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 만들어진 실린더에 기어를 달아, 베드플레이트에 끼워넣습니다.
A-5: 전용의 태엽 감기 핸들을 사용해, 베드플레이트에 태엽을 감습니다.
A-6: 빗을 달아, 아름다운 음색이 나오도록 조절합니다. 이걸로 무브먼트는 완성입니다!
B. 케이스 만들기.
B-1: 백목판을 짜맞춰 케이스를 만듭니다.
B-2: 기호대로 도료와 니스를 칠해 완성해주십시오.
ㅡㅡ케이스에 무브먼트를 붙이면 완성입니다!
켄 「... ... ... ... ... ... ... ...」
★ 용어해설을 읽는다
읽지 않는다
|
제작공정 자체도 난해했지만, 빈번히 등장하는 전문용어가, 그 경향을 거듭 조장 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거기서 나는, 권말에 있는 『부록:용어해설』을 읽어보기로 했다.
ㅡㅡ오르골.
원래 오르골이라는 건 『일렬로 늘어선 금속편을, 핀이 치는 것으로 자동연주하는 것』이라고 한다.
(뭐, 물론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지만...」
ㅡㅡ빗과 빗의 이.
그래서, 그 음을 연주하는 금속편을 『빗의 이』라고 하고, 그걸 모두 합해서 『빗』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머리를 빗는 빗과 형태가 빼닮았기 때문이다.
ㅡㅡ핀.
금속편을 치는 침 비슷한 것. 상자 표면에 튀어나온 가시같은 거, 그거 말이겠지.
ㅡㅡ실린더.
가시같은 것과, 회전하는 통. 그 양쪽을 맞춰주는 게 실린더.
ㅡㅡ베드플레이트.
빗과 실린더와 기어등을 다는 틀. ㅡㅡ프레임이었다.
ㅡㅡ무브먼트.
무브먼트라는 건, 대강, 모든 부품을 달아놓은 걸 가리키는 듯 하다.
그것 단체(單體)만으로도, 음을 연주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오르골의 심장부... 차에 비유하면 엔진 같은 거라고나 할까?
(...과연 그렇군~)
대충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만드는 건 어려워보였다.
켄 「으~음...」
나는 팔짱을 끼고, 잠시동안 『제작키트』의 부품들과 눈싸움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려본다고 해서, 맘대로 오르골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켄 「좋아, 해봐야겠지!」
나는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3교시째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A의 제 1공정은, 점심시간에 완전히 끝낼 수 있었다.
비창의 음보를 보면서, 『통의 어디에 핀을 세우면 좋을까?』...
그걸 표시해나가는 건, 매우 심플한 작업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 A의 제 2공정...
『표시에 맞춰서, 놋쇠제의 통 표면에, 핀을 접착시킵니다』
...이걸, 부지런히 진행중이었다.
상자에 들어있던 핀 세트를 써서, 정해진 장소에, 하나 하나 핀을 세워간다...
고맙게도, 놋쇠통에는, 세세~하게 격자눈금이 들어가 있었다.
그 교점에 핀을 세워가면 되는 거겠지만...
성가신 건, 그걸 접착시킬 때의 각도!
완벽히 수직으로 서도록, 핀을 고정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거다.
집중력과 끈기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덧붙여서, 한번 접착시킨 핀은, 두번 다시 떼어낼 수가 없다.
『장소를 착각했을 시에는, 니퍼로 핀을 잘라주세요』ㅡㅡ설명서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접착제가 아니면, 빗의 이를 칠 때 떨어져 나가버리기 때문이겠지.
그렇기도 해서, 나는 신경을 온통 쏟으며, 신중히 신중히 핀을 고정시키고 있던 거였다.
켄 「읏, 이런...」
4교시가 시작해버렸다.
손바닥에는, 16개의 핀이 서 있는 실린더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실린더를 살짝 책상 위에 놓아두고, 가방을 들고 부실을 뛰쳐나왔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움직이지 않게 되버려...』
『손가락이...』
수업중, 나는 멍하니 호타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교단에 선 수학교사가 뭘 떠들고 있는 건지, 그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를 들면, 사랑의 병이라던가』
어제, 미나미선생이 그렇게 말했다.
호타루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된 건, 『사랑의 병』같은 거라고...
예를 든 것 뿐이라고 하긴 했지만... 나에게 짚이는 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켄짱이... 멀리, 가버릴 것 같아서...』
2차 예선전, 그 비오는 날, 호타루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제대로 답해줄 수 없었다.
혹시 호타루는... 내 일로 고민하고...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된 건... 내 탓... 이 아닐까?
호타루는, 소중한 손가락을 다치면서까지, 나에게 인형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호타루의 발을 붙잡고 있는 것 뿐일지도 몰라...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되지?)
(어떻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오르골을 완성하는 것 밖에는 생각이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 오르골을 선물하면, 호타루는 반드시 기뻐해 줄 것임에 틀림없다.
눈을 감으면 또렷하게, 눈에 아른거려왔다.
기쁜 듯한 웃음을 짓는, 호타루의 모습이...
수업이 끝나자, 나는 곧바로 교실을 뛰쳐나와, 엎어질 듯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1층의 복도를, 승강구를 향해 달려간다.
그러자, 그 때...
들은 기억이 있는 음색이, 미세하게 귀에 들렸다.
슈타이너의, 피아노 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발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복도 끝 ㅡㅡ막다른 곳의 음악실에서, 그 음은 흘러왔다.
켄 「엣...? 설마!?」
튕기는 것처럼 바닥을 밟고, 곧장 복도를 내달려갔다.
음악실 앞에서 멈춰서서,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조금만 열려있는 교실 문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새어나오고 있다.
그건 확실히, 틀림없이, 호타루의 피아노 음색이었다.
켄 「진정해라... 진정해...」
혼잣말을 하면서, 나는 음악실 문을 손에 걸었다.
그리고, 문을 열려고 생각한 그 순간ㅡㅡ!
쇼타 「저, 저기...? 호타루짱...?」
「실은 나, 거짓말하고 있었어...」
쇼타... 쇼타의 목소리다...
호타루「거짓말?」
「거짓말이라니... 뭐야?」
그 목소리를 듣고, 나는 문에서 손을 뗐다.
약간 열려있는 틈새로, 안을 들여다봤다.
호, 호타루...
호타루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즐거운 듯이... 미소지으면서...
그 옆에는 쇼타의 모습이 있었다.
(어째서... 쇼타가...?)
쇼타 「아니... 에 그러니까... 그게...」
「아까, 호타루짱의 피아노가 듣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었지만 말야...」
「사실은... 그게 아니라...」
「그저 호타루짱이... 들어줬으면 하는 게... 있었어...」
호타루「들어줬으면 하는 거?」
쇼타 「으, 응...」
「그냥,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좋아...」
「그러니까 호타루짱은...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들어주면, 개운해질 테니까...」
호타루「?」
쇼타 「실은 나... 나 있잖아...」
「바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계속...」
「계속... ... ... ... ...」
나는 바로 뒤로 돌아, 문으로 등을 돌렸다.
그 다음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떠나려고 생각하고 한 발, 내딛었을 그 때였다...
쇼타 「계속, 정말 좋아했어...」
터벅터벅 부실에 돌아왔다.
책상 위에는, 만들다 만 실린더...
그걸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쳐다봤다.
(이걸로, 잘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차분했다.
화남도, 슬픔도, 아픔도 없다...
파도 없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내 마음은 온화했다.
ㅡㅡ왜지?
ㅡㅡ왜 아무 느낌도 없지?
ㅡㅡ왜?
나는 정말로, 호타루를 좋아했던 건가?
확실히, 함께 있으면 즐거웠고, 손가락도, 진심으로 나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호타루에게는, 어딘가 내버려두면 안될 듯한, 위험함이 있어서...
나는 언제나, 호타루를 신경쓰고 있어서...
하지만 그건 ㅡㅡ『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였나?
나는 호타루를 사랑하고 있다고, 영원히 사랑할 자신이 있다고, 가슴을 펴고 단언할 수 있나?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켄짱이... 멀리, 가버릴 것 같아서...』
그 때 나는,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었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언제나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리고, 타성으로 사귀고 있는 척 하던 것 뿐이었다, 나는...
그런 내 적당적당한 태도가, 호타루를 상처입혔음에 틀림없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된 것도, 그 탓이었구나.
나는 호타루의 발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성역을 짓밟고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짓밟고 들어가는 건 그만큼의, 각오와 용기가 필요한 것으로...』
『나 꽤 의리있는 편이라. 그런 것에』
그러고 보니, 전에 쇼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역시 호타루에게는, 나보다 쇼타쪽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쇼타는 호타루의 손가락을, 움직이게 할 수 있었으니까...
(나에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이런 걸 만드는 것 정도밖엔 할 수 없었는데...)
나는 손 위의 실린더를 강하게 쥐었다.
16개의 핀이, 내 손바닥에 날카롭게 찔러들어왔다.
펴보자, 새빨간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붉은 피를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걸로 잘 된 거야...)
(일단 호타루의 손가락은, 움직이게 되었고...)
(쇼타라면, 반드시 호타루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겠지...)
8/22
[s]어제부터 오늘에 걸쳐, 호타루한테서 몇번이나 메일이 왔다.
내용은, 읽어보지 않았으니까 모른다. 물론, 답신도 하지 않았다.
전화도 빈번히 걸려왔다.
그렇지만, 이야기할만한 기분이 되지 않았다.
학교도, 쉬어버렸다.
루색에서의 바이트도... 계속 시프트에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아마 짤리게 되겠지...
하루종일, 방안에 가만히 있었다.
이러고 있는 동안, 어느샌가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 不協和音【ほたる編】~
불협화음【호타루편】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
[s]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
저녁때 내린 비 탓으로, 바람이 평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뜰의 풀숲 안에서, 벌레 소리가 겹쳐지는 것처럼 울리고 있다.
벌레는 구애를 위해 운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저렇게나 외로운 소리를 연주하는 거지?
주변을 떠다니는 벌레소리가, 애처로운 서정가 같았다.
나는 그것들의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창틀에 매달린 인형을 쳐다보고 있었다.
호타루한테서 받은, 그 인형을...
왜지? 인형을 보고 있으면, 이유도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지... 왜...?)
그러자, 그 때...
조용히, 방문이 열렸다.
호타루「안녕~」
켄 「호, 호타루!」
「왠 일이야, 이런 시간에...」
나는 흘낏 벽시계를 봤다. 8시를 살짝 지난 시간이었다.
호타루「이런 시간, 이라고 말할 정도의 시간도 아니잖아?」
「그렇지 않으면 켄짱은, 이미 잘 시간, 이야?」
켄 「... ...」
호타루「어레레? 켄짱... 눈, 빨간데?」
「혹시, 정말로 자려고 하던 거였어?」
응
★ 잘 수 있을 리 있냐
|
켄 「어린애도 아니고, 이런 시간에 잘 수 있을 리 없잖아?」
호타루「하지만, 왠지 졸린 것 같다구?」
켄 「시끄럽구만... 그런 건 어찌됬건 상관없잖아!」
「무슨 일 때문에 왔어? 라고 물었잖냐...」
호타루「에 그러까 있지... 에 그게, 에 그러니까...」
「실은 켄짱을, 꼬시러 왔어」
켄 「꼬시러?」
호타루「그래♪」
「동물원, 지금 함께, 안 갈래?」
켄 「에!? 지금!?」
호타루「응!」
켄 「뭐, 뭣하러 가냐, 이런 시간에...」
호타루「물론『동물은 꿈을 꾸는 건가?』ㅡㅡ그걸, 확인하러 가는 거라구?」
켄 「하지만, 이미 잠들었을지도 모르잖아? 동물」
호타루「그렇다면, 더욱 더 좋은 상황이잖아!」
「원숭이라던가 펭귄이 잠꼬대하면, 켄짱도 믿을 수 있겠지? 동물도 꿈을 꾼다는 거」
켄 「... ...」
호타루「자, 결정~♪」
「그런 것으로, 어서 갈까?」
호타루는 내 팔을 꽉 잡고,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켄 「하아...」
한숨을 내쉬고서, 일절 저항을 포기했다.
