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를 따서 먹다
아침에 살구를 땄다
살구나무가 우리집으로 온 지 사 년쯤 되었다
집에 온 이듬해 살구가 세 개 열려서
놀란 기억이 난다 살구가 익어가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살구가 노랗게 다 익어 식구들과 같이 따서 나누어 먹었다
작년에는 일곱 개가 열려 식구들끼리 살구 따는 행사를
했다
올해는 마흔 개 정도 열렸다
작은 체구에 많은 살구를 단 살구나무가 걱정되어 솎아
줄까도
생각했지만, 저가 알아서 필요 이상의 열매는 떨어뜨리
겠지 했는데
몇 개 버리지 않고 다 달고 익어갔다
익을수록 가지가 조금씩 휘어진다
천천히 휘어지는 무게의 힘이 압박하는 고난의 진행을 따
르는 순리를 보았다
아름다운 이행, 진척, 진보다
세상에는 마음을 따르는 아름다운 아픔도 있다
시간 날 때마다 창문 밖을 내다보고
저것 봐! 저것 봐!
가지가 더 깊이 휘어졌네!
사진을 찍어 아들네에게도 보냈다
샛노랗게 익은 살구들이 직사광선에 오래 그을린 몽고 아
이들 볼처럼 빨갛다
빨간 볼에 작은 벌레 똥과 주근깨가 또렷하게 박혀 있다
살구를 딸 때 손가락 끝으로 살구를 쓸어보았다
작은 돌기들이
손가락 끝에 오돌토돌 걸린다
양푼이 그득하였다
신맛이 달다
살구가 담긴 그릇을 부엌 탁자 위에 놓았다
잘된 정물이다
지나다니며 하나씩 집어먹는다
점점 줄어든다
신 것을 질색하는 아내도
몇 개 집어먹으며 아으으 인상을 쓴다
약간 말랑한 살구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면
살구가 은근히 두 쪽으로 갈라지며
단단한 살구씨가 쏙 나와 톡 떨어진다
완성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살구는 즙이 많지 않다
모두가 첫날처럼
김용택, 문학동네시인선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