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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적이는 사령관. 의식을 되찾은 오메가와 간단히 이야기나 조금 나눌까 했는데 대뜸 고백을 받아 버릴 줄이야. 게다가 유미와 아르망도 망설임없이 방을 떠나 버려 오롯이 혼자서 이 사태를 매듭지어야 한다.
“저, 저기.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오늘 막 눈을 떴는데 아무래도 오늘 바로 하는건… 좀 힘들겠지? 아르망이 준 이거, 내가 잘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몸 괜찮아지면 쓰는 걸로 할까?”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한 사령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주먹을 꽉 쥐어 아르망이 전해준 콘돔을 숨기며,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조심스레 제안하는 사령관.
“나중에 넘치도록 사랑해주는 것도… 물론 좋지. 그런데 아까 말해줬지? 지하에서 죽어가며 더 일찍 솔직해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혼수상태였던 3개월동안 그 때 못 이룬 소망에 미련이 남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인간님과 사랑을 나누는 꿈을 꿨다고.”
오메가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는 환자복 상의를 대뜸 벗어던졌다. 속옷도 입고 있지 않았던 탓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단번에 드러났다. 사령관은 움찔 떨며 눈을 내리깔았다. 이제껏 수많은 여인들과 몸을 섞었음에도, 어쩐지 그녀의 알몸을 바라보는 것이 민망해 견딜 수 없었다.
“그 꿈을 현실에서 이룰 기회가 온 거야. 이 이상 기다리는건 내게 고문이나 다름없다고.
그러니까, 지금. 지금 당장 안아줘.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줘. 아프도록 껴안아 주고,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잔뜩 사랑을 나눠줘.”
오메가는 휠체어를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 모습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사령관은 서둘러 달려가 그녀의 몸을 받쳐주었다. 여전히 눈을 맞추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령관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반강제로 눈을 맞추게 만드는 오메가.
“알아, 인간님. 내 몸 상태를 걱정해서 망설이고 있다는 것쯤은. 하지만… 하지만 말야. 나,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렸어. 내 곁에 없는 당신을 그리며 쓸쓸함에 사무치는 밤은 이제 싫단 말야. 내가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 몸에 직접 새겨서 알려줘. 내가 추운 밤을 홀로 이겨낼 수 있도록, 당신의 온기를 조금만 전해줘.”
맞닿은 손을 따라 그녀의 미약한 떨림이 전해진다. 긴장하여 떨고 있는 것일까. 사령관은 오메가의 목소리에 짙은 긴장과 걱정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확고한 말투에 가려져 있었을 뿐, 그녀 역시 한걸음 내딛는 것에 적잖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뭐야, 기껏 여자가 용기내서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수치를 줄 생각이야?”
약한 부분을 애써 가려 보려는 시도인지, 오메가가 도발적인 말투로 사령관을 자극했다.
“...그럴리가.”
오메가의 말대로다. 여자 쪽에서 이렇게나 용기를 내 주었는데 지레 겁먹고 발을 빼서야 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령관은 심호흡을 하며 의지를 다졌다.
“혹시 너무 벅차거나 힘들면 꼭 말해줘. 한 번 시작하면 내 의지로 조절이 안될지도 모르니까.”
“오히려 바라는 바야.”
사령관은 오메가의 몸을 부드럽게 침대 위로 뉘였다. 잠깐 서 있던 것조차도 힘에 부쳤던지, 오메가는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 것이 참으로 그녀다웠다.
“미안, 볼품없지?”
오메가가 숨을 고르는 동안 사령관은 그녀의 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령관의 시선을 눈치챈 오메가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웃었다. 3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무너져내린 몸매가 꽤나 쑥쓰럽다. 말로는 신경쓰지 않는다 어쩐다 허세를 부렸지만, 역시 좋아하는 남자에게 보여주며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볼품없긴. 예쁘기만 한데.”
“그치만… 이렇게나 뱃살도 찌고, 완전 엉망인데.”
“살찐 걸로 따지면 비교도 안되는 애들 천지야.”
사령관의 머릿속에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녀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이름을 밝히는 것만은 참았다.
“아얏.”
“앗, 미안. 이제 보니 멍이 있네.”
사령관이 오메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중 그녀의 몸이 움찔 떨린다. 왜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화장으로 가린 옅은 멍자국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리리스가 대뜸 찾아와서 한 방 날리더라.”
“뭐? 중환자가 의식을 되찾은 당일 때렸다는 소리야?”
오메가의 말에 사령관이 경악하며 묻는다. 분명 오메가를 한 대 때려도 된다고 하긴 했지만, 몸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후라는 조건도 덧붙였는데! 섣불리 허락해서 이런 사고를 일으켜버렸다는 생각에 사령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걱정마. 나름 힘조절은 해줬으니까. 전력으로 때렸으면 아마 영영 식물인간 신세였겠지. 어쩌면 아예 죽어버렸을지도 모르고.”
오메가가 피식 웃으며 사령관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사령관의 표정은 쉬이 풀어지지 않았다.
“미안. 이럴 줄 알았으면 허락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많이 아팠지? 미안.”
“뭐… 아프긴 아팠지. 하지만 그것보다는 질투가 났어.”
“질투?”
이어진 오메가의 말은 꽤나 뜻밖이었다.
“근본적으로 리리스가 화났던 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니까. 사랑해 마지않는 당신을 지키지 못할 뻔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거잖아.
그리고 그 격렬한 분노를 당신의 말 한마디에 눌러 참은 것도 역시나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인간님과 리리스 사이의 그 굳건한 애정이… 부러웠어. 출발부터 한참 늦어버린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부끄러운지, 오메가가 슬며시 눈을 피한다. 그동안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잘도 이런 말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따라잡을 수 있지. 난 오르카의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니까.”
사령관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확신으로 가득한 그 눈빛에 오메가의 가슴 한켠이 걷잡을 수 없이 간질거렸다. 자신 역시 거뜬히 품어줄 수 있노라고 한 치의 의심 없이 말하는 그 배포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신다운 대답이야. 마음에 들었어.”
오메가는 손을 뻗어 사령관을 꼭 안았다. 가슴을 맞대고 귓가에 애정을 가득 담아 속삭였다. 맞닿은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온기와 심장박동이 그저 좋아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고만 싶었다.
“하지만 한가지는 수정해야겠는걸. 난 따라잡는 것만으로는 만족 못해. 보란듯이 모두를 앞지를거야. 당신이 나를 가장 좋아하도록 만들 거라고. 이제껏 안았던 그 어떤 여자보다도 더.”
오메가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그리 선언한다. 그야말로 오만이라는 이명에 걸맞는 자신감이었다.
“...하핫.”
사령관은 오메가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따라 웃었다. 그 긴 병상생활 후에도, ‘오만’의 레모네이드는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이 자신만만하고 확고부동한 여자가, 말 그대로 한 번 죽었다 살아나 삶에 겨우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위태로운 상태임을 과연 누가 알 수 있을까.
죽음조차 그녀의 오만함을 침범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쩐지 기뻐, 사령관은 싱글싱글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너무 푹 빠져버리지 않게 정신 바짝 차려야겠는데.”
“물론 그래야지. 한순간이라도 긴장 풀었다가는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내게 빠져버릴테니.”
두 사람의 입술이 짧게 맞닿고는 떨어진다. 그 짧은 키스가 본격적인 시작의 신호라는 것을 사령관도 오메가도 알고 있었기에, 사뭇 긴장감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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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까 너무 길어져서 17.5-1/2로 나눴습니다.
17.5-2는 라오19게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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