호타루에게 붙잡힌 채, 동물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호타루의 옆얼굴을 흘긋 보며, 생각했다.
(정말 이대로도 좋은 걸까?)
이런 애매모호한 마음인 채로, 호타루에게 아무 것도 알리지 않는 건 비겁한 게 아닐까?
언제나 그랬다.
호타루에게 억지로 끌려서 저항없이, 농락받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왔다.
하지만, 그런 적당한 태도가, 반대로 호타루를 괴롭게 하고 있던 거다.
아마, 농락받는 건 내가 아니라, 호타루였겠지.
나는 호타루를... 가지고 놀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아직 사랑할 수 있다」라던가 「아직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라던가, 그런 이유로 사랑받고 싶지 않고』
전에 호타루가, 그런 말을 했다.
그래, 그러니까 나는, 알리지 않으면 안된다.
결론을, 내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호타루에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걸...
호타루「응? 켄짱... 뭘 우울해보이는 얼굴 하고 있어?」
「무슨 걱정이라도?」
켄 「... ...」
호타루「앗, 알았다!」
「이런 시간에 가봤자, 동물원같은 데가 열려 있을리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켄 「... ...」
호타루「하지만, 그런 건, 걱정 안해도 괜찮아!」
「동물원이 닫혔다면, 숨어들어가면 되잖아?」
「들키지 않도록, 살금, 살금...」
켄 「... ...」
호타루「정말, 켄짱은 걱정도 병이네~」
「그 동물원은... 의외로 경비, 무르다구?」
「가시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는 것도 아니면, 감시카메라가 달려있을 리도 없고...」
켄 「... ...」
「돈이라면, 나중에 제대로 지불하자?」
「별로 나쁜 짓 하러 가는 게 아니니까, 뒤가 켕길 일 따위, 암~것도 없다니까!」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호타루는 티없는 웃음을 만면에 지으면서, 나를 힘차게 끌고 갔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산보길을, 서쪽을 향해 계속 걸어간다.
아마도, 호타루가 말한 동물원이란 건 『아시카시마 동물공원』을 말하는 거겠지.
아시카시마 동물공원은, 하마사키 공원 앞 ㅡㅡ언덕 위에 있는 깊은 숲 속에 있다.
그 길 도중에, 나는 호타루에게 물었다.
켄 「어째서... 오늘이 아니면 안돼?」
호타루「어떻게 해서도」
켄 「대답이 안된다구」
호타루「대답같은 거, 없어도 상관없잖아?」
(해석 없음)
호타루가 말한 순간, 그 손바닥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알았다.
호타루「그렇지만, 사실을 말하면...」
「갑자기, 켄짱을 만나고 싶어져버렸어...」
「동물원은, 그냥 구실...」
내 손에서, 호타루의 손이 떨어졌다.
호타루「왜냐면 켄짱, 메일 보내도, 답장해주지 않았고...」
「전화 걸어도, 받아주지 않았고...」
「그러니 괜히, 만나고 싶어져버려서...」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호타루는 하소연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타루「저기, 켄짱? 왜 메일, 답해주지 않았어?」
켄 「그건...」
켄 「그건... ...」
나는 멈춰서서, 시선을 내리고, 말을 이었다.
켄 「호타루를... ...」
「만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호타루「...에?」
켄 「나는 이제, 호타루의 옆에, 있으면 안돼」
나와 호타루의 사이를, 바람이 불어 지나갔다.
몸이 날아갈 듯한 강한 바람이었다.
호타루는 한 손으로 머리를 누르고, 다른 한 손을 가슴에 대고 있었다.
슬픈 눈동자빛을 하고 있었다.
눈썹을 꾹 기울이고서, 입술을 악물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도 말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거다.
이대로 관계를, 지속해 나가서는 안되었다.
호타루「그런가...」
목소리를 떨면서, 호타루가 중얼거렸다.
호타루「알긴 했지만...」
무리해서 웃으려고 하면 할수록,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나왔다.
호타루「미나미 선생님, 이지?」
켄 「ㅡㅡ뭐!?」
호타루「선생님을, 좋아하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나는 숨을 삼키고, 다음 말을 열심히 찾았다.
호타루「그런 거지...?」
켄 「... ...」
호타루「숨겨도, 안돼...」
「호타루, 켄짱의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알고 있으니까...」
「괜찮다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호타루는, 방해같은 거, 안 할 테니까...」
「그냥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없어져 줄 테니까...」
켄 「... ...」
호타루「후훗... 호타루 있지...?」
「이렇게 보여도, 꽤 끝마무리가 깔끔한 면, 있다구...?」
「외토리가 되어도...」
「전혀... 전혀... 문제 없으니까...」
깜빡임을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호타루는 그렇게 말했다.
가슴에 대고 있던 손을, 꽉 쥐었다.
켄 「혼자가, 아니야...」
「호타루한테는, 쇼타가 있잖아...」
호타루「에...? 쇼탕...?」
「왜 거기서, 쇼타가 나오는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가슴속이 난도질당하는 듯한, 쑤시는 아픔.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서, 그 아픔을 꾹 참았다.
호타루「저기, 켄짱, 어째서?」
「어째서 그런 말, 하는 거야?」
켄 「ㅡㅡ시꺼!」
「이제, 나같은 건 그냥 내버려둬!」
호타루「켄짱...」
켄 「맨 처음부터...」
「처음부터, 호타루는,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았어」
「싫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어」
「호타루가 고백해왔으니까... 그러니까 타성으로, 그냥 적당히 사귀었을 뿐이었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어... 호타루 따위」
호타루「어째서...?」
「거짓말이야... 그런 거...」
「호타루, 절대 믿을 수 없는 걸...」
「그런 거...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켄 「거짓말이 아냐! 전부 사실이다!」
「그런 녀석이라고, 나는...」
「적당주의에, 비겁하고, 겁쟁이고...」
「거짓인 건, 지금까지의 나고... 이게 진짜인, 내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제, 내버려둬...」
「나같은 건...」
「나같은 건... 이제, 잊어줘...」
그렇게 말하고, 나는 돌아섰다.
호타루「켄짱!」
불러세우려는 호타루를 뿌리치듯, 대지를 박차고 달려나왔다.
끝없이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에서 숨을 수 있는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다.
가슴이 뜨겁고, 괴로워서, 그 몸이 뒤틀릴 것 같은 고통을 잊기 위해, 바람을 맞으며 계속해서 달렸다.
숨이 가빠지고, 발이 뒤엉켜도, 멈출 수는 없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갔다.
이윽고 힘이 다해, 지면 위에 쓰러졌을 때, 나는 차가운 모래위에 있었다.
멈출 수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젖은 모래덩이를 강하게 쥐고서, 나는 솟아오르는 오열을, 온 힘을 다해 참고 있었다.
8/23
[s] ~對旋律【ほたる編】~
맞선율【호타루편】
허물벗은 것처럼, 방 구석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s]허물벗은 것처럼, 방 구석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
목이 바싹 말랐지만, 일어서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한꺼번에 엄습해오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러니까, 나는 가만히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도록, 내쉬는 숨조차 조심했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거지?』
호타루의 슬픈 눈동자빛이, 눈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정말로, 선생을, 좋아하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나는 선생을, 연애대상으로 본 적 따윈 한 번도 없었다.
호타루가 분명히, 오해해버린 거겠지.
그렇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호타루에게 너무나도 차갑게 대했다.
교실에서 선생과 이야기하고 있었을 때, 호타루를 방해자처럼 몰아낸 일도 있었다.
호타루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된 건, 그 때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호타루를, 책망하는 것 따윈 불가능해. 오히려, 책망받아야 하는 건, 내 쪽이지.
어제, 자포자기해서 호타루에게 말한 건, 반쯤은 사실이었고...
나는 적당히, 타성으로, 호타루와 사귀어 왔다... 그렇게 생각해도 당연한 태도를, 지금까지 계속해왔다.
ㅡㅡ자업자득.
『이윽고 그 힘을 견딜 수 없게 되어, 둘은 튕겨져 날아가고, 용수철은 끊어져버리지』
『접점을 잃은 둘은, 두번 다시, 끌려서 만나는 일은 없어』
쇼타가 했던 말이 옳다고 하면, 우리들은 헤어져야 했기 때문에 헤어진 걸지도 모른다.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따윈 없는 거다.
아무리 둘이, 강한 힘으로 끌어당겨지고 있다고 해도...
사랑은 꿈처럼 덧없는 것ㅡㅡ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시간의 경과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나는 다다미에 대고 있던 등을, 억지로 잡아떼는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등은 흠뻑 땀에 젖어있었다.
문득, 방 구석으로 눈이 갔다.
만들다 만 오르골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놋쇠덩이에서 눈을 돌리자,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호타루한테서 받은 그 인형이었다.
나는 눈을 꽉 막고, 모든 정보를 차단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니까, 테르테르보주는 훌륭한 거라구?』
『소원을 담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주니까...』
호타루는, 테르테르 보주는 비가 좋은 거라고 말했었다.
테르테르보주는, 비가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원을 담은 사람의 희생이 되어, 비를 개개 한다.
어쩌면 그 때, 호타루는 이미, 내가 선생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고, 오해하기 시작한 걸지도 모르겠다.
『빨리, 맑으면 좋겠네?』
(그런 건가...?)
(호타루는 내, 희생이 되려고...?)
그게 정확히, 호타루가 의도한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른다.
단지 나에게는 어떻게 해도, 그 인형과 호타루가 겹쳐져보여버렸다.
소중한 손가락을 상처입으면서까지, 나에게 그 인형을 만들어준 호타루의 마음...
그 마음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거센 죄책감에 싸여서, 자신을 저주하지 않고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귀를 틀어막아도, 호타루의 그림자가 되살아난다.
나는 더 이상 배겨낼 수 없어서, 도망치듯 방을 뛰쳐나왔다.
밖은 밤의 어둠에 잠겨있었다.
하늘에 별은 없고, 달도 보이지 않고, 가도가도 검게 칠해진 경치만이 계속 이어질 뿐이었다.
어디로 도망쳐도 소용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갈 곳 따위,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나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을 계속 방황했다.
이윽고... 하나 둘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른 아스팔트에, 검은 얼룩무늬가 넓어져갔다.
차갑고 큰 빗줄기가, 가슴에 배어들었다.
마치 꾸짖는 것처럼, 나무라는 것처럼, 비는 용서없이 내 몸을 계속 때렸다.
비는 점점 세기를 늘려가며, 대지를 세차게 두들기고 있었다.
하얗게 흐려진 시계 앞에, 토와리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흐릿하게 떠오른 토와리교의 윤곽은, 칠흑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질퍽거리는 지면을 다지는 것처럼, 한발씩, 한발씩, 토와리교를 향해 발을 옮겼다.
어째서 나는, 이 다리에 온 거지?
이유는,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뭔가에 이끌리는 것처럼, 나는 이 다리에 도착했다.
이 다리 위가, 모든 것의 시작이어서 그런가?
여기 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그게 아니면, 잃어버린 추억을, 여기에 오면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혹은... 그 전설 때문, 일지도 모른다.
토와리교의 전설.
문득, 눈 아래를 쳐다보자, 찻빛으로 탁해진 강의 흐름이, 미쳐 날뛰는 듯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격류 소리는, 누군가의 신음소리처럼 들렸다.
호타루「켄짱...」
돌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뒤돌아보자, 거기에는...
