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0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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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겁쟁이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1):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04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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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겁쟁이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9):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0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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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행복했던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10):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0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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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행복했던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18):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09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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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복수귀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19):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10014
발키리, 어느 복수귀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20):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10072
발키리, 어느 복수귀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21):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10181
발키리, 어느 복수귀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22):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10438
발키리, 어느 복수귀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23):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10504
전전편: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10575
전편: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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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임팔라,1980년형이 불덩어리가 되었다, 순식간에.
거기서, 지난 60년동안 그녀들과 함께했던 자동차가, 그 오래된 고물이, 고물이지만 항상 그녀들과 동고동락했던 그 구닥다리 탈것이, 속절없이 불길에 휩싸였다. 연료를 꽉꽉 채워넣은 게 오히려 화근이었다. 우그러진 엔진에서 연료가 뚝뚝 새어나왔고 그것이 타오르는 화염을 더더욱 거세지게 만들었다. 그러다가....쾅!
열기와 압력을 견디지 못한 파손된 엔진이 결국 대폭발을 일으켰다. 어이없을 정도로 찰나의 순간에, 늙은 쉐보레는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토록 오랫동안 버텨왔건만, 허망하게 산산조각나 흩어졌다. 눈뜨기 힘들 정도의 열기와 불길만 남기고서.
....그리고, 아우디도 그 안에 남겨두고서.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제발.”
다치고 긁혔건만, 불길이 뜨겁건만, 발러는 신경도 쓰지 않고 비척비척 뛰어갔다. 그 안에, 그 불지옥 속에 아우디가 있었기에. 그녀는 코트의 옷깃이 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찾아 해매었다. 절망적으로. 애타게. 필사적으로, 거의 울부짖으며.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찾았다. 활활 일렁이는 열기 속에서 웅크린 채 힘없이 쓰러져 있는,
그녀의, 오랜 친구를.
“아우디!!!”
그녀는 아우디를 불타는 잔해들 속에서 끌어냈다. 한쪽 다리는 완전히 부수어져 짓뭉개지고, 상체가 벌집이 되고, 온 몸이 그을음 덩어리가 된 그녀를. 피와 검댕과 탄 자국으로 범벅이 된 그녀의 다치고 불탄 몸에서 비참할 정도로 고소한, 마치 갓 구운 쿠키 같은 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발러는 식욕은커녕 뭐라 말할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오히려, 축 늘어진 아우디가 힘겹게 웃어 보였다. 간신히 고개를 들고서.
“헤헤...구하러 올 줄 알았어, 발러”
“....아우디”
“합리적인 판단이었지? 으, 쿡, 크흑, 쿨럭”
그 자리에 둘 다 앉아 있었다간 타오르는 쉐보레 속에서 다같이 타죽었을 것이다. 그러느니 한 명이라도 살리는 게 낫다. 그리고 살아남은 발러라면 아우디를 불길 속에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이미 때가 늦었긴 해도.
“발러”
“말하지 마요. 출혈이 심합니다”
그러나 발러도 아우디도 알았다. 입 다무는 것 정도로는 찾아오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부상이 너무도 심하다. 가슴부터 복부까지 중기관총 탄환들이 아우디의 몸을 관통했다. 상체에 뻥뻥 뚫린 큼직한 피구멍들에서 속절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마치 폭포처럼. 깜짝 놀랄 정도로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아우로라들의 피에서 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색할 정도로 달큰한 내음이. 발러가 아무리 애타게, 미친 여자처럼 되뇌어도 그 피가 멈출 리는 없었다.
“이럴 순 없어...이럴 수는....”
이성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오늘 하루 종일 무자비하고 냉정했던 그녀의 표정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우디는, 명백히, 죽어 가고 있었다. 발러와 60여년의 세월을 함께한. 그녀와 그 모든 추억과 경험을 함께한. 그리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발러의 과거를 기억해주고 있는, 그녀의 친구가.
아우디는 자신을 품에 안은 발러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싱긋 웃으며 괜찮다고 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실제로 그녀는 괜찮지 않았고 사실은 웃어줄 힘도 나지 않았으니까.
‘얼마 전과 구도가 반대네.’
발러에게 웃어주지는 못했지만, 아우디는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웃음이 지어졌다. 언덕 위에서 철충을 피해 숨었던 그 날, 자신이 두려움에 떨던 발러를 가슴 속에 안아 주었던 그 때가 생각나서다. 이제는 정반대로 죽어가는 자신이 발러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몸을 떨고 있으니. 자신이 발러를 껴안고 다독여주던 그 때와 반대로, 이제는 발러가 그녀를 껴안고 신음하고 있으니. 얄궂다고 해야 하나, 이 뒤바뀐 구도가.
‘어쩌다 우리는 여기까지 왔을까.’
