“
“저 카드는...”
은월 교장은 잠시 클리어윙을 쳐다보다가 서로의 필드를 다시 확인했다.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A 2500 → 3000]
"그리고 가이저 자신과 반마도대역을 대상으로 가이저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늦어, 그 다음엔 무슨 수로-”
“가이저의 효과에 클리어윙의 효과를 체인!!”
잠시 채은월 교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디스크를 다시 확인했다.
검은 돌풍이 되어가던 가이저의 모습이 클리어윙의 날개에 비춰지더니 가이저가 뿜어내던 공격은 클리어윙의 날개로 전부 흡수되고 말았다.
클리어윙의 날개가 한번 번뜩인 직후, 하늘로 날아오른 클리어윙의 날개에서 뿜어져나온 빛의 파동이 가이저를 덮쳤다.
“대체 무슨... 잠깐, 이건!!”
자리에 앉아 둘의 듀얼을 지켜보던 나의주 목사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채은월과 눈이 마주친 나의주가 고갤 끄덕였다. 어느새 주변에서 듀얼을 구경하고 있던 다른 이들의 시선도 전부 남해에게 쏠렸다.
“레벨 5 이상 몬스터의 효과가 발동했을 때 그 효과를 무효로 하고 파괴한 다음! 그 몬스터의 공격력만큼 클리어윙의 공격력을 올립니다!”
“클리어윙의 공격력은 2500. 하지만 슌게이를 소재로 썼기에 500이 올라있고 여기에 가이저의 공격력 2600이 더해지면...”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A 3000 → 5600
채은월 교장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질렸다는 듯 고갤 휘저었다.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이 저 높이로 날아오르자 남해는 손을 앞으로 쭉 뻗고 소리쳤다.
“배틀 페이즈 돌입! 클리어윙으로 카오스 자이언트를 공격!”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이 몸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카오스 자이언트를 향해 내리꽂혔다.
순식간에 앤틱 기어 카오스 자이언트의 몸을 클리어윙이 궤뚫고 지나갔고 잠시 후 카오스 자이언트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몸을 축 늘어트렸다.
불길하게 기어가 돌아가는 소리가 끼긱, 끼긱 하고 운동장에 울렸고 그 소리마저 멎은 직후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카오스 자이언트가 무너져내렸다.
-채은월/LP 1000 → 0
"아... 휴우, 이겼다아!“
남해의 승리가 확정되자 서서히 솔리드 비전이 걷혀갔고 클리어윙의 모습도 투명해져가다가 사라졌다. 채은월 교장은 고갤 끄덕이며 남해에게로 다가왔다.
“축하한다. 봄에 보자.”
“예?”
“참나, 나형이 데려온 애라 나형이랑 플레이가 똑같구만. 그 실력 녹슬지 않게 해둬라.”
남해가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이에 채은월 교장은 디스크를 풀고 저쪽에 앉아있던 나의주 목사에게로 걸어왔다.
대화가 채 오가기 전부터 이미 나의주 목사의 얼굴은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그래, 인정할게. 재능은 있는 거 같아. 하지만 소환할 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점이나, 거대한 몬스터 앞에서 벌벌 떠는 걸 보면 아무리 봐도 초보라고. 아직은 원석이야.”
“그걸 다듬는게 너희 듀얼 아카데미아의 일이잖아?”
“나형 제안대로 한번 다듬어는 볼게. 근데 하나 물어보자. 금선이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나형은 대체 이런 재능 있는 애들을 어디서 주워오는 거야?”
“알려줘도 못 찾아갈걸.”
나의주 목사는 그렇게 말하며 남해에게 가 승리를 축하해주고 학교를 나섰다.
둘의 뒷모습을 보던 채은월 교장은 뭔가 터무니없는 것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게 대박인지 쪽박인지 알 수 없지만.
...
“...아, 그렇지. 남해야.”
“네?”
“그리온간드, 내가 못쓸 거랬지?”
“예...”
나의주 목사는 말없이 웃으며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뗐다.
“아직은 일러, 조금만 더 성장하고서 써봐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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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빨리 올라온 2화. 목표대로 삽화 한장에 성공.
저번화에도 언급했다시피 아직 이전 룰의 세계기에 두장의 싱크로 몬스터를 나란히 늘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간단하게 한고개 넘었으니 다음편에서는 다시 떡밥을 몇개 회수할 생각입니다. 그럼 이번 잡담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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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분기 보스 역할도 맡아본 몬스터 아닙니까 | 18.09.06 20:4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