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한민국 서울.
한남동 국방부 장관 공관.
“... 민하준 대장, 이번에 퇴역계 신청한 거 들었습니다.”
공관 앞 마당을 천천히 거닐다가 한기호 국방부 장관이 먼저 말 문을 열었다.
한기호 장관의 말에 민하준 대장은 케케묵은 미련을 단 숨에 흘러내리듯 콧바람을 길게 내쉬고 말하였다.
“40년 넘게 군복무 했으면 많이 한 거지 않았습니까? 늙을 만큼 늙었으니, 이젠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장관님처럼요.”
“늙었다라...”
“정작 둘 다 슈퍼솔져라서 겉 모습은 전혀 늙지 않았는데 말이죠.”
“하여튼 그러면 전역하고 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정계에 진출이라도 할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방위사업청 청장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어디 학군단이나 군사학과 교수 제의라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혼자 조용히 혼자 글이나 쓰고 살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또 다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제는 다 떨어져 서리가 낀 낙엽들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산보를 걷다가, 다시 입을 연 것은 마찬가지로 한기호 국방부 장관이었다.
“... 민하준 대장.”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자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합 합동 작전 계통의 최고의 요직 아니겠습니까?”
“비록 전쟁이 끝난 후 그 위상이 다른 보직들에 비해서 많이 약해졌다곤 하나, 여전히 미군과 함께 80만 전군을 진두 지휘하는 자리라는 점에선 요직임이 틀림없지요.”
“그런데 그건 왜...?”
“... 대통령 각하께서 직접 요청하셨습니다.”
“민하준 대장?”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직을 맡아주십시오.”
한미연합사부사령관. 대한민국 국군의 대장 보직들 중 연합 작전 계통의 최고의 요직으로 불리는 자리.
제2차 한국전쟁 이후 함경남도와 평안남도 지역부터 중국 대륙의 한국 NATO 관할 구역을 담당하게 된 지상작전사령부, 평양광역시와 수도 서울을 포함한 38도선 이남 지역 전체를 관할하게 된 제2작전사령부에 비하면 그 위상이 조금 떨어진 감이 없잖아 있지만, 여전히 한반도에 주둔중인 미군과 함께 신생 러시아 연방의 견제 및 동아시아의 국제 안보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위상만 좀 떨어졌을 뿐 여전히 최고의 요직임은 틀림 없었다.
옛날에는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이 가지고 있던 한미연합지상군구성군사령관 보직이 지상작전사령관에게 넘어가기 전까지 육군참모총장을 다수 배출했던 대장급 1차 보직이기도 하였고, 연합지상군사령관 보직이 지작사령관에게 넘어간 이후에도 연합 작전 계통 엘리트라는 점에서 육군참모총장 뿐만 아니라 합동참모의장도 여럿 배출하는 자리였다. 다만 연합 작전 계통이라는 점 때문에 보직 창설 이후 계속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의 자리로 안배되었었다.
통상 작전계통의 초 엘리트들이라고 불리우는 육사 출신들을 뛰어넘는 비육사 출신 대장들은 제2작전사령관, 지상작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으로 바로 넘어갔기에, 비육사 출신 대장들이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자리를 맡을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 만한 능력이 되는 비육사 출신 대장이라면, 굳이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을 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민하준 대장 또한 지금으로서 굳이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을 맡을 이유는 없었다.
“원래는 당신을 육군참모총장 직을 맡게 하려고 했었습니다만 아시잖습니까. 지금 국회 상황이 저런 거. 야당 정치인들은 무조건 육군참모총장 만큼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안배되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어요.”
“합동참모의장도 공군참모총장이 임명되었고, 나머지 육군 대장급 보직들도 지금 전원이 공석이거나 비육사 출신 대장으로 구성된 가운데, 육군참모총장마저 비육사 출신 대장을 넣게 되면 반발에 따른 진통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불행이도 지금의 대통령 각하께선 아직 그 진통을 견딜만한 상황이 안 되십니다.”
“그래서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을 저에게 맡겨달라고 하시는 겁니까?”
“솔직하게 말하죠...”
“대통령 각하 께선 민하준 대장의 인맥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계십니다.”
“... 허어...”
“예상한 부분이지만, 어디 한 번 들어보죠.”
한기호 국방부 장관의 말에 민하준 대장이 예상했다는 듯 눈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민하준 장군의 친구 분이신 유진 벨리코프 미 해군 대장말입니다. 이번에 인태사령관에서 합참의장으로 영전 했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NATO군 군사위원회 위원장 겸 최고사령관으로까지 임명 되었다고 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 군을 포함하여 사실상 전 세계 2,500만 대군을 지휘하게 되는 거잖습니까.”
“... 민 장군.”
“나 또한 당신한테 이렇게 말하는 게 불편합니다.”
“사람의 인맥을 빌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게 얼마나 드럽고 치사한 일인지는, 민 장군 뿐만 아니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합니까? 은하수 조직은 아직도 암암리에 사방팔방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다니고 있고, 정신 못차리는 야당 의원들은 아직도 대통령을 쏘아붙히기 바쁜데.”
“각하께서 정계는커녕 군부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신 상황에서, 지금 대통령 각하의 힘이 되어주실 수 있는 사람은 민 장군 당신 밖에 없습니다.”
“민 장군, 각하 뿐만 아니라...”
“... 후배로서, 이 선배의 부탁을 좀 들어주십시오.”
한기호 국방부 장관은 이렇게 말하는 자신도 미안한지, 그의 앞에서 고개를 숙여보였다.
육군 3사관학교 출신의 합동참모의장 출신으로서, 똑같이 1세대 슈퍼솔져인데다가 마찬가지로 똑같이 제2차 한국전쟁에서 민하준 대장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한기호 장관은, 퇴역 후 차경재 대통령의 선대위 국방정책 위원장을 맡아 국방부 장관이 되었지만 그 또한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육군사관학교 출신 사조직인 은하수 때문이었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푸라기를, 민하준 대장의 인맥을 빌어 이용하고 정치적인 안배로 사용하겠다고 대놓고 당사자 앞에서 말한다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치사해도 이렇게라도 해야지만 겨우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 판인데.
하지만...
“찾아보면 저보다 훌륭한 장군들이 많을 겁니다. 한민연합사부사령관 자리는 그런 분들이 맡는게 맞습니다.”
“저에게는 아닌 거 같습니다.”
“민 장군...!”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정치고 나발이고, 민하준 본인에겐 전혀 관심 없을 이야기였다.
후배로선 미안하지만, 더 이상 군에 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민하준 대장은 한기호 국방부 장관의 애타는 부름에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공관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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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늘 말하지만, 진짜 저는 그 어떠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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