호타루「역시, 여기에 왔구나...」
켄 「... ...」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생각도 못한 광경 앞에, 몸의 움직임 하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호타루「호타루, 찾았었어? 켄짱을...」
「아사나기장에 가봤더니, 켄짱,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호타루는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내 위에 씌워주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우산을 호타루쪽으로 다시 내밀었다.
호타루는 입을 구부리고, 슬픈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별 거 없는 동작마저, 지금 나에게는 괴롭게 느껴졌다.
켄 「어째서...?」
억지로 목소리를 짜냈다.
켄 「어째서, 나같은 걸, 찾거나 하는 거냐...」
숨을 멈추고, 한 마디 한 마디, 이를 악물듯 간신히 말했다.
호타루「그건... 그건 있지?」
「어떻게 해서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었으니까...」
하얀 물보라 속의 호타루는, 환상처럼 아릿하게 보였다.
호타루「호타루, 거짓말을 했어」
「지금까지 잔뜩, 거짓말 해왔어」
「실은, 마지막까지 비밀로 해두려고 했었어」
「하지만, 역시 호타루는, 거짓말이 힘들어서...」
「켄짱, 말했었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건 좋은 일이지만,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건 나쁜 일이다』라고...」
「호타루는, 거짓말을 했으니까, 나쁜 애야」
「그리고, 거짓말을 할 수 없었으니까, 더더욱 나쁜 애야」
호타루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어깨에 걸쳐진 우산이, 비에 맞아 흔들리고 있었다.
호타루「저기 있지? 켄짱...」
「분명히, 깜짝 놀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조용히 얼굴을 들고, 호타루는 가만히 말했다.
나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는, 떠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무리해서 웃으려고 하고, 그랬지만 잘 되지 않고...
호타루는 고통을 참으려는 듯, 꾹 눈썹을 기울이고, 말을 계속했다.
호타루「호타루, 멀리, 가버려」
켄 「...에? 멀리?」
호타루「응...」
「먼, 먼... 바다 저편에...」
「호타루... 유학가...」
「오스트리아의, 빈에...」
나는, 호타루의 눈동자를 가만히 쳐다봤다.
호타루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 의미를,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먼... 바다 저편... 유학...』
(譯: 모두 카타가나입니다)
의미를 잃은 말의 순열이, 지나쳐 사라져간다.
호타루「저편의 신학기는, 9월부터 시작하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호타루는 이제...」
「앞으로 조금밖에, 일본에, 있을 수 없어서...」
「26일, 밤에...」
「호타루는 빈에, 가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
「오래전부터, 정해졌던 일이야」
「하지만 켄짱에게는... 도저히... 말할 수 없어서...」
빗소리는 사라지고, 바람은 그치고, 풍경은 색을 잃었다.
나는 시간이 멈춘 세계 속에서, 얼어붙듯 굳어있었다.
호타루「호타루, 추억을, 만들고 싶었어」
「즐거웠던 일도, 슬펐던 일도, 전부 추억으로 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켄짱한테는, 비밀로 했어. 유학간다는 거...」
「마음쓰게 하고 싶지 않았고...」
「무리하게 밝게 행동하거나, 상냥히 대해주는 거... 그런 건, 싫었으니까...」
「호타루는 최후까지, 평범하게 사귀고 싶었어」
「켄짱과 지낸 시간을, 1초라도, 잊고 싶지 않았어」
「즐거웠던 일도, 슬펐던 일도, 전부 다해서...」
켄 「... ...」
호타루「풀에 갔던 것도... 동물원에 가자고 했던 것도...」
「수업을 함께 받았던 것도... 콩쿨, 나가는 거 그만둔다고 했던 것도...」
「모두 다, 켄짱과의 추억을 만들고 싶었으니까...」
「연습같은 거 하는 것보다도, 켄짱의 옆에 있고 싶었으니까...」
호타루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복받치는 눈물을, 온 힘을 다해 참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호타루「그리고 나서, 그리고 나서 있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됐다고 했던 것도... 그래서였어」
「호타루는 그저, 켄짱의 옆에, 있고 싶어서...」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되면, 계속 켄짱과 함께, 있을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그러면, 연습하지 않아도, 뭐라고도 안 하고...」
「혹시 유학도, 가지 않고 끝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켄 「그럼, 그건...」
호타루「...응, 거짓말이었어」
「하지만 호타루의 거짓말은, 언제나 들켜버려...」
「왜지... 왜일까...」
그 때, 호타루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호타루는 그걸 숨기려는 듯, 바로 손바닥으로 뺨을 훔쳤다.
슬픔을 안타까워는 것처럼, 도움을 구하는 것처럼... 젖은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켄 「...그렇다면... 어째서... 콩쿨같은 거에...」
호타루「켄짱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네?」
켄 「...에?」
호타루「호타루는 처음부터...」
「사귀기 시작했던 그 때부터 계속... 눈치채고 있었어」
「켄짱은 호타루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게, 아니지?」
켄 「그럴, 리...」
호타루「으응, 됐어」
「듣지 않아도, 알고 있는 걸」
「축구할 때의 켄짱은, 정말로 멋있어서...」
「머리 좋고, 상냥하고... 호타루에게 있어서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남자애라...」
「하지만 호타루는, 골칫덩이에 바보에, 완전히 구제불능이잖아?」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애라고 생각되어도, 하는 수 없는 일이고...」
「그러니까, 호타루는 생각했어」
「피아노에서 1등상을 받으면, 켄짱도, 호타루를 돌아봐주지 않을까 하고...」
「그게, 콩쿨에 나간, 진짜 이유...」
「호타루는 켄짱의 연인으로, 어울리는 여자가, 되고 싶었어」
그 쓸쓸해보이는 시선에, 답해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낸 말이라고 해도, 자신을 책망하는 말 뿐...
마음과는 정반대로, 나는 점점 말이 없어져갔다.
호타루「미안해... 켄짱...」
「지금까지 너무 많이, 거짓말, 해서...」
「용서해주리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저, 마지막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사실을, 알아줬으면 했으니까...」
떨리는 손끝에,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감으면서...
곧 호타루는,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호타루「바이바이... 켄짱...」
8/24
[s] ~ 殘響【ほたる編】~
잔향【호타루편】
아침까지 계속해서 내리던 비는, 지금은 깨끗히 그쳐있었다.
[s]아침까지 계속해서 내리던 비는, 지금은 깨끗히 그쳐있었다.
창 밖에 펼쳐진 하늘은, 새로 생겨난 생기넘치는 청색으로 선명했다.
그런 시원상쾌한 날씨가, 반대로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우중충하고 찌는 대기가, 폐를 압박하는 듯한 숨막힘을 느끼게 했다.
동쪽 하늘에 떠있는 태양은, 발랄하게 빛나서 불쾌했다.
나는 빛을 피해, 북쪽 벽에 딱 붙어서, 꾹 세차게 눈꺼풀을 닫았다.
『바이바이... 켄짱...』
호타루의 최후의 말이, 머리 속을 맴돈다.
최후의 말...
최후...
이젠 두번 다시, 호타루를 만나는 건 불가능하다.
모레 밤에, 호타루는 오스트리아로 떠난다고 했다.
모레 ㅡㅡ26일 월요일 ㅡㅡ마침 콩쿨 결승이 열리는 날.
(어째서, 그렇게 급히...)
아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다음달부터 신학기가 시작된다고 하면, 호타루는 좀 더 빨리, 저쪽으로 가지 않으면 안되었을 터다.
26일 월요일 ㅡㅡ그게, 아슬아슬한 타임리미트였겠지.
즉, 호타루가 2차 예선을 통과하지 않았더라면, 호타루는 이미, 일본에는 없었을 거라는 뜻으로...
아슬아슬할 때까지 일본에 남아있게 위해서는, 호타루는 어떻게 해서라도, 결승에 진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거다...
그렇게 생각해보자, 2차예선이 끝난 후, 호타루가 연습을 딱 그만둬버린 이유도, 왠지 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까지의 호타루의 언동 중에, 어제 일을 암시하는 듯한 메세지는, 확실히 담겨있었었다.
『그럼 혹시라도...』
『혹시라도 호타루가...갑자기 없어져버린다면...』
『두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다면...』
『그래도 켄짱은, 호타루를...』
『계속... 좋아하고 있어 줄거야?』
어째서...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냐...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는 되지 않고 끝났을텐데...
호타루를 슬프게 하고, 괴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가지고 놀고...
최후의 최후까지, 상냥한 말 단 한마디도 해주지 못했다.
최저의 남자다, 나는...
『켄짱과 지낸 시간을, 1초라도, 잊고 싶지 않았어』
『즐거웠던 일도, 슬펐던 일도, 전부 다해서...』
호타루의 말이, 하나 둘 계속해서 되살아와, 내 가슴을 죄어들었다.
나는 등 뒤의 벽에, 마구 세차게 머리를 갖다박았다.
돌아서서 주먹을 쥐고, 있는 힘껏 벽을 때렸다.
이런 짓을 해도, 구원받기는 커녕,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구멍이 뻥 뚫린 마음에, 스며드는 공허함만이, 내려쌓여가고 있었다.
어느 샌가, 주위엔 엷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나는 창가에 걸터앉아, 노을진 저녁노을을 보고 있었다.
점심때의 그것과는 다르게, 서쪽 마을 사이로 가라앉아가는 태양은, 약간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차차 깊어가는 어둠의 기색을 느꼈는지, 녹나무에 붙어있던 쓰르라미가 일제히 소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밤이 찾아오겠지.
토모야「왕왕! 왕! 왕!」
갑작스럽게, 창 밖에서 토모야의 소리가 들려왔다.
뜰을 내려보자, 산보를 끝내고 돌아온 신군이, 토모야에게 먹이를 주고 있던 참 이었다.
신군은, 나를 눈치채고...
신 「요!」
언제나의 태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친밀하게 웃음지을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신군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수상히 생각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신 「어이, 이나켄! 잠깐 내려와봐라!」
왠지 위압적인 눈빛으로, 신군은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고분고분히, 신군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어제의 호우 탓으로, 아직 청청한 녹나무의 잎이, 뜰의 도처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 잎을 밟으며, 신군의 앞에 가까이 갔다.
신군의 시선은, 발 주위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토모야를 향하고 있었다.
신 「타루타루와, 싸운 거지?」
신군은, 간단히,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켄 「...어떻게」
신 「알 수 있다고, 그 정도는...」
「네 눈을 보면, 바로 말야」
천천히 얼굴을 들고, 신군은 내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왠지,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꿰뚫어보는 있는 듯한, 그런 시선이었다.
신 「무슨 일이, 있었냐?」
이 사람에게는 숨겨도 소용없다... 내 직감이, 그렇게 말했다.
아니, 실은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랬던 걸지도 모른다.
그게 우연히, 신군이었던 것 뿐으로...
켄 「조금 길어질지도 모르겠지만, 괜찮겠습니까...?」
나는 신군에게, 모두 고백하기로 했다.
콩쿨의 일, 움직이지 않게 된 손가락의 일...
쇼타의 고백, 호타루의 오해, 내 미적지근한 태도...
그리고 물론, 호타루가 유학가게 된 것까지, 전부...
신 「이나켄... 너는, 뭐랄까, 그...」
「한 마디로 하자면, 완전무결의 왕바보자식이다!」
「한 번, 뇌를 헹궈주는 쪽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고백을 끝내자, 신군은 질린 듯 그렇게 말했다.
