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요청으로(같이 하자고 해서) 사흘쯤 전에 급하게 캐릭터 공모전 설정을 써주게 되었습니다. ( https://cafe.naver.com/lastorigin/923950)
"[D-엔터테인먼트] "듀라한" 듀라나&하나"
(* 카페에 올린 건 제가 아니라 제 친구분입니다. 그림도 친구분이 그렸습니다.)
아마 급하게 써서 설정충돌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따라서 크게 기대하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사흘 동안 친구와 같이 작성하면서 재미는 있었고, 나름 캐릭터 소설도 썼으니 모쪼록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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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그래선 안 되는 거였어.
- .....
7년만에 입을 연 동생이 처음 꺼낸 말이 이렇다면 뭐라고 답해줘야 하는 걸까.
듀라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결국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반문했다.
- 하나(花)야?
- 그 때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고.
- 그 때라니, 언제를 말하는 거니.
- 알잖아.
듀라나는 다시 침묵했다. 물론 알고 있었다. ‘그 때’가 언제를 말하는 건지. 7년 전 할로윈의 그 날, 도망치는 더치걸들을 양뗴처럼 몰아 참살하던 그 날 이후, 하나는 입을 다물었으니까. 하지만…듀라나는 척수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 꼭 그 얘기를 지금 해야겠니.
- 지금이니까 하는 거야. 백토 언니가 죽었어.
- .....
- 이젠 우리 차례겠지.
마법소녀 모모 시리즈에서 만월의 마법소녀 매지컬 백토는 그믐의 기사 듀라한의 라이벌이었다. 목 없는 암흑의 기사와 호각으로 맞서던 달밤의 마법소녀가 죽었으니, 이제 그 다음은 그녀들 차례일 것이다. 라이벌이 사라진 등장인물은, 으레 존재 의미를 잃으니까. 그래서 다음 각본에서 탈락하게 마련이니까.
- 착한 언니였는데.
- 그러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토 84번은, 어쩌면 극중 라이벌이라서 더더욱, 한 몸에 두 인격이 깃든 자매를 이해해 주는 이였으니까. 아마도 그 자매 서로를 제외하고 자매를 가장 잘 아는 이였으리라. 그러나 하나는, 십수 년간 같이 합을 맞춰 온 동료의 죽음에 슬퍼하는 건지 아닌지 모를 듯한 무감정한 톤 – 7년 전과는 너무도 딴판인 말투다 - 으로 말을 이었다.
- 그러니까 우리 차례가 오기 전에 말하는 거야, 언니. 우린 그래선 안 됐어.
말투는 무감정하지만 힐난하는 그 내용에 듀라나는 순간 냉정한 그녀답지 않게 욱했다. 하나 얘가 왜 이러는지. 7년만에 입을 연 게 언니에 대한 비난이라니. 언제나 반항 한 번 하지 않던 착한 아이였는데, 왜 하필 이제 와서, 세상이 망하고 인간들이 손에 잡히는 바이오로이드는 닥치는 대로 전선에 몰아넣는 이 때에 와서, 왜 이렇게 반항을 하는 걸까.
- .....그러면 그 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단 말이니.
…
C구역이 바이오로이드에게 유쾌한 곳이었던 적은 물론 한 번도 없었지만 할로윈은 특히나 더 그랬다. 으스스한, 아니 진짜로 바이오로이드의 뼛속조차 얼려버릴 듯한 얼음 안개가 구역에 자욱하게 퍼지고 나면, 할로윈 밤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상처입고 지치고 또한 추위에 떠는 바이오로이드들이 공포에 질려 달아난다. 마치 겁에 질린 양떼처럼, 사냥개들에게 쫒기는 여우처럼. 그 ‘사냥개’ 듀라한 자매는 그녀들의 기계 말 ‘창백’을 캔터(* canter, 승마 주법 중 하나. 전력질주의 캔터와 가벼운 속보인 트롯의 중간)로 몰면서 서리낀 안개 속을 활보했다.
인간님들의 사냥놀이에서 살아남은 사냥감을 찾기 위해서.
