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2962
2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005
3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040
4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080
5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099
6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115
7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193
8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220
9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294
10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316
11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395
12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449
13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516
14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553
15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586
오메가는 꿈을 꾸었다.
포근한 녹색빛으로 물든 작은 동산에서 나머지 여섯 자매들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꿈을. 돗자리를 펼치고 각자 싸온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으레 평범한 자매들이 그러하듯, 웃고, 떠들고, 때로는 티격대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그런 꿈을.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난다. 일곱 자매의 주인이었다.
최후의 인간, 멸망한 세상의 구원자, 오르카의 사령관.
자신이 미치도록 사랑하는 바로 그 남자.
어쩐지 강렬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것과 똑같은 광경을 언젠가 보았던 것 같은데, 막상 떠올려보려 하면 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흐릿하다. 오메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제 주인에게로 달려갔다. 자매들 중 누구보다도 앞서 달려나가, 반갑게 팔을 벌려 맞아주는 주인의 품에 폭 안겨들었다.
그의 넓다란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며 자신의 냄새를 묻힌다. 그가 전해주는 온기가 너무나 황홀해 언제까지고 이렇게 안겨있고만 싶다. 하지만 뒤따라온 자매들이 불평하며 채근하는 통에 결국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주인의 품을 조금 더 길게 만끽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주인의 곁에 머무는 한 앞으로 무수히 많은 기회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침 오늘 밤이 바로 오메가가 주인에게 안길 차례. 지금의 아쉬움은 그때 진득하게 풀어내면 되겠지. 밤의 즐거움을 떠올린 오메가의 입가가 헤실헤실 풀어진다.
-욱신
“윽!”
그때, 손에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진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려 손을 살펴보니, 분명 아까까지는 멀쩡했던 손바닥에 붉은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자매들과 주인이 그녀를 염려하며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고 있는 가운데, 오메가는 어쩐지 자신만이 선명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그녀가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이 흐릿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시간을 보내던 동산, 돗자리, 도시락, 여섯 자매, 주인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흐릿해지더니, 점차 흩어져 사라진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고찰하기도 전에, 급격한 부유감과 함께 시야가 암전했다.
—————————————————————
“으….”
몸이 무겁다. 뻑뻑한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올리니 빙빙 돌며 아른거리는 격자무늬 타일이 눈에 들어온다. 목은 타는 듯이 따끔거리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다.
“윽…!”
의식을 되찾은 것보다 한박자 늦게, 날카로운 통증이 덮쳐든다. 오메가는 몸을 벌벌 떨며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삑, 삑, 삑.
오메가의 주위에 빼곡히 놓인 기계가 일제히 요란을 떨며 비프음을 낸다.
“그래, 이건 기억나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손에 둘둘 감긴 붕대와 부목을 바라보았다. 일전에 미친듯이 제 손을 헤집었을 적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때도 이렇게 눈을 떠 보니 병실이었지.
“오메가 님! 깨어나셨군요!”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울려퍼지더니 병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 발소리의 주인은, 이전에도 그랬듯, 오메가의 부관 유미였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너무 뻔한 전개에 김이 샜는지 한숨을 푹 내쉬는 오메가. 유미는 개의치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침대 머리맡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오메가와 눈높이를 맞췄다.
“너도 죽은 거니? 여긴 사후세계고? 아니면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네? 아뇨! 여긴 오르카의 집중치료실이에요! 자그마치 삼개월이나 혼수상태셨다가 깨어나셨다고요!”
“응? 그게 무슨….”
유미가 손사래를 치며 오메가의 오해를 바로잡는다. 오메가는 별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삼개월? 아니, 그보다 내가 안 죽었다고? 그 시설의 폭파에서 살아남았다는 말이야? 심지어 출혈도 치사량을 훨씬 웃돌았는데 어떻게?”
“아, 그건….”
유미가 그 의문에 답하기 전, 문이 벌컥 열렸다.
“오메가가 깨어났다고요?”
“응? 왜 네가…”
“오메가! 몸은 좀 괜찮아요?”
문 뒤에서 나타난 것은 리리스였다. 예상하지 못한 방문자의 등장에 오메가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리리스는 단칼에 질문을 끊고 오메가의 상태를 물었다.
“응? 어… 괜찮은 것 같은데.”
“잘됐네요. 정말… 잘됐어요. 유미 씨, 잠시만 뒤로 물러나 주시겠어요?”
리리스는 오메가의 대답에 화색을 띠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가….
-퍼어억!
“크헉!”
온 힘을 다해 주먹으로 오메가의 볼을 후려쳤다. 오메가는 그 엄청난 힘에 침대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뭐, 뭐야, 다짜고짜!”
