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여기 도시락 빼먹으셨어요-"
"아 미안해 하치코-"
계단에서 헐레벌떡 내려와 대충 매어진 넥타이를 손으로 꼭 잡는 주인을 향해 하치코의 손에는 도시락 통이 들어져 있었다. 메이드 복장을 입은 갈색 꼬리가 살랑거리는 하치코를 쓰다듬어 주니 꼬리의 색과 비슷한 강아지 귀 또 한 쫑긋 하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항상 수고해 주네. 나 때문에 괜히 고생하는 게 아닌가 싶고."
"제 할 일을 한 거뿐인데요."
하치코는 주인의 넥타이가 엉성하게 매어진 것을 확인하고 제대로 매어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주인님의 행복은 곧 저의 행복이기도 해요. 주인님의 미소는 저를 기분 좋게 해주는데요."
"하여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하치코를 데려온 날을. 그녀가 처음 오자마자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바로 저녁식사로 미트 파이를 만들어주었다. 그때의 미트파이는 잊을수 없을정도로 맛있었는데 문제는 그 뒤였다. 아침에도 미트파이, 점심에도 미트파이, 저녁에도 미트파이...
"설마 오늘도 미트파이 넣은 것이 아니지? 맛있긴 한데 계속 똑같은 메뉴는 좀 그렇잖니."
"에이 주인님도 참. 주인님의 훈련 덕분에 다른 요리도 가능하잖아요."
"아니면 민초라도 넣었다던가. 넌 그러고도 남아."
"아니라니까요!"
자신을 놀리는 주인을 향해 요란하게 꼬리를 흔들면서 얼굴 찡그리는 하치코가 귀여워 싱긋 웃는 남자였다.
하치코에게 가장 먼저 훈련 시켜야 했던 것은 다른 것도 아닌 요리였다. 메이드 전용 바이오 로이드에게 요리를 가리키는 것은 좀 웃긴 일이긴 한데 얜 그냥 잘하는 음식은 미트 파이 하나밖에 없어서 아예 처음부터(라면 끓이는 것에부터) 가리켜야 했다.
집을 불태워 먹거나 음식에 민트 초코를 넣는 여러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고가 있었지만 남자의 노력을 더불어서 하치코가 자신의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한 열정 덕분에 배우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런 너무 시간을 허비했네"
남자는 손 목시계를 바라본 뒤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하치코 볼에 입을 맞추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럼 나 나갔다 올게. 무슨 일이 있으면 셀폰으로 전화하고."
"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의 주인님. 주인님이 돌아오실때까지 기다릴테니까."
승용차를 타면서 직장으로 향하는 주인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하치코. 누가 보면 어느 누구도 심지어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부부로 보였었다.
바이오 로이드가 조금이라도 의도되지 않은 혹은 이상 행동을 보이면 곧바로 처분하고 다른 거로 바꾸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하치코의 주인은 오히려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고 일상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가리켰다.
스마트폰 쓰는 법, 드라마 시청하는 법, 비디오 게임하는 법, 쇼핑하는 법 등...
하치코에게 필요한것과 인간들이 즐기는 문화와 재미들을 그대로 가리켜주어서 같이 즐기고 놀기도 한것이다.
"그럼 난 주인님이 떠난 사이 집 정리해야지."
콧노래 부르면서 오늘의 하루 일과를 채우기 위해 뒤돌아선 하치코였다. 주인님이 기뻐하는 얼굴을 상상하며.
"........ 어라?"
아까까지만 해도 정돈이 되어있던 주방은 어지럽혀져 있었다. 여기저기 도자기 그릇들이 상상 조각 나 있었고, 태양에 의해 반짝이던 창문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깨어져 있었다.
예쁘고 귀여웠던 벽지는 곰팡이와 먼지로 가득 찬 거뿐만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부신듯 벽 내부까지 보일 정도로 헐어져 있었고.
