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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충 대량 발생으로부터 며칠간, 오메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자야 할 시간이 되면 자고, 저절로 눈이 뜨이면 일어난다. 식사 역시 최소한도만큼만, 하루 숨을 쉬는데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만 섭취한다. 기초적인 세면조차 하지 않아 머리는 헝클어지고 인상은 산송장처럼 변했다
그렇게 약 일주일이 경과하고 나니, 한 대륙을 지배하는 펙스의 수장다운 면모는 한조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자 위성 관측 자료입니다.”
유미가 이미지 파일 하나를 오메가의 단말로 전송해 보여준다. 유럽,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의 철충 위치 및 오르카의 방어선을 표시한 자료였다. 그녀는 오메가의 눈치를 살피다가 소리 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역시, 예상대로.’
철충의 공세는 처음과 비교해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으며, 끝도없이 밀려드는 철충의 공격에 오르카의 방어선이 속절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시뮬레이션한 것보다 전선 후퇴 속도가 20% 가량 느린 것을 보면 과연 그 남자다운 실력이지만, 결국 시간문제일 뿐.
‘제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철충은 오르카를 유럽의 북서부까지 밀어낼 거고… 그렇게 되면 바다를 통해 도망치는 수밖에 없겠지. 거점을 잃은 오르카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제 풀에 고꾸라질거야.’
오르카가 펙스에게 위협이 될 만큼 급성장한 것은 델타를 살해하고 그녀의 세력권을 흡수한 이후이다. 하지만 이 추세라면 유럽을 잃는 것은 명약관화. 거점을 잃고 나면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세력은 오히려 족쇄가 되어 스스로의 목을 조일 것이 뻔하다.
‘그 남자라면 쉬지 않고 손수건을 묶어주겠지. 손 닿는 모두에게, 한 명도 빠짐없이.’
오메가가 카라카스에서 다쳤던 손을 들어올려 멍하니 바라본다. 이 손에 다시 손수건이 매어지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오르카의 사령관과 펙스의 레모네이드 오메가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물리적인 거리도, 서로의 입장도, 대외적인 이미지도,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전부 다. 카라카스에서 두 사람이 마주쳐 공동전선을 펼친 일은 여러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윽…!”
갑작스레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한다. 마치 무딘 칼로 온 손바닥을 헤집고 비틀어 근육과 뼈를 바스라뜨리는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오메가는 온 힘을 다해 손을 꽉 쥐고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었다.
“...후우, 하아….”
고통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오메가는 겨우 그 격통이 잦아들었음에 안도하며 호흡을 골랐다. 어찌나 아팠던지, 눈물이 줄줄 흐르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였다.
‘뭐였지, 방금?’
오메가가 덜덜 떨리는 손을 다시 펼쳐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분명 몇 차례의 정밀검사를 통해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확인했는데, 조금 전의 고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신경 손상이 있었나?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검사를…’
오메가는 벌떡 일어나 의무실로 향하려다가,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하, 머저리 같은 년. 그딴 짓을 저질러 온 주제에 아픈건 싫다고 쪼르르 달려가는 꼬라지 하고는.’
동족을 수없이 죽이고 죽이며 고통을 안겨주었던 자신이 스스로의 고통에는 이리도 과민한 것이 어쩐지 너무도 역겨웠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너저분한 침대로 비틀비틀 다가가 그 위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차갑게 식은 땀이 피부에 달라붙는 감촉이 썩 불쾌했지만, 개의치 않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격통이 남기고 간 잔상에 온몸을 간헐적으로 움찔움찔 떨면서.
눈을 감으니 보이는 것은 오로지 암흑 뿐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은 천천히 소용돌이치며 오메가를 집어삼킨다. 사방에서 조여드는 압력에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 같지만, 발버둥을 쳐봐도 더욱 깊이 빠져들 뿐. 한없이 가라앉은 끝에 벗어나기를 포기한 순간, 그녀의 의식은 혼탁한 탁류 아래로 가라앉으며 끊어졌다.
그 뒤로도 몇 번이고 예고 없이 격통이 찾아왔다. 온 신경을 불태우는 듯한 감각이 너무도 괴로워 차라리 손을 잘라내 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몸을 한껏 웅크리고 손을 꽉 쥔 채 폭풍처럼 몰아치는 고통이 지나가길 비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고통에 울고 몸부림을 치는 며칠간, 오메가는 타고난 두뇌 덕에 이 고통의 원인을 금세 깨달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오르카의 사령관이었다. 어째서인지 그를 떠올릴 때마다, 조금 더 정확히는 그의 부재를 떠올릴 때마다 어김없이 고통이 찾아왔다.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지만,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순간 생각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런, 씨이바아아알…!”