거대한 말 위에 있서 시야가 확보되었음에도 찾기가 쉽진 않았다. 대부분은 방한복 빵빵하게 걸치고, 안개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 테마파크에서 지원한 – 투시경을 쓴 인간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피비린내가 났다. 음, 하나는 피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듀라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몸, 하나에게 물었다.
- 하나야?
- ....
말이 없었다. 자기에겐 있지도 않은 귀를 막고 떨고 있는 걸까. 피비린내에 질려 울고 있을까. 비록 한 몸이지만 그녀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그녀 자신만이 알리라. 듀라나는 동생의 마음을 묻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의 할 일을 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더치걸 하나가 헐떡이며 C구역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관문, 그 출입구에 다다랐다. 엄청난 추위로 동상이 걸려 손발은 거멓고, 팔다리는 딱딱하게 굳은 게 분명했지만, 그 아이는 그럼에도 살고 싶은 게 분명했다. 다 찢어진 옷, 피투성이가 된 몸, 그럼에도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며 거기까지 다다랐으니까. 그러나, 출입문에 도달하기 직전, 그녀의 머리 꼭대기에서 나타난 것은 자욱한 안개를 뚫고 나타난 시커먼 그림자였다. 죽음을 선고하러 온 사신과도 같이.
“미안하구나”
도끼를 들고서, 듀라나가 나직이 읊조렸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단다.”
“시…싫어….”
“금방 끝날 거다”
“살고 싶어…살려…줘…”
더치걸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자신의 운명을 깨달은 탓이다. C구역에 들어오는 자, 살아서 나가지 못하리니. 마음에 가책이 느껴졌다. 그녀의 할 일이지만, 이런, 비무장의 연약한 아이를 죽인다는 건, 명예롭지 못한…
- 그럼 하지 마.
티타늄 도끼를 들어올리던 듀라나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 내면의, 동생이 오늘 처음으로 꺼낸 말에 흠칫해서.
- 뭐?
- 하지 말라고.
- 그럼 어쩌자는 거니. 놓아주자고?
- ……
잠시 침묵하는 하나에게 듀라나가 재차 반박했다.
- 하나야. 이건 일이야. 우리가 할 일. 우리의 오늘 배역. 오늘의 우린 처형자야.
- 무고한 아이를 살해하는?
듀라나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끼를 높이 들어올렸다.
- 하지 말라고 했어.
그 착한 아이, 덴세츠 드라마 촬영 때 단 한 번도 반항하지 않던 몸, 하나가 경고했다. 그녀의 반항에 몸이 거칠게 떨렸다. 머리, 즉 듀라나가 몸에 붙어 있는 동안은 듀라나가 몸 전체를 통제하지만, 하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래도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저항했다.
- 그 도끼 내려치기만 해 봐.
- 왜 자꾸 이러니, 하나야.
- 이건 악행이야. 살생이라고.
하나가 착하고, 피 싫어하는 온화한 성격인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라고 살해가 즐거울 리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불량품 취급받아 다음에 C구역에서 쫒기는 건 그녀들 자매가 될 것이다. 그러니, 하나의, 정말 모처럼 드문 반항을 무릅쓰고서라도,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머리가 붙어 있는 동안 몸은 머리를 따른다. 언니, 듀라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상념은 끝났다.
“잘 가거라”
그녀의 동생이, 그녀의 안에서 절규하더라도.
- 하지 마!!!!
얼음 안개로 차게 식은 피가 튀었다.
도끼에 무고한 자의 피가 묻었다.
그리고 하나는 그 이후로 말하지 않았다.
…
- 그래서, 언니, 말해 줘. 그게 명예로운 일이었어? 그게 여기사의 긍지야?
- 나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 인간님들은 그래도 될지 모르지. 하지만 우리는…우리는 아니야…그녀들과 같은 존재잖아.
