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숙영웅의 아버지’ 토키다 다카시가 말하는, 오니가 우는 나라
‘제물과 눈의 세츠나’, ‘로스트 스피어’로 개발력을 입증한 도쿄 RPG 팩토리의 신작 ‘오니가 우는 나라(鬼ノ哭ク邦)’가 오는 8월 13일 국내 발매를 앞두고 있다. 해외에는 이미 지난해 출시된 작품이지만,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 지점이 공들여 제작한 한국어 자막만으로도 금번 정식 발매의 가치가 크다.
‘오니가 우는 나라’는 죽음을 슬퍼해선 안되는, 윤회전생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 독특한 액션 RPG다. 주인공 카가치는 방황하는 영혼을 찾아 구제하는 망인지기로서, 우호적인 존재인 귀화혼과 함께 전투에 나선다. 캐릭터는 하나지만 총 11종의 귀화혼마다 무기와 기술이 달라 한층 다채로운 액션을 즐길 수 있다.
아울러 또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중견 개발자 토키타 타카시(時田貴司)가 본작의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는 것. ‘반숙영웅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는 ‘반숙영웅 vs 3D’ 국내 발매 당시 루리웹 취재팀과 만남을 갖기도 했다. 인터뷰 기사 발행 일자가 2003년 10월이니 벌써 17년 전 일이다.
과연 17년 만에 ‘오니가 우는 나라’로 돌아온 ‘반숙영웅의 아버지’는 루리웹과, 뭇 한국 게이머의 뜨거운 성원을 여전히 기억할까. 이에 서면으로나마 그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 2003년 인터뷰 이후 17년만이다. 이후로도 토키타 타카시 PD의 작품은 계속 즐겨왔지만,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직접 듣고 싶다
: 오랫동안 내 작품을 즐겨주어 고맙다! 현재는 스퀘어에닉스 제2개발사업본부 디비전6라는 부서에서 프로듀서를 맡아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세계가 크게 바뀌고 있는지라 재택과 외출을 적절히 조정하며 근무한다. 아직 예측이 어려운 상황인만큼 한국의 여러분도 조심하기 바란다!
● 그 시절 YBM 시사닷컴이 국내 유통한 ‘반숙영웅 vs 3D’는 세심한 한국어화로 화제를 모았었다. 여전히 한국 게임 시장에 관심이 많은가
: 아, 그립다! ‘반숙영웅 vs 3D’는 YBM 시사닷컴의 로컬라이징 담당자가 직접 우리 사무실까지 와서 함께 일했었다. 강상(강준규 소프트웨어 로컬라이제이션 엔지니어)은 건강하게 잘 지내려나?
발매 기념 행사에선 삶은 달걀 많이 먹기 챌린지 등 요즘 기준으로는 좀 위험한 이벤트를 했었다(웃음). 에그 몬스터도 공모하고. 한국의 게이머 여러분이 열렬히 환영해주었던 것을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한동안 한국 게임 시장과 교류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 지점에서 권유해준 덕분에 다시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 당장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양국을 오가기가 어렵지만 상황이 안정되는 데로 오랜만에 한국을 찾아가고 싶다!
● 그러고보니 ‘반숙영웅 vs 3D’ 한국어판 한정으로 출연한 개그맨 조세호(당시 양배추)가, 최근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혹시 ‘프로 불참러’라고 아나
: 정말인가!? 처음 듣는다. ‘낙지와 양배추’ 2인조였지. 근황을 체크해야겠군. 예능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한국 영화 ‘기생충’, ‘부산행’, ‘곡성’, ‘택시운전사’ 등을 챙겨봤는데 아주 좋았다.