“당신을 시설에서 안전하게 구출한 포상으로, 의식을 되찾은 다음 한 대 후려쳐도 된다고 주인님께 허락받으셨거든요.”
리리스가 섬칫한 미소를 지으며 오메가를 내려다본다.
“...뭐? 그 말은, 네가 날 구했다는…?”
“주인님께 감사하세요, 오메가. 스무 대 때리겠다고 한 걸 한 대로 줄여주신 거니까.
뭐, 절 기절시키고 주인님을 납치한 것은 방금 한대 때린 걸로 용서해 드릴게요.”
리리스는 그리 말하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너무도 시원스러운 태도라 붙잡고 따져볼 수조차 없었다.
“사실, 오메가 님은 실제로 한 번 돌아가셨어요. 시설 바깥으로 이송되었을 때 심정지 상태셨거든요. 게다가 심정지 상태가 꽤나 오래 지속되어서 회생 가능성이 극히 희박했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살아나신 거에요. 리리스 님이 적절하게 응급처치해주시지 않았다면 두 번 다시 눈을 뜨실 수 없었을걸요?”
리리스가 병실을 떠난 후, 유미는 오메가를 침대 위로 다시 올려준 뒤 설명을 덧붙였다.
“애초에 리리스가 어떻게 시설에 들어온거야? 막사에서 시설까지 거리가 얼마나 멀었는데.”
“아, 하긴 거기부터 설명드리는게 맞겠네요. 오메가 님이 막사의 바이오로이드들을 기절시키셨잖아요? 기절하신 분들이 깨어나자마자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비행체를 동원해서 시설 쪽으로 향하셨대요. 사령관님을 구하기 위해서요.
방어시설 때문에 체공하며 대책을 논의하던 중에 시설의 활동이 정지되었고, 착륙했을 때 타이밍 좋게 사령관님이 올라오셔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셨어요. 마침 사령관님께 사용하려고 각종 응급처치 키트들을 가져왔던 참이라, 리리스 님이 시설 지하로 달려가서 오메가 님께 응급처치를 하고 지상으로 데려오신 거에요.”
“...그 말은, 시설이 폭발하지 않았다는 거야?”
“네, 맞아요. 나중에 따로 조사해 봤는데, 철충 감염 때문에 폭발물이 무력화됐대요.”
“뭐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오메가가 머리를 부여잡고 한탄한다. 분명 죽을 거라 생각하고 그 난리를 쳤던 건데, 이렇게 되면 그 때의 촌극은 다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냥 시설을 정지하고 사령관과 나란히 걸어나왔으면 그만이었을 것을.
“뭐…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어쨌든 오메가 님은 죽음을 각오하고 사령관님을 살려 올려보내주신 거잖아요? 그래서 오메가 님에 대한 여론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리리스 님도 오메가 님 때려죽인다 어쩐다 하면서 날뛰시다가 그런 점을 감안해서 한 대로 참으신 거에요.
이런 긍정적인 여론에 더해서, 이번 철충 사태 해결에 크게 공헌하신 것을 인정해 훈장까지 수여될 예정이라고 하던데요?”
“훈장은 무슨 얼어죽을…. 줘도 안 가져.”
오메가가 고개를 홱 돌리며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래요? 듣기로는 사령관님이 훈장 수여자한테 특별 포상도 주신다던데.”
“특별… 포상? 뭔데, 그게?”
오메가가 필사적으로 관심없는 척을 하면서 넌지시 묻는다. 어감상으로는 무언가 야릇한 단어인 듯 싶은데, 만약 짐작이 맞다면 한 번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야 모르죠? 궁금하시면 한 번 받아보시는게 어때요? 그 특별포상이라는게 오메가 님이 원하는 ‘그거’ 일지도 모르니까요.”
“너… 하아, 됐다.”
유미는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이며 이죽댔다. 그 모습을 본 오메가는 울컥해서 무어라 한 마디 할까 하다가, 자기만 우스운 꼴이 될 것 같아 참기로 했다.
“넌 그동안 뭐하고 지냈어? 내가 이러고 있으니 아메리카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고생했겠네.”
“아, 할 것도 없어서 사령관님 비서 업무 보고 있었어요. 비서라고 해봐야 거창한건 아니고, 부관님들 일 도와드리는 정도지만.”
“누구 맘대로 그 인간 비서 일을 해? 넌 내 부관이잖아?”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만 축내는건 뭔가 너무 허무해서…. 그래도 오르카의 비밀 정보를 이것저것 알아냈어요. 적도 아군도 아닌 애매한 위치라서 그런가 오히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더라고요.”
“그래? 어떤 비밀 정보?”