어떻게 된 거지?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바퀴벌레들이 지나가는 바닥을 걸어가면서 뒤뜰을 바라보았다. 푸른 잔디가 자라고 있던 뒤뜰은 마치 오랫동안 관리를 안 했다는 듯 온갖 잡초와 쓰레기들이 쌓여져 있었고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도망 가려다가 실패한 듯 땅에 나뒹굴고 있던 유골들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다.
쾌창한 푸른색의 하늘은 음울한 분위기의 노을빛으로 물들여졌고 이웃집들이 타버린 듯 검게 그을리고 폐집 마냥 부숴져 있는것은 덤.
우욱-하면서 먹은 것을 게워내는 하치코. 게워낸 것을 받아낸 손에는 하얗던 피부 대신 마치 무언가에 타버린 듯... 정확히는 녹아버린 듯 여기저기 벗겨져 뼈까지 보일 정도였다.
"설마...아니야..."
뒷걸음치다가 쨍강-하면서 유리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옆을 돌아보는 하치코. 주인님과 함께 밤마다 즐겁게 드라마를 틀어주었던 TV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는데... 그곳에 있던 것은 하치코 자신이 아니라...
마치 종양을 보는 듯 징그럽게 부풀어 오른 볼살, 이마의 피부는 벗겨져 하얀 뼈가 보였었고, 한쪽 눈 역시 주인님에게서 마치 보석과 같다고 칭찬했던 눈빛 동안 빛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주.. 주인님.. 주인님..."
분명히 주인님에게 아침 식사를 대접하고 주인님이 배웅하는 모습까지 본 하치코 였다. 태양빛이 떠오른 푸른 하늘의 맑고 화창한 날씨에 주민들도 잔디에 혹은 꽃에 물을 주는 모습 또한 보였었고.
"에헤헤..그..그래 이건..."
양손으로 흉측해진 얼굴을 가리려는 듯 감싸는 하치코. 그래 이건 악몽이야... 악몽...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갑자기 이렇게 세상이 변할 리가 없잖아.
무슨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잖ㅇ...
"하치코!"
낯익고 가장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하치코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곧 이어서 따뜻한 손길이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지길래 뒤를 돌아보니 안경을 쓴 검은색 머리카락의 정장을 입은 자신의 주인님이 뒤에 서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모습으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 아무리 불러도 안 와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했ㅈ-"
"주인님!"
그대로 와락 안기는 하치코. 꼬리를 흔들면서 자신을 안기는 하치코의 행동에 놀라긴 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토닥였다.
"어딜 갔다 오신 거예요! 저 무서웠어요! 집이 부서지고 주인님도 안 보이고...!"
"울지 마 울지 마. 나 여기 있으니까."
주인님의 따뜻한 온기는 아까 봤던 광경의 충격을 잊어버리고도 남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부서진 집은 아까와 같이 추억이 가득 찬 모습으로 돼 돌아왔고
그래 아까는 악몽이었어. 그것도 끔찍한 악몽. 자신과 주인님을 떼어내게 하려는 고약한 장난에 불과했고.
"나 여기있으니까. 울지말고 뚝-착하지?"
"아아 나의 주인님."
주인의 가슴이 파묻힌 체 흐느끼는 하치코. 이젠 괜찮다. 다 상관 없다. 주인님이 돌아오셨으니까. 사랑스러운 자신의 주인이.
"언제나 쭉...주인님이 돌아오실때까지...몇세기가 흘러도."
주변에는 마치 무언가에 휩쓸리고 간 듯 멀쩡한 집조차도 없었고 생명체 또한 보이지 않았었다. 한 명의 바이오 로이드만 빼고.노을이 진 하늘 아래에 부서진 집 잔해 위에는 삼안 그룹의 바이오 로이드 하치코가 서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와 얘기하는 듯 혼자서 중얼거리는 그녀의 양손에는 머리 유골이 들어져 있었다.