신 「알겠냐, 이나켄?」
「너는 그저 단순히, 진실을 놓치고 있을 뿐이라고」
「아니, 이렇게 돌려서 말해도, 너는 바보니까 모를지도 모르겠군」
「그러니까, 확실히 말해주지」
「타루타루는 이나켄이 좋고, 이나켄도 또, 타루타루가 좋은 거다」
「이런 당연한 걸, 너희 둘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게 너무나도 단순하고,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가까웠으니까...」
켄 「... ...」
신 「너는 아마, 우리들이 지금, 서있는 이 곳이, 하나의 혹성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
「그리고 이 별이, 다른 혹성과 마찬가지로, 둥근 모양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겠지」
「왜냐면, 너와 이 혹성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깝기 때문이다...」
「이 별이 둥글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너는 달에 가지 않으면 안돼」
「어때, 바보같다고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이런 어리석은 짓을 말이지, 이나켄은 지금, 현실에서, 하고 있는 거란 말이다?」
「알겠냐? 내가 말하는 거...」
켄 「알겠지만... 하지만...」
신 「하지만, 뭐냐」
켄 「제가 옆에 있으면, 호타루를 괴롭게 하는 일이...」
신 「그러니까, 그 발언이야말로가, 네 바보의 정도를 이야기해주는 거잖냐!」
「타루타루는 이나켄의, 바보같은 면도, 차가운 면도, 미적지근한 면도, 전부 다해서 좋아한다는 말이다!」
「네 옆에, 1분이라도 1초라도, 오래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거짓말까지 하거나 한 거지?」
켄 「그러니까, 그 거짓말을 하게 만들어버린 것 자체가, 호타루를 괴롭게 한다는 증거가...」
신 「하아...」
「정말로, 너란 놈은...」
켄 「거기다, 쇼타의 일도, 있고...」
신 「그 친구의 일은, 관계 없잖아?」
「쇼타라던가 하던 녀석이 호타루를 좋아한다고 해도, 호타루가 그녀석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아무 문제도 없는 거 아니냐」
「일단, 쇼타에 대해선, 내버려둬」
「그리고, 미나미씨에 대해서도」
「그것들은, 이나켄과 타루타루의 관계가 어긋난 일로부터 발생한『결과』지, 그 『원인』이 아냐」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하는 것으로써, 그 결과는 자연히 바뀌게 될 터다」
켄 「그런, 문제입니까...?」
신 「그런, 문제랍니다...」
신군은 다시 한숨을 쉬며, 크게 고개를 저었다.
신 「나는 경험자니까, 알 수 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경험한 건 아니지만...」
켄 「?」
신 「내 친구가 말야, 너와 같은 일로,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고민하는 방법까지, 너와 똑같았다구」
「머뭇머뭇 구더기처럼 위축되서... 자포자기에 빠져서...」
「차마 보다 못한 나는, 녀석에게 주문을 걸어줬었다」
켄 「주문?」
신 「아아」
켄 「그건... 어떤?」
내가 묻자, 신군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신 「뒷 일은, 스스로 생각해」
「이나켄의 진짜 바람은 무엇인가? 타루타루의 진짜 소원은 무엇인가?」
「그것만 알면 다음은, 목적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그것마저도 알지 못하면 너는... 개 이하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된다」
「뭐, 그건 그것대로, 행복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신군은 토모야 앞에 꿇어앉았다.
신 「토모야, 토모야...」
「ㅡㅡ손!」
신군은 손바닥을 내밀었다.
토모야는, 제대로 그 위에 앞발을 올렸다.
석양에 비쳐진 둘의 그림자는, 뜰의 끝을 향해 길게 길게 뻗어있었다.
신군이 없어진 뒤에도 나는 아직, 그 장소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뜰의 한가운데 내내 서서, 가만히 발끝을 보며 생각했다.
『내 진짜 바램은 무엇인가? 호타루의 진짜 소원은 무엇인가?』
발끝에는, 암흑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지구의 그림자에, 삼켜져 있었다.
신 「어이, 이나켄!」
신 「언제까지 그런 곳에 서 있을 거냐?」
천천히 얼굴을 들자, 신군은 105호실 안에 있었다.
창 저쪽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질려버린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다.
신 「나참, 어쩔 수 없는 녀석이군...」
「자아...」
그 목소리와 동시에, 신군은 이쪽을 향해, 뭔가를 던졌다.
쓱 어둠속을 미끄러지듯 날아온 그건 ㅡㅡ새하얀 종이비행기였다.
종이비행기는, 내 눈앞의 지면에 사뿐히 소리도 없이 착륙했다.
나는 허리를 굽혀, 그 종이비행기를 주워들고, 신군에게 물었다.
켄 「뭡니까? ...이거」
그러자 신군은...
신 「소용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신 「그게, 주문이다」
방에 돌아와서, 다다미 위에 팽개치고 앉았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종이비행기를, 멍하니 쳐다봤다.
(...주문?)
나는 깔끔하게 접힌 종이비행기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펼쳤다.
A4의, 새하얀 한 장의 카피용지.
그 중앙의 부분, 딱 접힌 금이 겹쳐진 곳에, 고딕체의 문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비는 언제 그치지?』
(메모리즈 오프1에서 토모야가 받았던 그 쪽지의 내용. 정발판에서는 『비는 언제 그치는 걸까?』)
단 8문자의 간단한 문장이었다.
하얀 종이 가운데, 딸랑 남겨져버린 듯, 그 한 행은 거무스름하게 떠올라있었다.
(비...)
(비는, 언제...)
『빨리, 맑으면 좋겠네?』
문득, 호타루의 말이 생각났다.
창틀에 매달린 소청낭인형...
내 눈은, 자연히 그 인형쪽을 향하고 있었다.
『테~르테~르보즈, 테~르 보즈, 내일 날씨를 개게 해 줘~』
『언젠가 꿈에서 본 그 하늘처럼~, 맑으면 금방울 줄게~』
미나미선생은, 테르테르보즈는 『희생양』이라고 했었다.
소원을 담은 사람의 희생이 되어, 바람을 이루어준다고...
호타루가 진짜 바라고 있다는 건, 무엇이지?
그 인형에 담은 호타루의 소원이란 건...?
한바늘 한바늘에 담겨진 호타루의 진정한 마음은, 대체...?
ㅡㅡ무슨 소릴 하는 거냐!
ㅡㅡ그런 건 생각할 것까지도 없잖아!
『호타루는 그냥, 켄짱의 옆에, 있고 싶어서...』
나는 호타루의 소원을 이루어 주자고 생각했다.
그건, 곧 억누를 수 없는 강렬한 충동이 되어, 내 신체 속을 헤집고 다녔다.
핑계가 아니었다.
호타루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 ㅡㅡ그 자체가 내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것을, 지금 간신히 알아차렸다.
확실히, 나는 구제 불능의 바보였다.
분명히, 겁쟁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호타루는, 너무나도 눈부셔서...
반대로 축구를 그만둔 나는, 무목적에 타락에 제멋대로에...
그런 나에게 정나미를 잃고, 호타루가 가버릴까... 무서웠다.
그래, 무서웠던 거다... 호타루를 잃는 것이...
호타루에게 버림받는 것이...
그러니까 나는, 호타루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지속해 왔을지도 모른다.
비굴하게, 예방선을 펼쳐서, 버림받을 때의 아픔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그렇지만 그것도, 지금이 되어선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되었다.
경멸당하겠지만, 추하겠지만 관계 없다. 매도당해도, 욕을 먹어도 상관 없다.
단지, 이런 나를 맞아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자고 생각했다.
이대로, 호타루를 가게 할 수는 없다.
그 전에, 어떻게 해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말이 있다.
ㅡㅡ내 마음, 진정한 생각.
만약 멀리 떨어지게 되어도, 이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언제라도, 언제라도, 영원히, 호타루의 옆에,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충동만 가지고서, 속마음을 전하는 것으로선, 정말 호타루에게 전해질 지 어떨지 모른다.
무언가, 강하게 호소할만한 증거가 필요했다.
호타루의 바람과, 내 바람을, 이루어줄 무언가...
호타루의 생각과, 내 생각을, 이루어줄 무언가...
그건...
8/25
[s]새하얗게 밤이 밝아간다...
~ 子供の領分【ほたる編】~
아이들의 영역【호타루편】
여기저기서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s]여기저기서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여름의 아침, 북쪽의 창에서 시원한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창에서 흔들리는 풍령이, 나를 재촉하는 듯 울리고 있었다.
이제, 거의 시간이 없다.
호타루가 일본을 떠나는 건 내일 밤이다.
그 때까지, 어떻게 해서라도 완성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호타루가 가장 좋아한다고 했던 곡 ㅡㅡ비창.
그 곡을, 내 대신 연주해 줄 ㅡㅡ오르골.
나는 지금, 그 오르골을 만들고 있던 중이었다.
손대기 시작한 뒤로, 이래저래 10시간 넘게 흘렀지만, 작업은 지지부진 진척되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이 공정은, 서두른다고 어떻게 되는 일이 아니다.
신중히 신중히, 신경을 곤두세우고서, 하나하나 실린더에 핀을 세워가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마음만이 앞서서,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그 떨림을 억누르면서 핀을 고정시키고, 핀을 고정시키고 나면 크게 숨을 쉬고...
생각해보니, 나는 벌써 이틀밤째 자지 않았다.
집중력이 끊어져, 잘못 세워버린 핀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 오르골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호타루에게 선물할 거라고, 가슴에 굳게 맹세했다.
나는 호타루에게 약속했다.
호타루가 제일 좋아하는 이 곡을, 반드시 쳐보이고 말겠다고...
『좋아! 자, 이렇게 할까』
『혹시 켄짱이, 이 곡 ㅡㅡ『비창』을 칠 수 있게 된다면...』
『딱 하나만, 소원을 들어 줄게~!』
작업을 해나가는 내 뇌리에, 그 때의 광경이 되살아났다.
그렇지만, 추억에 젖어있을 여유따윈 없었다.
긴장의 실이 느슨해질 때마다, 나는 창가에 매달려있는 그 인형을 바라봤다.
그저 보는 것 만으로, 거기에 담겨있는 호타루의 바람이, 뼈저리게 전해져왔다.
인형은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쥐죽은 듯이, 소리도 없는 밤이 내려왔다.
시각은, 이미 11시를 지나고 있다.
그 동안, 밥도 안 먹고, 쉬지도 않고, 일념으로 묵묵히 작업을 계속해 온 나는, 마침내...
켄 「다 됐다...」
고대하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장, 뚜껑을 열어봤다.
역시, 슈타이너의 피아노에 비하면, 품격없게 들렸고 『마법의 음』과는 꽤 차이 있는 거였지만...
그래도... 나는 복받치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용솟음치는듯한 흥분은, 소용돌이치며 내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음정도, 소리의 강약도, 타이밍도, 적어도 내가 들어본 한으론, 어디도 비정상적이지 않은 듯 했다.
그것에 안심한 나를, 갑자기 강한 탈력감이 덮쳤다.
다다미 위에 쓰러져서, 누그러이 흐르는 선율 속에 몸을 담근다.
(해석 없음)
진정과 흥분이 뒤엉키듯 몸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호타루는 있지? 이 2번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분명 이곡은, 슬픔을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슬픔을 사랑하려 한다고』
차차, 속도를 늦춰가는 멜로디.
그 속에서 울리는 호타루의 목소리...
(슬픔을, 사랑하다, 인가...)
나는 뛰어오르듯 일어서서, 오르골 뚜껑을 닫고, 그걸 가방에 집어넣었다.
한 손으로 가방을 들고, 방문을 기세좋게 열어제꼈다.
아사나기장을 뛰쳐나온 나는, 높이 발을 치켜들며 달려나갔다.
목적지는 물론 정해져 있었다.
그 장소를 향해, 전속력으로 계속해서 달렸다.
흥분은 여전히 식지 않은 채...
달아오른 신체에, 밤바람이 기분좋게 불어왔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처럼 생각되었다.
무서운 것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을 가르듯 달려나갔다.
나는 단지... 호타루와... 만나고 싶었다...
호타루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전신이 흠뻑 젖어있었다.
