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지역감정의 대표적인 말로는 우리가남이가란 말이 있습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말로, 좀 재밌는게 이건 민주당쪽에서 터트린게 아니라, 정주영의 통국당이 터트린거죠.
오히려 역풍 불은 결과물을 가져와서 영남을 결속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가 보통의 평입니다.
통국당은 역풍으로 나가리되고, 복수의 제왕 김영삼에게 현대가 탈탈 털리는 계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한번 지역감정의 역사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흔히들 백제 vs 신라의 구도로 가지만, 의외로 통일신라 시대 ~ 조선까지는 평양위쪽과 한양밑쪽의 지역갈등이 가장 강했을 뿐 그다지 없었습니다.
가장 지역갈등으로 치닫을거 같은 붕당 정치에도 그다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서인이니 동인이니 하는건 호남 영남을 일컫는 언어가 아니라, 서울 어디에 살고 있었느냐가 나눠지는거죠. 동교동계 상도동계처럼 서울을 지명으로 하지만 분명한 영남 호남의 구도가 아니었습니다. 북인이니 남인이니 이런 것들도 그냥 서울을 기반으로 했죠.
정확하겐 조선시대에도 영남출신위주의 양반들이 주도를 했었습니다. 애초에, 사림이란게 김종직이 세운 놈들인데 그 놈들을 일명 '영남학파'라고 불리웠죠.
물론, 기원을 찾으려면 여기서도 찾을 순 있겠습니다만, 신분제며, 중앙집권제로 나랏님이 내세워주는 수령에겐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게 역사의 슬픔이라고 볼때에 별 다른 지역감정은 찾을 수 없습니다. 특히 영호남의 갈등은요.
뭐 일ㅁㅁ들이 이상한 책들에서 호남 차별에 대한걸 걸어놓은걸 본적은 있는데, 그게 딱히 지역감정이라고 보긴 어렵죠.
지역'차별'이라고 하면 모를까?
그렇다면 최초의 정치적 지역갈등은 언제인가?
1969년 김대중의 신민당에서 '경상도 정권을 타도하자'라는 말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에 당연히 박정희밑 똘마니들이나 박정희도 영남 지역주의를 내세웁니다.
토게에서 자주 인용하시는 진중권의 말을 빌리자면
라고 합니다.
사실 지금은 미디어 다음이 그냥 뉴스 포탈로 바뀌어서 없어진 기사라 블로그에 아무곳에서나 긁어오긴 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인터뷰였습니다.
하여간 그건 진중권의 말이니 걸러서 듣기 바라며, 다음 주제로 넘어가보죠.(가끔 토게에 진중권 인용하시는 분이 계셔서 일부러 올려봅니다.)
역대 대선 결과를 보면 오히려 5대 대통령 선거에선 호남에서 윤보선보다 박정희를 더 지지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전북 - 박정희 408,556 (49.43) : 윤보선 343,171(41.52)
전남 - 박정희 765,712(57.22) : 윤보선 480,800(35.93)
시간이 흘러 6대 대통령 선거에 또다시 윤보선과 박정희가 붙었는데 이 경우부터 조금씩 바뀌긴 합니다.
전북 - 박정희 392,037(42.31) : 윤보선 451,611(48.74)
전남 - 박정희 652,847(44.58) : 윤보선 682,622(46.61)
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지지율을 보여주죠.
전체로 합쳐놓으면 호남지역(254만) : 윤보선 44.6% > 박정희 41.1% 정도 입니다. 근소한 차이죠.
그런데 7대 대통령선거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김대중과 박정희의 대결부터죠.
전북 - 박정희 308,850(35.48) : 김대중 535,519(61.52)
전남 - 박정희 479,737(34.43) : 김대중 874,974(62.80)
사실 김대중 본인은 오히려 국회의원 초선이 당선된게 강원도 인제였을 정도로 처음부터 지역의 맹주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김대중옆에 있던 사람은 '선거의 달인' 엄창록이란 존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흑색선전(마타도어)의 달인으로 좀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그중 엄창록이 지역감정을 유발하죠.
자세한건 팟캐스트 이이제이 - 엄창록편 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http://www.podbbang.com/ch/4362?e=21893627
이 엄창록은 확실치는 않지만, 심증적으로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어 지역감정을 더 증폭시켰습니다. 즉, 김대중의 책사에서 박정희의 책사가 되죠.
대표적인 지역감정 마타도어는
호남인이여 단결하라!
-호남향우회-
같은 플랫카드를 대구에다가 거는 등의 지역감정 마타도어가 있습니다.