하나의 지적에 듀라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 할로윈의 밤 이전에나 이후에나, 하나는 늘 언니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듀라한의 ‘몸’은 언제나 ‘머리’를 위해 충실하게 움직였다. 자매는 서로가 무얼 생각하는지 잘 알았고, 그대로 행동했다. 듀라나가 몸을 통제할 때도, 하나는 거기에 토 하나 달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날 이후로, 하나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만 없어진 게 아니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 드라마 촬영 중일 때랑 언니가 어깨 위에 붙어 있을 때만 뺴고 - 가슴께의 장치를 통해 홀로그램으로 투영될 수 있음에도, 그 날 이후 하나는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어디론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없이. 듀라한 자매에게서 듀라나, 언니만 남은 것 같았다. 그녀 혼자서만 움직이고 그녀 혼자서만 말하는 것 같았다. 듀라나는 차라리 하나가 반항이라도 해주길 바랬다. 그런데 이제 와서…
- 이건 우리가 받아야 할 잔이야, 언니.
- ......
-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의 전설, 알고 있지?
물론 알고 있다. 중세의 무훈시. 모든 일에는 거래가, 대가가 따름을 노래하는 이야기. 다른 이의 목을 친 자는 자신의 목도 그리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 그 원초적인 윤리학의 메시지에 듀라나는 잠시 몸을 떨었다. 몸, 하나는 그 떨림을 알았다.
- 그래. 이제 우리 차례인 거야. 우리 목이 잘릴 때인 거야, 언니. 그 할로윈 그믐밤처럼.
듀라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허탈하게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폐허가 된 황량한 고지를.
모두가 다 죽었다. ‘철충’이라는, 외계의 괴물들, 덴세츠가 만들어낸 그 어떤 괴물보다도 끔찍한 흉물들에게 맞서다가. 인간들은 살기 위해 발악했다. 마치 그 날, C 구역의 서리낀 안개속에서 몸부림치던 바이오로이드들처럼. 그들은 자기들 손에 잡히는 건 닥치는 대로 철충 앞에 집어던졌다. 마치 이걸로 자기들을 대신해달라고 애원하며 바치는 제물(祭物)마냥. 듀라한 자매 역시 그러한 제물들 중 하나였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보루 바깥에 전초기지랍시고 허름한 방어선을 설정해 놓고선, 거기다가 덴세츠 바이오로이드들을 밀어넣은 것이다. ‘최전방 사수대’라는 멋만 들어진 이름을 붙여 놓고선.
- 이 정도면 오래 버텼지.
- 이걸 무훈시로 써줄 시인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쉽구나.
정말이다. 모두가 죽어가는 중에도 어떻게든 두 자매는 버텼으니까. 악착같이 살아남았으니까. 후방의 보루 안에 안주하고 있는 인간들도 왜 더 버티지 못했냐고 욕하진 못하리라. 정말로 그녀들은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녀들 자신도 신기할 정도로 인간들에게 시간을 벌어주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인 듯했다.
‘하나의 말이 맞아’
그녀, 듀라나가 합당한 잔을 받을 때가 가까워 온다. 다음 번 공격은 아마 막지 못하리라. 어쩌면 하나의 말대로 이는 인과응보인지도 몰랐다. 듀라나도 알고 있었다. 비록 스스로 이건 배역일 뿐이라고, 할 일은 해야 한다고 합리화했지만, 어쨌거나 무고한 자를 죽이는 것은 죄악이요 불명예라는 것을. 어찌 반박하겠는가? 누구나 언젠가 자기 한 일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면, 듀라나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언제가 올 터다. 그게 지금일 뿐이다.
‘그러나.’
자신은 그 독이 든 잔을 마땅히 받아들어야 한대도, 하나도 그 잔을 받아들어야만 하는가? 그 착한 아이가? 그저 머리인 자신을 따라와 주었을 뿐인 아이가? 단지 머리에 붙어 있는 몸이란 이유로, 머리가 저지른 죄악까지 몸이 뒤집어써야 하는가? 듀라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게 세상 이치라면 신께서는 얼마나 대충 사신단 말인가.
“그렇기 떄문에 나는 살아야겠어”
육성으로 말했다. 듀라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살아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생인 하나를 위해서. 죄없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 운명을 거부할 수는 없어, 언니.
동생이 뭐라고 생각하든 간에.
…
그녀들의 처형자는 그렇게 인자하지 않았다.