뚝뚝 방울져 떨어지는 물방울은, 닦아도 닦아도, 몸 속에서 넘쳐나왔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반복하고, 숨을 가다듬었다.
무서운 것 따윈,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 호타루 집 앞에 서자, 심장이 두근두근 경종을 치는것처럼 높이 울렸다.
다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걸 서서히 서서히 내쉬면서, 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인터폰의 보턴을... 눌렀다.
기다리는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고요함이 점점 몸 속에 스며들어온다.
??? 「네...」
들려온 소리는, 호타루의 부친인 듯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켄 「밤늦게 죄송합니다. 호타루는, 호타루는 있습니까?」
父 「호타루라면, 있습니다만... 누구신지?」
켄 「이나미라고 합니다. 이나미, 켄입니다」
「호타루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父 「급한, 용건인가?」
켄 「네...」
父 「... ... ... ...」
싫은 침묵이었다.
호타루의 아버지는, 인터폰 저편에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쏴아쏴아 무기적인 노이즈만이, 차디차게 울렸다.
父 「미안하지만, 호타루를 만나게 할 수는 없네」
켄 「...예?」
父 「호타루는 내일, 대단히 중요한 일을 기다리고 있다」
켄 「콩쿨, 말입니까?」
父 「그럼,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안하지만, 돌아가주지 않겠나?」
켄 「아니, 그럴 수는」
父 「그럼」
켄 「자, 잠깐 기다려주세요!」
ㅡㅡ딸깍!
무정하게도, 인터폰은 끊어져버렸다.
노이즈는 두절되고, 다시 정숙이 다가왔다.
예상외의, 최악의 사태였다.
아니, 냉정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결승전 앞날에, 그것도 이런 한밤중에...
갑자기 찾아온 남자 앞에, 사랑하는 딸을 내줄 아버지가, 이 세상 어디에 존재한다는 말이냐.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런 일로 물러날 수는 없다!
지금 일로, 반대로 내 속에 있던 뭔가가, 툭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나는 오르골이 든 가방을, 가슴에 확실히 끌어안았다.
그리고 불이 켜진 방을 향해, 소리높여 외쳤다.
켄 「호타루ㅡ!」
「호타루ㅡㅡㅡ!」
「호ㅡ타ㅡ루ㅡㅡㅡ!!!」
父 「어이! 어쩔 작정이냐!」
호타루의 아버지가 뛰쳐나왔다.
활짝 열린 그 문 저편에는...
켄 「ㅡㅡ호타루!」
호타루「켄짱...」
호타루는 현관 목 위에, 망연히 서 있었다.
나는 주저없이 문 안으로 뛰쳐들어가서...
父 「어이, 뭐냐! 비상식에도 정도가 있다!」
...외치는 아버지의 곁을 빠져나가서, 호타루 앞에 섰다.
켄 「가자」
호타루「에? 가자니... 어디에?」
켄 「호타루가 쭉 가고싶어했던 곳이야」
「동물은, 꿈을 꾸는 건가? ...확인하고 싶지 않았어?」
호타루「그, 그래도...」
켄 「콩쿨 말야?」
「그거라면 지금은... 잊어줘」
호타루「켄짱...」
켄 「오늘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밤이야」
「그런 소중한 밤인데...」
「콩쿨따윈, 아무래도 좋잖아?」
아마 그게, 호타루가 구하고 있던 말이라고 생각한다.
『피아노따윈 잊고, 내 옆에 있어줬으면 해』ㅡㅡ그 말을, 호타루는 지금까지 쭉, 기다려 왔던거라 생각한다.
호타루의 눈에 막 눈물이 넘쳐흐르면서...
호타루「응!」
머리를 흐트러뜨릴 정도로 강하게, 깊게, 끄덕여보였다.
A-5: 전용의 태엽 감기 핸들을 사용해, 베드플레이트에 태엽을 감습니다.
A-6: 빗을 달아, 아름다운 음색이 나오도록 조절합니다. 이걸로 무브먼트는 완성입니다!
B. 케이스 만들기.
B-1: 백목판을 짜맞춰 케이스를 만듭니다.
B-2: 기호대로 도료와 니스를 칠해 완성해주십시오.
ㅡㅡ케이스에 무브먼트를 붙이면 완성입니다!
켄 「... ... ... ... ... ... ... ...」
읽지 않는다
제작공정 자체도 난해했지만, 빈번히 등장하는 전문용어가, 그 경향을 거듭 조장 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거기서 나는, 권말에 있는 『부록:용어해설』을 읽어보기로 했다.
ㅡㅡ오르골.
원래 오르골이라는 건 『일렬로 늘어선 금속편을, 핀이 치는 것으로 자동연주하는 것』이라고 한다.
(뭐, 물론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지만...」
ㅡㅡ빗과 빗의 이.
그래서, 그 음을 연주하는 금속편을 『빗의 이』라고 하고, 그걸 모두 합해서 『빗』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머리를 빗는 빗과 형태가 빼닮았기 때문이다.
ㅡㅡ핀.
금속편을 치는 침 비슷한 것. 상자 표면에 튀어나온 가시같은 거, 그거 말이겠지.
ㅡㅡ실린더.
가시같은 것과, 회전하는 통. 그 양쪽을 맞춰주는 게 실린더.
ㅡㅡ베드플레이트.
빗과 실린더와 기어등을 다는 틀. ㅡㅡ프레임이었다.
ㅡㅡ무브먼트.
무브먼트라는 건, 대강, 모든 부품을 달아놓은 걸 가리키는 듯 하다.
그것 단체(單體)만으로도, 음을 연주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오르골의 심장부... 차에 비유하면 엔진 같은 거라고나 할까?
(...과연 그렇군~)
대충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만드는 건 어려워보였다.
켄 「으~음...」
나는 팔짱을 끼고, 잠시동안 『제작키트』의 부품들과 눈싸움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려본다고 해서, 맘대로 오르골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켄 「좋아, 해봐야겠지!」
나는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비창의 음보를 보면서, 『통의 어디에 핀을 세우면 좋을까?』...
그걸 표시해나가는 건, 매우 심플한 작업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 A의 제 2공정...
『표시에 맞춰서, 놋쇠제의 통 표면에, 핀을 접착시킵니다』
...이걸, 부지런히 진행중이었다.
상자에 들어있던 핀 세트를 써서, 정해진 장소에, 하나 하나 핀을 세워간다...
고맙게도, 놋쇠통에는, 세세~하게 격자눈금이 들어가 있었다.
그 교점에 핀을 세워가면 되는 거겠지만...
성가신 건, 그걸 접착시킬 때의 각도!
완벽히 수직으로 서도록, 핀을 고정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거다.
집중력과 끈기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덧붙여서, 한번 접착시킨 핀은, 두번 다시 떼어낼 수가 없다.
『장소를 착각했을 시에는, 니퍼로 핀을 잘라주세요』ㅡㅡ설명서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접착제가 아니면, 빗의 이를 칠 때 떨어져 나가버리기 때문이겠지.
그렇기도 해서, 나는 신경을 온통 쏟으며, 신중히 신중히 핀을 고정시키고 있던 거였다.
4교시가 시작해버렸다.
손바닥에는, 16개의 핀이 서 있는 실린더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실린더를 살짝 책상 위에 놓아두고, 가방을 들고 부실을 뛰쳐나왔다.
『움직이지 않게 되버려...』
『손가락이...』
교단에 선 수학교사가 뭘 떠들고 있는 건지, 그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를 들면, 사랑의 병이라던가』
어제, 미나미선생이 그렇게 말했다.
호타루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된 건, 『사랑의 병』같은 거라고...
예를 든 것 뿐이라고 하긴 했지만... 나에게 짚이는 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말에, 제대로 답해줄 수 없었다.
혹시 호타루는... 내 일로 고민하고...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된 건... 내 탓... 이 아닐까?
호타루는, 소중한 손가락을 다치면서까지, 나에게 인형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호타루의 발을 붙잡고 있는 것 뿐일지도 몰라...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되지?)
(어떻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오르골을 완성하는 것 밖에는 생각이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 오르골을 선물하면, 호타루는 반드시 기뻐해 줄 것임에 틀림없다.
눈을 감으면 또렷하게, 눈에 아른거려왔다.
기쁜 듯한 웃음을 짓는, 호타루의 모습이...
1층의 복도를, 승강구를 향해 달려간다.
들은 기억이 있는 음색이, 미세하게 귀에 들렸다.
슈타이너의, 피아노 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발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복도 끝 ㅡㅡ막다른 곳의 음악실에서, 그 음은 흘러왔다.
켄 「엣...? 설마!?」
튕기는 것처럼 바닥을 밟고, 곧장 복도를 내달려갔다.
조금만 열려있는 교실 문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새어나오고 있다.
그건 확실히, 틀림없이, 호타루의 피아노 음색이었다.
켄 「진정해라... 진정해...」
혼잣말을 하면서, 나는 음악실 문을 손에 걸었다.
그리고, 문을 열려고 생각한 그 순간ㅡㅡ!
쇼타 「저, 저기...? 호타루짱...?」
「실은 나, 거짓말하고 있었어...」
쇼타... 쇼타의 목소리다...
호타루「거짓말?」
「거짓말이라니... 뭐야?」
그 목소리를 듣고, 나는 문에서 손을 뗐다.
약간 열려있는 틈새로, 안을 들여다봤다.
호타루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즐거운 듯이... 미소지으면서...
그 옆에는 쇼타의 모습이 있었다.
(어째서... 쇼타가...?)
쇼타 「아니... 에 그러니까... 그게...」
「아까, 호타루짱의 피아노가 듣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었지만 말야...」
「사실은... 그게 아니라...」
「그저 호타루짱이... 들어줬으면 하는 게... 있었어...」
호타루「들어줬으면 하는 거?」
쇼타 「으, 응...」
「그냥,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좋아...」
「그러니까 호타루짱은...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들어주면, 개운해질 테니까...」
호타루「?」
쇼타 「실은 나... 나 있잖아...」
「바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계속...」
「계속... ... ... ... ...」
그 다음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떠나려고 생각하고 한 발, 내딛었을 그 때였다...
책상 위에는, 만들다 만 실린더...
그걸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쳐다봤다.
(이걸로, 잘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차분했다.
화남도, 슬픔도, 아픔도 없다...
파도 없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내 마음은 온화했다.
ㅡㅡ왜지?
ㅡㅡ왜 아무 느낌도 없지?
ㅡㅡ왜?
나는 정말로, 호타루를 좋아했던 건가?
확실히, 함께 있으면 즐거웠고, 손가락도, 진심으로 나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호타루에게는, 어딘가 내버려두면 안될 듯한, 위험함이 있어서...
나는 언제나, 호타루를 신경쓰고 있어서...
하지만 그건 ㅡㅡ『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였나?
나는 호타루를 사랑하고 있다고, 영원히 사랑할 자신이 있다고, 가슴을 펴고 단언할 수 있나?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켄짱이... 멀리, 가버릴 것 같아서...』
그 때 나는,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었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언제나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리고, 타성으로 사귀고 있는 척 하던 것 뿐이었다, 나는...
그런 내 적당적당한 태도가, 호타루를 상처입혔음에 틀림없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된 것도, 그 탓이었구나.
나는 호타루의 발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짓밟고 들어가는 건 그만큼의, 각오와 용기가 필요한 것으로...』
『나 꽤 의리있는 편이라. 그런 것에』
역시 호타루에게는, 나보다 쇼타쪽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쇼타는 호타루의 손가락을, 움직이게 할 수 있었으니까...
(나에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이런 걸 만드는 것 정도밖엔 할 수 없었는데...)
나는 손 위의 실린더를 강하게 쥐었다.
16개의 핀이, 내 손바닥에 날카롭게 찔러들어왔다.
펴보자, 새빨간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붉은 피를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걸로 잘 된 거야...)