“베타 님의 진짜 체중이라던가… 마리 님의 비밀 폴더에 든 영상물들이라던가… 브라우니 2056님이 꽁쳐둔 잉여 보급품의 위치라던가… 그런 것들요.”
“그런걸 알아서 어디에 써먹을건데.”
“나름 써먹을 구석이 많긴 한데… 아! 그것도 있어요! 사령관님 성감대! 로열 아스널 님한테 들었어요!”
“...뭐…. 그건 쓸만할 수도 있겠네. 말해봐. 그 남자의 약점이라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아스널 님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게 하늘 같은 상사 말도 거역하네. 이거 계약 위반인거 알아?”
“저 지금은 오르카 소속인데요?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면 업무상 기밀에 해당되는 이 정보를 외부인인 오메가 님께 밝히는 것이 오히려 계약 위반인거죠.”
“무슨 소릴. 너는 생산돼서 기능 정지할 때까지 쭉 내 부관이야.”
“퇴사하고 싶다고 하면 받아주시나요?”
“당연히, 절대, 안되지.”
오랜만에 깨어난 김에 근황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명확한 위계질서를 따르던 이전과는 달리 꽤나 친숙한 듯 보이는 대화였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는 통에 마음편히 대화를 나눠본지도 꽤 오래 되었던 터라, 이런 별 거 없는 대화가 괜스레 기뻤다.
“아, 맞다. 오늘 저녁식사 전에 사령관님이 잠깐 들르실 것 같아요. 스케줄상 그때 잠깐 시간이 비거든요.”
“뭐? 오늘 저녁이라고? 한시간도 채 안 남았잖아! 그걸 왜 이제야 말해!”
“미리 말했으면 뭐가 달라지나요?”
두서없이 이야기가 오가던 중 유미가 중대한 이슈를 툭 던진다. 오메가는 경악하며 뒤늦게 말한 유미를 타박했지만, 유미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최소한 씻고, 화장하고, 옷 갈아입을 시간은 벌 수 있잖아! 머리카락도 정리하고, 그리고… 앗! 리리스한테 맞은 볼, 멍들었잖아! 어떡해!”
“도와드려요?”
“당연한 소리 하지 말아줄래? 일단 나 욕실로 옮겨주고 화장품 있는대로 다 내놔 봐.”
“참나….”
유미는 피식 웃으며 오메가를 휠체어에 옮겨 태운 뒤 욕실로 데려다 주었다. 오메가가 빨리도 그녀 자신의 성격을 되찾았다 싶어 실없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
“생각보다 일정이 빨리 끝났네. 조금 일찍 가 볼까?”
“간다고 하심은… 오메가의 병실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사령관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그 곁에 선 아르망이 서류를 정리하며 물었다.
“응, 오늘 겨우 의식을 찾았다고 조금 전에 보고받아서. 일정 끝난 김에 인사라도 할까 해.”
“으음…. 일단 별 문제는 없을 것 같군요. 함께 가시죠.”
아르망은 눈을 감고 간단히 미래를 예지한 뒤 순순히 허락했다. 사령관은 아르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그녀와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똑똑
“오메가, 깨어났다고 들었어. 잠깐 들어가도 될까?”
사령관이 오메가의 병실 문을 두드리며 묻는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들었나? 오래 혼수상태였다가 깨어났으니 피곤했을지도….”
사령관은 오메가가 다시 잠들었으리라 여기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오메가…? 자고 있니?”
목소리를 내리깔고 조심스레 오메가의 병상으로 다가가는 사령관. 오메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는 걸까?
“...아잇, 또! 손에 영 힘이 들어가질 않네.”
“당연하죠. 자그마치 세 달동안 누워계셨는데. 메이크업은 있다가 머리 말리고 제가 해드린다니까요. 그 잠깐을 못 참아서 몇 번을…”
욕실에서 티격태격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연히 사령관의 시선은 그쪽을 향했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야 될 것 아니야! 내가 괜히 이러겠냐고.”
전라 상태로 휠체어에 앉아 메이크업을 하려 애쓰는 오메가였다. 그녀의 뒤에는 헤어 드라이어로 오메가의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는 유미가 있었다. 척 봐도 의도대로 되지 않은 괴상한 메이크업을 한 오메가는, 사령관의 인기척을 눈치채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 남자가 오기 전에 끝내… 놔야… ㅎ…”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오메가의 손에 들린 아이라이너가 툭, 하고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그리고 한박자 늦게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꺄아아아아악!!”
욕실 벽을 울리는 새된 비명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
분량조절 ☆대실패
17화+에필로그로 완결날 예정입니다.

(IP보기클릭)59.22.***.***
(IP보기클릭)119.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