또한, 가장 대표적인 우리가남이가도 '김영삼의 말'대로라면 김대중이 먼저 썼다고 합니다.
71년대선 경선때 이철승, 김대중, 김영삼의 삼파전일때 김대중이 이철승에게 포기를 권유하며 했다고 한 말이
'어이 철승이, 우리가 남이여 시방?'이었다고 합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3790444
좀 아이러니하죠... 우리가남이가는 영남이 결집하는데 마법같은 용어인데 그 시작은 김대중이었다니.
물론, 다시 말하지만 김영삼의 회고라서 틀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연인지 몰라도 이철승도 호남출신이라는 점이 매우 걸립니다. 참고로 이철승은 유명한 사쿠라였죠. 이것도 이이제이 사쿠라편을 좀 들어보시면 도움 되실겁니다.
또한, 결과도 마찬가지로 이사건이후로 김영삼우세에서 김대중우세로 바뀌었죠.
호남이 아직도 차별받는다는건 사실인거 같습니다.
호남의 인구는 영남의 반도 안 되는게 현실인지라 영남애들이 호남을 차별하면 그 외 지역에서 중립으로 지키려고 해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쏠려 보이는 거죠.
개인적으로 경기도 양평태생으로 친가/외가 모두 적어도 5대이상 경기도 양평을 고향으로 둔 사람이라 호남 사람이 뒷통수 잘친다 이런말은 살면서 인터넷에서 처음 들어 봤습니다.
대학도 서울로 다녔는데 전혀 들어본적 없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심지어 전 군대에서도 지역차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동향인들끼리 뭉치는걸 봤어도 말이죠. 제가 편견이 생겼던건 오히려 군대에서 절 괴롭게 하던 선후임들이 영남출신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 영남인들에 대한 약간의 편견이 생겼다는 것 정도?(물론, 군대에서 힘이 되준 영남 출신도 있습니다. 케바케라는걸 항상 전제해야죠)
그리고 호남이 영남에 비해 경제적 인프라가 적은건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정치기록상의 지역감정 유발은 김대중이었고,
김대중의 책사, 엄창록의 등장으로 지역감정은 심해졌으며
김영삼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남이가는 김대중이 먼저했다는 말입니다.
왜 이걸 이시기에 올리느냐?
개인적으로 국민의당이 저꼴임에도 아직도 우리가 남이여 시방 하시는 분들이 많은거 같아서 답답하니 올려봅니다.
압니다. 이런걸로 공격해봐야 역으로 괘씸해서 마음 안 돌릴거.
근데, 제가 말 안한다고 해도 과연 우리가 남이여 시방? 안 할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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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어떻게 보면 저걸보고 김대중 작품이다 라고 생각할수있는지 정말 대단하시네요.ㅠ. 지역감정론이 박정희가 만든건 다아는사실인데 물론 전두환 내려가고나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지역감정에 호소해서 대선 치뤘다가 노태우에게 대통령자리 넘긴적은있죠 상식적으로 영남지방이 호남지방보다 인구수가 월등하게 많은데 선거에서 이기고싶었으면 호남지방에 기대서 지역감정을 만들었겠습니까? 그리고 지역감정이라는건 박정희의 전라도 천대 정책이 만들어낸거죠 그렇게 역사에 해박하시다면 광주게토 사건은 잘알고계시겠죠? 그 사건의 피해자는 정부의 수곡가 정책때문에 먹고살길이 막막해져서 서울로 올라간 전라도민 이라는 사실도 매우 잘 알고계실꺼라 믿구요 농업 종사자들을 산업화 시대의 희생양으로 삼았고 자기 연고지이면서 인구수도 많은 영남지방에 어마어마한 집중 투자를 하고 그거 못살겠다고 서울로 일자리 찾아온 전라도민들을 무슨 식민지 노예처럼 쳐내고 굶겨 죽였으니 거기애대한 반대급부로 전라도 출신 정치인인 김대중에게 전라도 사람들이 기대하는건 당연한거아닌가요.ㅇ.? 저도 저 선거결과를 잘알고있고 원래는 남북 갈등에서 동서 갈등으로 바뀌었다 라면서 어려가지 자료로 공부를했는데 저걸가지고 김대중이가 지역감정을 만들었다라고 하는 유니크한 해석은 처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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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이 김대중이다는 말은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역감정 발언이나 이용은 김대중 박정희 할 것 없이 이승만때부터 종종 사용 되던 겁니다. 박정희가 비판받는것은 정권의 권력을 동원한 전방위적, 지역감정을 이용한 장기적 집권 플랜을 세웠다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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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아니라 이승만때라고 했죠. 박정희 이전 시절도 지역주의를 동원한 선거는 흔히 일어났습니다. 단지 현재와 같이 동서분열이 고착된 것이 아니라 국소적인 선거용으로만 사용되던 것이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8042900329101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8-04-29&officeId=00032&pageNo=1&printNo=3958&publishType=00010 -58년: 선거부정은 엄단이 필요. 지역, 씨족파벌 배격. 다른분이 설명하셨듯이 63년도 선거에도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이용했지만 그건 그 전에도 있었던 흔한 지역감정 선거였을 뿐이니 굳이 탓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뭐 이정도 선에서의 지역감정은 김대중도 자유로울순 없겠죠. 