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0118
예전에 '뤽베송'의 '제5원소'를 국내에 수입하면서 마음대로 가위질을 하여 감독의 원성을 산 일이 있었다. 이 책 '원자력, 대안은 없다'를 읽고나서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사건이었다. '제5원소'와 이 책의 다른 점이라면 '제5원소'는 가위질이었고 이 책은 풀질이라는 점일 것이다.
먼저, 이 책의 원제는 'Faut-il avoir peur du nucleaire?'다. 우리말로 '우리는 핵을 두려워하는가?' 정도 되겠다. 왜 제목을 '원자력, 대안은 없다 - 원전을 멈출 수 없는 이유'로 바꿔야만 했는지 출판사에게 따져 묻고 싶다.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감수와 추천사 및 그 외 부가적인 내용이 '비율적으로' 많이 붙은 책은 거의 처음이다. 'Faut-il avoir peur du nucleaire?'에 해당하는 내용은 사실 41페이지부터 183페이지까지, 약 140여 페이지 정도. 추천사가 17페이지, 감수를 가장한 '또 다른 본문'이 30여 페이지.
특히, 책의 말미에 실린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서균렬 교수의 감수글에 이 책의 제목이 엉뚱하게 바뀌어버린 진짜 이유가 담겨 있다. 애시당초 'Faut-il avoir peur du nucleaire?' 파트(편의상 '원서의 내용'에 대항하는 부분을 이렇게 부르겠다)에서 '클로드 알레그르'는 '원자력의 대안은 없다'고 주장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원전을 '무조건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에너지원의 다양화'와 '에너지 생산의 분산'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전 세계 사람들과 자원을 공유하고자 한다면 (프랑스 사람들이)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고 말한다(본문 168페이지).
물론, 그는 '친원전 주의자'인만큼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전제'로 두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안전 검사를 엄격하게 할 것
- 폐기물 처리에서 진전을 이룰 것
- 기술을 발전시킬 것
이 세 가지 전제 조건이 만족할 때 '원전으로 생산되는 전기는 좋은 해결책'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 그는 본문 전체를 통해 여러 번 방사능 물질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특히, 그는 '방사능 흡입이나 섭취는 위험하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체내에 들어오면, 내부에서 직접 인체를 피폭하게 된다. 이들 동위원소는 몇몇 기관에 들러붙어 세포를 파괴할 수도 있다'면서 내부 피폭의 위험성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추천사를 쓴 前 한국원자력연구소 원장 장인순 박사는 '미세분말의 핵물질이 엎질러져 온몸에 묻고 입과 호흡기로 들어간 적이 있었지만 괜찮았다'며 '평생을 핵물질과 함께 살아왔지만 70이 넘도록 건강'한 자신이 원자력 발전이 안전한 산 증인이라며 본서를 극찬하는데, 과연 장인순 박사는 책을 온전히 읽고서 이 책을 추천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 혹시 서균렬 교수의 감수글만 읽은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Faut-il avoir peur du nucleaire?' 파트 자체는 중립적으로 원자력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도미니크 드 몽발롱과 클로드 알레그르의 대담 형식으로 꾸며져 있어 쉬이 읽혀지는 구성은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문제라면 인터뷰어에 해당하는 '도미니크 드 몽발롱'이 원자력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원자력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독자를 고려했을 때는 이 책의 장점이 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클로드 알레그르는 '우라늄 235를 4%로 농축한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소와 핵무기는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지구화학자인 클로드에 비해 원자력에 대한 지식이 좀 더 체계적이고 깊을 것으로 생각되는 교토대학교 '고이데 히로아키' 선생은 자신의 저서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 원자력 전문가가 원자력을 반대하는 이유(녹색평론사)'에서 사용후 핵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이 무기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클로드의 주장은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는 단순히 '우라늄을 '초원심 분리'를 통해 농축한다' 선에서만 설명하고 마는데, 이 우라늄 농축 과정에 다량의 화석 연료가 소비되며 그에 따라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전기를 소모한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미니크'에게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는다, 아니 지적할 수 없다.
그밖에도 일본에 비등경수로(BWR)와 가압형경수로(PWR)가 모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비등경수로(BWR)만 존재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하는데, 이 책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간행되었음을 고려하면 적어도 그는 일본의 원전 상황에 대해 불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폐기물 처리'의 현실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프랑스 발전소를 위협하는 것은 일본에서처럼 지진도 해일도 아닙니다. 바로 폐기물입니다. (중략) 폐기물이 위협이 되는 까닭은 현재의 해결책으로는 불충분하고, 이 문제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며 현재의 기술로는 폐기물의 완벽한 처리가 요원함을 일부분 인정하고 있다. 클로드는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소듐(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고속증식로를 제안하는데, 동일한 원자로인 일본의 '몬쥬'가 수십 년째 1와트의 전기조차 발전하지 못하고 '돈 먹는 하마'가 된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감수글'에서 서균렬 교수는 '우리에겐 석유도, 석탄도, 대안도 없으니 원자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서균렬 교수에게 묻고 싶다. '우라늄'은 한국에서 나고 있는지. 특히나 '핵안전협정' 때문에 한국은 '우라늄 농축'이 불가능한데, 원자력 발전소를 돌리기 위한 농축 우라늄 확보 혹은 천연 우라늄의 농축은 돈 한 푼들이지 않고 해온 것인지. 이러한 사소한 팩트조차 언급하지 않고 '우리는 자원이 부족하니 원자력만이 살 길이다'라고 부르짖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리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Faut-il avoir peur du nucleaire?' 파트는 원자력 발전과 원자력 발전의 장단점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차원에서 충분히 읽어볼 만한 내용들이지만, 문제는 출판사에서 '의도적으로' 바꿔버린 제목과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추가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사족 - '추천사'와 '감수글'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전체적으로 본서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특히, 출판사에는 깊은 유감을 느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