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군이 최근 ‘출산의 고장’으로 뜨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증가율이 0.28명으로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합계출산율도 1.82명(전국평균 0.98)으로 전남 해남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자가 가임기간(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그동안 출산장려금과 임산부 지원 등 다양한 출산정책이 가시적인 효과를 낸 것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이다. 인구가 매년 1000명가량 감소하고 있어서다. 출산 증가율이 높은데, 왜 인구는 줄어들까. 이유는 간단하다. 출산장려금을 받은 후 취학연령이 되면 아이의 주소를 옮겨가는 이른바 ‘출산 먹튀’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로 광주광역시에 살던 A씨는 2013년 주소를 영광으로 옮겼다. 다음해 A씨는 친정인 영광에서 아이를 낳았다. A씨는 실제 친정에 살지 않고 주소만 옮겼는데도 출산장려금(신생아 양육비)으로 120만원을 받았다. 당시 영광군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이를 낳으면 최대 15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다.
4일 영광군에 따르면 2014년 영광군에서 한 해 출생한 아이는 모두 419명이며, 군은 이들의 출산장려금으로 9억2000만원을 지급했다. A씨는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다가오자 실제 살고 있는 광주로 주소를 옮겼다. A씨 아이와 같은 해에 출생신고한 419명 가운데 유치원 취학연령인 만4세에 이르자 64명(15%)이 영광군을 떠났다. 2013년에도 412명이 출생신고를 했지만 만 5세 때 69명(16%)이 전출을 했다. 이들 상당수는 ‘출산 먹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영광군의 분석이다. 영광군의 인구는 2016년 5만5618명, 2017년 5만4774명, 지난해 5만4127명으로 3년 만에 1491명이 줄었다.
그런데도 영광군은 올해 ‘출산 돈 보따리’를 더 화끈하게 풀었다. 첫째 아이를 낳아도 분할이지만 500만원을 지급한다. 둘째 아이는 1200만원, 셋째 아이는 1500만원, 넷째 아이는 2000만원을 각각 지원한다. 전국의 지자체가 앞다퉈 매년 출산장려금 액수를 높이고 있지만 뚝뚝 떨어지는 출산율 저하를 막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전국 243개 광역·기초자치단체 가운데 224곳이 출산장려금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일부 광역단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자체가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고 있는 셈이다.
◆지자체 따라 천차만별인 출산장려금
출산장려금의 액수는 지자체마다 천차만별이다. 올해 출산장려금(첫째 아이 기준)을 가장 많이 주는 지자체는 경북 봉화군(700만원)이다. 봉화군은 둘째 아이는 1000만원, 셋째 아이는 1600만원, 넷째 아이는 1900만원을 각각 지원한다. 출산장려금을 한 푼도 주지 않는 지자체와 비교하면 무려 1900배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첫째 아이만 낳아도 500만원 이상을 주는 지자체는 경북 울릉군(680만원)을 비롯해 경북 영덕군(530만원), 충북 금산군(500만원), 전남 광양시(500만원), 전남 영광군(500만원) 등 7곳이나 된다. 전국의 지자체가 올해 지원한 출산장려금은 3478억원으로 지난해보다 643억원이 증가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본격적으로 나선 때는 2005년이다. 당시 출산율이 1.08명까지 떨어지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3년간 투입한 예산은 268조9000억원이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출산장려금으로 현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합계출산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98명으로 1명 이하대로 떨어졌다. 지난해까지 30만명을 유지하던 연간 출생아 수도 올해는 20만명대로 추락할 전망이다.
이 같은 지자체의 현금지원이 출산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는 상반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금지원이 출산율을 높이는 반짝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출산장려금이 100만원 증가할 때 현재 배우자가 있는 유배우 여성 1000명당 기대 출산 수가 42∼60명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출산율 제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양미선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출산장려금과 출산율은 어떤 관계도 없는 것으로 나온다”며 “출산장려금이 아닌 출산 이후 아이를 키우는 데 비용을 지출하는 게 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출산 담당 공무원들은 출산장려금의 현금지급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조사됐다.
육아정책연구소는 최근 226개 기초지자체의 저출산 담당 공무원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공무원의 81.1%가 “출산과 결혼에 대한 현금지원은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공무원들은 현금지원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복수응답)로 ‘지자체 간 과도한 경쟁’(70.7%)을 꼽았다. 지자체 간 형평성 문제(66.9%), 지자체 재정 악화(52.6%)도 문제로 지적됐다.
◆결혼장려금·육아휴직 남성장려금… 눈에 띄는 출산정책
지자체의 가장 눈에 띄는 출산장려정책은 결혼장려금이다. 일부 지자체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전 단계로 결혼을 장려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일정한 조건을 갖춘 신혼부부에게 현금을 주는 제도다.