듀라한 자매는 헉헉대면서 일어섰더. 흉측하도록 거대한, 마치 철갑을 입은 듯한 저거너트가 오만하게 그녀들 자매를 내려다본다. 몸에 이끼라도 끼었는지 불길한 녹색 휘광이 감도는. 승산이 없었다. 창백은 부서졌고 녀석이 토해내는 냉기의 안개도 점점 꺼져간다. 간신히 버텨냈지만 아마 다음 행운은 없으리라. 수없는 전투로 잔뼈가 굵은 자매는 확신했다.
놈이 다시 그 우악스러운 거체를 들이밀어 왔다. 놈이 휘둘러 오는 두 번째 공격을 피할 운은 확실히 없었다. 무자비한 고통이 그믐밤의 기사를 강타했다.
“크학…!”
죽음의 기사에게도 죽음은 찾아오는구만, 하고 듀라나는 생각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듯한 고통이 ‘몸’을 휘감았다고 생각했을 때, 듀라나는 그게 단지 느낌만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가 떨어졌구나’
놈의 공격이 가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 듀라나가 몸, 하나에게서 떨어진 것이다. 천지상하가 뒤바뀌는 풍경을 잠시 감상하고서 듀라나는 그대로 땅에 데구르르 굴렀다. 머리를 잃은 기사의 몸이 풀썩, 하고 대지에 쓰러졌다.
저거너트는 그녀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당연했다. 인간이든 바이오로이드든, 몸에서머리를 떼어놓으면 누구나 죽으니까. 그러니 머리가 없는 적에게 두 번 신경 쓰는 건 시간낭비일 터다. 놈은 널브러진 기사의 몸을 지나쳐, 인간들의 보루로 걸어가려 했다. 초록빛 색채를 흩뿌리며 놈이 걸어간다. 그 길목 위에 떨어진 듀라나에게로 놈의 발걸음이 다가왔다. 아, 좋아. 하고 듀라나는 생각했다.
'이게 내 잔이로구만'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눈 깜빡이기, 입 뻐끔거리기, 침흘리기 정도다. 곧 그녀는 저 커다란 놈의 발 아래 으스러지리라.
‘하지만, 하나는’
그녀는 다르다. 지금은 죽은 척 했다가, 놈이 지나간 다음에 일어나서 인간들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살아날 수 있으리라. 드라마 촬영 중엔 금지지만, 홀로그램을 띄우면 시각과 청각은 조금이나마 돌아울 테고, 이건 드라마 촬영이 아니니 괜찮겠지. 듀라한은 머리가 떨어져도 몸이 움직이니까. 그래, 바로 지금처럼, 저거너트의 등 뒤에 도끼를 들고 우뚝 서서….?
“하나야….?”
어이가 없어서 듀라나가 헐떡였다. 지금 일어나면 안 되는데! 이 바보가 저놈 발걸음 진동도 못 가늠하나! 그러나 아직 가능성은 있었다. 하나는 놈의 등 뒤에 서 있다. 놈이 알아차리기 전에,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면 된다. 그래, 그러면 된다. 그러니 움직여, 이 바보야. 왜 멀뚱히 서 있는 거야. 듀라나, 괴물에게 짓밟히기 직전의, 비참하게 땅을 구르는 머리가 말했다.
“가, 하나야.”
그녀를 버려두고. 불명예와 거짓으로 얼룩진 그녀를 버려두고. 모든 죄악은 그녀가 안고 갈 테니, 부디 하나, 늘 착하고 상처받기 쉬웠던 아이, 너만은 살아남기를. 어떻게든 인간들의 보루로 후퇴한다면, 누군가 그녀에게 새 머리를 가져다 주리라. 듀라한의 강건한 몸을 그냥 버리긴 아까울 테니까.
“가라고, 제발.”
그러나 듀라한의 몸, 하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나의 생명유지장치가 켜지며 푸른 불꽃이 머리를 잃은 목에서 일렁였다. 7년만에, 하나의 조금은 가냘픈 목소리가 공기 중에 울려퍼졌다. 홀로그램 투영장치의 스피커를 통해.
“말했지, 언니”
“…?”
“이건 ‘우리’가 받아야 할 잔이야. 언니만이 아니라”
듀라나의, 푸른 안광 번득이는 눈이 떨렸다.