(일단 호타루의 손가락은, 움직이게 되었고...)
(쇼타라면, 반드시 호타루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겠지...)
[s]
내용은, 읽어보지 않았으니까 모른다. 물론, 답신도 하지 않았다.
전화도 빈번히 걸려왔다.
그렇지만, 이야기할만한 기분이 되지 않았다.
학교도, 쉬어버렸다.
루색에서의 바이트도... 계속 시프트에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아마 짤리게 되겠지...
하루종일, 방안에 가만히 있었다.
이러고 있는 동안, 어느샌가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불협화음【호타루편】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
[s]
저녁때 내린 비 탓으로, 바람이 평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뜰의 풀숲 안에서, 벌레 소리가 겹쳐지는 것처럼 울리고 있다.
벌레는 구애를 위해 운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저렇게나 외로운 소리를 연주하는 거지?
주변을 떠다니는 벌레소리가, 애처로운 서정가 같았다.
호타루한테서 받은, 그 인형을...
왜지? 인형을 보고 있으면, 이유도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지... 왜...?)
조용히, 방문이 열렸다.
「왠 일이야, 이런 시간에...」
나는 흘낏 벽시계를 봤다. 8시를 살짝 지난 시간이었다.
호타루「이런 시간, 이라고 말할 정도의 시간도 아니잖아?」
「그렇지 않으면 켄짱은, 이미 잘 시간, 이야?」
켄 「... ...」
★ 잘 수 있을 리 있냐
켄 「어린애도 아니고, 이런 시간에 잘 수 있을 리 없잖아?」
호타루「하지만, 왠지 졸린 것 같다구?」
켄 「시끄럽구만... 그런 건 어찌됬건 상관없잖아!」
「무슨 일 때문에 왔어? 라고 물었잖냐...」
호타루「에 그러까 있지... 에 그게, 에 그러니까...」
켄 「꼬시러?」
호타루「그래♪」
「동물원, 지금 함께, 안 갈래?」
켄 「에!? 지금!?」
호타루「응!」
켄 「뭐, 뭣하러 가냐, 이런 시간에...」
켄 「하지만, 이미 잠들었을지도 모르잖아? 동물」
호타루「그렇다면, 더욱 더 좋은 상황이잖아!」
「원숭이라던가 펭귄이 잠꼬대하면, 켄짱도 믿을 수 있겠지? 동물도 꿈을 꾼다는 거」
켄 「... ...」
호타루「자, 결정~♪」
켄 「하아...」
한숨을 내쉬고서, 일절 저항을 포기했다.
나는 호타루의 옆얼굴을 흘긋 보며, 생각했다.
(정말 이대로도 좋은 걸까?)
이런 애매모호한 마음인 채로, 호타루에게 아무 것도 알리지 않는 건 비겁한 게 아닐까?
언제나 그랬다.
호타루에게 억지로 끌려서 저항없이, 농락받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왔다.
하지만, 그런 적당한 태도가, 반대로 호타루를 괴롭게 하고 있던 거다.
아마, 농락받는 건 내가 아니라, 호타루였겠지.
나는 호타루를... 가지고 놀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아직 사랑할 수 있다」라던가 「아직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라던가, 그런 이유로 사랑받고 싶지 않고』
전에 호타루가, 그런 말을 했다.
그래, 그러니까 나는, 알리지 않으면 안된다.
결론을, 내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호타루에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걸...
「무슨 걱정이라도?」
켄 「... ...」
호타루「앗, 알았다!」
켄 「... ...」
호타루「하지만, 그런 건, 걱정 안해도 괜찮아!」
「동물원이 닫혔다면, 숨어들어가면 되잖아?」
「들키지 않도록, 살금, 살금...」
켄 「... ...」
「가시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는 것도 아니면, 감시카메라가 달려있을 리도 없고...」
켄 「... ...」
「돈이라면, 나중에 제대로 지불하자?」
「별로 나쁜 짓 하러 가는 게 아니니까, 뒤가 켕길 일 따위, 암~것도 없다니까!」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호타루는 티없는 웃음을 만면에 지으면서, 나를 힘차게 끌고 갔다.
아마도, 호타루가 말한 동물원이란 건 『아시카시마 동물공원』을 말하는 거겠지.
아시카시마 동물공원은, 하마사키 공원 앞 ㅡㅡ언덕 위에 있는 깊은 숲 속에 있다.
그 길 도중에, 나는 호타루에게 물었다.
켄 「어째서... 오늘이 아니면 안돼?」
호타루「어떻게 해서도」
켄 「대답이 안된다구」
호타루「대답같은 거, 없어도 상관없잖아?」
(해석 없음)
호타루가 말한 순간, 그 손바닥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알았다.
호타루「그렇지만, 사실을 말하면...」
「동물원은, 그냥 구실...」
내 손에서, 호타루의 손이 떨어졌다.
호타루「왜냐면 켄짱, 메일 보내도, 답장해주지 않았고...」
「전화 걸어도, 받아주지 않았고...」
「그러니 괜히, 만나고 싶어져버려서...」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호타루는 하소연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타루「저기, 켄짱? 왜 메일, 답해주지 않았어?」
켄 「그건...」
켄 「그건... ...」
나는 멈춰서서, 시선을 내리고, 말을 이었다.
켄 「호타루를... ...」
「만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켄 「나는 이제, 호타루의 옆에, 있으면 안돼」
나와 호타루의 사이를, 바람이 불어 지나갔다.
몸이 날아갈 듯한 강한 바람이었다.
슬픈 눈동자빛을 하고 있었다.
눈썹을 꾹 기울이고서, 입술을 악물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도 말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거다.
이대로 관계를, 지속해 나가서는 안되었다.
목소리를 떨면서, 호타루가 중얼거렸다.
무리해서 웃으려고 하면 할수록,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나왔다.
호타루「미나미 선생님, 이지?」
켄 「ㅡㅡ뭐!?」
호타루「선생님을, 좋아하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나는 숨을 삼키고, 다음 말을 열심히 찾았다.
호타루「그런 거지...?」
켄 「... ...」
호타루「숨겨도, 안돼...」
「호타루, 켄짱의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알고 있으니까...」
「괜찮다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호타루는, 방해같은 거, 안 할 테니까...」
「그냥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없어져 줄 테니까...」
켄 「... ...」
호타루「후훗... 호타루 있지...?」
「이렇게 보여도, 꽤 끝마무리가 깔끔한 면, 있다구...?」
「외토리가 되어도...」
「전혀... 전혀... 문제 없으니까...」
깜빡임을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호타루는 그렇게 말했다.
가슴에 대고 있던 손을, 꽉 쥐었다.
켄 「혼자가, 아니야...」
「호타루한테는, 쇼타가 있잖아...」
호타루「에...? 쇼탕...?」
「왜 거기서, 쇼타가 나오는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가슴속이 난도질당하는 듯한, 쑤시는 아픔.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서, 그 아픔을 꾹 참았다.
「어째서 그런 말, 하는 거야?」
켄 「ㅡㅡ시꺼!」
「이제, 나같은 건 그냥 내버려둬!」
호타루「켄짱...」
켄 「맨 처음부터...」
「처음부터, 호타루는,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았어」
「싫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어」
「호타루가 고백해왔으니까... 그러니까 타성으로, 그냥 적당히 사귀었을 뿐이었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어... 호타루 따위」
「거짓말이야... 그런 거...」
「호타루, 절대 믿을 수 없는 걸...」
「그런 거...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켄 「거짓말이 아냐! 전부 사실이다!」
「그런 녀석이라고, 나는...」
「적당주의에, 비겁하고, 겁쟁이고...」
「거짓인 건, 지금까지의 나고... 이게 진짜인, 내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제, 내버려둬...」
「나같은 건...」
「나같은 건... 이제, 잊어줘...」
그렇게 말하고, 나는 돌아섰다.
불러세우려는 호타루를 뿌리치듯, 대지를 박차고 달려나왔다.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에서 숨을 수 있는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다.
숨이 가빠지고, 발이 뒤엉켜도, 멈출 수는 없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갔다.
이윽고 힘이 다해, 지면 위에 쓰러졌을 때, 나는 차가운 모래위에 있었다.
멈출 수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젖은 모래덩이를 강하게 쥐고서, 나는 솟아오르는 오열을, 온 힘을 다해 참고 있었다.
[s]
맞선율【호타루편】
허물벗은 것처럼, 방 구석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s]
아무것도 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
목이 바싹 말랐지만, 일어서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한꺼번에 엄습해오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러니까, 나는 가만히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도록, 내쉬는 숨조차 조심했다.
나는 정말로, 선생을, 좋아하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나는 선생을, 연애대상으로 본 적 따윈 한 번도 없었다.
호타루가 분명히, 오해해버린 거겠지.
그렇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호타루에게 너무나도 차갑게 대했다.
교실에서 선생과 이야기하고 있었을 때, 호타루를 방해자처럼 몰아낸 일도 있었다.
호타루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된 건, 그 때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호타루를, 책망하는 것 따윈 불가능해. 오히려, 책망받아야 하는 건, 내 쪽이지.
어제, 자포자기해서 호타루에게 말한 건, 반쯤은 사실이었고...
나는 적당히, 타성으로, 호타루와 사귀어 왔다... 그렇게 생각해도 당연한 태도를, 지금까지 계속해왔다.
ㅡㅡ자업자득.
『접점을 잃은 둘은, 두번 다시, 끌려서 만나는 일은 없어』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따윈 없는 거다.
아무리 둘이, 강한 힘으로 끌어당겨지고 있다고 해도...
사랑은 꿈처럼 덧없는 것ㅡㅡ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시간의 경과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나는 다다미에 대고 있던 등을, 억지로 잡아떼는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등은 흠뻑 땀에 젖어있었다.
문득, 방 구석으로 눈이 갔다.
만들다 만 오르골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놋쇠덩이에서 눈을 돌리자,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호타루한테서 받은 그 인형이었다.
나는 눈을 꽉 막고, 모든 정보를 차단하려고 시도했다.
『소원을 담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주니까...』
테르테르보주는, 비가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원을 담은 사람의 희생이 되어, 비를 개개 한다.
어쩌면 그 때, 호타루는 이미, 내가 선생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고, 오해하기 시작한 걸지도 모르겠다.
(호타루는 내, 희생이 되려고...?)
그게 정확히, 호타루가 의도한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른다.
단지 나에게는 어떻게 해도, 그 인형과 호타루가 겹쳐져보여버렸다.
소중한 손가락을 상처입으면서까지, 나에게 그 인형을 만들어준 호타루의 마음...
그 마음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거센 죄책감에 싸여서, 자신을 저주하지 않고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귀를 틀어막아도, 호타루의 그림자가 되살아난다.
하늘에 별은 없고, 달도 보이지 않고, 가도가도 검게 칠해진 경치만이 계속 이어질 뿐이었다.
어디로 도망쳐도 소용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갈 곳 따위,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나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을 계속 방황했다.
마른 아스팔트에, 검은 얼룩무늬가 넓어져갔다.
차갑고 큰 빗줄기가, 가슴에 배어들었다.
마치 꾸짖는 것처럼, 나무라는 것처럼, 비는 용서없이 내 몸을 계속 때렸다.
하얗게 흐려진 시계 앞에, 토와리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흐릿하게 떠오른 토와리교의 윤곽은, 칠흑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질퍽거리는 지면을 다지는 것처럼, 한발씩, 한발씩, 토와리교를 향해 발을 옮겼다.
이유는,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뭔가에 이끌리는 것처럼, 나는 이 다리에 도착했다.
이 다리 위가, 모든 것의 시작이어서 그런가?
여기 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그게 아니면, 잃어버린 추억을, 여기에 오면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혹은... 그 전설 때문, 일지도 모른다.
토와리교의 전설.