● 그럼 본격적으로 게임 이야기를 해보자. 신작 ‘오니가 우는 나라’에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는데, 정확히 어떤 역할을 담당한 것인지
: 개발팀의 멘토로서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의 방향성이나 완급 조절, 개발에 있어서 연구할 점 등을 제안하고 상담을 받는 등이다. 뭔가 대단한 것처럼 들리는데(웃음). 아주 복잡한 콘텐츠도 만들어낼 수 있는 오늘날의 개발 현장이기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게이머 여러분이 시스템을 쉽게 이해하고 플레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도쿄 RPG 팩토리의 경우 옛 JRPG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줄곧 개발해왔다. 그렇다면 ‘오니가 우는 나라’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가
: ‘제물과 눈의 세츠나’와 ‘로스트 스피어’는 턴을 기반으로 하는 왕년 JRPG를 표방하며 개발했지만 ‘오니가 우는 나라’는 과감하게 방향 전환을 꾀했다. 제일 큰 것은 역시 턴제 RPG에서 실시간 액션 RPG로 바뀐 것이겠지. 감성적으로도 ‘제물과 눈의 세츠나’에서 호평을 받은 독특한 세계관을 더욱 더 추구했다.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는 ‘성검전설’을 비롯한 일본의 액션 RPG, ‘핵 앤 슬래시’라 불리는 해외의 액션 RPG, 거기에 현대의 액션 RPG까지. 이처럼 다양한 체험으로 얻게 된 많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도쿄 RPG 팩토리만의 액션 RPG를 선보이고자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 ‘성검전설’은 곧바로 이해가 되지만, 현대의 액션이 RPG라고 한다면 최근 게임 가운데 어떤 작품이 인상적이었나
: 폐사의 흥행작 ‘니어 오토마타’는 상쾌한 액션과 개성적인 세계관으로 우리에게 큰 용기와 자극을 부여해줬다. 물론 ‘니어 오토마타’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최신 게임을 연구했으며, 그러면서도 ‘오니가 우는 나라’만의 독창성을 실현하고자 했다.
● 윤회전생의 나라라는 배경 설정이 독특하다. 특히 첫 번째 임무의 결말이 상당히 충격적인데, 영혼의 존재가 보편화된 세계이기에 우리와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르구나 싶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구상했나
: ‘제물과 눈의 세츠나’ 시절부터 도쿄 RPG 팩토리가 고집해온 독자적인 삶과 죽음의 관념이랄까.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생명을 테마로 하여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는데 있다.
RPG의 본질인 ‘싸우고 적을 쓰러뜨리며 강해져서 살아남는다’라는 대원칙에서 ‘왜 싸우는 것인가? 생명이란? 그 너머에 있는 것은?’이라고 묻는 것이야말로, RPG의 스토리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테마가 아닐까.
이것은 나 스스로 ‘파이널 판타지 4’나 ‘라이브 어 라이브’, ‘크로노 트리거’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추구해온 테마이기도 하다. ‘오니가 우는 나라’는 이러한 서사를 더욱 극대화한 세계관으로, 윤회전생을 주축으로 구축해봤다.
● 망인지기 카가치가 하는 일 중에는 우리 세계에서는 살인이라 할만한 것도 있다. 그래서인지 성격도 어둡고 냉정한 면이 부각된다.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가 바라보는 카가치는 어떤 인물인지 보다 자세히 소개해줄 수 있을까
: 카가치는 의도적으로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그는 망인지기 임무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RPG의 문법이기도 하다. 게이머 여러분이 카가치와 동화되어 ‘죽음이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와 같은 생각을 가져주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삼 이야기하다 보니 본작은 ‘파이널 판타지 4’에서 주인공 세실이 암흑기사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같은, RPG로서 보편적인 테마를 눌러 담아 그려낸 세계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 생과 사를 테마로 한 진중한 스토리와 귀엽게 데포르메된 디자인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SD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 물론 예산 문제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보다 ‘상상의 여지’를 주고 싶어서다. 내가 만들어온 패미컴이나 슈퍼 패미컴 시절의 RPG는 2등신으로 데포르메된 디자인이 표준이었다. 캐릭터의 디테일한 모습은 게이머의 상상에 맡김으로써 함께 (마음 속 형상을)만들어가는 것이지.
그런 캐릭터들이 진지한 드라마를 전해하기에 게이머는 더욱 감정을 이입할 수 있고, 스토리에도 몰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되짚어보면 소설이나 만화 그보다 옛날에는 구전 설화까지, 이야기란 듣거나 읽는 사람의 상상에 맡기는 게 보편적이었지 않나.
● 주인공 자체는 한 명이지만 귀화혼 전환을 통하여 실제 전투 방식은 11종이나 된다. 아무래도 11종의 차별화된 전투 방식을 고안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떠한 기준으로 11종의 무기를 선정했나
: 귀화혼의 컨셉트는 ‘파이널 판타지’로 치면 잡(Job, 직업) 시스템이다. 본작의 디렉터인 하시모토는 ‘파이널 판타지 익스플로러’에서도 실시간으로 직업을 바꾸는 시스템을 선보인 바 있다.
