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식선생 아래서 동문수학하던 유현덕과 공손찬(女), 노식선생이 정부의 부름을 받아 낙양으로 떠나자 헤어지게 되는데
나는 아무말도 없이 매일 같이 공손찬 누나와 소란을 피우며 달려갔던 등굣길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공손찬 누나는 나보다 세걸음 정도 앞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걷고 있었다.
[미안해 누나]
[뭐가 미안한데 바보야]
[이렇게 빨리 헤어지게 될 줄은 몰랐어... 좀 더 누나에게 잘해줄 걸]
공손찬 누나는 깜짝 놀랐는지 그자리에서 우뚝 멈춰섰다. 뒤를 돌아보는 공손찬 누나의 휘둥그레 놀란 눈에는 물기가 촉촉하게 맺혀있었다. 그렇지만 진심인걸. 나는 진심으로 그 오랜 시간동안 누나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말도 없이 잠깐의 시간동안 서로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탁현 누상촌, 낯선 나의 두번째 고향, 환경도 생물도 문화도 모든 것이 낯선 이곳에서 유일하게 마음 붙일 수 있는 나의 집, 공손찬 누나. 마당에서 수백년을 자랐다는 뽕나무는 지나가는 산들바람에 그림자를 흐트리며 천천히 흔들렸다.
[무슨소리를 하는 거야... 유현덕 따위가 나한테 잘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공손찬 누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맑고 크고 속눈썹이 가지런한 예쁜 눈이다. 그동안 폭력녀 취급만 했었지 이렇게 자세하게 누나의 얼굴을 들여다 본 일이 없었다. 햇볓에 그을렸지만 갸름하고 고운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그냥 헤어져버리긴 싫어, 누나]
[바보...]
[헤어지더라도 징표를 남기고 싶어]
[으에에...?!]
공손찬 누나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나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하며 허둥대곤 자신의 어깨를 끌어않았다.
[그치만...! 현덕... 그런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 우, 우린 아직 어린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아으읏...! 하으.. 현덕... 뭐야 누난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됐고... 또... 지금은 낮이고 해가 떠있을 때면 부끄럽다고 할까...]
[우리집으로 들어가자]
[꺄악?!]
얼굴이 새빨개진 공손찬 누나는 우리집의 대청마루에 앉아 무릎을 비비며 안절부절 못했다. 나는 처음보는 누나의 이상한 모습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징표!]
[자 잠깐 유비..! 일단 씻어야 하지 않을까나...]
[씻을 필요 없어]
[힛...? 그럼 되도록 살살...]
나는 누나에게 펜던트를 내밀었다. 자그마한 탄생석이 박힌 청동으로 만든 것. 나는 이걸 가죽끈에 묶어다 목에 걸고 다녔던 것이다. 내가 왔던 세계의 추억이 담긴 유일한 물건이었지만 공손찬 누나에게 우정을 상징하는 징표로 넘기기에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땀만 흘리고 있었던 공손찬 누나는 내 손에 들린 펜던트를 보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자 받아 누나. 이걸 받고 떠나더라도 나를....]
[바보 유현덕!!]
공손찬 누나의 무거운 발차기가 나의 정강이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언제 맞아도 익숙한 로우킥이다... 손바닥으로 눈물을 대충 문질러 닦은 공손찬누나는 펜던트를 목에 걸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유현덕!!]
[그래!! 너도 잘 먹고 잘 살아라 공손찬!!]
공손찬 누나는 싱긋 이를 내보이며 미소를 짓고 구불구불한 오솔길로 달려나갔다. 청명한 여름하늘에 어울리는 시원한 미소였다.
-그후 공손찬은 역경성에서 원소군을 맞아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처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분신자살한다-