문득, 눈 아래를 쳐다보자, 찻빛으로 탁해진 강의 흐름이, 미쳐 날뛰는 듯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격류 소리는, 누군가의 신음소리처럼 들렸다.
돌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켄 「... ...」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생각도 못한 광경 앞에, 몸의 움직임 하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호타루「호타루, 찾았었어? 켄짱을...」
「아사나기장에 가봤더니, 켄짱,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호타루는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내 위에 씌워주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우산을 호타루쪽으로 다시 내밀었다.
호타루는 입을 구부리고, 슬픈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별 거 없는 동작마저, 지금 나에게는 괴롭게 느껴졌다.
켄 「어째서...?」
억지로 목소리를 짜냈다.
켄 「어째서, 나같은 걸, 찾거나 하는 거냐...」
숨을 멈추고, 한 마디 한 마디, 이를 악물듯 간신히 말했다.
호타루「그건... 그건 있지?」
「어떻게 해서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었으니까...」
하얀 물보라 속의 호타루는, 환상처럼 아릿하게 보였다.
「지금까지 잔뜩, 거짓말 해왔어」
「실은, 마지막까지 비밀로 해두려고 했었어」
「하지만, 역시 호타루는, 거짓말이 힘들어서...」
「켄짱, 말했었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건 좋은 일이지만,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건 나쁜 일이다』라고...」
「호타루는, 거짓말을 했으니까, 나쁜 애야」
「그리고, 거짓말을 할 수 없었으니까, 더더욱 나쁜 애야」
호타루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어깨에 걸쳐진 우산이, 비에 맞아 흔들리고 있었다.
호타루「저기 있지? 켄짱...」
「분명히, 깜짝 놀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조용히 얼굴을 들고, 호타루는 가만히 말했다.
나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는, 떠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무리해서 웃으려고 하고, 그랬지만 잘 되지 않고...
호타루는 고통을 참으려는 듯, 꾹 눈썹을 기울이고, 말을 계속했다.
호타루「호타루, 멀리, 가버려」
켄 「...에? 멀리?」
호타루「응...」
「먼, 먼... 바다 저편에...」
「호타루... 유학가...」
「오스트리아의, 빈에...」
나는, 호타루의 눈동자를 가만히 쳐다봤다.
호타루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 의미를,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먼... 바다 저편... 유학...』
(譯: 모두 카타가나입니다)
의미를 잃은 말의 순열이, 지나쳐 사라져간다.
호타루「저편의 신학기는, 9월부터 시작하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호타루는 이제...」
「앞으로 조금밖에, 일본에, 있을 수 없어서...」
「26일, 밤에...」
「호타루는 빈에, 가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
「오래전부터, 정해졌던 일이야」
「하지만 켄짱에게는... 도저히... 말할 수 없어서...」
빗소리는 사라지고, 바람은 그치고, 풍경은 색을 잃었다.
나는 시간이 멈춘 세계 속에서, 얼어붙듯 굳어있었다.
호타루「호타루, 추억을, 만들고 싶었어」
「즐거웠던 일도, 슬펐던 일도, 전부 추억으로 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켄짱한테는, 비밀로 했어. 유학간다는 거...」
「마음쓰게 하고 싶지 않았고...」
「무리하게 밝게 행동하거나, 상냥히 대해주는 거... 그런 건, 싫었으니까...」
「호타루는 최후까지, 평범하게 사귀고 싶었어」
「켄짱과 지낸 시간을, 1초라도, 잊고 싶지 않았어」
「즐거웠던 일도, 슬펐던 일도, 전부 다해서...」
켄 「... ...」
호타루「풀에 갔던 것도... 동물원에 가자고 했던 것도...」
「수업을 함께 받았던 것도... 콩쿨, 나가는 거 그만둔다고 했던 것도...」
「모두 다, 켄짱과의 추억을 만들고 싶었으니까...」
「연습같은 거 하는 것보다도, 켄짱의 옆에 있고 싶었으니까...」
호타루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복받치는 눈물을, 온 힘을 다해 참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호타루「그리고 나서, 그리고 나서 있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됐다고 했던 것도... 그래서였어」
「호타루는 그저, 켄짱의 옆에, 있고 싶어서...」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되면, 계속 켄짱과 함께, 있을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그러면, 연습하지 않아도, 뭐라고도 안 하고...」
「혹시 유학도, 가지 않고 끝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켄 「그럼, 그건...」
호타루「...응, 거짓말이었어」
「하지만 호타루의 거짓말은, 언제나 들켜버려...」
「왜지... 왜일까...」
호타루는 그걸 숨기려는 듯, 바로 손바닥으로 뺨을 훔쳤다.
슬픔을 안타까워는 것처럼, 도움을 구하는 것처럼... 젖은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켄 「...그렇다면... 어째서... 콩쿨같은 거에...」
호타루「켄짱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네?」
켄 「...에?」
호타루「호타루는 처음부터...」
「사귀기 시작했던 그 때부터 계속... 눈치채고 있었어」
「켄짱은 호타루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게, 아니지?」
켄 「그럴, 리...」
호타루「으응, 됐어」
「듣지 않아도, 알고 있는 걸」
「축구할 때의 켄짱은, 정말로 멋있어서...」
「머리 좋고, 상냥하고... 호타루에게 있어서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남자애라...」
「하지만 호타루는, 골칫덩이에 바보에, 완전히 구제불능이잖아?」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애라고 생각되어도, 하는 수 없는 일이고...」
「그러니까, 호타루는 생각했어」
「피아노에서 1등상을 받으면, 켄짱도, 호타루를 돌아봐주지 않을까 하고...」
「그게, 콩쿨에 나간, 진짜 이유...」
「호타루는 켄짱의 연인으로, 어울리는 여자가, 되고 싶었어」
그 쓸쓸해보이는 시선에, 답해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낸 말이라고 해도, 자신을 책망하는 말 뿐...
마음과는 정반대로, 나는 점점 말이 없어져갔다.
호타루「미안해... 켄짱...」
「지금까지 너무 많이, 거짓말, 해서...」
「용서해주리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저, 마지막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사실을, 알아줬으면 했으니까...」
떨리는 손끝에,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감으면서...
곧 호타루는,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s]
잔향【호타루편】
아침까지 계속해서 내리던 비는, 지금은 깨끗히 그쳐있었다.
[s]
창 밖에 펼쳐진 하늘은, 새로 생겨난 생기넘치는 청색으로 선명했다.
그런 시원상쾌한 날씨가, 반대로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우중충하고 찌는 대기가, 폐를 압박하는 듯한 숨막힘을 느끼게 했다.
동쪽 하늘에 떠있는 태양은, 발랄하게 빛나서 불쾌했다.
나는 빛을 피해, 북쪽 벽에 딱 붙어서, 꾹 세차게 눈꺼풀을 닫았다.
최후의 말...
최후...
이젠 두번 다시, 호타루를 만나는 건 불가능하다.
모레 밤에, 호타루는 오스트리아로 떠난다고 했다.
모레 ㅡㅡ26일 월요일 ㅡㅡ마침 콩쿨 결승이 열리는 날.
(어째서, 그렇게 급히...)
아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다음달부터 신학기가 시작된다고 하면, 호타루는 좀 더 빨리, 저쪽으로 가지 않으면 안되었을 터다.
26일 월요일 ㅡㅡ그게, 아슬아슬한 타임리미트였겠지.
즉, 호타루가 2차 예선을 통과하지 않았더라면, 호타루는 이미, 일본에는 없었을 거라는 뜻으로...
아슬아슬할 때까지 일본에 남아있게 위해서는, 호타루는 어떻게 해서라도, 결승에 진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거다...
그렇게 생각해보자, 2차예선이 끝난 후, 호타루가 연습을 딱 그만둬버린 이유도, 왠지 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까지의 호타루의 언동 중에, 어제 일을 암시하는 듯한 메세지는, 확실히 담겨있었었다.
『혹시라도 호타루가...갑자기 없어져버린다면...』
『두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다면...』
『그래도 켄짱은, 호타루를...』
『계속... 좋아하고 있어 줄거야?』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냐...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는 되지 않고 끝났을텐데...
호타루를 슬프게 하고, 괴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가지고 놀고...
최후의 최후까지, 상냥한 말 단 한마디도 해주지 못했다.
최저의 남자다, 나는...
『즐거웠던 일도, 슬펐던 일도, 전부 다해서...』
나는 등 뒤의 벽에, 마구 세차게 머리를 갖다박았다.
돌아서서 주먹을 쥐고, 있는 힘껏 벽을 때렸다.
이런 짓을 해도, 구원받기는 커녕,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구멍이 뻥 뚫린 마음에, 스며드는 공허함만이, 내려쌓여가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걸터앉아, 노을진 저녁노을을 보고 있었다.
점심때의 그것과는 다르게, 서쪽 마을 사이로 가라앉아가는 태양은, 약간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차차 깊어가는 어둠의 기색을 느꼈는지, 녹나무에 붙어있던 쓰르라미가 일제히 소리내기 시작했다.
토모야「왕왕! 왕! 왕!」
갑작스럽게, 창 밖에서 토모야의 소리가 들려왔다.
신군은, 나를 눈치채고...
신 「요!」
언제나의 태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친밀하게 웃음지을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신군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수상히 생각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신 「어이, 이나켄! 잠깐 내려와봐라!」
왠지 위압적인 눈빛으로, 신군은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고분고분히, 신군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나는 그 잎을 밟으며, 신군의 앞에 가까이 갔다.
신군의 시선은, 발 주위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토모야를 향하고 있었다.
신군은, 간단히,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켄 「...어떻게」
신 「알 수 있다고, 그 정도는...」
「네 눈을 보면, 바로 말야」
왠지,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꿰뚫어보는 있는 듯한, 그런 시선이었다.
이 사람에게는 숨겨도 소용없다... 내 직감이, 그렇게 말했다.
아니, 실은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랬던 걸지도 모른다.
그게 우연히, 신군이었던 것 뿐으로...
켄 「조금 길어질지도 모르겠지만, 괜찮겠습니까...?」
콩쿨의 일, 움직이지 않게 된 손가락의 일...
쇼타의 고백, 호타루의 오해, 내 미적지근한 태도...
그리고 물론, 호타루가 유학가게 된 것까지, 전부...
「한 번, 뇌를 헹궈주는 쪽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고백을 끝내자, 신군은 질린 듯 그렇게 말했다.
「너는 그저 단순히, 진실을 놓치고 있을 뿐이라고」
「아니, 이렇게 돌려서 말해도, 너는 바보니까 모를지도 모르겠군」
「그러니까, 확실히 말해주지」
「타루타루는 이나켄이 좋고, 이나켄도 또, 타루타루가 좋은 거다」
「이런 당연한 걸, 너희 둘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게 너무나도 단순하고,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가까웠으니까...」
켄 「... ...」
「그리고 이 별이, 다른 혹성과 마찬가지로, 둥근 모양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겠지」
「왜냐면, 너와 이 혹성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깝기 때문이다...」
「이 별이 둥글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너는 달에 가지 않으면 안돼」
「하지만, 이런 어리석은 짓을 말이지, 이나켄은 지금, 현실에서, 하고 있는 거란 말이다?」
「알겠냐? 내가 말하는 거...」
켄 「알겠지만... 하지만...」
신 「하지만, 뭐냐」
켄 「제가 옆에 있으면, 호타루를 괴롭게 하는 일이...」
「타루타루는 이나켄의, 바보같은 면도, 차가운 면도, 미적지근한 면도, 전부 다해서 좋아한다는 말이다!」
「네 옆에, 1분이라도 1초라도, 오래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거짓말까지 하거나 한 거지?」
켄 「그러니까, 그 거짓말을 하게 만들어버린 것 자체가, 호타루를 괴롭게 한다는 증거가...」
「정말로, 너란 놈은...」
켄 「거기다, 쇼타의 일도, 있고...」
「쇼타라던가 하던 녀석이 호타루를 좋아한다고 해도, 호타루가 그녀석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아무 문제도 없는 거 아니냐」
「일단, 쇼타에 대해선, 내버려둬」
「그리고, 미나미씨에 대해서도」
「그것들은, 이나켄과 타루타루의 관계가 어긋난 일로부터 발생한『결과』지, 그 『원인』이 아냐」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하는 것으로써, 그 결과는 자연히 바뀌게 될 터다」
켄 「그런, 문제입니까...?」
신군은 다시 한숨을 쉬며, 크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경험한 건 아니지만...」
켄 「?」
「고민하는 방법까지, 너와 똑같았다구」
「머뭇머뭇 구더기처럼 위축되서... 자포자기에 빠져서...」
「차마 보다 못한 나는, 녀석에게 주문을 걸어줬었다」
켄 「주문?」
신 「아아」
켄 「그건... 어떤?」
내가 묻자, 신군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신 「뒷 일은, 스스로 생각해」
「이나켄의 진짜 바람은 무엇인가? 타루타루의 진짜 소원은 무엇인가?」
「그것만 알면 다음은, 목적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그것마저도 알지 못하면 너는... 개 이하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된다」
「뭐, 그건 그것대로, 행복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신군은 토모야 앞에 꿇어앉았다.