어쩌다, 운명은 그녀들을 여기까지 몰고 왔을까. 이, 멸망 후의 외롭고 잔인한 서부에 내몰았을까, 60년의 방랑 끝에 그녀들을 이곳까지 데려왔을까. 아우디는 죄책감을 느꼈다. 할 말이 없었다. 그 잔인한 운명의 적어도 일부는 그녀의 책임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어쩌면 이건, 그녀 가슴팍에 난 총구멍들은, 그녀를 불태운 불길은, 당연히 그녀가 치러야 할 대가인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무참하게 일그러져 가는 발러의 얼굴에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 바보. 배신자의 죽음에 왜 그렇게 슬퍼하는 거야. 네 말대로 난 살인자에 비겁자인데. 친구들을, 가족들을 죽인 거짓말쟁이가 죽어가는데.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내가.....내가 그 날,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
죽어가는 이 마당에 새삼스럽게 그 때가 떠올랐다. 숨을 헐떡이며 피를 흘리는 그녀의 사정이. 그 날, 발러의 모든 것이 망쳐지고 어그러진 바로 그 날, 아우디의 이야기가.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가 죽어 모든 것이 잊혀지고, 모든 사정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발러가 모르는, 아우디의 이야기를.
<계속: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1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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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처에 대한 이야기
1) 삽입된 첫번째 곡은 "김필"이 부른, 원곡 "도연경"의 "다시 사랑한다면" (2001)입니다. 좀 슬픈 우정 노래를 찾고 싶었는데, 우정 노래는 너무 잔잔하고, 그래서 사랑과 이별노래를 찾아 넣으니 이건 또 백합같고 참 애매하네요잉. 그냥 분위기만 즐겨주시기를.
2) 두 번째 곡은 인디밴드 "담소네 공방"의 "친구" (2017)입니다. 잔잔하지만, 가사가 60년 동안 함께해 온 둘의 관계를 잘 표현하는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1. 본편에 대한 이야기
1) 아우디 빵 만드는 법: 구멍을 뚫어서 달콤한 딸기잼이 흘러나오게 한 다음에 오븐에서 구우면 됩니다.
2) 이번 편은 굉장히 짧습니다. 제가 시간이 많이 없어서요...
3) 언덕에서 철충을 만났을 때와 구도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2편과의 대비입니다(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04564)
2. 잡담
1) 다음 주에 2부 스토리가 열리는데, 배경이 북미죠. 동아시아 쪽이 주무대였던 오르카는 서부를 통해 들어갈 테고. 부디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북미의 상황과 본편 공식 스토리에서의 북미 설정이 설정충돌이 없길 빕니다. 그리하여 제 이야기가 본편과 어긋나는 일이 없기를...
2) 음...유출 관련해서 이야기가 있었군요....
3) 이번 편은 짧습니다. 10월말에 또 갑자기 막 바빠지는군요. 아마 열흘 정도는 연재를 좀 멈추게 될 것 같습니다. 뭐, 마침 다음 주에 북미가 배경인 2부 지역도 열리니까요. 겸사겸사 그거 스토리 보면서 생각해 봐야죠. 최악의 설정충돌이 발생한 경우 제가 라오게에 글을 쓴 이래 최초로 연중을 하게 될지도....
4) 다음 편은(연재가 지속된다면) 아우로라의 회상편입니다.
소설은 읽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서투른 글들을 항상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덧글과 추천이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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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4번에 다음편부터가 아우디의 회상편이라 하셨습니다ㅎ | 21.10.23 17: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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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나이츠 당시의 샬럿처럼 외전으로 풀지 않을까요? | 21.10.23 18: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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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핳 못봤네요 | 21.10.23 18: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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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 편이 회상편입니다. 어째서 그녀들의 모든 일이 꼬였는지 그 근-본을 설명하지 않을 순 없어서....ㅎㅎ | 21.10.23 22: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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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다음 편은 회상편입니다. 다만...제가 시간이 너무 쫒겨서 열흘...그러니까 11월은 되어야 다음 편이 올라오겠네요 ㅠㅠ | 21.10.23 22: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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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샬럿 이야기를 기억해주실 줄은 몰랐네요. 엄청 오래 전에 쓴건데... 제가 쓴 것들 중 잘 쓴 것즐 중 하나라 생각해서 저도 기억에 남는답니다 ㅎㅎ | 21.10.24 01: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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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러도 아우디빵이 잘 구워진 건 봐야죠(?) 제가 묘사가 부족했나 본데, 아우디의 상황은 만신창이입니다. 한 쪽 다리는 으깨졌고, 전신 화상에, 가슴부터 복부까지에 등까지 관통된 총구멍들이 다닥다닥 나 있죠. 살아있는 게 기적이고, 사실은 정말 얼마 못 갈 겁니다....수 분 정도? | 21.10.23 22: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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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데다 만신창이라 발러가 애증을 담아 안락사 시켜줄거라 생각했네요. 말씀처럼 살아날 희망이 없었으니까요ㅠ | 21.10.23 22: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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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만 아니지 몇 분 못 버틸 겁니다. 위 덧들에 썼다시피 살아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걸레짝이 되어 있고... 오븐에 구운 빵 드립은....꼭 쳐보고 싶었습니다. 다들 아우로라(요리사)랑 화재사건 연상하면 그 생각 한번쯤 해볼 줄 알았는데... | 21.10.24 00:3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