액션 RPG에서 즐길만한 무기, 기술, 조작 방법 등 많은 아이디어를 두고 ‘오니가 우는 나라’ 세계관과 맞추어 선정했다. 특히 상쾌한 액션을 추구하여 모션과 이펙트의 강력함을 표현하는데 시간을 들였다. 귀화혼에 대해선 개발팀 내에서도 취향이 갈리므로(웃음) 여러분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골라 성장시켜주면 기쁘겠다!
● 보스전 난이도가 상당한데, 이 녀석은 이 귀화혼를 쓰면 확실히 쉽다 싶은 경우가 있더라. 11종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하나만 육성하는 경우와, 11종을 모두 골고루 사용하는 경우. 개발팀이 의도한 플레이는 어느 쪽인가
: 보스마다 유리한 귀화혼을 의식해서 설계하긴 했지만 어느 귀화혼을 사용하더라도 싸울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췄다. 또한 한 귀화혼에 집중하는 쪽이 당연히 성장도 빠르므로 처음에는 단일 육성이 유리하다. 이후 게임 후반부로 갈수록 여러 귀화혼을 마음껏 육성할 수 있으니, 그때부터 다른 귀화혼도 성장시켜 각각의 묘미를 맛보길 추천한다.
● 발도/납도 옵션이 있다. 생각해보면 다른 작품에서는 굳이 구현하지 않는 부분인데, 레버를 당기거나 스위치를 누를 때 실수로 공격이 나가지 않도록 배려한 것인지
: 잘 찾아주었다! 그런 배려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제 싸우러 간다!’라는 마음가짐으로, 게이머가 능동적으로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이점이 크다고 본다.
●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서 ‘오니가 우는 나라’를 플레이한 게이머가 무엇을 느끼고, 어떠한 감상을 남기길 바라는지
: 개발팀의 노고 덕분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독창적이고 임팩트 있는 작품을 완성시켰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시작으로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이러한 와중에 ‘나는 왜, 무엇을 소중히 하며 살아가는 것인가’를, 나 또한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오니가 우는 나라’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답을 선택하고 어떻게 느낄 것인 가? 이에 대해 한국 게이머 여러분의 많은 감상을 들을 수 있길 기대한다.
● 2003년 인터뷰 당시 ‘반숙영웅’이나 ‘패러사이트 이브’ 신작을 구상 중이냐는 질문에, “속편은 만들지 않는다. <같은 게임은 두 번 다시 만들지 않는 것>이 내 신조니까”라고 답했다. 이 신조는 여전한지, ‘오니가 우는 나라 2’도 기대할 수 없을지
: 꽤나 기가 센 발언이었구만(웃음). 개인적으로 가능한 여러 작품을 만들고 싶기에 그 신조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파이널 판타지’의 전통이기도 한데, 속편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우리가 고집하는 스타일이니까 말이다.
도쿄 RPG 팩토리 역시 지금껏 세 작품 모두 연작이 아니라 각자 독립된 타이틀로 제작해왔다. 물론 ‘오니가 우는 나라’가 흥행한다면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속편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새로운 도전이 담긴 작품이 될 것이다.
● ‘오니가 우는 나라’ 한국 출시는 올 8월이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이미 발매가 마무리된 작품이다. 아마도 지금은 신작에 매진 중이실 듯한데
: 방금 전 이야기의 흐름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웃음). 또다른 놀라움이 가득한 작품을 선보이고자 매진하는 중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주었으면 한다.
● 그간 숱한 명작을 개발해온 업계 베테랑으로서, 고전적인 감성을 되살리는데 주력하는 도쿄 RPG 팩토리의 방향성이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보나
: ‘고전적인 감성’이라고 하면 오해가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재미’에는 보편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령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하더라도 그 본질은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도쿄 RPG 팩토리는 그 이름대로 JRPG의 보편적인 부분을 소중히 여기며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해가는 것이 목표다.
● 긴 인터뷰 고맙다. 끝으로 ‘오니가 오는 나라’를 기다리는 한국 게이머들에게 인사를 전한다면
: 아, 그리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 ‘오니가 우는 나라’가 한국 게이머 여러분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모쪼록 윤회전생의 세계에서 카가치가 되어 귀화혼들과 함께 싸우며 살아남아 주길! 본작을 플레이해준 여러분의 감상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