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2962
2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005
3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040
4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080
5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099
6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115
7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193
8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220
9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294
10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316
11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395
12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449
13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516
14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553
15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586
16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63661
“나가! 당장, 나가!”
오메가의 고함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사령관은 서둘러 방을 뛰쳐나왔다.
“아르망…. 혹시 이런 예지는 없었니?”
문을 닫고서도 여전히 소란스러운 방 안의 난리통을 뒤로하고, 사령관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아르망에게 물었다.
“물론 있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아르망.
“왜 말 안 해 준거야?”
“제 예지상, 이 상황이 가장 나은 결과로 이어지기에.”
다소의 원망이 묻어나는 사령관의 책망에도, 아르망의 어조는 침착한 채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최악인데? 대체 여기서 어떤 식으로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는 거야?”
“자세한 경위에 대해서는 저도 알 수가 없군요. 그 부분은 직접 알아가는 즐거움을 위해 남겨두면 어떠실지요.”
“하여간 말은 잘해….”
싱긋 웃어보이는 아르망에게 무어라 더 질책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령관은 한숨을 푹 내쉬며 복도의 벽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섰다.
————————————————————
“....”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 오메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 오메가 님?”
유미가 조심스레 불러보아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점점 가빠지는 숨소리와 잘게 떨려오는 어깨가 그녀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게 해줄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이런 식으로 내 알몸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머릿결도 정리하고, 신경 써서 단장하고, 몸매도 관리해서… 내가 최고로 아름다운 모습일 때 허락하고 싶었는데….”
결국 오메가가 눈물을 터뜨린다. 오래도록 혼수상태였던 탓에 지금 모습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빗자루마냥 산발이 된 머리칼, 무덤에서 꺼내온 시체 같은 피부 톤, 볼품없이 늘어진 군살, 결정적으로 뺨에 크게 나 있는 시퍼런 멍까지. 나름대로 자신의 미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오메가로서는 지금의 모습이 구역질 날 만큼 싫었다.
그런 추한 모습을 사모하는 남자에게 보여버렸다. 심지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을. 사령관이 이 흉물스러운 외모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역겨워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버렸으면 어쩌지? 한 번 생겨난 불안감은 끝없이 그 크기를 불려가며 오메가를 좀먹기 시작했다.
“흐윽… 으흐으윽… 흐어어엉-.”
원래의 그녀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을 법한 사소한 해프닝이었지만, 오랜 병상 생활로 쇠약해진 몸은 그 속에 담긴 마음마저 여리디 여리게 만들어 버렸다.
“그… 오메가 님? 사령관 님은 그런거 특별히 신경 안 쓰세요. 오히려 조금… 뭐랄까, 정돈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좀더 좋아하시던데….”
유미가 허둥대며 오메가를 달랜다. 어떤 순간에도 늘상 당당하던 오메가가 이렇게까지 아이처럼 우는 것은 그녀로서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시설에서의 그 소동이 오메가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새삼 실감되었다.
“시끄러! 네가 뭘 알아? 숫처녀 주제에!”
신경이 상당히 날카로워져 있던 오메가가 버럭 소리지르며 유미를 타박했다.
“아… 아하하….”
“...그 웃음은 뭐야? 설마… 해봤어?”
어색한 유미의 웃음으로부터 무언가를 깨달은 오메가가 경악하며 묻는다.
“그, 언젠가 야근하다가 둘이서만 남게 됐는데… 분위기가 어째 야릇해져서… 그대로….”
유미는 쑥스러운지 볼을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할 말을 잃은 오메가가 유미를 멍하니 바라본다. 언제까지고 자신의 아래에 있을 거라 여긴 유미가 한 발 앞서 어른이 되었을 줄이야.
“그리고 그 다음은 혼자 맥주 마시던 중에 우연히 마주쳐서 대작하다가…”
“심지어 한 번이 아니라고?”
이어지는 설명은 오메가를 더욱 경악하게 만들었다. 한 번이야 어쩌다가 했다 치더라도, 두 번이라니!
