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농부의 노래
어리석음이 얼마나 달을 둥글게 하고 밝게 하는지 안다.
서편에서 가서 지는 달이 깨끗하다. 누구를 만나 실컷 울고 사
랑을 얻어온 얼굴이다.
나의 아침 길은 고요하다. 길의 고요 속으로 걸어가는 곳
에 하지감자꽃이 먼저 들어와 꽃을 피우고 서 있다. 새하얀
꽃이다. 이이가 울음을 받아준 그이인가.
호반새가 돌아왔다. 작년에 울던 곳에서 운다. 가까이 가
서 보았다. 내가 보는데도 울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운다. 짙은 주홍색이다.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라고 또
말할 만하다. 의외로 부리가 뭉툭하게 길고 끝이 갑자기 두
렵게 뾰족해진다. 밤나무숲으로 날아갔다. 가서 또 운다. 몸
과 부리에 비해 꼬리가 짧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질 것 같
다. 지금 그쪽에서 우는 소리를 듣고 서 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차이콥스키의 <농부의 노래>란 음악
을 들었다. ‘기쁜 농부’라는 해설자의 말이 나를 기분좋게
하였다. 아버지가 생각보다 잘 자라고 있는 강 건너 벼를 보
러 가실 때 아침 이슬들이 쏟아지는 저 음악처럼 발걸음이
기쁠 때도 있었으리라.
모두가 첫날처럼
김용택, 문학동네시인선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