「ㅡㅡ손!」
신군은 손바닥을 내밀었다.
토모야는, 제대로 그 위에 앞발을 올렸다.
석양에 비쳐진 둘의 그림자는, 뜰의 끝을 향해 길게 길게 뻗어있었다.
뜰의 한가운데 내내 서서, 가만히 발끝을 보며 생각했다.
『내 진짜 바램은 무엇인가? 호타루의 진짜 소원은 무엇인가?』
발끝에는, 암흑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지구의 그림자에, 삼켜져 있었다.
신 「어이, 이나켄!」
천천히 얼굴을 들자, 신군은 105호실 안에 있었다.
창 저쪽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질려버린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다.
신 「나참, 어쩔 수 없는 녀석이군...」
「자아...」
그 목소리와 동시에, 신군은 이쪽을 향해, 뭔가를 던졌다.
종이비행기는, 내 눈앞의 지면에 사뿐히 소리도 없이 착륙했다.
나는 허리를 굽혀, 그 종이비행기를 주워들고, 신군에게 물었다.
켄 「뭡니까? ...이거」
그러자 신군은...
신 「소용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신 「그게, 주문이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종이비행기를, 멍하니 쳐다봤다.
(...주문?)
나는 깔끔하게 접힌 종이비행기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펼쳤다.
A4의, 새하얀 한 장의 카피용지.
그 중앙의 부분, 딱 접힌 금이 겹쳐진 곳에, 고딕체의 문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메모리즈 오프1에서 토모야가 받았던 그 쪽지의 내용. 정발판에서는 『비는 언제 그치는 걸까?』)
하얀 종이 가운데, 딸랑 남겨져버린 듯, 그 한 행은 거무스름하게 떠올라있었다.
(비...)
(비는, 언제...)
문득, 호타루의 말이 생각났다.
창틀에 매달린 소청낭인형...
내 눈은, 자연히 그 인형쪽을 향하고 있었다.
『언젠가 꿈에서 본 그 하늘처럼~, 맑으면 금방울 줄게~』
미나미선생은, 테르테르보즈는 『희생양』이라고 했었다.
소원을 담은 사람의 희생이 되어, 바람을 이루어준다고...
호타루가 진짜 바라고 있다는 건, 무엇이지?
그 인형에 담은 호타루의 소원이란 건...?
한바늘 한바늘에 담겨진 호타루의 진정한 마음은, 대체...?
ㅡㅡ그런 건 생각할 것까지도 없잖아!
그건, 곧 억누를 수 없는 강렬한 충동이 되어, 내 신체 속을 헤집고 다녔다.
핑계가 아니었다.
호타루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 ㅡㅡ그 자체가 내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것을, 지금 간신히 알아차렸다.
분명히, 겁쟁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호타루는, 너무나도 눈부셔서...
반대로 축구를 그만둔 나는, 무목적에 타락에 제멋대로에...
그런 나에게 정나미를 잃고, 호타루가 가버릴까... 무서웠다.
그래, 무서웠던 거다... 호타루를 잃는 것이...
호타루에게 버림받는 것이...
그러니까 나는, 호타루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지속해 왔을지도 모른다.
비굴하게, 예방선을 펼쳐서, 버림받을 때의 아픔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경멸당하겠지만, 추하겠지만 관계 없다. 매도당해도, 욕을 먹어도 상관 없다.
단지, 이런 나를 맞아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자고 생각했다.
이대로, 호타루를 가게 할 수는 없다.
그 전에, 어떻게 해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말이 있다.
ㅡㅡ내 마음, 진정한 생각.
만약 멀리 떨어지게 되어도, 이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언제라도, 언제라도, 영원히, 호타루의 옆에, 있을 것이라고.
충동만 가지고서, 속마음을 전하는 것으로선, 정말 호타루에게 전해질 지 어떨지 모른다.
무언가, 강하게 호소할만한 증거가 필요했다.
호타루의 바람과, 내 바람을, 이루어줄 무언가...
호타루의 생각과, 내 생각을, 이루어줄 무언가...
그건...
[s]
아이들의 영역【호타루편】
여기저기서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s]
여름의 아침, 북쪽의 창에서 시원한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창에서 흔들리는 풍령이, 나를 재촉하는 듯 울리고 있었다.
이제, 거의 시간이 없다.
호타루가 일본을 떠나는 건 내일 밤이다.
그 때까지, 어떻게 해서라도 완성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호타루가 가장 좋아한다고 했던 곡 ㅡㅡ비창.
그 곡을, 내 대신 연주해 줄 ㅡㅡ오르골.
나는 지금, 그 오르골을 만들고 있던 중이었다.
손대기 시작한 뒤로, 이래저래 10시간 넘게 흘렀지만, 작업은 지지부진 진척되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이 공정은, 서두른다고 어떻게 되는 일이 아니다.
신중히 신중히, 신경을 곤두세우고서, 하나하나 실린더에 핀을 세워가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마음만이 앞서서,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그 떨림을 억누르면서 핀을 고정시키고, 핀을 고정시키고 나면 크게 숨을 쉬고...
생각해보니, 나는 벌써 이틀밤째 자지 않았다.
집중력이 끊어져, 잘못 세워버린 핀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 오르골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호타루에게 선물할 거라고, 가슴에 굳게 맹세했다.
나는 호타루에게 약속했다.
호타루가 제일 좋아하는 이 곡을, 반드시 쳐보이고 말겠다고...
『혹시 켄짱이, 이 곡 ㅡㅡ『비창』을 칠 수 있게 된다면...』
『딱 하나만, 소원을 들어 줄게~!』
그렇지만, 추억에 젖어있을 여유따윈 없었다.
긴장의 실이 느슨해질 때마다, 나는 창가에 매달려있는 그 인형을 바라봤다.
그저 보는 것 만으로, 거기에 담겨있는 호타루의 바람이, 뼈저리게 전해져왔다.
인형은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시각은, 이미 11시를 지나고 있다.
그 동안, 밥도 안 먹고, 쉬지도 않고, 일념으로 묵묵히 작업을 계속해 온 나는,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장, 뚜껑을 열어봤다.
그래도... 나는 복받치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용솟음치는듯한 흥분은, 소용돌이치며 내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음정도, 소리의 강약도, 타이밍도, 적어도 내가 들어본 한으론, 어디도 비정상적이지 않은 듯 했다.
그것에 안심한 나를, 갑자기 강한 탈력감이 덮쳤다.
다다미 위에 쓰러져서, 누그러이 흐르는 선율 속에 몸을 담근다.
(해석 없음)
진정과 흥분이 뒤엉키듯 몸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호타루는 있지? 이 2번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분명 이곡은, 슬픔을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슬픔을 사랑하려 한다고』
그 속에서 울리는 호타루의 목소리...
(슬픔을, 사랑하다, 인가...)
한 손으로 가방을 들고, 방문을 기세좋게 열어제꼈다.
목적지는 물론 정해져 있었다.
그 장소를 향해, 전속력으로 계속해서 달렸다.
흥분은 여전히 식지 않은 채...
달아오른 신체에, 밤바람이 기분좋게 불어왔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처럼 생각되었다.
무서운 것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을 가르듯 달려나갔다.
뚝뚝 방울져 떨어지는 물방울은, 닦아도 닦아도, 몸 속에서 넘쳐나왔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반복하고, 숨을 가다듬었다.
무서운 것 따윈,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 호타루 집 앞에 서자, 심장이 두근두근 경종을 치는것처럼 높이 울렸다.
다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걸 서서히 서서히 내쉬면서, 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인터폰의 보턴을... 눌렀다.
고요함이 점점 몸 속에 스며들어온다.
들려온 소리는, 호타루의 부친인 듯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켄 「밤늦게 죄송합니다. 호타루는, 호타루는 있습니까?」
父 「호타루라면, 있습니다만... 누구신지?」
켄 「이나미라고 합니다. 이나미, 켄입니다」
「호타루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父 「급한, 용건인가?」
켄 「네...」
父 「... ... ... ...」
싫은 침묵이었다.
호타루의 아버지는, 인터폰 저편에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쏴아쏴아 무기적인 노이즈만이, 차디차게 울렸다.
父 「미안하지만, 호타루를 만나게 할 수는 없네」
켄 「...예?」
父 「호타루는 내일, 대단히 중요한 일을 기다리고 있다」
켄 「콩쿨, 말입니까?」
父 「그럼,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안하지만, 돌아가주지 않겠나?」
켄 「아니, 그럴 수는」
父 「그럼」
켄 「자, 잠깐 기다려주세요!」
ㅡㅡ딸깍!
무정하게도, 인터폰은 끊어져버렸다.
노이즈는 두절되고, 다시 정숙이 다가왔다.
예상외의, 최악의 사태였다.
아니, 냉정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결승전 앞날에, 그것도 이런 한밤중에...
갑자기 찾아온 남자 앞에, 사랑하는 딸을 내줄 아버지가, 이 세상 어디에 존재한다는 말이냐.
그렇지만...
지금 일로, 반대로 내 속에 있던 뭔가가, 툭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나는 오르골이 든 가방을, 가슴에 확실히 끌어안았다.
그리고 불이 켜진 방을 향해, 소리높여 외쳤다.
켄 「호타루ㅡ!」
「호타루ㅡㅡㅡ!」
「호ㅡ타ㅡ루ㅡㅡㅡ!!!」
父 「어이! 어쩔 작정이냐!」
호타루의 아버지가 뛰쳐나왔다.
활짝 열린 그 문 저편에는...
켄 「ㅡㅡ호타루!」
호타루「켄짱...」
나는 주저없이 문 안으로 뛰쳐들어가서...
父 「어이, 뭐냐! 비상식에도 정도가 있다!」
켄 「가자」
켄 「호타루가 쭉 가고싶어했던 곳이야」
「동물은, 꿈을 꾸는 건가? ...확인하고 싶지 않았어?」
호타루「그, 그래도...」
켄 「콩쿨 말야?」
「그거라면 지금은... 잊어줘」
켄 「오늘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밤이야」
「그런 소중한 밤인데...」
「콩쿨따윈, 아무래도 좋잖아?」
아마 그게, 호타루가 구하고 있던 말이라고 생각한다.
『피아노따윈 잊고, 내 옆에 있어줬으면 해』ㅡㅡ그 말을, 호타루는 지금까지 쭉, 기다려 왔던거라 생각한다.
호타루의 눈에 막 눈물이 넘쳐흐르면서...
머리를 흐트러뜨릴 정도로 강하게, 깊게, 끄덕여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