전국 20여개 지자체가 이 같은 결혼장려금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혼인신고일 기준 1년 정도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결혼장려금 액수가 가장 많은 지자체는 전북 장수군으로 3년에 걸쳐 1000만원을 준다. 영광군과 충북 옥천군, 전북 무주군, 전북 부안군은 500만원을 각각 주고 있으며, 충남 태안군은 25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영광군 관계자는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올해부터 출산정책을 출산 전 인프라 개선과 확충에 신경을 쓰고 있다”며 “청년 일자리 창출이 출산율 높이는 데 장기적으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분야에도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자체가 결혼장려에 발 벗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결혼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이철희 교수가 지난 16년간(2000∼2016년) 출산율의 변화 요인을 분석한 결과, 기혼 여성의 출산율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초혼 연령이 낮아지면 그만큼 출산율도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지자체는 미혼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경남도는 매년 4차례 지역에 주소나 직장을 두고 있는 30대 이하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만남의 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만 240명의 청춘 남녀가 만나 사랑을 싹틔워 가고 있다.
아이 출산 가능성이 높은 신혼부부의 주거 지원에 초점을 두고 있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강원 강릉시는 지난해 혼인신고한 부부를 대상으로 여성 배우자가 1974년 1월1일 이후 출생자일 경우 월 5만∼12만원씩 3년간 최대 432만원을 지원한다. 경남 창원시는 올해부터 신혼부부에게 전세자금 대출이자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무주택 신혼부부 가정의 주거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조례를 제정한 것이다. 신청대상은 무주택 신혼부부로 지원 내용은 1억원 이하 전세자금 대출 잔액의 1.2%로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한다. 전남 완도군은 신혼부부가 주택을 구입할 경우 대출 이자액을 주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단순히 출산장려금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출산 이후 양육 여건 조성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충남도는 지난해 12개월 미만 아동에게 24개월간 매월 10만원을 주는 ‘행복키움수당’(양육비)을 신설했다. 아기와 보호자가 지역에 주소를 두고 실제 거주할 경우 소득과 무관하게 양육비를 지급한다. ‘출산 먹튀’를 막고 지속적으로 인구를 유지하려는 정책이다.
전북 남원시는 24시간 분만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출산율을 높이고 있다. 2015년 남원의료원에 ‘지리산권 산모보건 의료센터’를 건립했다. 산부인과 전문의 2명 등 15명이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황토방 산후조리실과 찜질방 등을 갖추고 있다.
효과는 컸다. 2014년 40건에 불과하던 출산이 2016년 94건, 2017년 99건, 지난해 117건으로 껑충 뛰었다. 이순례 남원시보건소장은 “국비 지원이 완료됨에 따라 올해는 시비 등 8억8000만원 지원해 소아과 연계 진료와 필수진료 과목외 항목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진료가 가능토록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는 지난 4월부터 임산부를 위한 ‘100원 행복택시’를 운행한다. 임산부는 월 두 차례 100원만 내고 왕복으로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인천 남동구와 계양구는 올해 전국 최초로 육아휴직 남성에 장려금을 주고 있다. 남동구는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간, 계양구는 월 70만원씩 3개월간 각각 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출산∼보육 맞춤형 지원… 산모 출산연령 전국 최저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면서 국가에서도 쉽게 풀기 힘든 난제가 됐지만 세종특별자치시는 여느 지자체와 확연히 다르다.
4일 통계청 출생 통계에 따르면 세종시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57명으로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다. 이는 전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서울(0.76명)보다 2배나 높은 수준이다. 세종시 합계출산율은 2015년 1.82명을 기록한 이후 4년 연속 전국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세종시는 20, 30대 젊은 인구 유입이 꾸준한 데다 산모의 평균 출산연령도 32.94세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어서 올해도 합계출산율은 전국 최고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출산에서 육아, 보육으로 이어지는 영·유아들의 생애 주기와 임산부를 위한 맞춤형 지원책을 적극 펼쳐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종시는 2015년 전국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첫째 아이부터 ‘출산축하금’으로 12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산모가 가정에서 맘 편히 산후 조리를 하면서 신생아를 돌볼 수 있도록 전문 도우미를 2주간 파견해 도움을 준다. 이 사업은 2016년부터 시행 중인데, 올해는 10월 말까지 산모 3000여명 중 1100여명이 수혜 대상자가 됐다.
마을 단위 복합커뮤니티센터를 만들어 부모들이 외출이나 나들이 시 서로 영·유아를 돌봐주는 ‘공동육아나눔터’도 인기다. 세종시 출범 이듬해인 2013년 1개를 설치한 이후 현재 12개로 늘었는데, 2026년까지 25개 읍·동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 등 보육 시설을 대거 확충하는 것도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양육비 부담을 덜어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세종시 내 국공립 어린이집은 2017년까지만 해도 16개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부터 집중 확충에 나서 13개를 추가로 건립했다. 올해 들어서는 22개를 지어 51개로 늘었고, 향후 2년 내 이를 110개까지 늘릴 방침이다. 유치원도 현재 총 60개가 운영 중인데, 이 중 공립이 57개나 돼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
세종시는 20∼30대 젊은 인구가 많은 점을 고려해 출산·육아 관련 정보와 관련 기관, 지자체 지원책 등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휴대전화 앱 ‘행복맘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정 양육과 어린이집 운영 등을 지원하는 육아종합지원센터는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매년 1만5000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오정섭 세종시 여성가족과장은 “임신·출산 관련 사업과 함께 산모와 아이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결혼을 앞둔 청년들의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사업 발굴에도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광·전주·세종=한현묵·김동욱·임정재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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