하지만 당연히 김대중이 지역주의의 시초도 아니고, 현재의 지역주의 고착은 박정희의 공로가 가장 지대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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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기원에 대해서 찾아보니 63년도 대선에서 이미 박정희 집권세력에서 그런식의 갈등을 도모한 적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대구는 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임금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 고장 출신의 박정희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 임금님으로 모시자."(1963년) (인용글) 가뜩이나 5.16 쿠데타 직후부터 불안했던 박정희는 영남 군벌을 키워주며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던 터였다. 재벌들도 영남 출신 위주로 특혜를 베풀었고, 산업 단지의 건설도 가급적 영남 위주로 선정했다. 이와 관련해 양병기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60년대의 정치사회변동 p.269~270) 양병기 "박정희는 5.16 쿠데타에 의한 정통성 결여를 보완하고,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믿을 건, 영남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영남의 지역패권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강준만 교수도 비슷한 말을 한다. (한국현대사산책 1960년대편 3권 p.147) 강준만 "박정희가 영남 출신을 중용했던 것은 쿠데타 하듯이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쿠데타란, 원래 믿을 수 있는 사람 위주로 꾸미는 게 아닌가." ● 영남 우대론과 호남 푸대접론 60년대 중반 이후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영남 우대론'과 동시에 '호남 푸대접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 1966년 4월 23일 자 매일신문 만평 전남매일 64년 10월 25일 자에 실린 '전남은 푸대접 받고 있다'라는 제목 기사가 아마도 그 시초일 것이다. (정근식, 현대사회문제 p.543) ▲ 호남 푸대접론 파란일듯 이후 전북일보의 편집국장은 66년 대통령에게 이런 공개서한을 보냈다. (고길섶, 우리 시대의 언어게임 p.323~324) "지금 서울 거리에서 구두닦이, 심부름꾼 등을 찾아보십시오." "이들 대부분이 전라도 출신인 걸 알게 되면 각하께선 놀라실 것입니다." 하지만 박정희는 그런 요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67년 4월, 박정희는 대선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했던 것이다. 당시 호남인들의 박탈감은 상당했다. "아따 뭐당가! 또 거시기 경상도에만 짓겠다는 건가?" 언론인 이상우는 이렇게 말한다. (이상우, 박정권 18년 p,341~342) 이상우 "경부고속도로 계획이 발표된 때는 하필 호남 푸대접론이 한창 비등하던 시기였다." "60년대 말에 이르도록 호남지역에는 이렇다 할 공장이나, 반듯한 도로가 전혀 없었다." "물론 박정희는 호남 표심을 잡기 위해 대선 공약으로 호남선 복선화를 공약했었다." "당시 단선뿐인 호남선은 푸대접의 상징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호남선이 복선화되는 것은 그로부터 11년 후인 1978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전북 익산(당시 이리)까지였다. 전구간 복선화는 2003년에야 이루어진다. [출처] 박정희와 지역주의 : 영호남 지역감정의 시작|작성자 만쭈리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sn76&logNo=220346859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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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한 것이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인사정책과 재벌 산업전략을 구사했다는 것인데 이게 국민들에게 그런 감정을 심어주고자 한 의도가 아니었다고 따로 떼놓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란거죠. 한번 예를 들어보면 KeiH님이 사는 동네의 구청장이 자기가 살고 있는 동에만 자원들을 밀어주고 발전시키면서 님의 동네에 급한 문제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행정을 계속 편다고 생각을 해보시면 당연히 혜택을 받는 특정 동을 제외한 다른 지역주민들이 편애를 한다고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실질적인 지역감정을 만들고 있는 거죠. 때문에 다음 선거에서 다른 후보들이 특정 지역에만 자원을 몰아다주는 저 후보자를 퇴출시키자 찍지 말자고 말할 수 있겠죠. 한쪽에 일방적으로 몰아주었던 정치인의 정책은 사심이 없이 한 행동이고. 저 불편하고 부당한 행정에 편협함을 들어 저런 후보는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정치적 선전구호로만 해석할 문제인가요? 당연히 현재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나오는게 정치인들의 공약인 겁니다. 문제는 신민당의 저런 발언 이후에 지역갈등이 싹 텄냐는 건데 이미 67년 대선때부터 지역갈등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63년도 대선때 박정희 세력은 대구에 가서 신라임금을 운운하며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으로 천년만년 임금님으로 모시자는등 지역차별화 선동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란 것이 지역을 보고 뽑는게 아닌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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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이 김대중이다는 말은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역감정 발언이나 이용은 김대중 박정희 할 것 없이 이승만때부터 종종 사용 되던 겁니다. 