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략사 리절 외전
한 송이 눈발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는 밤이 있다
깊은 밤이면 그의 노래를 들으며 시를 썼다
시를 쓰는 동안에도 밤새 이절에는 눈이 내리고
누군가의 페치카에서는 여전히 불꽃들이 타오르고 있
었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거세게 흔들기도 했다
인터뷰어는 비밀경찰처럼 집요하게 어두운 삶에 대하여
예술의 반동적 확장성에 대하여 추궁했다
창밖으로는 밤새도록 낭만적으로 눈이 내리고
낭만적으로 내린 눈은 금세 녹아 거리를 적시고 있었다
그의 말과 한숨들은 조용히 허공으로 번지며 시가 되고
있었다
시가 되지 못한 말들은 슬픈 표정으로 흩어졌다, 가
다시 되돌아와 누군가의 물음표 같은 귓바퀴에
고요히 내려앉고 있었다
어둠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어둠을 지우며 내리는 저 눈송이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
또 하나는 밤의 옆구리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꽃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스스로 한 점의 불꽃이 되어 열렬하게 타오르는 것
자유로운 의지여 어디에 있는가
대체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가
잔잔한 여명을 만났는가, 대답해 다오
그대와 함께하면 행복하고 그대가 없으면 슬프다
누군가 밤새 묻고 있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밤새 이절에는 눈이 내리고
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겨울까지 내리고 있었다
인터뷰를 끝낸 그를 위로하며
우리는 캄차트카에서 술을 마셨다
이절의 캄차트카는 누군가의 영혼이
불꽃이 되어 타오르던 거대한 생의 보일러
봄에도 보일러가 돌아가고
보일러는 겨울까지 돌아가고 있었다
봄에 시작된 생이 겨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봄에서 가을까지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읍내로 가고 있었다
겨울에는 가지 않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눈송이를 홀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송이 눈발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에 이절의 밤
이 있다
이절은, 세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이 세계의 내면
바람이 불 때마다 펄럭이는 한 장의 아름다운 계절
밤이면 밤마다 깊은 밤 깊은 곳으로
한 송이 눈발이 세상의 모든 눈송이를 데불고
환한 등불처럼 진군하나니
밤마다 눈이 내려 이절은 밤마다 축제
누군가는 밤새 ‘이절 국제 영화제’를 열고
누군가는 밤새 ‘이절 국제 음악제’를 개최하고
누군가는 밤새 ‘이절 국제 시 축제’를 벌이나니
세상에 내리는 눈은 언제나 첫눈
이절에서의 예술의 반동적 확장의 밤마다
폭설은 언제나 첫눈처럼 쏟아지고
밤새 허공을 떠돌다 지상으로 내려와 쌓이는 시
누군가 첫눈의 언어를 찾아 말을 타고 떠났다가
기나긴 밤의 대평원을 지나 이제사 이곳에 당도했으니
여기는 이절,
불꽃과 눈송이로 이루어진 단 한 편의 시
라흐 뒤 프루콩 드 네주
말하자면 눈송이의 예술
박정대, 민음의 시 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