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의 새로운 기판인 린드버그 기판으로 제작되어 2006년 7월부터 아케이드에 가동되기 시작한 [버쳐 파이터 5]. 터치 패널을 사용해서 편리하게 캐릭터 카드의 내용을 변경하고 꾸밀 수 있는 VF 터미널 시스템, 전용 모니터를 사용한 VF.NET, VF.TV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전작에서 호평을 받았던 시스템을 계승·발전시켰다는 것 외에도 [버쳐 파이터 4]가 나온지 약 5년 만에 나온 정식 후속작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팬들의 기대도가 한껏 높아지기엔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전용 모니터나 기타 설비의 추가는 한국 아케이드 시장에서 [버쳐 파이터 5]를 찾아볼 수 없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기 때문에 한국 게이머들은 [버쳐 파이터 5]를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그저 가정용으로의 이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케이드 가동 직후 곧이어 PS3로의 이식이 발표되었고, 큰 탈 없이 지난 2월 8일 발매되기에 이릅니다. PS2용 [버쳐 파이터 4 에볼루션]의 경우 이식도가 상당히 높은데다 가정용 모드 또한 충실한 편이었지만 [버쳐 파이터 5]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개발 환경하에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PS3라는 신생 하드로 이식을 하는 케이스였기 때문에 과연 얼마나 아케이드 버전의 그래픽을 잘 재현하고 게임 감각을 살려줄지 걱정 섞인 기대를 받아왔습니다.
아케이드에서는 언제나 최고의 그래픽을 자랑하던 [버쳐 파이터] 시리즈였지만 가정용 머신으로 이식될 때마다 이식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버쳐 파이터] 시리즈였습니다.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아케이드용 기판의 성능이 가정용 콘솔보다 월등하게 앞서 나갔기 때문에 그만큼 가정용으로의 이식은 힘들었으며, 특히나 [버쳐 파이터] 시리즈는 희한하게 꼭 한두 군데씩 이상하게 이식을 했기 때문에 시리즈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아쉬움을 많이 안겨주었습니다.
성능 차이로 인한 문제는 그렇다 쳐도 성능과 전혀 무관한, 조금만 신경을 쓰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왕왕 발생했기에 성의없는 이식의 대명사로 불리는 경우까지 발생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PS3라는 생소한 개발 환경과 이전 시리즈의 이식도를 생각해보면 그만큼 이식도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능의 차를 잘 극복하고 이식한 SS용 [버쳐 파이터 2]. |
VS 모드도 없는 DC용 [버쳐 파이터 3tb]. |
하지만 이런 우려와는 달리 일단 겉보기 등급만큼은 아케이드 버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이식을 잘한 편입니다. 캐릭터의 얼굴 묘사와 배경 묘사, 갖은 특수 효과들은 확실히 이전 시리즈를 이식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높은 이식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720p까지 지원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080p 모드도 지원을 하는데다 안정적으로 60 프레임을 유지해주기 때문에 눈으로 보기에도 만족스럽고 플레이하기에도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아케이드용 기판을 가져다 동시에 틀어놓고 기를 쓰며 비교를 하지 않은 한 아케이드 버전과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아케이드 버전의 모습을 잘 재현했습니다.
문제는 로딩 속도인데, 하드 인스톨 기능을 사용하고도 대전 한 번에 걸리는 로딩 시간이 7~8초에 달합니다. 하드 인스톨 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면 20초에 가까운 로딩 속도를 자랑하는데, 아케이드 버전의 5초 로딩에 비하면 그리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10초에 가까운 로딩 속도는 오래 대전을 하다 보면 꽤 신경 쓰이는 수준입니다.
머리카락의 표현이나 캐릭터의 표정이 상당히 자연스러운 편. |
배경 묘사도 사실적이다. |
사운드 부분은 아케이드 버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돌비 디지털 5.1ch을 지원해주며(K+G 등의 기술을 쓰면 궤적을 따라 효과음이 이동하는 게 확실하게 느껴진다) 일반 대전 격투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실황 중계 또한 대전의 흥을 돋우는데 한 몫 합니다. 본체 문자 설정을 한글이나 일본어로 설정하지 않고 영어로 한다면 실황 중계까지 영어 음성으로 나옵니다. 다만 기분 탓인지 실황 중계를 켜놓고 플레이하다 보면 가끔 프레임이 느려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듯해 조금 거슬리기도 합니다(볼륨을 조정하거나 아예 실황 중계를 끌 수 있기 때문에 취향에 맞게 조절 가능).