“그렇게 두 번 하니까 더이상 혼자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저번달부터 기회 봐서 2주에 한 번 정도씩 하고 있어요….”
“....”
오메가는 순간 욕실이 빙글 도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는 상황에 당장이라도 기절해 버릴 것만 같았다. 터져나온 눈물은 진작 쏙 들어가버린지 오래였다.
“아, 아무튼! 갑작스레 알몸을 보여드려서 당황하셨겠지만! 먼저 경험해본 입장으로써 조언해 드리자면…! 그냥…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세요. 그거면 돼요.”
오메가의 상태를 알아챈 유미가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겨우 그거면 된다고?”
“네, 그거면 돼요. 제 입으로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제가 오르카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 비해 딱히 예쁘거나 매력적인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사령관님한테 좋아한다고 한마디 하니까, 그 날 바로 섹…아니, 첫경험 했어요. 그 다음에도 제가 먼저 다가가면 절대로 거부하지 않으셨고요.
사령관님은 누구든 공평하게 사랑해 주세요. 사령관님의 사랑은 오르카의 모든 여자에게 돌아가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니까요. 오메가님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의구심에 차 되묻는 오메가에게, 유미는 확신에 찬 어조로 차분히 설명했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그리고 먼저 내딛는 한걸음. 그게 다예요. 다른건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든, 성격이 어떻든, 무슨 취향을 가지고 있든… 아무것도 상관없어요. 사령관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시는 분이니까요.”
“....”
반박할 말을 찾아보려 해도 떠오르질 않는다. 오메가가 알고 있는 사령관이라는 남자 역시 유미의 설명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으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전범이자 학살자인 자신마저도 자애로 감싸안으려 하던 남자가 바로 사령관이었으니.
“...그 말 틀리면 가만 안 둬. 아메리카로 돌아가서 30일 연속 야근 시킬 거니까 각오해.”
“미리 오르카에 망명 신청 해 놔야겠는걸요.”
“시끄러. 머리나 마저 말려.”
“네에, 네에.”
오메가가 툴툴대며 유미를 타박한다. 유미는 구박받으면서도 싱글싱글 웃었다. 솔직하지 못한 오메가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감사를 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아까는 정말 나답지 못한 반응이었어. 3개월이라는 시간을 마냥 우습게만 볼 수는 없겠는걸. 마음이 이정도로 약해져 있을 줄이야. 오메가라는 이름이 울겠군.’
오메가는 눈을 힘주어 감았다 뜨며 의지를 다졌다. 이미 추태를 보여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작은 흠결에 한없이 얽매여 후회만 하는 것은 오메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고 일어나 한걸음 내딛는 것이 더욱 그녀다운 태도이리라.
“아까보다는… 훨씬 낫네. 나가서 인간님 좀 들어오라고 해줄래?”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르고, 새 환자복을 꺼내입은 오메가는 아까보다 아주 조금 나아졌을 뿐, 여전히 꽤나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사령관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아, 오메가. 안녕? 몸은 좀 어때? 아까는 미안.”
사령관이 미소와 함께 들어와 휠체어에 앉은 오메가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메가는 말없이 손을 들어 인사를 받은 뒤, 한 번 크게 심호흡하고 말했다.
“인간님, 좋아해.”
순간, 방 안의 시간이 멈춘 듯 하였다. 사령관도, 아르망도, 유미도,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일이 없었다.
‘몰래카메라…인가? 아냐, 그 오메가가 몰래카메라를 할 리가.’
‘...어… 이렇게 앞뒤 다 잘라먹고 할 줄은 몰랐는데….’
‘이런 예지는 없었…지만, 미래의 큰 줄기는 바뀌지 않았군요. 뭐 상관없겠죠.’
어쩔 줄을 몰라하며 눈빛을 주고받는 세 사람.
“어… 어? 방금, 뭐라고?”