찢어질 대로 찢어진 메이드 복장을 입은 얼굴에 온갖 종양이 불어 오르고, 피부도 벗겨져 이젠 더 이상 사람이라 불릴 수 없을 정도의 외모를 지닌 하치코였던 물체가.
"저는 언제까지나 주인님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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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에 관한것을 뭘로 쓸까 고민하다가 이런 내용을 쓰네요 허헛...-ㅂ-...
원래는 개그물로 쓰려고 했는데 로맨티컬리 아포칼립스및 이름 까먹었지만 단둘이서 사는 노부부가 핵 전쟁이 일어난 뒤 서서히 변해가는 집과 자신들을 표현한 유럽 만화를 보고 생각 나서 써본겁니다.
살면서 이런 내용을 써보는것은 처음이네요. 마음에 드셨으면 하고요 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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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티컬리 아포칼립틱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그러고보니 핵 맞고 나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과거로 도피하는 작품을 저도 본거같기도... 실제로 전쟁, 폭격을 겪은 사람들 중 일부는 PTSD나 방어기제가 씨게 와서 현실도피를 한다고도 하니, 전쟁 아래 개개인들의 삶은 비참한 법이군요. 누가 선악이고 누가 그 비참한 꼴을 일으켰으며 누구에게 전쟁책임이 있느냐도 고민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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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꼬 애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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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니스...그 만화에서도 어느정도 따왔다면 따왔다고 볼수 있겠네요. 멘탈 제대로 나간 이그니스... 지난번에 본 글들중 상품화 문제로 방사능 지역 정찰용 바이오로이드는 만들지 않았다 라는 언급으로 봤을때 결국 바이오 로이드들도 방사능에 완전히 무사하지 못할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죠. 설마 버텼다 하더라도 피부에 방사능이 피부에 묻을테니 말이죠. | 21.11.22 02: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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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티컬리 아포칼립틱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그러고보니 핵 맞고 나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과거로 도피하는 작품을 저도 본거같기도... 실제로 전쟁, 폭격을 겪은 사람들 중 일부는 PTSD나 방어기제가 씨게 와서 현실도피를 한다고도 하니, 전쟁 아래 개개인들의 삶은 비참한 법이군요. 누가 선악이고 누가 그 비참한 꼴을 일으켰으며 누구에게 전쟁책임이 있느냐도 고민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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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티컬리 아포칼립틱도 어찌보면 멸망속에서 현실을 인지 하지 못해 방어기제로 혹은 도피처를 찾으려고 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기도 했죠. 스니피가 "나는 친구를, 나와 이야기할 누군가를, 내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든 신경도 쓰지 않을 사람을 상상했던 건가?" 라고 햇을 정도로. 제가 이번 소설 썼을떄도 하치코는 단순히 멘탈 부숴진것뿐만 아니라 주인님과 가장 행복 했던 시절로 도피하려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망상이 현실로 느껴질(공기라던가, 태양빛의 따스함이라던가, 아침에 먹은 식사의 맛이라던가)정도로 말이죠. 전쟁 터지면은 누가 책임져야 하고 선인지 악인지 그전에 가장 먼저 휘말려지는것은 아무것도 못하는 민간인들이라는것은 변함 없죠. In War, Not Everyone is a Soldier. - This war of mine. | 21.11.22 02: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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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꼬 애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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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코 댕댕이는 모두에게 사랑 받아야할 아이 흑흑... p.s 페로 고양이 좀 무서웠네요. 냐앙- | 21.11.22 11: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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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유골 부분 쓰면서 이그니스 만화의 내용 또한 생각났었습니다. 하치코나 이그니스나 둘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는 망상에서 완전히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고요. 참 핵 방사능 떄문에 변해버린 하치코를 묘사할때 마음이 좀 찜찜했음... | 21.11.23 07: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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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매운맛하고 뒷맛이 찝찝한 내용으로 쓰긴 했지만 막상 쓰니 찜찜하네요 기분이 허헛. | 21.12.27 11:5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