[버쳐 파이터 5]는 아케이드 버전에서부터 VF.TV 등의 시스템을 내세우며 단지 플레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준 높은 플레이어들의 경기를 관전하는 것에도 중점을 둔 타이틀이기 때문에 스포츠 게임에서나 볼 법한 실황 중계를 도입했는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단 [버쳐 파이터] 시리즈의 후속작뿐만 아니라 다른 타이틀에도 적극적으로 도입·발전시켜나가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실황 중계의 볼륨을 조절하거나 아예 끌 수도 있다. |
시스템 언어를 바꾸면 텍스트뿐만 아니라 실황 중계도 영어로 출력. |
신캐릭터가 두 명씩 꼬박꼬박 늘어나던 시리즈 전통에 맞게 이번작에도 두 명의 신 캐릭터가 추가되어서 총 플레이 캐릭터는 17명이 되었습니다. 원숭이 권법을 사용하는 캐릭터인 아이린(중국)과 루챠 리브레를 구사하는 엘 블레이즈(멕시코)가 [버쳐 파이터 5]의 신캐릭터인데, 어째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중국인은 늘어나서 5명이나 되는 것에 반해 한국인은 추가될 기미가 안 보이는 게 개인적인 아쉬움입니다(챠이니즈 파이터도 아니고…). 기존 캐릭터들도 세월의 힘+기술력의 발달로 인해 이전 시리즈에 비해 훨씬 사실적이고 세련된 모습으로 변했는데, 특히 바넷사의 경우는 탄탄한 복근과 우람한 허벅지의 성질 사나워 보이던 전작의 모델링과는 전혀 다른 새초롬한 모습으로 등장해 위화감이 들 정도입니다.
후권을 사용하는 아이린. |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 너무나 자명한 엘 블레이즈. |
엄청난 복근과 허벅지를 자랑했던 사나운 표정의 바넷사가 |
이렇게 근육을 처분하고 새초롬♡하게 변해버렸습니다. |
시스템적으로는 전작의 횡이동 시스템인 디펜시브 무브와 더불어 진화된 횡이동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오펜시브 무브를 도입한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변경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자잘한 판정 변화나 기술 추가 등이 아닌 시스템의 대폭적인 변화나 추가는 더 이상은 바라는 것이 무리일 듯싶습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3D 격투 게임뿐만 아니라 2D 격투 게임도 마찬가지여서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나올만한 것은 대부분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버쳐 파이터 5]는 [버쳐 파이터 4]와 그 파생작을 통해 이것이 시리즈의 안착점이라고 생각하고 대전 시스템을 유지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버쳐 파이터 3]보다는 오히려 [버쳐 파이터 2]에 가까운 감각으로 돌아온 [버쳐 파이터 4]는 팬들의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2002년에 이식되었던 PS2용 [버쳐 파이터 4]가 50만 장을 달성하는 등 아케이드 버전과 가정용 버전 모두 크게 인기몰이를 해서 [버쳐 파이터 4 에볼루션], [버쳐 파이터 4 파이널 튠드]까지 계속해서 마이너 체인지 버전을 내놓게 됩니다.
[버쳐 파이터 5]는 어떻게 보면 이런 [버쳐 파이터 4]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타이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테이지의 구성도 비슷하게 갔으며 전체적인 플레이 감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작이 세 가지 버전을 내놓으면서 유저들에게 익숙해졌으며, 이제는 새로운 모습을 바라는 시점에서 전작과 비슷한 노선을 선택한 것은 유저 입장에서는 지겹다는 느낌이 들만 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전작과 비슷한 감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
배경 구성도 전작과 대동소이. |
3D 게임이라는 장점을 활용한 최고의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즈 모드는 이번작에도 건재합니다. 제작사에서 디자인한 캐릭터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름(링네임)을 부여하고 짤막한 문장으로 자기 PR을 채울 수 있으며 다양하게 준비된 각종 복장에서부터 헤어스타일, 간단한 소도구, 액세서리 등을 부착해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커스터마이즈 모드 최고의 매력이자 게임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고취시키는 데 한 몫 단단히 해줍니다. 처음부터 모든 복장과 아이템 등을 사용할 수 없고 부단한 플레이를 통해 아이템이나 엠블럼 등을 수집·구입해야 하는데 차후 PS 스토어를 통해 새로운 추가 아이템 등을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창출해낼 수 있는 커스터마이즈. |
이름과 급수, 승률, PR 등이 따로 저장된다. |
다양한 복장과 액세서리 등이 준비되어 있다. |
최종적으로는 처음 디자인과 완전히 달라진다. |
Xbox360을 비롯해서 PS3, Wii 모두 네트워크 기능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네트워크 대전 모드를 집어넣는 것도 대전 격투 게임으로서의 강력한 세일즈 포인트라 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버쳐 파이터 5]는 네트워크 대전 모드를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이식 자체를 굉장히 빨리 한 편이기 때문에 아케이드에서의 수익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아케이드에서 [버쳐 파이터 5]를 접할 수 없는 한국 게이머에게 있어 네트워크 대전 모드의 부재는 뼈아픈 사실일 것입니다. 프레임 계산을 철저히 해야 하는 게임인데다 게임성 자체가 뒤죽박죽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 대전 모드가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솔직히 모든 게이머가 1프레임 계산해가며 대전하는 것도 아닌데다 '있지만 하지 않는다'와 '없어서 할 수 없다'의 차이는 생각보다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집어넣은 모드가 PS2용 [버쳐 파이터 4 에볼루션]을 통해 익숙해진 퀘스트 모드입니다. 