박정희가 비판받는것은 정권의 권력을 동원한 전방위적, 지역감정을 이용한 장기적 집권 플랜을 세웠다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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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아니라 이승만때라고 했죠. 박정희 이전 시절도 지역주의를 동원한 선거는 흔히 일어났습니다. 단지 현재와 같이 동서분열이 고착된 것이 아니라 국소적인 선거용으로만 사용되던 것이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8042900329101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8-04-29&officeId=00032&pageNo=1&printNo=3958&publishType=00010 -58년: 선거부정은 엄단이 필요. 지역, 씨족파벌 배격. 다른분이 설명하셨듯이 63년도 선거에도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이용했지만 그건 그 전에도 있었던 흔한 지역감정 선거였을 뿐이니 굳이 탓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뭐 이정도 선에서의 지역감정은 김대중도 자유로울순 없겠죠. 하지만 당연히 김대중이 지역주의의 시초도 아니고, 현재의 지역주의 고착은 박정희의 공로가 가장 지대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 같습니다. | 16.03.06 22: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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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기원에 대해서 찾아보니 63년도 대선에서 이미 박정희 집권세력에서 그런식의 갈등을 도모한 적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대구는 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임금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 고장 출신의 박정희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 임금님으로 모시자."(1963년) (인용글) 가뜩이나 5.16 쿠데타 직후부터 불안했던 박정희는 영남 군벌을 키워주며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던 터였다. 재벌들도 영남 출신 위주로 특혜를 베풀었고, 산업 단지의 건설도 가급적 영남 위주로 선정했다. 이와 관련해 양병기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60년대의 정치사회변동 p.269~270) 양병기 "박정희는 5.16 쿠데타에 의한 정통성 결여를 보완하고,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믿을 건, 영남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영남의 지역패권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강준만 교수도 비슷한 말을 한다. (한국현대사산책 1960년대편 3권 p.147) 강준만 "박정희가 영남 출신을 중용했던 것은 쿠데타 하듯이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쿠데타란, 원래 믿을 수 있는 사람 위주로 꾸미는 게 아닌가." ● 영남 우대론과 호남 푸대접론 60년대 중반 이후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영남 우대론'과 동시에 '호남 푸대접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 1966년 4월 23일 자 매일신문 만평 전남매일 64년 10월 25일 자에 실린 '전남은 푸대접 받고 있다'라는 제목 기사가 아마도 그 시초일 것이다. (정근식, 현대사회문제 p.543) ▲ 호남 푸대접론 파란일듯 이후 전북일보의 편집국장은 66년 대통령에게 이런 공개서한을 보냈다. (고길섶, 우리 시대의 언어게임 p.323~324) "지금 서울 거리에서 구두닦이, 심부름꾼 등을 찾아보십시오." "이들 대부분이 전라도 출신인 걸 알게 되면 각하께선 놀라실 것입니다." 하지만 박정희는 그런 요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67년 4월, 박정희는 대선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했던 것이다. 당시 호남인들의 박탈감은 상당했다. "아따 뭐당가! 또 거시기 경상도에만 짓겠다는 건가?" 언론인 이상우는 이렇게 말한다. (이상우, 박정권 18년 p,341~342) 이상우 "경부고속도로 계획이 발표된 때는 하필 호남 푸대접론이 한창 비등하던 시기였다." "60년대 말에 이르도록 호남지역에는 이렇다 할 공장이나, 반듯한 도로가 전혀 없었다." "물론 박정희는 호남 표심을 잡기 위해 대선 공약으로 호남선 복선화를 공약했었다." "당시 단선뿐인 호남선은 푸대접의 상징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호남선이 복선화되는 것은 그로부터 11년 후인 1978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전북 익산(당시 이리)까지였다. 전구간 복선화는 2003년에야 이루어진다. [출처] 박정희와 지역주의 : 영호남 지역감정의 시작|작성자 만쭈리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sn76&logNo=220346859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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