영겁과도 같은 침묵을 깬 것은 사령관이었다. 그는 얼빠진 목소리로 오메가에게 되묻는다.
“좋아해. 좋아한다고 말했어.”
오메가는 태연하게 조금 전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사령관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인간님, 시설에서 키스해달라고 했던 것 기억해? 허벅지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려서 피는 줄줄 흘러나오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겨우 몇 분 남아있던 그 때 말야.
나는 있지, 인간님과 입맞추면서 이 한 번의 키스를 위해 죽어도 괜찮겠다 생각했어. 당신을 살리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불태워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
애초에 나는 인간님 덕에 한 번 살아났으니까. 내 과거의 그림자에 짓눌려 죽고만 싶었을 때, 내 발로 일어설 수 있도록 잡아준 것이 인간님이었으니까.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은 무섭지 않았어. 다만 한 가지 후회되었던 것은, 좋아한다는 말을 더 일찍 하지 못했던 거였지. 솔직히 좋아한다고 말하고, 당신과 더 많은 것을 하지 못했던 것이 미련으로 남았어.”
오메가가 담담한 목소리로 죽음 문턱까지 갔던 기억을 되새긴다. 시시각각 피가 빠져나가며 몸이 차가워졌던 감각이 되살아나 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그 시설에서 정신을 잃고 오늘 눈을 뜰 때까지, 줄곧 당신에 대한 꿈을 꿨어. 당신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부서지도록 껴안고, 달콤하게 사랑을 나누는 꿈을. 이 세상에 단 둘만 있는 것처럼, 내일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후회없이 매 순간을 불태우는 꿈을 말야.
…죽음 문턱 근처에 있던 내가 마음 속에 남은 미련을 꿈 속에서나마 풀려고 했었나 봐.”
오메가의 눈빛이 아련함으로 물든다. 꿈 속에서 본 자매들과의 행복한 모습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 꿈을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서글펐다.
“오늘, 눈을 뜨자마자 당신을 생각했어. 내가 죽은 것이 아님을 깨닫고 나니 그 꿈을 실현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더라. 열심히 재활하고, 외모를 가꿔서 가장 아름다워졌을 때 당신의 품에 안기려고 했어. 조금 전에 당신에게 알몸을 보이고 난리를 쳤던 건 아직 준비가 안 되어서 그랬던거고.
근데 있지? 다시 생각해보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겠더라.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났는데 머릿결이 거칠면 뭐 어떻고 뱃살이 늘어져 있으면 뭐 어떻겠어? 심장이 뛰고 숨이 쉬어지고 있음에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그리고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별 것도 아닌 이유로 미루는건 바보같잖아?
그러니까 그냥 지금 말할게. 좋아한다고. 당신의 그 상냥함, 결단력, 유능함, 외모, 목소리, 향기, 뭐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다 좋아한다고 말할게.”
다시 한 번 침묵이 감돈다. 아무 전조도 없이 뜬금없는 고백을 받은 사령관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곤란해했고, 제 3자 입장인 유미와 아르망 역시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중이었다.
“...마, 맞다! 급하게 처리할 업무가 있었는데! 저… 저희는 이만 나가 볼게요~.”
결국 이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유미가 속보이는 변명과 함께 도주를 시도한다. 곁에 선 아르망의 손목을 잡아끌며.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아르망은 유미를 멈춰세운 후 사령관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이런 상황을 예지하고 미리 챙겨두었지요. 감사 인사는 됐습니다, 폐하.”
그리고는 짧게 윙크하며 사령관의 손바닥에 콘돔 하나를 쥐어주었다. 유미는 그 모습을 보고 숨을 헉 들이마시면서도 굴하지 않고 아르망과 함께 도망치듯 방을 떠났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숨막히는 어색함 속에 덩그러니 놓인 남녀 한 쌍만이 남았다.
--------------------
17.5화로 본편 마무리하고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17.5화는 라오19게로 올라갑니다.

(IP보기클릭)119.206.***.***
(IP보기클릭)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