한마디로 각지의 아케이드 센터를 돌아다니면서 해당 지역에 있는 수많은 플레이어와 대전을 벌이는 모드라 할 수 있는데, 상대 캐릭터들은 모두 커스터마이즈를 통해 개성을 한껏 살린 복장으로 등장하며 아케이드 기분이 나게 한 번 진 상대가 계속해서 도전을 한다거나 가끔 공식 대회를 비롯해서 다양한 명목으로 아케이드 센터마다 따로 소규모 대회가 열리는 등 단조로운 게임 플레이를 피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놓았습니다. 아케이드에 따라 등장하는 플레이어의 실력이 달라지며 그 수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단순히 아케이드 모드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돈이나 아이템, 엠블럼 등을 모으기 위해서는 필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반드시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전 모드와 더불어 가장 많이 선택하게 될 모드입니다. 한번 싸운 캐릭터는 마치 RPG의 몬스터 도감과 마찬가지로 리스트가 기록되며, 달성률까지 존재하기 때문에 퍼센티지 채우기 좋아하는 유저라면 굉장히 오래 플레이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다양한 아케이드 센터를 돌아다니며 싸우는 모드. |
한 번 대전한 상대는 리스트로 남는다. |
돈이나 아이템, 엠블럼 등을 내걸고 많은 대회가 열린다. |
커스텀을 위해서라도 돈은 착실하게 모으자. |
그래픽적인 완성도도 높고 퀘스트 모드도 충실하게 꾸며져 있어서 이식용 타이틀로서의 이식도와 가정용 타이틀로서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고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만족그럽게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직접적인 완성도/이식도를 제외한 부분이 문제인데, 묘하게 인터페이스나 유저 편의성이 낮은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습니다. 하드 인스톨을 하고 나서도 매번 게임을 할 때마다 이 기능을 쓸 것인지 물어보며, 스타트/X/O 버튼을 모두 6번 눌러야 겨우 메인 메뉴 화면에 들어가게 만든 것은 상식적인 선에서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입니다.
다른 게임들이 한번 인스톨하면 다음 플레이부터는 바로 시작을 하는 것과는 달리 [버쳐 파이터 5]는 매번 몇 번씩 무의미하게 버튼을 눌러야 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긴 초기 부팅 시간을 더욱 짜증 나게 만들어줍니다. 세가란 회사가 게임을 하루 이틀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좀 더 편리하고 유저 친화적인 인터페이스에도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성능 차이로 인한 문제야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런 사소한 문제 하나하나가 그만큼 유저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하며, 나아가서는 전체적인 이미지마저 좋지 않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커맨드 리스트에서 시범을 볼 수 있는 기술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데다 부팅할 때마다 인스톨 여부를 매번 물어보는 것은 게임 전체를 봐서는 극히 작은 부분이겠지만 매일 플레이하는 유저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고 짜증스러운 부분입니다.
기동하고 나서 버튼을 6번 눌러야 겨우 메인 메뉴가 나온다. |
모든 기술의 시범 동작을 볼 수 없는 건 또 무슨 이유인지. |
[버쳐 파이터 1]은 이전까지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3D 대전 격투 게임의 장을 열었던 기념비적인 타이틀이었습니다. [버쳐 파이터 2]는 실험작의 성격이 강했던 전작에서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 기준으로는) 무시무시한 수준의 그래픽적 완성도와 더불어 57.5프레임(SS 버전은 60프레임)을 구현하는 데 성공, 시리즈의 토대를 구축하고 본격적인 3D 대전 격투 게임의 초안을 완성해낸 타이틀이었습니다.
[버쳐 파이터 3] 역시 화려한 그래픽을 내세움과 동시에 이스케이프 버튼을 이용한 횡이동과 배경의 고저차 개념을 도입해서 기존 시리즈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진화를 모색한 타이틀이었습니다. [버쳐 파이터 4]는 캐릭터 카드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키우고 커스터마이즈하는 참신한 시스템으로 호평을 받았던 타이틀이었습니다.
하지만 [버쳐 파이터 5]는 그래픽적인 부분이나 게임 시스템적인 부분, 캐릭터 육성 부분에 있어서 전작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진 느낌입니다. 각 부분이 나무랄 데 없이 수준급 이상의 모습을 자랑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전 작품들에 비해 비주얼적인 측면이나 시스템적인 측면이나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한 수준에 머문 모습이라서 그다지 신선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후속작이 나올 때마다 그래픽적인 진화는 물론 게임 시스템에 있어서도 참신한 요소를 집어넣었다면 [버쳐 파이터 5]는 [버쳐 파이터 4]의 확장판 개념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물론 더 이상 새로운 무언가를 창출해낸다는 것 자체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3D 대전 격투 게임을 10년이 훨씬 넘도록 이끌어왔던 시리즈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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