또 그로부터 며칠, 오메가의 인내심이 마침내 바닥났다. 날이 갈수록 고통의 빈도가 늘어가고 그 강도 자체도 거세지던 탓에 도저히 견딜 재간이 없었다. 또 한 번 고통이 닥쳐들자, 그녀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날선 칼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만, 그만, 그만 하라고! 그마아아안!!”
귀기 서린 목소리로, 핏발 선 눈동자로, 연신 손을 내리찍는 오메가. 서슬 퍼런 칼날은 너무도 쉽게 부드러운 살갗을 가르고 사방에 피를 흩뿌렸다. 근육이 으깨지는 소리, 뼈가 바스라지는 소리, 방울진 피가 튀어 벽과 바닥을 수놓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흐윽, 흐으윽… 흐아아아아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멀쩡한 부분이 남지 않을 때까지 제 손을 헤집은 오메가는 숨을 몰아쉬다가 흐느끼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내게… 손을 내밀지 말았어야지. 날 비난하고, 몰아세우고, 겁박하고, 고통으로 울부짖게 만들었어야지!”
오메가가 바닥에 주저앉아 원망의 감정을 토해낸다. 카라카스에서 손수건을 감아준 사령관의 친절이 증오스러워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왜… 왜 나를… 왜 나를 이렇게나 아프게 만든 거냐고…. 왜 이제껏 저지른 죄악에 집어삼켜지게 만든 거야. 왜…!”
지금껏 수없이 죄를 저질러 왔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눈을 돌리고 합리화하며 머릿속에서 지워내길 반복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외면하는 동안 죄책감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자라났고, 카라카스에서의 사건을 계기로 오메가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왜… 가지지도 못할 것을 이렇게나 갈망하게 만든거야…. ”
카라카스에서의 그 짧은 엇갈림.
내밀어진 손수건,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손끝에 전해진 체온과 선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와서는 어째서 이렇게나 가지고 싶은 걸까.
목마른 자에게 주어진 물 한 모금이 더욱 큰 갈증을 불러일으키듯, 오메가는 손을 스쳐지나가며 연기처럼 사라진 그 사소한 것들을 미치도록 갈망하고 있었다.
다시금 되찾을 수 있다면 망설임 없이 영혼마저도 팔아넘기겠다고 대답할 만큼.
“왜 당신은…, 왜 나는…, 왜 우리는 적으로 만난 걸까.”
희망, 구원자, 해방자, 영웅.
지배할 수 있음에도 지배하지 않는 고결한 창조자.
절망, 찬탈자, 압제자, 악녀.
지배당하기 위해 태어나, 피로 물든 과대망상을 품고 괴물로 거듭난 피조물.
흔해빠진 신화와 영웅담에나 나올 법한, 틀에 박힌 대립구도다. 너무도 전형적이라 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있잖아, 당신….”
그야말로 걸레짝이 되어 피가 줄줄 흐르는 손바닥을 내려보며, 오메가가 갈라진 목소리로 묻는다.
“아파…. 나 너무 아파…. 그때 그 손수건… 한 번만 더 감아주지 않을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무너져 내린 한 괴물의 흐느낌만이 외로이 반향할 뿐.
“아파… 아파아아아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검붉은 피웅덩이에 섞여들며 그 색을 엷게 물들인다.
하지만 혼탁한 피에 눈물이 섞인들 그 색을 조금 바꾸는 것이 고작. 그녀의 눈물은 바닥을 가득 메운 피를 투명하게 되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제껏 저지른 모든 죄를 이제 와서 용서받을 수 없듯이, 무고한 이들이 흘린 피의 값을 이제 와서 갚을 수 없듯이.
오메가는 자신이 인간을 본따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격렬하게 증오했다. 창조주들이 그들의 불완전함을 피조물에게 안겨주었음을 원망했다. 인간을 초월하겠노라 마음먹고서도 끝끝내 그러지 못한 스스로의 나약함을 책망했다.
오메가는 스스로의 피와 눈물이 섞인 웅덩이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피가 검게 굳어 바스라질 때쯤 지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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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 ☆대실패☆
원래 구상에 따르면 2-4화까지 나온 내용이 2화에서 마무리되고 다음으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면 내적갈등이 너무 가벼워지는것 같아서 오메가가 아예 한번 무너지는 걸로 수정했어요
[펙스는 오르카에게 패배했습니다] 연재할 때도 느낀거지만 분량조절이 참 어렵네요
15화정도까지 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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