“너….”
“머릴 두고 가는 몸이 어디 있어”
지잉- 하고 홀로그램이 켜졌다. 비록 언니의 머리로 느끼는 것만 못하지만, 하나의 시각과 청각이 돌아왔다. 7년만에 듀라나는 가슴께의 펜던트에서 투영되는 동생의 홀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창백한 유령 같지만, 사실은 자기 따위보다 훨씬 따뜻한 심장을 가진 유령을.
‘나는 심장이 없으니까.’
머리뿐인 듀라나는 심장이 없다.
“여기 봐, 괴물 씨. 헤. 우리도 괴물이지만.”
머리 없는 기사도 충분히 괴물일 테지만, 그 심장만은 인간과 같을지니, 심장을 가진 자, 하나의 홀로그램이 웃었다. 듀라나를 무심하게 밟아 으깨고 지나가려던 저거너트가 멈칫해 돌아볼 만큼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이건 우리 모두의 죄야, 언니. 언니만의 것이 아니라.”
"....."
듀라나가 말이 없자 목 없는 기사는 도끼를 치켜들었다. 굉장히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로 목 없는 기사를 돌아보던 녹색 철충이, 마침내 다시 하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왜 아직도 살아 있는 건지 이해하진 못해도, 몸을 부숴버리면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사실 맞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동생은 언니 안 버려. 마지막까지.”
자매는 한 몸이다. 문자 그대로, 그녀들은 하나다. 그녀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머리의 명예는 몸의 명예요, 머리의 죄악은 몸의 죄악일지니, 듀라한 자매가 저지른 그 모든 악행들은 듀라나만의 책임이 아니다. 그 할로윈 밤 죄지은 것은 언니만이 아니다. 자매는 한 몸이고, 한 몸에서 살아가니, 언니가 죄를 짊어질 때 동생도 같이 짊어진 것이리라.
'언니가 뭐라고 생각하건 간에.'
듀라나가 울음을 삼킨다.
“바보야. 못 이긴다고.”
“알아. ‘우리’가 마셔야 할 잔이니까.”
“내 잔이야”
“웃기시네”
그 착한 하나가, 또다시 언니에게 반항했다. 아마도, 그녀 삶 마지막일 반항을.
“죄를 지어도 같이 지어. 패해도 같이 패해. 죽어도 같이 죽어.”
눈을 감았다. 보이진 않아도 알았다. 놈이, 다가오고 있음을. 쿵쿵거리는 진동이 느껴진다. 그녀들의 마지막이 다가온다. 그래도 하나는 두렵지 않았다. 언젠가 받아야 할 대가를 받을 뿐이니까. 언젠가 올 떄가 온 것뿐이니까. 그걸, 언니와 함께할 뿐이니까. 언니가 함께 있으니까. 언니 혼자만 이 독이 든 잔을 마시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머리 없는 기사, 하나는 한 차례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돌격했다.
죽음을 향해. 두려움을 향해. 그믐밤의 기사에게 걸맞는 최후를 향해.
자매는 한 몸이다.
그러니, 언제나, 함께하리라.
기쁨도, 고통도, 죄악도,
그리고….죽음도.
< E N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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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naver.com/lastorigin/92395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급하게 만든 부족한 설정이지만, 즐거움이 되셨기를.
카페 본문에는 지나가는 투로만 설명되어 있고 잘 강조가 안 되어 있는데, 드라마 촬영 중에는 하나의 홀로그램을 켜는 것이 금지였습니다(드라마상으로는 듀라한은 1명이었으므로).
그리고 셀주크 홀로그램 스킨을 참조해서, 홀로그램 장치가 켜지면 하나도 제한적으로 시각과 청각은 느낄 수 있습니다. 언니의 머리로 느끼는 것만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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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서를 참고한 것 맞습니다 ㅋㅋㅋㅋㅋ 사실 원래는 히오스 초갈을 생각했지만요(...) | 21.11.01 00: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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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가슴 뒤편 갈비뼈 부근에 뇌를 넣은 거지만요 ㅎㅎ;; | 21.11.02 01: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